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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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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역사
당나라의 반란자
연 초대 황제
안녹산 | 安祿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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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광렬황제(光烈皇帝)
안(安)
녹산(禄山)
성무(聖武, 756년 ~ 757년)
체중
200kg
황후
애황후(哀皇后) 강씨(康氏)
생몰
703년 ~ 757년 1월 30일
재위
초대 호연 황제
756년 2월 5일 ~ 757년 1월 30일

1. 개요2. 생애3. 여담4. 대중매체에서5. 둘러보기(계보)

1. 개요[편집]

중국 당나라 시기의 장군. 안녹산의 난을 일으켜서 연나라 황제자칭했다. 한족식 이름이라서 한족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소그드족[1] 출신으로 페르시아백인(코카소이드)과 돌궐족의 혼혈이다.[2] 본래 성씨는 강(康)이고, 아명은 알락산(軋犖山)이다. 그의 이름인 '녹산'은 소그드어 '로흐샨(rwxšn/roxš(a)n)'을 음차한 것으로, '밝음, 빛나다'라는 뜻이다. 현대 페르시아어 이름, '로우샨(روشن, rowšan)'과 같은 어원이다. 그리고 유럽의 인명인 록사나, 록산느, 록시와도 어원이 같다. 이름이 록산, 녹산으로 섞여서 표기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원이 어원이니만큼 록산이 원래의 소그드어 이름에 더 가깝겠지만 두음법칙에 의해 한국어로는 안녹산이 된다.

안녹산은 소그드어를 모어로 사용했고, 그 이외에도 중국어(중고한어), 페르시아어, 티베트어, 토하라어 등, 총 6개 언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2. 생애[편집]

안녹산의 아버지는 이란계 소그드인의 유력자인 것으로 추측되며, 어머니는 돌궐무녀였다고 한다. 안녹산 가문이 속한 돌궐 부족의 가한이 716년에 죽자 족장의 승계와 다른 부족과의 합병을 두고 심각한 분쟁이 일어났고, 안녹산의 가문은 이를 피해 당나라에 망명했다. 이때 안녹산 가문은 당으로부터 안(安)씨 성을 하사받은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안녹산은 인근 부족의 6개 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호시아랑(互市牙郎)에 임명되었다. 이 호시아랑 직위는 오늘날로 말하면 일종의 통역사이자 무역관이었는데, 안녹산은 상업으로 유명했던 소그드인 출신답게 이 직위를 십분 활용해서 한족과 국경의 이민족들의 중계무역을 장악해서 많은 부를 축적했다.

한편 안녹산은 이 시기 당시 유주 절도사였던 장수규의 눈에 띄어 군인으로 발탁된다. 이후 변방의 수비를 맡아서 나름 군공을 쌓았으며 장수규를 통해 당나라의 중앙 조정에도 연줄을 놓는다. 야심이 컸던 안녹산은 중계무역으로 얻은 재산을 바탕으로 중앙의 관료들에게 많은 뇌물을 뿌려 당 조정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으며 자신의 상관이었던 장수규가 몰락한 이후에도 중앙조정의 인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했다.

드디어 안녹산은 당시 황제였던 현종을 알현할 수 있었고, 현종은 안녹산의 태도와 능력이 무척 마음에 들어 742년 그를 평로절도사로 임명한다. 현종의 마음을 얻은 안녹산은 당시 현종을 사로잡고 있었던 양귀비의 마음도 얻으려고 노력했는데, 안녹산은 대뜸 양귀비를 양모로 모시고 그 양자가 되기를 청했다. 문제는 양모로 모셨던 양귀비가 양자 안녹산보다 16년이나 연하였다는 것.

