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 BACK << -|- >> HOME <<)

홍유

최근 수정 시각:
4
편집
현재 사용중인 아이피가 ACL그룹 IDC #12915에 있기 때문에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다른 뜻 아이콘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후삼국시대 의성과 청송 지역의 호족에 대한 내용은 홍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ASMR 유튜버에 대한 내용은 홍유(유튜버)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 펼치기 · 접기 ]
개국공신
1등
2등
능식
권신
마난
3등
2천여 명(사서에 전하지 않음)
삼한공신

강공훤 · 강궁진 · 권행 · 금용식 · 김극렴 · 김선평 · 김유렴 · 김인윤 · 김일긍 · 나총례 · 류차달 · 박지윤 · 소격달 · 왕경 · 염형명 · 원극유 · 윤신달 · 이금서 · 이능일 · 장정필 · 최정헌 · 허선명
그 외 다수
고려 태조 지정 개국공신 1등
삼한공신
개국공(開國公) | 충렬공(忠烈公)
홍유 洪儒
충렬(忠烈)
의성 홍씨(義城洪氏) / 남양 홍씨
생몰년
? ~ 936년(태조 18)
출신지
신라 의성부(義城府)
이명
초명 술(術) / 은열(殷悅)[1]
가족
의성부원부인(義城府院夫人)
외손자 의성부원대군(義城府院大君)
1. 개요2. 약력3. 생애4. 대중매체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고려 초기의 장군이자 개국공신. 남양 홍씨 당홍계의 중시조. 원래는 통일신라 의성부 출신 호족으로 후삼국시대가 열리자 궁예의 밑에서 마군장군을 지냈고 왕건과는 궁예 밑에 있을 때 만난 것으로 보인다. 장수였지만 언변이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젊은 시절 이름은 홍술인데, 참고로 922년 고려에 항복하고 929년 전사한 의성부, 진보성의 호족 홍술과 한자까지 같은 동명이인이다. 하필 홍유의 출신도 의성이라서 더 헷갈리지만, 다만 이 호족 홍술은 삼국사기, 고려사에는 성씨가 나와있지 않지만 더 후대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상 김씨라, 홍씨가 아니라 '홍'이 이름의 일부인 김홍술로도 알려져 있다.

2. 약력[편집]

홍유의 태봉 관작
직위
마군장군(馬軍將軍)
홍유의 고려 관작
대상(大相)
삼중대광(三重大匡)
공신호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
신흥사 공신당에 초상화가 올라간 공신
시호
개국충렬공(開國忠烈公)
고려사 예지 태묘조 기록

3. 생애[편집]

궁예의 포악으로 복지겸, 배현경, 신숭겸과 함께 궁예를 제거하고 왕건을 추대할 것을 결의한 뒤 왕건에게 찾아가
"삼한이 분열되고 뭇 도적이 봉기하였을 때 지금 임금이 용기를 분발하고 크게 호통침으로써 그만 도적들을 쳐 없애고 요좌(遼左)[2] 지방의 3분의 1에서 그 절반 이상을 점유한 후 나라를 건설하고 도읍을 정한 지도 이미 2기(紀: 12년)가 넘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끝을 잘 맺지 못하고 포악한 행위가 태심하여 형벌을 남용하여 처자를 살육하고 관료들을 죽여 없애니 백성은 도탄에 빠져 임금을 원수같이 여기게 되었는바 걸(桀)이나 주(紂)의 죄악도 이보다 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폭군을 폐위하고 현명한 사람을 세우는 것은 천하의 대의이니 청컨대 공은 은(殷)과 주(周)의 옛일을 본받아 실행하셔야 하겠습니다."
라며 거사를 제안했지만 왕건이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홍유가 나서서,
"시기란 만나기 어렵고 알고도 놓치기 쉬운 것인데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그 재앙을 받는 법입니다. 해독을 입은 온나라 백성들이 밤낮으로 그를 전복할 것을 생각하고 있으며 또 지위 높고 권세있는 자들도 모두 학살당하여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덕망이 높은 자로서 당신의 위에 설만한 사람은 없는 까닭에 모든 사람들의 뜻이 당신에게 희망을 가지고 있는 형편인데 만약 당신이 수락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왕창근(王昌瑾)의 거울에 나타난 글도 그와 같이 예고하고 있으니 어찌 하늘의 뜻을 위반하고 폭군의 손에 죽겠습니까?"
라며 설득했고, 결정적으로 류씨 부인이 갑옷을 들고 입혀주면서 결국 왕건은 봉기를 결심했다고 《고려사》에 나온다.

홍유는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공로로 개국공신의 반열에 올랐고, 유금필과 함께 청주의 반란을 진압하기도 했다. 고려 건국 이후 왕건은 홍유에게 은열이라는 이름을 사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홍유를 얻음은 은(殷)나라가 부열(傅說)[3]을 얻은 것과 같도다."

이후에 유금필과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 930년 고창 전투에서 왕건이 출전할 때 홍유는 일단 죽령을 점령해서 퇴로를 확보하자고 의견을 냈지만 유금필은 결사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반대 의견을 내서 왕건이 유금필의 의견을 수용했다.

