르노 R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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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 léger Modèle 1935 R |
중량 | 11.0t |
전장 | 4.02m |
전폭 | 1.87m |
전고 | 2.13m |
승무원 | 2명 (전차장, 조종수) |
장갑 | 최대 43mm |
주무장 | 37mm L/21 SA38 |
부무장 | 7.5mm MAC31 |
엔진 | 르노 V-4 (82hp) |
출력비 | 8.0hp/t |
현가장치 | 수직 러버 실린더 스프링방식 |
항속거리 | 130km |
속도 | 20km/h |
생산량 | |
R35 | 1540대 |
R40 | 145대 |
1933년 8월의 프랑스군의 신형 경전차 장비계획에 따라 개발되기 시작, 시제 차량은 1934년에 등장하였으며 호치키스 H35 경전차와의 경쟁에서 승리, 1935년부터 보병지원전차로서 야전에 배치되었다. 사실상 르노 FT의 직계 후속 전차다. 15년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성능은 진일보했지만, 두 명 밖에 안되는 탑승 인원, 수동 포탑, 단포신 보병포 등 개념에 있어서는 사실상 변함이 없었다. 때문에 여전히 협소한 포탑에서 지휘 뿐 아니라 사격과 장전, 조준을 동시에 해야 하는 전차장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초기형은 SA18 21구경장 37mm 포와 M1931 7.5mm 기관총을 장비했다. 보병전차이기 때문에 이 이상은 불필요하다 여겼지만 37mm 포는 단포신이라 관통력도 부족[1]했고 고폭탄의 화력도 만족스럽지 못했다.[2] 이후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군의 신예 대전차포인 PaK 35/36 37mm 포가 위력을 떨치자 동급의 SA38 33구경장 37mm 포로 주포를 강화하였다. 라이벌 관계인 기병전차 H35도 같은 주포를 장비했다.
차체는 3분할된 주조제의 차체 상부를 압연강판제 차대에다 볼트로 고정시킨 형태로, 이러한 전차 생산방식은 당시의 대다수 프랑스 전차들이 쓰는 방법이었다. 강판을 분할하여 주조 방식으로 만듦으로써 생산이 보다 용이해져 생산효율이 증가하며, 방어력도 기존의 리벳 접합 방식보다 강화된다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피탄 충격에 의해 볼트가 휘거나 끊어져 차체가 그대로 분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만한 충격량을 가진 대구경탄에 맞았을 경우의 이야기지만 그 대구경탄의 기준이 최소 37mm 이상이니 독일군이 가진 대전차포라면 시간만 들인다면 관통상을 입히지 못하더라도 연속탄을 날려서 충분히 장갑을 떨굴 수 있긴 했다.
폴란드군은 폴란드 침공 발발 시점에서 50대[3]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부대 편성 미완과 소련군의 개입 등의 악재로 인해 극소수 전차만이 전투에 투입되었고 34대 분량은 루마니아로, 3대 분량은 헝가리로 탈출하였다. 루마니아로 탈출한 전차들은 루마니아군에 도입되어 독소전때 노획한 소련군 45mm 대전차포로 주포를 강화했다.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군은 1,500여대의 R35를 보유, 사실상 전차 전력의 주력이었으나 그때까지도 업그레이드가 지지부진한 상태라 대전차 능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보병전차 특유의 시원찮은 속도(20km/h)도 더해져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독일 국방군도 이 경전차를 접수하여 전차장용 전망탑(큐폴라)을 독일식으로 개량하고 무전기를 장비, 주로 레지스탕스 소탕전용으로 사용했고 일부는 동맹국 이탈리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에도 넘겨주었다. 그러나 치안 용도로 쓰기에도 성능의 한계가 드러나자 대부분 포탑을 제거하여 훈련용 차량이나 견인차, 탄약운반차로 썼다. 그중 약 200여대는 체코제 47mm 대전차포를 싣고서 대전차 자주포로 재활용되었다.#
수출도 많이 된 전차라서 폴란드와 루마니아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에 수십대를 구매하기도 했으며, 프랑스의 식민지에도 상당량의 전차가 치안유지용으로 뿌려졌다. 이 때문에 대전 후 살아남은 R35가 상당히 많았으며 1차 중동전쟁에서 시리아군이 10대 정도를 사용하기도 했다.
