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호 돌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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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rmgeschütz IV |
호주 기갑 박물관 소장 4호 돌격포 기동 영상 |
브로니 전차 박물관 소장 4호 돌격포 기동 영상 |
Sd.Kfz. 167 Sturmgeschütz IV 4호 돌격포 | |||
중량 | 23t | ||
전장 | 6.7 m | ||
전폭 | 2.95 m | ||
전고 | 2.20 m | ||
승무원 | 전차장, 포수, 탄약수, 조종수 | ||
장갑 | 10–80 mm | ||
주무장 | 7,5cm StuK 40 L/48 돌격포[1](탄약 63발) | ||
부무장 | 7,92mm MG34 1정(탄약 600발) | ||
엔진 | 마이바흐 HL 120 12기통 엔진 (296마력) | ||
추중비 | 13마력/톤 | ||
변속기 | ZF SSG 76 Aphon(전진 6단, 후진 1단) | ||
서스펜션 | |||
항속거리 | 210km | ||
속력 | 40km/h (25 mph) |
예전부터 계획은 있었지만 논란 끝에 잠시 유보된 상태였었다. 하지만 1943년 11월, 연합군의 공습으로 알케트 사의 3호 돌격포 생산공장이 파괴되어 3호 돌격포의 생산이 잠시 중단되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4호 전차의 차체에 3호 돌격포의 전투실을 얹은 급조차량을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4호 돌격포다.
급조품이었기 때문에 3호 돌격포의 공장이 복구된 후에는 더 이상 만들 필요가 없었겠지만, 독일군은 종전까지 이 돌격포를 계속 생산했다. 3호 돌격포에 탑재된 주포가 PaK 40의 돌격포 버전인 7,5cm StuK 40 돌격포인 것을 보면 대체 왜 계속 생산했는지 의문이나 처음 4호 돌격포를 생산할 당시 4호 돌격포를 몇몇 신설 전차대대[2] 창설을 위해 배치한 이후, 이들의 장비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되었다는 설이 있다. 총생산량은 1,139대이다.
급조품이었기 때문에 3호 돌격포의 공장이 복구된 후에는 더 이상 만들 필요가 없었겠지만, 독일군은 종전까지 이 돌격포를 계속 생산했다. 3호 돌격포에 탑재된 주포가 PaK 40의 돌격포 버전인 7,5cm StuK 40 돌격포인 것을 보면 대체 왜 계속 생산했는지 의문이나 처음 4호 돌격포를 생산할 당시 4호 돌격포를 몇몇 신설 전차대대[2] 창설을 위해 배치한 이후, 이들의 장비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되었다는 설이 있다. 총생산량은 1,139대이다.
아무튼 제작할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꾸준히 생산한 덕분에 대전 말기에 이르면 똑같은 7,5cm PaK 40 대전차포와 그 파생형들을 장비한 비슷한 체급에 비슷한 용도에 설계는 완전히 딴판인 차량이 6종류나 돌아다니는 기막힌 광경이 펼쳐진다. 그게 바로 3호 돌격포, 4호 돌격포, 4호 전차 후기형, 헤처, 4호 구축전차 일부[3]이다. 이것은 독일군 입장에서도 매우 곤란했다.
이러한 결과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는데, 바로 기갑과 포병의 알력다툼이 그것이었다. 당시 포병에게는 그나마 전공을 세울 수 있는게 돌격포였다. 그런데 기갑병과의 하인츠 구데리안은 돌격포까지 기갑병과로 끌어가려 들었고, 당연히 열받은 포병감은 구데리안에게 엿을 먹이고, 그래서 아돌프 히틀러가 포병 자산을 상실한 포병감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 그리고 종전까지 PaK 40 계열 대전차포가 효과적인 대전차무기였던 이유도 있었다. 원래 군 병과나 조직별로 대립이 심한거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고 2차대전 당시 독일도 그러했다. 제국 2인자나 다름없는 공군의 헤르만 괴링부터 시작해서, 파울 요제프 괴벨스, 하인리히 힘러 등등 온갖 고위 관료들과 군인들이 전공을 세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만큼 서로간의 알력다툼도 매우 심했다. 그 외에도 국민돌격대 건이나 여러가지로 내부에서 충돌이 꽤 심했다. 나치가 지도자 원리와 사회진화론에 따라 국가 내부에서의 권력투쟁을 권장했던 것이 이런 폐해를 낳았다. 이 4호 돌격포도 그런 독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빚은 촌극의 결과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에는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는데, 바로 기갑과 포병의 알력다툼이 그것이었다. 당시 포병에게는 그나마 전공을 세울 수 있는게 돌격포였다. 그런데 기갑병과의 하인츠 구데리안은 돌격포까지 기갑병과로 끌어가려 들었고, 당연히 열받은 포병감은 구데리안에게 엿을 먹이고, 그래서 아돌프 히틀러가 포병 자산을 상실한 포병감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 그리고 종전까지 PaK 40 계열 대전차포가 효과적인 대전차무기였던 이유도 있었다. 원래 군 병과나 조직별로 대립이 심한거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고 2차대전 당시 독일도 그러했다. 제국 2인자나 다름없는 공군의 헤르만 괴링부터 시작해서, 파울 요제프 괴벨스, 하인리히 힘러 등등 온갖 고위 관료들과 군인들이 전공을 세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그만큼 서로간의 알력다툼도 매우 심했다. 그 외에도 국민돌격대 건이나 여러가지로 내부에서 충돌이 꽤 심했다. 나치가 지도자 원리와 사회진화론에 따라 국가 내부에서의 권력투쟁을 권장했던 것이 이런 폐해를 낳았다. 이 4호 돌격포도 그런 독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빚은 촌극의 결과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4호 돌격포를 만들기 위해서는 4호 전차 차체가 필요한데, 여기에 포탑을 달면 4호 돌격포보다 강력한 4호 전차 후기형이 완성된다. 포탑이 없어서 전투력이 떨어지는 4호 돌격포를 만들기에는 4호 전차의 차체가 아깝다. 다만 전쟁 막바지 상황에는 포탑을 생산하는 공장이나 운반할 철로가 파괴되는 것이 일상이여서 차체에 포만 달아야 하는 상황이 많긴 했다.