935년 나주를 탈환하기 위한 작전에 박술희와 함께 지원했지만 왕건은 홍유가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는 어렵겠다고 하며 유금필을 보내는 바람에 박술희와 함께 물먹었다.

936년 후백제와의 최후의 전투인 일리천 전투에는 우익의 기병을 지휘했다고 한다.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후삼국이 통일된 해인 936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4] 일리천 전투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나 아마 견훤처럼 통일이 된 직후 얼마 안 가 바로 세상을 뜬 듯하다.

홍유 역시 자신의 딸을 왕건에게 시집보냈는데, 왕건의 26번째 왕비 의성부원부인(義城府院夫人)이 바로 홍유의 딸이다.

4. 대중매체[편집]

홍유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홍유(태조 왕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둘러보기[편집]

[ 세가(世家) ]
1·2권
3권
4·5권
태조 · 혜종 · 정종定宗 · 광종 · 경종
6권
7·8·9권
10권
정종靖宗
11·12·13·14권
15·16·17·18·19·20권
21권
22·23·24권
25·26·27권
28·29·30·31·32권
33·34·35권
36권
37권
38·39·40·41·42·43·44권
133·134·135·136·137권열전
45·46권
[ 지(志) ]
47·48·49권 「천문(天文)」 / 50·51·52권 「역(曆)」 / 53·54·55권 「오행(五行)」 / 56·57·58권 「지리(地理)」 / 59·60·61·62·63·64·65·66·67·68·69권 「예(禮)」 / 70·71권 「악(樂)」 / 72권 「여복(輿服)」 / 73·74·75권 「선거(選擧)」 / 76·77권 「백관(百官)」 / 78·79·80권 「식화(食貨)」 / 81·82·83권 「병(兵)」 / 84·85권 「형법(刑法)」
[ 후비·종실·공주 열전(列傳) ]
원정왕후 김씨 · 원화왕후 최씨 · 원성태후 김씨 · 원혜태후 김씨 · 원용왕후 유씨 · 원목왕후 서씨 · 원평왕후 김씨 · 원순숙비 김씨 · 원질귀비 왕씨 · 귀비 유씨 · 궁인 한씨 · 궁인 이씨 · 궁인 박씨
경성왕후 김씨 · 경목현비 왕씨 · 효사왕후 김씨 · 이씨 · 유씨
용신왕후 한씨 · 용의왕후 한씨 · 용목왕후 이씨 · 용절덕비 김씨 · 연창궁주 노씨
상회공주 · (유씨 소생 공주)
애상군 왕방 · 낙랑후 왕경 · 개성후 왕개 · 도애공주
인평왕후 김씨 · 인예순덕태후 이씨 · 인경현비 이씨 · 인절현비 이씨 · 인목덕비 김씨
대각국사 왕후 · 상안공 왕수 · 도생승통 왕탱 · 금관후 왕비 · 변한후 왕음 · 낙랑후 왕침 · 총혜수좌 왕경 · 조선공 왕도 · 부여후 왕수 · 진한후 왕유 · 적경궁주 · 보령궁주
정의왕후 왕씨 · 선희왕후 김씨 · 장경궁주 이씨
정신현비 이씨 · 사숙태후 이씨 · 원신궁주 이씨
-
한산후 왕윤 · 경화왕후 · (사숙태후 소생 공주) · 수안택주
경화왕후 이씨 · 문경태후 이씨 · 문정왕후 왕씨 · 숙비 최씨
상당후 왕필 · 원명국사 징엄 · 대방공 왕보 · 대원공 왕효 · 제안후 왕서 · 통의후 왕교 · 대령궁주 · 흥수궁주 · 안수궁주 · 복령궁주
[ 열전(列傳) ]
92권
93권
94권
95권
96권
97권
98권
99권
100권
101권
102권
103권
104권
105권
106권
107권
108권
109권
110권
111권
112권
113권
114권
121권
「양리(良吏)」
유석 · 왕해 · 김지석 · 최석 · 정운경
홍관 · 고보준 · 정의 · 문대 · 조효립 · 정문감
「효우(孝友)」
문충 · 석주 · 최루백 · 위초 · 서릉 · 김천 · 황수 · 정유 · 조희참 · 정씨 · 손유 · 권거의 노준공 · 신씨 · 윤구생 · 반전 · 군만
122권
133·134·135·136·137권

[1] 남양 홍씨 판밀직공파보 등 족보에 따르면 남양 홍씨의 시조 홍은열이 바로 홍유라 한다.[2] 요동을 뜻한다. 동양 전통적인 관점으로는 왕이 북면하는 입장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방향을 정하기 때문에, 그 입장에서 왼쪽은 동쪽이고 오른쪽은 서쪽이다. 조선시대의 무슨 좌도 우도도 다 마찬가지다. 한편, 요동은 딱 현대의 요동반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여러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문맥상 요동반도 너머의 한국 문화권 전체를 가리킨다.[3] 상나라 무정 대의 재상. 천자문에도 언급되는 유명한 설화이다.[4] 공교롭게도 같은 4기장 중 1명이었던 배현경은 물론 견훤까지도 후백제가 멸망한 936년 모두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  
  •  
  •  
  •  
  •  
  •  
  •  
  •  
  •  
  •  
  •  
  •  
  •  
  •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