초기형은 SA18 21구경장 37mm 포와 M1931 7.5mm 기관총을 장비했다. 보병전차이기 때문에 이 이상은 불필요하다 여겼지만 37mm 포는 단포신이라 관통력도 부족[1]했고 고폭탄의 화력도 만족스럽지 못했다.[2] 이후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군의 신예 대전차포인 PaK 35/36 37mm 포가 위력을 떨치자 동급의 SA38 33구경장 37mm 포로 주포를 강화하였다. 라이벌 관계인 기병전차 H35도 같은 주포를 장비했다.
차체는 3분할된 주조제의 차체 상부를 압연강판제 차대에다 볼트로 고정시킨 형태로, 이러한 전차 생산방식은 당시의 대다수 프랑스 전차들이 쓰는 방법이었다. 강판을 분할하여 주조 방식으로 만듦으로써 생산이 보다 용이해져 생산효율이 증가하며, 방어력도 기존의 리벳 접합 방식보다 강화된다는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피탄 충격에 의해 볼트가 휘거나 끊어져 차체가 그대로 분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만한 충격량을 가진 대구경탄에 맞았을 경우의 이야기지만 그 대구경탄의 기준이 최소 37mm 이상이니 독일군이 가진 대전차포라면 시간만 들인다면 관통상을 입히지 못하더라도 연속탄을 날려서 충분히 장갑을 떨굴 수 있긴 했다.
폴란드군은 폴란드 침공 발발 시점에서 50대[3]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부대 편성 미완과 소련군의 개입 등의 악재로 인해 극소수 전차만이 전투에 투입되었고 34대 분량은 루마니아로, 3대 분량은 헝가리로 탈출하였다. 루마니아로 탈출한 전차들은 루마니아군에 도입되어 독소전때 노획한 소련군 45mm 대전차포로 주포를 강화했다.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군은 1,500여대의 R35를 보유, 사실상 전차 전력의 주력이었으나 그때까지도 업그레이드가 지지부진한 상태라 대전차 능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보병전차 특유의 시원찮은 속도(20km/h)도 더해져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독일 국방군도 이 경전차를 접수하여 전차장용 전망탑(큐폴라)을 독일식으로 개량하고 무전기를 장비, 주로 레지스탕스 소탕전용으로 사용했고 일부는 동맹국 이탈리아 왕국과 불가리아 왕국에도 넘겨주었다. 그러나 치안 용도로 쓰기에도 성능의 한계가 드러나자 대부분 포탑을 제거하여 훈련용 차량이나 견인차, 탄약운반차로 썼다. 그중 약 200여대는 체코제 47mm 대전차포를 싣고서 대전차 자주포로 재활용되었다.#
수출도 많이 된 전차라서 폴란드와 루마니아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에 수십대를 구매하기도 했으며, 프랑스의 식민지에도 상당량의 전차가 치안유지용으로 뿌려졌다. 이 때문에 대전 후 살아남은 R35가 상당히 많았으며 1차 중동전쟁에서 시리아군이 10대 정도를 사용하기도 했다.
Renault R40 |
"르노 R40"은 R35의 무장 및 현가장치를 개량한 현대화 개수형이다.
R35의 불편함은 이미 프랑스에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불만이 신뢰성 부족으로, 저속임에도 불구하고 현가장치와 무한궤도가 쉽게 손상되고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R35의 신뢰성 강화판으로 새로운 차체가 1939년에 개발돼서 그냥 R35의 이름을 고수한 채로 계속 생산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숫적으로는 전차부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존 R35의 부족한 대전차능력을 빨리 향상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대전차능력이 향상된 SA38 37mm 전차포를 탑재한 APX-R1 전차포탑을 장착하는 안이 도출되었고, 앞서 언급한 신형 차체에 이 포탑을 장착한 것이 R40으로 간이 제식화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침공이 발발하기 전까지 만들어진 R40은 많이 잡아야 150대에 불과한데, 이는 포탑의 생산량 부족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래서 130~145대의 신형 차체가 만들어졌지만 앞서 말한 포탑 부족사태 때문에 상당수가 포탑없이 방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신형차체도 예상보다 생산량이 적어서 절대다수의 R35는 개수받지 못한 상태로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R40을 R35s라는 이름의 변종중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해서 워낙 수량이 적은 R40은 제조된 거의 모든 수량이 전투에 참가하여 소모되었으며, 현재까지 보존된 R40은 없다.
