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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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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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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134·135·136·137권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3.1. 무신3.2. 소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

1. 개요[편집]

李峴, ?~1254
고려 후기의 반역자.

2. 생애[편집]

고종 때의 사람으로 성품이 탐욕스럽고 남을 중상하기를 좋아하였다. 일찍이 선군별감(選軍別監)이 되어 뇌물로 은(銀)을 많이 받았으므로 사람들이 은상서(銀尙書)라 불렀다. 1251년[1] 몽골군의 침공을 늦추자는 의도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재직 중 몽골에 사신으로 갔으나, 2년 동안 억류되어 있다가 몽골군의 5차 침공 때 자진해서 향도가 되어 야굴, 아무칸, 영녕공, 홍복원과 함께 고려를 침공한다. 이현은 사령관 야굴에게 고려 침공 계획을 알려주었다.
“고려의 도읍은 바닷섬에 있고 공물과 조세는 모두 지방 주·군(州郡)에서 나오니, 만약 가을이 되기 전에 먼저 주·군(州郡)을 기습하면 도읍의 사람들은 필시 곤란을 받을 것입니다.”
그 뒤 고려 조정의 투항을 요구하였다.
“제가 원나라에 두 해 동안 억류되어 있으면서 그들이 하는 일을 살펴보니, 전에 듣던 소문과 판이하게 달라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도리어 만물의 생명을 사랑하고 아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와 올해에 내린 조서에서 제시한 조건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닌데, 어째서 육지로 나와서 맞이하지 않습니까? 원나라의 황제께서 노하여, 너희 나라는 짐이 인명을 아끼고 보호하는 뜻을 모르니 군대를 보내 죄를 묻는다.라고 합니다. 나라에서 만약 왕업을 존속시키려고 한다면, 어찌 한두 사람을 육지로 내보내 항복하는 것을 주저합니까? 지금 동궁(東宮)이나 안경공(安慶公) 같은 종실이 육지로 나와 영접하면서 사정을 잘 이야기한다면 군대가 거의 퇴각할 듯하니, 바라건대 공께서는 잘 생각해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그 이후 다른 성들의 항복을 유도하였으며, 양근성(楊根城)과 천룡성(天龍城)의 두 성을 항복시킨 뒤에는 스스로 이 지역의 다루가치가 되어 항복한 백성들을 거느리고 충주성을 공격한다. 적장 야굴의 지휘하에 부장 아무칸, 그리고 홍복원이 포함된 주력부대에 의하여 70일간이나 포위 공격을 전개하였으나 김윤후가 지휘하는 충주 백성들의 항전을 이겨내지 못하였다.[2]

이듬해인 1254년 몽골군이 철수하였는데, 전쟁 도중 노획한 은비녀가 상자에 가득찰 정도였다고 한다. 자신은 몽골로 가지 못하고 고려에 남았는데, 이 와중 자신은 다루가치이니 고려 조정이 자신에게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강도의 계엄령 해제 뒤 재추회의에서 신하들이 이현은 재상으로서 반역을 저질렀으니 처형해야 한다고 말하였고, 그에 따라 이현은 처형당하고[3][4] 그 아들 5명은 바다에 빠져 죽는 형을 당했고, 사위와 부인은 유배되었다.

3. 대중매체[편집]

배우 안홍진[5]이 역할을 담당했다. 행적은 대체로 역사와 비슷하나, 처형당하기 직전 이공주에게 처형장으로 끌려가고, 가다가 김윤후와 마주치면서 자신을 몽골의 개라고 조롱한 김윤후에게 욕을 한다. 여기서 이공주에게 자신은 다루가치라면서 자신을 죽이다니 무사할 성 싶으냐고 한 뒤 가족들을 다 죽였다는 것에 분노하고 백성들이 그에게 침을 뱉어댄 건 덤.

3.2. 소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편집]

소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에서는 행적이 대체적으로 실제 역사와 비슷하나, 몽골군의 향도가 된 이유가 고국에 대한 향수 및 출세 때문이라고 나오고, 다른 성에도 항복을 권유하는 행적이 나왔다.
양산[6]과 동주, 춘주[7]가 항복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도륙당했으니 살고 싶으면 항복하라
충주성 전투에서는 고려군에 항복을 권하나 김윤후에게 욕을 얻어먹고 고려군의 화살 세례를 받자 도망치는 행적이 추가되었다.

[1] 이때는 승천부에 임시 궁궐을 지었다.[2] 이때 야굴은 내분으로 인해 북상하고 만다. 그리고 지휘는 아무칸이 담당.[3] 기시형을 당했다.[4] 이현이 처형당한 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몇 사람의 은을 먹어치웠느냐며 그를 욕하였다.[5] 이전 대조영에서는 연남건 역할 담당. 배우 안대용의 아들이라고 한다.[6] 황해도 안악 지역. 방호별감 권세후가 지키고 있었지만, 성의 지세만 믿고 방비를 게을리하다가 몽골군이 쳐들어와 군민 4,700명이 도륙당하고 권세후는 자살했다.[7] 박천기가 지키고 있었지만 열세와 몽골군의 말려죽이기 작전으로 인해 박천기를 포함한 전군이 몰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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