하지만 안녹산은 이런 사안에 개의치 않고 양귀비의 양자로 자처했으며 조정에 들어갈 때마다 일단 양귀비에게 문안인사부터 하고 나서 자기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양귀비에게 지극정성을 바쳤던 안녹산의 태도와 양귀비 역시 안녹산을 총애했기 때문에 안녹산과 양귀비가 서로 남녀로서 사통한다는 추문이 생기기도 했는데[3] 정사에 기록된 내용은 전혀 없으며 현실적으로도 별로 개연성이 없기 때문에[4] 현재는 근거 없는 루머 수준으로 취급되고 있다.[5]

현종은 안녹산의 군사적 능력을 인정해서 744년에는 그를 범양절도사로 임명했으며 751년에는 추가로 하동절도사로 임명한다. 이처럼 평로/범양/하동 세 곳의 절도사 자리를 확보한 안녹산은 이제 당나라 전체 군세의 1/3 가량을 차지하는 최대 군벌로 자리잡는다.

751년에는 거란족을 공격하나 오히려 패하고, 부장 사사명이 겨우 막아낸다.

하지만 정치 군사 양면으로 승승장구하던 안녹산에게도 걸림돌이 나타났는데, 바로 당시 당나라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권신 양국충(楊國忠)이었다. 양국충은 현종의 총희(寵姬) 양귀비의 친척 오빠였으며 752년 라이벌이었던 이임보가 죽은 후 전권을 쥐고 본격적으로 전횡을 일삼고 있었다.

양국충은 안녹산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서 그가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모함을 했는데, 이에 분개한 안녹산은 755년 실제로 간신 양국충 타도를 명분으로 내세운 안녹산의 난을 일으킨다.

다만 현재는 양국충의 주장이 단순한 모함이 아니라 실제로 안녹산이 반란을 꾀하고 있다가 양국충에게 들키는 바람에 성급하게 반란을 시작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종 치세 당시의 당나라는 위구르족이나 돌궐족과 같은 이민족 출신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특히 군사 분야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이민족 출신에 대한 대우가 기존의 한족 출신들의 대우보다 소홀했기 때문에 이민족 출신 장수들의 불만이 계속 높아져 가고 있었고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서 정치에 손을 놓고 국가 기강이 해이해지면서 이런 부조리가 더 심해졌기 때문에 당시에는 언제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안녹산 역시 이민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당시 당나라 최대 군벌로 성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바로 당 조정에 반기를 들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제로 안녹산의 난이 시작되었을 당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점이나 반란 초반에 이민족 출신 장수들이 많이 포진해 있던 하북지역 대부분이 바로 안녹산에게 협력했다는 점 등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준다. 자세한 것은 안녹산의 난 항목 참조.

군사반란에 성공하고 낙양에서 웅무황제(雄武皇帝)에 즉위해 국호를 연(燕), 연호를 성무(聖武)로 했다. 하지만 당 현종은 쓰촨성으로 퇴각하고 당 숙종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계속 안녹산과 전투를 치르면서 안녹산의 세력은 지지부진해졌다. 게다가 안녹산은 거병을 한 다음부터는 건강이 나빠졌는데 점점 눈이 나빠지고 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실명 상태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아예 실명을 하게 되며 궤양에도 걸리게 되자 매우 난폭해졌다. 특히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쁘면 궁인들을 폭행하고 죽이는 일을 흔하게 벌여 궁인들이 그를 두려워하게 된다. 나중에는 측근들과 가족에게도 폭력을 쓰게 되어 측근들과 가족들도 그를 두려워한다. 757년 후계자 문제로 갈등을 빚던 터에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당하고 만다.[6] 하지만 곧바로 휘하 군인이었던 사사명이 안경서마저 죽이고 계속 군사반란을 이어가면서 내전이 격화되었고 사사명 역시도 아들 사조의에게 암살당해 사조의가 군사반란을 이어갔다가 사조의의 군대는 당나라-위구르 연합군의 공격으로 군이 격퇴당하면서 황제에게 체포당할 것을 두려워해 763년에 사조의가 자결함으로써 8년 만에 당 제국 최대의 군사반란 및 거대한 내전 중 하나가 막을 내린다.

