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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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버지 양규의 무공 덕분에 교서랑에 제수되었고, 1039년에는 대부소경으로 서북로병마부사가 되었다.
1040년에 안북대도호부부사가 될 때 최충이 그를 칭송하며 이 자가 없으면 변방에 내보낼 장수도 없으니 외직에 임명하지 말라고 청하였지만, 정종이 딱히 이를 듣지는 않았다고 한다.
1047년 서북로병마사로 있을 때 관할지역의 군민을 포함한 800여명이 그의 실적을 칭송하자 받아들여 상서이부에 양용하도록 하였다. 이후 직문하성 위위경에 이르렀는데, 병이 났기에 겸관으로 일만 보게 하였다.
생몰년도가 확실하지 않아서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불분명하다.
1040년에 안북대도호부부사가 될 때 최충이 그를 칭송하며 이 자가 없으면 변방에 내보낼 장수도 없으니 외직에 임명하지 말라고 청하였지만, 정종이 딱히 이를 듣지는 않았다고 한다.
1047년 서북로병마사로 있을 때 관할지역의 군민을 포함한 800여명이 그의 실적을 칭송하자 받아들여 상서이부에 양용하도록 하였다. 이후 직문하성 위위경에 이르렀는데, 병이 났기에 겸관으로 일만 보게 하였다.
생몰년도가 확실하지 않아서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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