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저
최근 수정 시각:
|
|
고려의 중서문하성 참지정사 류인저 | |
시호 | 정간공(貞簡公) |
삼공 | 수사도(守司徒) |
직위 |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
본관 | 정주 류씨(貞州 柳氏) |
이름 | 인저(仁著) |
부모 | |
형제자매 | |
부인 | 대령군부인(大寧郡夫人) 최씨[4] |
생몰연도 | ? ~ 1113년 5월 22일(음력) |
류인저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다. 아버지는 고려 최고 정부기관의 차관, 누나는 임금의 부인, 조카는 태자... 그야말로 태어나서 조금의 부족함 없이 살았다. 류인저는 무인(武人) 성향이 짙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는 다르게 책을 좋아했고, 토론을 좋아하던 문인(文人) 성향이 강했다.
문벌귀족 답게 음서제로 관직을 얻었지만, 과거시험을 통해 승진하여 관직이 중서문하성 서열 3위인 참지정사(叅知政事)에까지 이르렀다. 명문가 출신이지만 재산을 과시하지 않고 늘 책을 연구하며 지식인들과 교류하였다. 《고려사절요》에 그가 유자(儒者)[6]의 풍도가 있었다고 평하였다. 사후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 平章事)에 추증되었고, 조카인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부인인 대령군부인(大寧郡夫人) 최씨는 해주 최씨 가문 최사추의 넷째 딸로 류인저와의 사이에 아들은 없었다. 류인저와 대령군부인의 혼인은 당시 문벌귀족이였던 정주 류씨(貞州 柳氏)와 해주 최씨 두 가문이 서로의 인과관계가 맞물려 연합한 셈이다.
문벌귀족 답게 음서제로 관직을 얻었지만, 과거시험을 통해 승진하여 관직이 중서문하성 서열 3위인 참지정사(叅知政事)에까지 이르렀다. 명문가 출신이지만 재산을 과시하지 않고 늘 책을 연구하며 지식인들과 교류하였다. 《고려사절요》에 그가 유자(儒者)[6]의 풍도가 있었다고 평하였다. 사후 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郞 平章事)에 추증되었고, 조카인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부인인 대령군부인(大寧郡夫人) 최씨는 해주 최씨 가문 최사추의 넷째 딸로 류인저와의 사이에 아들은 없었다. 류인저와 대령군부인의 혼인은 당시 문벌귀족이였던 정주 류씨(貞州 柳氏)와 해주 최씨 두 가문이 서로의 인과관계가 맞물려 연합한 셈이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