3. 여담[편집]

  • 비만
    안녹산은 매우 뚱뚱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랫배가 무릎까지 처지고 몸무게가 230근(약 152kg[7])에 달했다고 한다. 현종이 그 불룩한 뱃속에 무엇이 들었냐고 물었을 때 "단지 충심(忠心)만이 들어있사옵니다."라고 대답해서 현종이 대놓고 웃음을 터트렸다. 거란족 출신으로 10세에 안녹산이 직접 거세를 한 환관 이저아(李猪兒)를 군인처럼 곁에 두었는데 이저아는 안녹산이 옷을 갈아입을 때 머리로 배를 받쳐 들고 허리띠를 매어줬다고 한다.[8] 너무 배가 커서 이렇게 하지 않으면 허리띠를 맬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뚱뚱했기 때문에 말년의 눈병과 실명은 당뇨병의 영향으로 추측되고 있다. 뚱뚱했던 것과는 별개로 몸놀림 자체는 재빨랐던 듯하다. 안녹산은 호선무(胡旋舞)[9]라는 을 잘 췄다고 전하는데 이 춤은 서역에서 전래된 춤으로 머리 위에 그릇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빙글빙글 도는 춤이다. 이런 춤을 잘 춘다는 건 뚱뚱한 체격과는 별개로 매우 민첩하고 운동 신경이 좋았다는 것을 뜻한다.[10] 또한 을 잘 다루었으며 스스로도 그 활솜씨를 자랑으로 여겼다.
  • 양을 훔친 일화
    732년 안녹산이 양을 훔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유주 절도사였던 장수규에게 이 일이 드러나자, 장수규는 안녹산을 검으로 목을 베어 죽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안녹산은 장수규에게 일갈하였다.
    공은 양번[11]을 멸하고 싶지 않으시옵니까? 어찌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자신에게 일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장수규는 안녹산을 풀어주었고 이후 자신의 부하로 삼았다. 안녹산은 장수규 휘하에서 전공을 세웠고, 이후 안녹산은 장수규의 양자가 되었다.
  • 발에 난 사마귀
    명황잡록에 보면 장수규의 한쪽 발바닥에는 사마귀가 있었는데, 발에 난 사마귀는 관상에서는 귀한 자리에 오를 상으로 간주되었다. 안녹산이 장수규의 발을 씻기다가 이 사마귀를 발견하고 유심히 쳐다보자 장수규가 웃으며 “내가 지금 이런 자리에 오른 것이 다 그 발의 사마귀 때문이지”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는데, 안녹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상하네요. 저는 양쪽 발에 다 사마귀가, 그것도 무늬를 그릴 정도로 나 있는데 저는 왜 당신처럼 귀하게 되지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12] 그리고 이후...
  • 안녹산의 위험성을 경고한 인물들
    장구령은 당 현종에게 "안녹산이 위험하니 검으로 목을 베어 죽여야 된다"고 경고를 하기도 하였다. 안녹산이 해족과 거란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그에게 사형을 내리려고 할 때 당 현종은 안녹산을 특별히 사면하였다. 장구령은 "안녹산이 이리의 새끼와 같아서 좀처럼 길들일 수 없고 반란을 일으킬 상이 있기 때문에 안녹산을 처형하라"고 건의하였지만 당 현종은 왕이보(王夷甫)가 석륵을 알아본 고사를 가지고 "충량한 이를 그릇되게 해치지 말라"며 장구령의 건의를 일축하고 안녹산을 돌려보냈다. 결국 장구령의 경고는 이후에 제대로 들어맞게 되었는데 안녹산이 군사 반란을 일으키자 당 현종은 이전에 장구령이 자신에게 한 경고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고 장구령의 경고를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였다. 왕충사도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니 죽여야 한다"고 현종에게 간하였으며 이후 간신이었던 양국충조차도 "안녹산은 분명히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하였다. 게다가 사촌이었던 안사순도 안녹산이 난을 일으킬 거라고 하였다.[13][14]
  • 가서한과의 관계
    사촌이었던 안사순과 마찬가지로, 가서한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4. 대중매체에서[편집]

  • 유명한 인물이라 사극에 여러번 등장했지만 주인공인 경우는 없고 일반적으로 양귀비 드라마에 조연으로 등장한다.
  • 2017년 중드 대당영요에서 임설이 안녹산을 맡았다. 아들 안경서보다 비중이 낮다.
  • 중세 일본의 군담인 헤이케모노가타리에서 조고, 왕망, 주이와 함께 권력만 믿고 전횡을 부리다 패가망신한 권신으로 언급된다.

