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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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송 출신으로, 고려 목종 대에 귀화하였으며 지공거와 예부상서를 지냈다. 목종, 성종, 현종의 세 고려 임금을 섬겼다.
1008년에 상인들을 따라서 고려에 들어왔는데, 학사였던 채충순이 왕에게 주저의 재능을 전하게 되면서 고려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부터 주저는 고려에서 벼슬을 받고 관직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훗날 제2차 여요전쟁이 발발할 때 현종의 파천을 호종한 공을 인정받아 예부시랑 중추원직학사로 임명된다.
왕의 총애를 받고 여러 관직을 거치게 된 주저는 1014년에 이르러 과거 시험을 주관하는 지공거가 되었고, 1021년에는 해남현개국남(海南縣開國男)에 봉해지고선 식읍 300호를 받은 뒤 이듬해 예부상서를 역임하게 된다.
주저는 당대의 문장가로서 왕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외교 일선에서 외교 문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서(行書)에도 능했던만큼 오늘날 전해지는 현화사 비문 또한 주저가 찬(撰)하였다고 한다.
1008년에 상인들을 따라서 고려에 들어왔는데, 학사였던 채충순이 왕에게 주저의 재능을 전하게 되면서 고려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부터 주저는 고려에서 벼슬을 받고 관직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며 훗날 제2차 여요전쟁이 발발할 때 현종의 파천을 호종한 공을 인정받아 예부시랑 중추원직학사로 임명된다.
왕의 총애를 받고 여러 관직을 거치게 된 주저는 1014년에 이르러 과거 시험을 주관하는 지공거가 되었고, 1021년에는 해남현개국남(海南縣開國男)에 봉해지고선 식읍 300호를 받은 뒤 이듬해 예부상서를 역임하게 된다.
주저는 당대의 문장가로서 왕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외교 일선에서 외교 문서를 작성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서(行書)에도 능했던만큼 오늘날 전해지는 현화사 비문 또한 주저가 찬(撰)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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