- 4호 구축전차와 비교하면, 5호 전차 판터에 장착된 7,5cm KwK 42 전차포의 원본인 7,5cm PaK 42 대전차포를 탑재한 4호 구축전차 포마그 형 및 알케트 형의 화력이 4호 돌격포보다 훨씬 강력하며, 방어력도 경사장갑을 대폭 적용한 4호 구축전차 쪽이 낫다. 강점이라면 4호 돌격포가 4호 구축전차보다 차체 밸런스는 좋다는 점 정도.
- 3호 돌격포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차체가 커서 그만큼 내부가 넓었기에 거주성이 좀 더 나아졌지만, 어차피 화력과 방어력은 별로 차이가 없다. 오히려 더 커서 그만큼 피탄되기 쉬워졌다.
여러 문제점이 산재한 급조품이었지만 그래도 4호 전차의 차체와 주포의 위력 덕분에 기본적인 성능은 쓸만했다고 한다. 4호 돌격포는 국민척탄병 사단과 SS 제17기갑척탄병사단에 배치되어 프랑스에서 미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루었는데, 제대로 된 기갑장비가 없었던 터라 이놈은 의외로 큰 도움이 되었다. 당장 보병들 입장에선 장갑차 한대라도 아쉬운 판이었으니. 성능은 주포 구경의 열세를 제외하면 독일판 SU-85 수준이었으므로 땜방용으론 나쁘지 않았다.
1944년 8월 6일 독일 제394 돌격포 여단은 연합군 전차 26대를 파괴했는데, 3포대장 폰 예나(Von Jena) 대위와 휘하 승무원들이 셔먼 6대를 격파했다. 예나 대위는 당시의 공적으로 독일 십자장 금장을 수훈했다. 같은 달 독일 제394 돌격포 여단은 팔레즈 근방에서 궤멸했다.
17 SS기갑척탄병사단 괴츠 폰 베를리힝겐 소속 4호 돌격포 2대가 스튜어트 2대와 관측차량 1대, 셔먼 3대를 격파하고 이후 한대는 고장으로 방기, 남은 1대는 국방군 보병 부상자들을 태우고 전선돌파를 감행 셔먼 2대를 추가로 격파하고 자력으로 행군하여 아군과 합류하는데 성공한 적도 있었다.
1944년 8월 6일 독일 제394 돌격포 여단은 연합군 전차 26대를 파괴했는데, 3포대장 폰 예나(Von Jena) 대위와 휘하 승무원들이 셔먼 6대를 격파했다. 예나 대위는 당시의 공적으로 독일 십자장 금장을 수훈했다. 같은 달 독일 제394 돌격포 여단은 팔레즈 근방에서 궤멸했다.
17 SS기갑척탄병사단 괴츠 폰 베를리힝겐 소속 4호 돌격포 2대가 스튜어트 2대와 관측차량 1대, 셔먼 3대를 격파하고 이후 한대는 고장으로 방기, 남은 1대는 국방군 보병 부상자들을 태우고 전선돌파를 감행 셔먼 2대를 추가로 격파하고 자력으로 행군하여 아군과 합류하는데 성공한 적도 있었다.