5. 둘러보기(계보)[편집]

[ 본기(本紀) ]
1권 「고조기(高祖紀)」
2·3권 「태종기(太宗紀)」
4·5권 「고종기(高宗紀)」
6권 「측천황후기(則天皇后紀)」
7권 「 중종·예종기(中宗睿宗紀)」
8·9권 「현종기(玄宗紀)」
10권 「숙종기(肅宗紀)」
11권 「대종기(代宗紀)」
12·13권 「덕종기(德宗紀)」
14·15권 「순종·헌종기(順宗憲宗紀)」
16권 「목종기(穆宗紀)」
17권 「경종·문종기(敬宗文宗紀)」
18권 「무종·선종기(武宗宣宗紀)」
1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2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 21권 ~ 50권은 志에 해당. 구당서 문서 참고
[ 열전(列傳) ]
51·52권 「후비전(后妃傳)」
53권 「이밀전(李密傳)」
54권 「왕세충등전(王世充等傳)」
55권 「설거등전(薛舉等傳)」
56권 「소선등전(蕭銑等傳)」
57권 「배적등전(裴寂等傳)」
58권 「당검등전(唐儉等傳)」
59권 「굴돌통등전(屈突通等傳)」
60권 「종실전(宗室傳)」
61권 「온대아등전(溫大雅等傳)」
62권 「이강등전(李綱等傳)」
63권 「봉륜등전(封倫等傳)」
64권 「고조22자전(高祖二十二子傳)」
65권 「고사렴등전(高士廉等傳)」
66권 「방현령등전(房玄齡等傳)」
67권 「이정등전(李靖等傳)」
68권 「울지경덕등전(尉遲敬德等傳)」
69권 「후군집등전(侯君集等傳)」
70권 「왕규등전(王珪等傳)」
71권 「위징전(魏徵傳)」
72권 「우세남등전(虞世南等傳)」
73권 「설수등전(薛收等傳)」
74권 「유계등전(劉洎等傳)」
75권 「소세장등전(蘇世長等傳)」
76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77권 「위정등전(韋挺等傳)」
78권 「우지녕등전(于志寧等傳)」
79권 「조효손등전(祖孝孫等傳)」
80권 「저수량등전(褚遂良等傳)」
81권 「최돈례등전(崔敦禮等傳)」
82권 「허경종등전(許敬宗等傳)」
83권 「곽효각등전(郭孝恪等傳)」
84권 「유인궤등전(劉仁軌等傳)」
85권 「당림등전(唐臨等傳)」
86권 「고종·중종제자전(高宗中宗諸子傳)」
87권 「배염등전(裴炎等傳)」
88권 「위사겸등전(韋思謙等傳)」
89권 「적인걸등전(狄仁傑等傳)」
90권 「왕급선등전(王及善等傳)」
91권 「환언범등전(桓彥範等傳)」
92권 「위원충등전(魏元忠等傳)」
93권 「누사덕등전(婁師德等傳)」
94권 「소미도등전(蘇味道等傳)」
95권 「예종제자전(睿宗諸子傳)」
96권 「요숭등전(姚崇等傳)」
97권 「유유구등전(劉幽求等傳)」
98권 「위지고등전(魏知古等傳)」
99권 「최일용등전(崔日用等傳)」
100권 「윤사정등전(尹思貞等傳)」
101권 「이예등전(李乂等傳)」
102권 「마회소등전(馬懷素等傳)」
103권 「곽건관등전(郭虔瓘等傳)」
104권 「고선지등전(高仙芝等傳)」
105권 「우문융등전(宇文融等傳)」
106권 「이임보등전(李林甫等傳)」
107권 「현종제자전(玄宗諸子傳)」
108권 「위견소등전(韋見素等傳)」
109권 「풍앙등전(馮盎等傳)」
110권 「이광필등전(李光弼等傳)」
111권 「최광원등전(崔光遠等傳)」
112권 「이고등전(李暠等傳)」
113권 「묘진경등전(苗晉卿等傳)」
114권 「노경등전(魯炅等傳)」
115권 「최기등전(崔器等傳)」
116권 「숙종·대종제자전(肅宗代宗諸子傳)」
117권 「엄무등전(嚴武等傳)」
118권 「원재등전(元載等傳)」
119권 「양관등전(楊綰等傳)」
120권 「곽자의전(郭子儀傳)」
121권 「복고회은등전(僕固懷恩等傳)」
122권 「장헌성등전(張獻誠等傳)」
