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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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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태조의 왕녀
왕녀 황보씨 | 王女 皇甫氏
고려 광종 대성대왕 헌릉 2
헌릉 전경
출생
사망
1001년으로 추정
능묘
헌릉(憲陵)
재위기간
고려 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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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부왕 태조
모후 신정왕후
형제자매
25남 10녀 중 3녀
배우자
자녀
2남 3녀 [ 펼치기 · 접기 ]
장남 - 경종
차남 - 효화태자(孝和太子)
장녀 - 천추전부인(千秋殿夫人)
차녀 - 보화궁부인(寶華宮夫人)
삼녀 - 문덕왕후
종교
시호
정예공평신경의정선명안정대목왕후
(靜睿恭平信敬懿正宣明安靜大穆王后)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고려 제4대 임금 광종 대성대왕의 왕후.

고려 태조의 제4비 신정왕후의 딸인데 남편 광종이 고려 태조의 제3비인 신명순성왕후의 아들이므로 이복남매 간에 혼인한 셈이다. 동성혼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의 성씨를 따라 황보씨(皇甫氏)를 칭하였다.

2. 생애[편집]

대목왕후는 태조 왕건과 왕건의 제4비 신정왕후 소생의 딸로, 광종과 이복 남매 지간이었다. 혜종과 정종은 왕이 될 가능성이 높았으므로 호족들과의 정략 혼인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광종 및 다른 자식들에게서도 왕위 계승의 가능성을 보았던 왕건은 광종 이하의 자식들을 대부분 족내혼시켰다. 광종과 대목왕후의 혼인은 그 첫 사례이다.

광종과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보았다. 경종과 효화태자(孝和太子),[1] 천추전부인(千秋殿夫人)과 보화궁부인(寶華宮夫人), 문덕왕후를 낳았다. 천추전부인은 광종의 동생 문원대왕 왕정[2]의 아들 천추전군과 혼인하였는데,[3] 이름이 '아지(阿志)'라고 한다. 광종의 자식들 중 경종과 더불어 이름이 후대에까지 알려진 유이한 사람이다. 문덕왕후는 종친인 홍덕원군 왕규(弘德院君 王圭)와 혼인하였다가 뒤에 성종과 재혼하였다. 참고로 성종은 대목왕후와 친남매인 대종의 아들이었다. 즉, 대목왕후와 대종은 남매인 동시에 사돈이었던 것. 참고로 대종의 두 딸인 헌애왕후헌정왕후도 광종과 대목왕후의 아들인 경종과 모두 결혼했기 때문에 겹사돈이기도 하다.(...)

서로 정치적 입장이 달라 대립한 적도 있었다지만 아이가 다섯인 걸 보면 금슬은 제법 괜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956년(광종 6년) 노비안검법이 전면적으로 실시되자 노비로서 주인을 배반한 자들이 많았으며 윗사람을 무시하는 기풍이 고려에 성행하고 노비를 풀어주어야 했던 호족들이 반발하자 대목 왕후가 광종에게 간절히 간하였는데도 광종 이 듣지 않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것으로 보아 당시 대목왕후가 외가인 황주군의 대호족인 황보씨 일가의 입장을 대변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사후 1002년 목종이 대목왕후란 시호가 내려지고 광종의 사당에 합사되었다. 이후 목종(穆宗) 5년 4월에 안정(安靜)이라는 시호가 추상되었으며, 현종(顯宗) 5년 3월에는 선명(宣明), 현종(顯宗) 18년 4월에는 의정(懿正)과 신경(信敬), 문종(文宗) 10년 10월에는 공평(恭平), 고종(高宗) 40년 10월에는 정예(靜睿)라는 시호가 추상되었다.

3. 대중매체[편집]

제국의 아침 등과 같은 과거 작품에서는 정적 숙청에 몰두하게 된 광종에 의해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 비운의 여인이란 이미지로 그려졌지만, 2010년대 작품들에 이르러서는 공주 시절부터 형제들 못지않은 상당한 야망을 가진, 아름다운 미모와 뛰어난 지혜를 가진 여성으로 주로 등장하며 이복 남매 광종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면서 동복형제인 대종 왕욱 대신 광종을 왕좌에 앉히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지만, 이후 광종이 사랑하는 여주인공을 질투하여 그녀에게 위험한 존재가 되는 악녀형 라이벌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출생년도가 언제인지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에 따라 광종보다 여동생인 것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누나인 것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 2002년 KBS 대하 드라마제국의 아침》에서는 배우 전혜진이 대목왕후 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광종과 사이가 꽤 좋았지만, 말년 광종이 왕권강화를 위해 대대적으로 호족을 숙청하면서 갈등이 표면화된다. 급기야 반란을 겪은 광종이 아들 경종에게까지 칼을 겨누게 되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악화된다.
  • 2009년 KBS 대하드라마천추태후》에서는 이영아가 맡았다. 역사 왜곡으로 유명한 드라마답게 의심으로 광기가 극에 달한 광종이 태자의 목숨마저 빼앗으려 하자 아들을 지키려다가 광종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온다.[4] 그리고 이것이 경종의 평생의 트라우마가 된다.
  • 2015년 MBC 월화드라마《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선 배우 이하늬가 출연했다. 이 드라마는 광종의 왕자 시절을 보여줬기 때문에 광종과는 다소 대립하면서도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루 등을 뒤에서 운영하며 정보와 재력를 가진 여인으로 등장했다[5].
  • 2016년 SBS 월화드라마《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는 배우 강한나가 맡았다.[6] 황제가 되지 못하여 황후가 되고자 하는 야망이 강한 공주로 나오는데, 왕소의 모습에 호감을 가지고 오빠인 왕욱이 아닌 그를 황위에 옹립함과 동시에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 그러다보니 왕소에게 호감을 가지기 전부터 사랑만을 원했던 여주인공 해수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1] 기록에 대목왕후 소생의 차남이라는 것과 시호만 남아 있어 요절한 것으로 추정된다.[2] 추증 사유 불명. 당시 광종은 왕보다 높은 황제를 자처하였기 때문에 황제의 동생도 왕으로 높인 듯 하다. 다만 호칭만 그러할 뿐이지 조선 왕조의 국왕들처럼 어떤 통치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3] 즉 사촌 간의 결혼이다. 당장 부모도 이복남매 관계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하지도 않다(...).[4] 대목왕후의 생몰연도도 딱히 미상인 걸 보면 역사서에 대목왕후의 죽음은 딱히 표현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부분은 작가의 창작.[5] 그리고 9년후 출연한 밤에 피는 꽃에서는 시아버지 배우가 김상중인데 참고로 김상중 배우는 제국의 아침에서 광종역이었다.[6] 원작에서는 왕소의 즉위 전이라 황보연화라는 로 나오는데, 사실 대목왕후의 휘는 그 당시의 여느 여성들처럼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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