R35의 불편함은 이미 프랑스에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불만이 신뢰성 부족으로, 저속임에도 불구하고 현가장치와 무한궤도가 쉽게 손상되고 성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R35의 신뢰성 강화판으로 새로운 차체가 1939년에 개발돼서 그냥 R35의 이름을 고수한 채로 계속 생산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폴란드 침공으로 인해 숫적으로는 전차부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존 R35의 부족한 대전차능력을 빨리 향상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대전차능력이 향상된 SA38 37mm 전차포를 탑재한 APX-R1 전차포탑을 장착하는 안이 도출되었고, 앞서 언급한 신형 차체에 이 포탑을 장착한 것이 R40으로 간이 제식화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침공이 발발하기 전까지 만들어진 R40은 많이 잡아야 150대에 불과한데, 이는 포탑의 생산량 부족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래서 130~145대의 신형 차체가 만들어졌지만 앞서 말한 포탑 부족사태 때문에 상당수가 포탑없이 방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신형차체도 예상보다 생산량이 적어서 절대다수의 R35는 개수받지 못한 상태로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에 R40을 R35s라는 이름의 변종중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해서 워낙 수량이 적은 R40은 제조된 거의 모든 수량이 전투에 참가하여 소모되었으며, 현재까지 보존된 R40은 없다.
Renault R39 |
"르노 R39"는 2차대전 종전 후 프랑스 헌병대용으로 주포를 37mm SA38 전차포로 교체한 후 운용한 물건이다.
4,7 cm PaK(t) (Sfl.) auf Fgst.Pz.Kpfw. 35 R 731(f) |
"4,7 cm PaK(t) (Sfl.) auf Fgst.Pz.Kpfw.35 R 731(f)"는 독일군이 R35 차체에 체코슬로바키아제 4,7cm PaK (t) 대전차포[4]를 장착시켜 만든 대전차자주포로, 약 200대가 개조되었다.
4,5cm PaK 184/6(r) auf Pz.Kpfw. 35R 731(f) |
"4,5cm PaK 184/6(r) auf Pz.Kpfw. 35R 731(f)"은 나치 독일군이 노획한 르노 R35에 화력증강을 목적으로 T-26C의 포탑을 얹은 물건이다.
Vânătorul de Care R35 |
"R35 대전차 자주포"는 소련제 45mm 20-K 전차포로 무장을 교체한 파생형으로, 루마니아 최초의 자국산 전차인데다, 30대라는 적은 수량이었지만 부족했던 루마니아군 기갑전력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름인 "Vânătorul de Care"는 루마니아어로 대전차 자주포를 뜻한다.
1942년 12월 초, "콘스탄틴 귈라이" 대령은 "두미트루 호기아" 대위와 함께 R35의 개량형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T-60 베이스의 대전차자주포 프로젝트가 진행됨과 동시에 그들은 군부로부터 45mm 20-K 전차포와 R35를 결합하는 방안에 대하여 요청을 받게 된다.
이렇게 그들은 도태된 R35의 포방패를 연장시키는 마개조를 통해 이를 실현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일련의 실험을 진행한 루마니아 군부에서는 매우 좋은 평가를 내렸고, 실전에 투입시켰으며, 좋은 성과를 내자 이에 고무되어 더 많은 수량을 제작할 것을 그들에게 명령했으나, 30대라는 적은 수량만이 제작되었다.
R35 대전차자주포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독일군에 맞서 싸우다가 차례차례 격파되었다.
이름인 "Vânătorul de Care"는 루마니아어로 대전차 자주포를 뜻한다.
1942년 12월 초, "콘스탄틴 귈라이" 대령은 "두미트루 호기아" 대위와 함께 R35의 개량형을 연구하고 있었으며, T-60 베이스의 대전차자주포 프로젝트가 진행됨과 동시에 그들은 군부로부터 45mm 20-K 전차포와 R35를 결합하는 방안에 대하여 요청을 받게 된다.