123권 「유안등전(劉晏等傳)」
124권 「설숭등전(薛嵩等傳)」
125권 「장일등전(張鎰等傳)」
126권 「이계등전(李揆等傳)」
127권 「요령언등전(姚令言等傳)」
12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29권 「한황등전(韓滉等傳)」
130권 「왕여등전(王璵等傳)」
131권 「이면등전(李勉等傳)」
132권 「이포옥등전(李抱玉等傳)」
133권 「이성등전(李晟等傳)」
134권 「마수등전(馬燧等傳)」
135권 「노기등전(盧杞等傳)」
136권 「두참등전(竇參等傳)」
137권 「서호등전(徐浩等傳)」
13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39권 「육지전(陸贄傳)」
140권 「위고등전(韋臯等傳)」
141권 「전승사등전(田承嗣等傳)」
142권 「이보신등전(李寶臣等傳)」
143권 「이회선등전(李懷仙等傳)」
144권 「상가고등전(尚可孤等傳)」
145권 「유현좌등전(劉玄佐等傳)」
146권 「설파등전(薛播等傳)」
147권 「두황상등전(杜黃裳等傳)」
148권 「배기등전(裴垍等傳)」
149권 「우휴열등전(于休烈等傳)」
150권 「덕종·순종제자전(德宗順宗諸子傳)」
151권 「고숭문등전(高崇文等傳)」
152권 「마린등전(馬璘等傳)」
153권 「요남중등전(姚南仲等傳)」
154권 「공소부등전(孔巢父等傳)」
155권 「목녕등전(穆寧等傳)」
156권 「우적등전(于頔等傳)」
157권 「왕굉등전(王翃等傳)」
158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159권 「위차공등전(衛次公等傳)」
160권 「한유등전(韓愈等傳)」
161권 「이광진등전(李光進等傳)」
162권 「반맹양등전(潘孟陽等傳)」
163권 「맹간등전(孟簡等傳)」
164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165권 「위하경등전(韋夏卿等傳)」
166권 「원진등전(元稹等傳)」
167권 「조종유등전(趙宗儒等傳)」
168권 「위온등전(韋溫等傳)」
169권 「이훈등전(李訓等傳)」
170권 「배도전(裴度傳)」
171권 「이발등전(杜黃裳等傳)」
172권 「영호초등전(令狐楚等傳)」
173권 「정담등전(鄭覃等傳)」
174권 「이덕유전(李德裕傳)」
175권 「헌종·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의종·희종·소종제자전(憲宗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懿宗僖宗昭宗諸子傳)」
176권 「이종민등전(李宗閔等傳)」
177권 「최신유등전(崔慎由等傳)」
178권 「조은등전(趙隱等傳)」
179권 「소구등전(蕭遘等傳)」
180권 「주극융등전(朱克融等傳)」
181권 「사헌성등전(史憲誠等傳)」
182권 「왕중영등전(王重榮等傳)」
183권 「외척전(外戚傳)」
184권 「환관전(宦官傳)」
185권 「양리전(良吏傳)」
186권 「혹리전(酷吏傳)」
187권 「충의전(忠義傳)」
188권 「효우전(孝友傳)」
189권 「유학전(儒學傳)」
190권 「문원전(文苑傳)」
191권 「방기전(方伎傳)」
192권 「은일전(隱逸傳)」
193권 「열녀전(列女傳)」
194권 「돌궐전(突厥傳)」
195권 회흘전(回紇傳)」
196권 「토번전(吐蕃傳)」
197권 「남만·서남만전(南蠻·西南蠻傳)」
198권 「서융전(西戎傳)」
199권 「동이·북적전(東夷北狄傳)」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철륵 · 거란 · · 실위 · 말갈 · 발해 ·
200권 「안녹산등전(安祿山等傳)」

