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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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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위사공신 | 推誠衛社公臣
류경
문정공(文正公)
문반직
첨의중찬(僉議中贊)
무반직
상장군(上將軍)
민간 호칭
삼한거부(三韓巨富)
본관
이름
경(璥)
천년(天年) / 장지(藏之)
생몰연도
1. 개요2. 생애3. 최종 관작4. 대중매체5. 관련 문서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고려 무신정권 말기의 관료.

본관문화 류씨로 이름은 유경 또는 류경이라 읽어도 무방하다. 개국공신 류차달(柳車達)의 8대손이다.[1]

2. 생애[편집]

문신으로 김준, 임연과 모의해 최의 암살을 주도하면서 정권을 차지했다.(무오정변) 최의 처단 공로로 고종으로부터 지주사(知奏事) - 좌우위 상장군(左右衛 上將軍) 직위를 받았지만 과거 최충헌 등 권신이 지주사 직위를 역임했다는 것을 의식해 사양했다. 이에 고종은 추성위사공신(推誠衛社功臣) - 우부승선(右副承宣) - 좌우위 상장군(左右衛 上將軍) 관작을 하사했다. 문신이라 무신정권 집정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정방을 장악하고 군권을 포함한 실권을 행사했다.[2]

그렇게 권세가 날로 커지고 재산을 엄청나게 모아 민간에선 삼한거부(三韓巨富)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곧 김준, 임연에 의해 탄핵당해 밀려났다. 그래도 류경의 집에서 병을 치료할 만큼 신임이 두터웠던 고종이 류경의 집에서 붕어하고, 원종이 즉위하자 김준 무신정권 막이 올랐다. 그러나 김준이 왕을 능멸할 정도의 전휭을 일삼다가 원종과 합세한 임연에 의해 제거되고, 임연이 정권을 잡자(무진정변) 이를 대놓고 비난하다가 원종에게 밉보여 흑산도(黑山島)로 1차 유배를 당했다. 임연은 류경을 풀어주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다른 섬으로 2차 유배를 당했다가 강도(江都)로 귀환했다.

류경은 정권을 잡은 기간이 짧았고(1258년 3~11월), 잘하면 여기서 무신정권이 끝나고 과거 체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본인부터가 김준을 비롯한 무신들과 결탁한 결정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정권을 잡은 후에는 후속처리를 미흡하게 하는 바람에 실제로는 이뤄지지 못했다. 그나마 집권자들이 전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과는 달리 그 자신이 왕권에 도전하지 않았고, 또한 김준, 임연 등 무신정권 집권자들과 무오정변을 함께했던 탓인지 실각 후에도 살아남았다.

삼별초의 난이 일어나자 강도에서 개경으로 탈출하던 중 삼별초에게 붙잡혔다. 하지만 아픈 척을 해 적을 속인 뒤, 얼른 다시 탈출해 원종을 호종했다.[3] 이후 노비 문제로 다루가치와 분쟁이 생겨 애도(哀島)로 3차 유배당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원 간섭기가 시작된 제25대 충렬왕 치세에선 정계에 제대로 복귀해 김방경을 귀양지에서 구출했고, 사관(史館)의 수장으로서 제20대 신종, 제21대 희종, 제22대 강종, 제23대 고종의 《실록》 편찬을 담당했다. 또 다루가치와 '정화궁주 저주 사건'으로 분쟁이 생겼으나 이번엔 이겼다. 제국대장공주가 궁궐을 지으려 하자 길일을 잡아야된다며 공사를 늦추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말년엔 승려 최탄의 무고에 걸려 4차로 유배당할 뻔했지만 다행히 최탄의 무고죄가 들통나면서 유배되자 억울함을 면했다.

류경은 스승이자 후원자로서 제자를 키웠는데, 성리학을 최초로 도입한 안향이 그의 직계 제자였으며, 류경이 후원한 문사들이 고려 말기 정부 요직을 꿰차면서 하나의 문벌(文閥)로 성장했다.

성품은 근엄해서 사람들이 우러러보았으나 한편으로는 말과 웃음에 친근함이 있고, 또한 명민하고 도량이 크고 깊으며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어 능히 큰일을 치를 능력을 갖췄다고 전한다. 또한 배경이 만만치 않았기에 큰 비난은 받지 않았다. 생전 엄청난 부로 인해 탐욕스러웠다는 평도 받았으나[4] 왕정복고를 기치로 정변을 일으켜 고종에게 왕권을 돌려주고, 권력을 잡았음에도 왕권을 능멸하지는 않았기에 충렬왕 대까지 조정 원로로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류경은 권신(權臣)으로 불렸지만 고려사 반역열전에 이름이 오르지 않고, 제신열전에 올랐다.

정계 거물답게 인맥이 어마어마한데 어머니가 무신정권 제1대 집권자 이의방의 동생인 이린[5]의 딸로 전주 이씨였다. 외외증조부는 수많은 고려 문신들을 무신정변의 참화로부터 구해낸 문극겸이다. 류경의 아들 류승의 외손서[6]는 고려 말의 대유학자 이제현이다.[7] 해동 성리학의 시조 안향은 그의 제자이다.

3. 최종 관작[편집]

류경은 충렬왕 치세에 치사(致仕)[8]했다. 그의 치사 관작은 다음과 같다.
  • 문산계 품계: 광정대부(匡靖大夫)[9]
  • 직위: 첨의중찬(僉議中贊)[10] - 수문전대학사(修文殿大學士)[11] - 감수국사(監修國史)[12] - 상장군(上將軍)[13] - 판전리사사(判典理司事)[14] - 세자사(世子師)[15]

4. 대중매체[편집]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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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사》 <유공권 열전> 출처. 가계는 류차달 → ... → 류공권 → 류택 → 류경.[2] 이 시기는 김준 집권기에 포함된다.[3] 원종은 류경이 모반을 일으킬 줄 알고 염려했지만 그가 곧장 본인에게 달려온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중서문하성 병부를 관할하는 평장사 판병부사에 임명했다.[4] 별명이 '삼한거부'였다. 그 사치스럽다는 문벌귀족, 무신 집권자들도 이렇게 불렸던 적은 없었다.[5] 조선 태조 이성계의 직계 조상이다.[6] 外孫壻. 외손주사위라고도 한다.[7] 류경 → 류승(류경의 아들) → 변한국대부인 류씨(류승의 딸, 권부에게 출가) → 길창국부인 권씨(류승의 외손녀).[8] 관직에서 은퇴함을 이른다.[9] 종2품 품계. 원래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였지만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광정대부로 품계명이 변형되었다.[10] 첨의부(僉議府)의 장관이다. 첨의부는 고려의 최고위 정부기관으로, 충렬왕이 중서문하성을 첨의부로 고치면서 문하시중도 첨의중찬으로 바꾸었다.[11] 대학사는 임금의 정치 자문관 역할을 하는 직위다.[12] 사관(史館)의 장관이다.[13] 고려의 최고위 무관직이다. 류경은 2군 6위 중 좌우위(左右衛)의 상장군이었다.[14] 전리사(典理司)의 장관이다. 전리사는 충렬왕이 인사관리 부서인 이부와 외교 부서인 예부를 합친 부서였다.[15] 세자부 소속 직위로 세자의 스승이다. 세자사는 충렬왕이 태자태사(太子太師)를 격하시킨 직위다.[16] 2014년 KBS1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박상충 역, 2015년 MBC 드라마 <화정>에서는 이항복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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