이렇게 그들은 도태된 R35의 포방패를 연장시키는 마개조를 통해 이를 실현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일련의 실험을 진행한 루마니아 군부에서는 매우 좋은 평가를 내렸고, 실전에 투입시켰으며, 좋은 성과를 내자 이에 고무되어 더 많은 수량을 제작할 것을 그들에게 명령했으나, 30대라는 적은 수량만이 제작되었다.
R35 대전차자주포들은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독일군에 맞서 싸우다가 차례차례 격파되었다.
R35 대전차 자주포의 잔해 |
현재 남아있는 것은 슬로바키아인이 소장 중인 녹슨 포탑 하나가 유일하다.
R35/45 |
"R35/45"는 전쟁 전 프랑스로부터 구매한 수량과, 폴란드 침공 막바지에 루마니아로 탈출한 폴란드군 소속 전차를 편입한 수량 및 독일군으로부터 인수받은 르노 R35를 루마니아 왕국에서 개조한 사양이다.
기록이 상단의 사진 단 하나만 존재하여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R35의 운용상 불편함 및 프랑스제 37mm 주포의 탄약 부족과, 당시 유지보수를 할 수 없던 노획 T-26들의 문제 등, 여러가지 상황에 직면한 루마니아군에서 상황 모면을 위해 나온, 구동계가 고장난 상태의 T-26B와 남아도는 R35를 섞자는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차량은 제작 시 버려지는 부속들의 경제적 가치는 물론 강제적인 결합으로 인한 성능 저하를 야기하기에 소수만을 제작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루마니아 왕국군은 R35에다 포탑을 개수하지 않고 그대로 45mm 대전차포로 스왑하여 T-26과 유사한 성능을 내는 "Vânătorul de Care R35" 대전차자주포를 제작, 제식 전차로 사용했다.
현대에는 Vânătorul de Care R35 대전차자주포의 제작 전 임시변통으로 만든 프로토타입이 아니었을까 추정하는 중.
기록이 상단의 사진 단 하나만 존재하여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R35의 운용상 불편함 및 프랑스제 37mm 주포의 탄약 부족과, 당시 유지보수를 할 수 없던 노획 T-26들의 문제 등, 여러가지 상황에 직면한 루마니아군에서 상황 모면을 위해 나온, 구동계가 고장난 상태의 T-26B와 남아도는 R35를 섞자는 아이디어를 통해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차량은 제작 시 버려지는 부속들의 경제적 가치는 물론 강제적인 결합으로 인한 성능 저하를 야기하기에 소수만을 제작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루마니아 왕국군은 R35에다 포탑을 개수하지 않고 그대로 45mm 대전차포로 스왑하여 T-26과 유사한 성능을 내는 "Vânătorul de Care R35" 대전차자주포를 제작, 제식 전차로 사용했다.
현대에는 Vânătorul de Care R35 대전차자주포의 제작 전 임시변통으로 만든 프로토타입이 아니었을까 추정하는 중.
Pz.Kpfw. 35-R 731(f) (ShVAK) |
"Pz.Kpfw. 35-R 731(f) (ShVAK)"은 1942년 3월 노획한 르노 R35를 모스크바의 MZOK VIM 공장에서 20mm ShVAK 기관포로 무장을 교체한 파생형이다.
프랑스 침공 당시의 프랑스 육군 소속 르노 R35[5] |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 육군의 주력 전차들 중 하나로 사용되었으나 큰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결국 얼마 안가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되면서 상당량이 독일군에게 노획 물자로 넘어갔다.
유고슬라비아 전역 당시 전투 중인 독일 국방군 소속 Pz.Kpfw. 35-R 731(f) |
NIBT 시험장의 소련 육군 노획 독일 국방군 소속 Pz.Kpfw. 35-R 731(f) |
독소전쟁 시기 루마니아군과 남부집단군이 운용하였으며, 소련군도 독일군으로부터 몇몇의 차량을 노획하여 잠시 운용하였다고 한다.