호주 기갑 박물관 소장 4호 돌격포 |
폴란드 브로니 전차 박물관 소장 4호 돌격포 |
폴란드 흰독수리 박물관 소장 4호 돌격포 |
라트비아 스벤티스 뮤이자 호텔 박물관 소장 4호 돌격포 |
전후 총 5대가 생존하여 1대는 폴란드 브로니 전차 박물관에[4], 1대는 호주 기갑 화포 박물관에[5], 폴란드 흰독수리 박물관에 1대[6], 러시아 쿠빙카 전차 박물관에 1대, 라트비아 스벤티스 뮤이자 호텔(Sventes Muiža Hotel) 박물관에 1대[7]가 보존중이다.
Sturmgeschütz IV |
개인임무 보상 전차로 등장. 정규트리에 있는 3호 돌격포 G형의 하위호환이다. 주포는 70구경장을 끌어다 쓰는 3호 돌격포와는 달리 고증인 48구경장 7.5cm 포를 사용하며, 고증 엔진이 달려서 추중비도 떨어진다. 대신 옆구리에 쉬르첸이 달려있어 측면 방어력이 3돌보단 약간 높고, 7티어까지 만나는 3돌과는 달리 6티어까지만 만난다.
4호 돌격포 조각품 |
월드오브탱크를 제작한 워게이밍의 지원으로 4호 돌격포 조각품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의 4호 돌격포 |
국방군 소속으로 출연. 싼 가격과 적은 인구수로 스팸하여 적의 초반을 압박하거나, 상대가 대전차 준비가 부족할 때 허를 찌르는 효자 유닛이다. 이밖에 StuH 42가 4호 돌격포에서 포만 곡사포로 바꿔서 등장한다.
배틀필드 V의 4호 돌격포 |
독일 국방군 진영의 유닛으로 등장한다. 스펙 자체로만 봤을때는 공속, 이속이 느리다보니 성능이 좀 애매한 편이다. 가성비로 승부하게되는 유닛으로, 가격이 싸고 돌격포의 유닛 레벨이 높아질 수록 꽤 적절한 성능을 갖추고 전투를 이어갈 수 있다. 국방군 진영의 건물 중 전차 공장이 있는데, 이 건물을 배치하면 주기적으로 4호 돌격포를 생산할 수 있어서 특히 2vs2 팀플레이에서 애용되고 있다.
팀원과 전차 공장을 잘 지켜내면[8] 연합군 진영의 보병 물량전에 준하는 기갑 물량전 양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 팀원이 독일 동부전선군 진영인데 "차량 공장"을 들고 나왔다면 4호 돌격포+차량 공장의 푸마 장갑차+부르프라멘으로 유저 실력에 따라 엄청난 기갑웨이브가 가능해진다.
병력 대여 시스템이 추가된 이후 동부전선군의 수리 유닛을 국방군측이 빌려올 수 있게 되었다. 클레시 로얄처럼 이 게임도 건물을 배치하면 서서히 체력이 줄어들어 파괴되는데, 이 시스템 덕분에 전차 공장도 수리를 받아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스킬에 취약하긴 하지만 최대한 유지하면 꿀잼 물량전이 가능해지니 버텨보자.
팀원과 전차 공장을 잘 지켜내면[8] 연합군 진영의 보병 물량전에 준하는 기갑 물량전 양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 팀원이 독일 동부전선군 진영인데 "차량 공장"을 들고 나왔다면 4호 돌격포+차량 공장의 푸마 장갑차+부르프라멘으로 유저 실력에 따라 엄청난 기갑웨이브가 가능해진다.
병력 대여 시스템이 추가된 이후 동부전선군의 수리 유닛을 국방군측이 빌려올 수 있게 되었다. 클레시 로얄처럼 이 게임도 건물을 배치하면 서서히 체력이 줄어들어 파괴되는데, 이 시스템 덕분에 전차 공장도 수리를 받아서 오래 유지할 수 있다. 스킬에 취약하긴 하지만 최대한 유지하면 꿀잼 물량전이 가능해지니 버텨보자.
4호 돌격포 초기형 |
참고로 전면 궤도 장갑에 그려진 부대 마크는 제4 SS경찰기갑척탄병사단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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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aK 40 기반 전차포 7,5cm KwK 40의 돌격포 버전.[2] 기갑척탄병사단 소속 전차대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3] 75mm 70구경장 전차포의 일시적 수급 문제로 48구경장을 달고 출고된 일부 물량 한정.[4] 늪에 빠진 차량을 회수해 복원한 차량이다.[5] 위 두 차량은 현재 기동이 가능한 차량들이다.[6] 3호 돌격포와 4호 전차 부품이 섞여 조립된 차량이다.[7] 해당 차량은 인터넷 매물로 올라왔던 이력이 있다.[8] 초반에 팀원이 엄청난 체력을 자랑하는 티거 중전차나 페르디난트를 배치해주면 시간을 벌 수 있다. 혹은 병원덱이나 구스타프 하르크를 중심으로 하는 대전차포+박격포 부대도 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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