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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왕후(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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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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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
고려 태조의 제4왕후
신정왕후 | 神靜王后

고려 성종의 조모
신정대왕태후 | 神靜大王太后
출생
903년 전후
사망
능묘
수릉(壽陵)
재위기간
고려 명복궁대부인
고려 왕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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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부친
충의공 황보제공
배우자
자녀
1남 1녀 [ 펼치기 · 접기 ]
아들 - 대종
딸 - 대목왕후
종교
작호
명복궁대부인(明福宮大夫人)
시호
정평유명자경선덕의경정헌신정대왕태후
(貞平柔明慈景宣德懿敬定憲神靜大王太后)
1. 개요2. 생애3. 가족관계4. 대중매체

1. 개요[편집]

고려 태조의 제4비.

황주 호족황보제공의 딸이다.

2. 생애[편집]

정확한 출생년도는 알 수 없으나 서기 903년경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성종 즉위 초기인 983년에 사망했다.

궁으로 들어온 후에 그녀는 명복궁대부인(明福宮大夫人)에 책봉되었다. 또 제24비 소황주원부인(小黃州院夫人)에 "소(小)"가 들어가는 걸 볼 때 "대황주원부인(大黃州院夫人)" 또는 "황주원부인(黃州院夫人)"으로도 불린 것으로 보인다. 후에 황주원은 명복궁으로 개칭되었다.

태조가 승하한 후 40년 동안 고려 왕실의 웃어른이었던 그녀는 효덕태자(孝德太子)와 성종, 경장태자(敬章太子) 등을 직접 양육하였으며, 후손들의 양육에 관심을 많이 두고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성종조((朝))에서 남긴 조문에 따르면 그녀는 덕이 많고 성격이 후덕했으며, 검소하고 슬기로워 백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성종은 친모를 어릴 때 잃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이 때문에 성종과 남매인 헌애왕후, 헌정왕후는 정주 류씨인 어머니 선의왕후가 아니라 할머니 신정왕후 황보씨의 황주 황보씨 성과 세력을 물려받았다. 할머니가 사망한 후 크게 슬퍼하며 신정대왕태후란 시호를 올려서[1] 그녀의 지위를 대왕태후(大王太后)로 격상시켰다. 이후 목종, 현종 , 문종, 인종, 고종이 시호를 추가로 올렸기에 정식 시호는 정평유명자경선덕의경정헌신정대왕태후(貞平柔明慈景宣德懿敬定憲神靜大王太后)다.

3. 가족관계[편집]

슬하에 성종의 아버지인 대종 왕욱(王旭)과 대목왕후 두 사람을 두었다. 따지고 보면 고려 경종 이후의 모든 왕은 그녀의 후손이 된다. 자신의 딸 대목왕후는 광종과 혼인하게 되는데, 이는 태조의 제22비 신주원부인 강씨(信州院夫人 康氏)의 손에 광종이 자랐고 신천 강씨 집안과 황주 황보씨 집안은 둘 다 패서호족으로서 본거지 간의 거리도 가까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광종의 즉위에는 광종을 밀어주던 패서호족 두 세력이 상당히 개입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친손주로 효덕태자(孝德太子), 성종, 경장태자(敬章太子), 헌애왕후, 헌정왕후를 두었고 헌정왕후가 왕건의 또 다른 아들인 안종 왕욱(王郁)과의 사이에서 고려 제8대 왕인 현종을 보았다. 또 외손주로 경종, 효화태자(孝和太子), 천추전부인(千秋殿夫人), 보화궁부인(寶華宮夫人), 문덕왕후를 두었다. 고려 초기 왕실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근친혼으로 상당히 얽히고 설킨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태조 왕건의 호족 통합 정책의 일환이었다.

4. 대중매체[편집]

  • 2002년 KBS1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배우 안해숙이 연기했다.
  • 2009년 KBS2 드라마 《천추태후》에서는 반효정이 연기했다.[2] 주인공인 천추태후 황보 수와 헌정왕후 황보 설을 경종의 비를 보냈다가 황보 수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자 그 경종의 아들인 목종을 왕위에 올리려 했지만 배신감에 성종 왕치(王治)가 비밀리에 신라계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왕에 오르자 격분하며 사망하는 것으로 나온다.
[1]고려사》에는 '신정대왕태후'로 올렸다고 나온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소개할 땐 '신정왕태후'라고 했고, 《고려사절요》에서는 '신정왕태후'로 올렸다고 나오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선 보통 '신정왕태후'로 올렸다고 표기한다.[2]제국의 아침》에서는 왕건의 제2비 장화왕후 오씨 역을 맡았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드라마지만 태조의 제2비와 제4비를 연기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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