소뮤아 전차 박물관 소장 르노 R39 |
원조 사용국으로, 상술하였듯 전후에 국가 헌병대에서 잔존 차량들의 포를 변경해 르노 R39로 명명한 뒤, 치안유지 목적으로 1950년대까지 사용하였다.
독일 국방군 소속 Pz.Kpfw. 40-R 731(f) |
프랑스, 유고슬라비아에서 대거 노획해 R35는 "Panzerkampfwagen 35-R 731(f)", R40는 "Panzerkampfwagen 40-R 731(f)" 라는 제식명으로 운용했다.
스위스 육군 소속 경전차 35 |
1940년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군 전차부대가 스위스로 망명할 때 르노 R35를 타고 갔는데, 이때 스위스군이 망명한 프랑스군의 르노 R35를 압류해 "경전차 35 (Leichter Panzer 35)"라는 제식명으로 운용했다.
툰 전차 박물관 소장 4,7 cm PaK(t) (Sfl.) auf Fgst.Pz.Kpfw. 35 R 731(f) 대전차자주포 |
종전 후에는 프랑스로부터 4,7 cm PaK(t) (Sfl.) auf Fgst.Pz.Kpfw. 35 R 731(f) 대전차자주포 1대를 기증받아 테스트용으로 사용했다.
페르디난트 1세 국립 군사 박물관 소장 르노 R35 |
원래 루마니아는 1938년 르노 R35 200대를 자체생산하기 위해 프랑스와 협력하여 공장 설립을 추진하였으나 프랑스가 재무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지연되었고, 결국 1939년 르노 R35 41대를 구매하는 것으로 선회하였다. 1939년 9월 말 루마니아에 망명한 폴란드 제21경전차대대의 르노 R35 34대를 추가로 도입해 총 75대를 운용했다.
애국 공원 소장 르노 R35[7] |
동부전선에서 추축군으로부터 노획해 사용했다.
야드 라 시론 전차 박물관 소장 르노 R35 |
1차 중동전쟁 당시 시리아군으로부터 노획해 사용했다.
Renalut R35 |
프랑스 2티어 경전차로 등장한다.
르노 R35 (SA38) |
프랑스 중전차 트리의 1랭크 경전차로 프랑스 헌병대 버전 R.38가 등장한다.
자세한 내용은 중장갑 기병(프랑스) 문서 참고하십시오.
글로벌 시대의 첫 번째 프랑스 고유 유닛인 R-35 전차로 등장한다.
독일군 2선급 사단들이 갖고있다. 후방 치안유지 부대에서 쓰인다. 루마니아 산악사단이나 유고슬라비아 빨치산들도 소량 사용한다. 보병이나 경장갑차를 상대할 수 있지만 속도가 너무 느려서 써먹기 답답하다. 또한 측면을 노려도 중형전차급 격파는 불가능하다.
걸즈 앤 판처에서 등장한 마지노 고교 소속 르노 R35 |
R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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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0m에서 33mm 관통, 500m에서 24mm, 1km에서 16mm 관통. 부족해보이지만 당대 경전차들을 생각하면 관통을 못하지는 않았다.[2] 이런 단포신 보병포를 장착한 이유는 화력 부족을 인식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1차대전 때 대량 생산된 SA18 보병포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1930년대 초중기 전차들은 1940년대의 전차와 다르게 장갑이 약하거나 기관총만 장착한 전차들도 많았기 때문에 참작의 여지가 있다. 2차대전 초기 독일의 주력전차들이 기관총 또는 기관포만 장착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당시 전차들중 구경과 화력이 제일 높았던 건 45mm 주포를 장착한 소련제 경전차들이었다. 대신 이쪽은 장갑이 허약해서 문제였다.[3] 전쟁 직전 폴란드는 프랑스로부터 R35 전차 100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며 독일의 침공 당시에는 그 중 절반 분량이 폴란드에 들어와있었다. 이때 시험용으로 같이 들여온 호치키스 H35 전차도 3대 존재했다.[4] 슈코다 47 mm Kanon P.U.V.vz.38 대전차포의 독일군 제식명.[5] 1940년 5월 22일에 촬영된 사진이다.[6] 이때 테스트 목적으로 구입한 호치키스 H35 3대도 같이 들어왔다.[7] 루마니아 왕국군으로부터 노획한 차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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