[ 본기(本紀) ]
1권 「고조기(高祖紀)」
2권 「태종기(太宗紀)」
3권 「고종기(高宗紀)」
4권 「측천황후·중종기(則天皇后中宗紀)」
5권 예종·현종기(睿宗玄宗紀)」
6권 「숙종·대종기(肅宗代宗紀)」
7권 「덕종·순종·헌종기(德宗順宗憲宗紀)」
8권 「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기(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紀)」
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1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 11권 ~ 60권은 志에 해당. 61권 ~ 75권은 表에 해당. 신당서 문서 참고
[ 열전(列傳) ]
76·77권 「후비전(后妃傳)」
78권 「종실전(宗室傳)」
79권 「고조제자전(高祖諸子傳)」
80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81권 「삼종제자전(三宗諸子傳)」
82권 「14종제자전(十四宗諸子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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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권 「제제공주전(諸帝公主傳)」
84권 「이밀전(李密傳)」
85권 「왕두전(王竇傳)」
86권 「설이이유고서전(薛李二劉高徐傳)」
87권 「소보심이양전(蕭輔沈李梁傳)」
88권 「유배전(劉裴傳)」
89권 「굴돌울지장진당단전(屈突尉遲張秦唐段傳)」
90권 「이유은허정시임구전(二劉殷許程柴任丘傳)」
91권 「온황보이이강최전(溫皇甫二李姜崔傳)」
92권 「두감왕이원나왕전(杜闞王李苑羅王傳)」
93권 「이이전(二李傳)」
94권 「후장설전(侯張薛傳)」
95권 「고두전(高竇傳)」
96권 「방두전(房杜傳)」
97권 「위징전(魏徵傳)」
98권 「왕설마위전(王薛馬韋傳)」
99권 「이이대유최전(二李戴劉崔傳)」
100권 「진양봉배우문정권염장강장전(陳楊封裴宇文鄭權閻蔣姜張傳)」
101권 「소우전(蕭瑀傳)」
102권 「잠우이저요영호전(岑虞李褚姚令狐傳)」
103권 「소위손장전(蘇韋孫張傳)」
104권 「우고장전(于高張傳)」
105권 「장손저한내이상관전(長孫褚韓來李上官傳)」
106권 「두이최고곽조최양노이유이유손형전(杜二崔高郭趙崔楊盧二劉李劉孫邢傳)」
107권 「부여진전(傅呂陳傳)」
108권 「유배누전(劉裴婁傳)」
109권 「최양두종축왕전(崔楊竇宗祝王傳)」
110권 「제이번장전(諸夷蕃將傳)」
111권 「곽이장삼왕소설정당전(郭二張三王蘇薛程唐傳)」
112권 「왕한소설왕류풍장전(王韓蘇薛王柳馮蔣傳)」
113권 「당장서전(唐張徐傳)」
114권 「최서소두로전(崔徐蘇豆盧傳)」
115권 「적학주전(狄郝朱傳)」
116권 「이왕위육이이두전(二王韋陸二李杜傳)」
117권 「배유위이길전(裴劉魏李吉傳)」
118권 「장위한송신이이배전(張韋韓宋辛二李裴傳)」
119권 「무이가백전(武李賈白傳)」
120권 「오왕전(五王傳)」
121권 「유종최이왕전(劉鐘崔二王傳)」
122권 「위위곽전(魏韋郭傳)」
123권 「이소로위조화전(李蕭盧韋趙和傳)」
124권 「요송전(姚宋傳)」
125권 「소장전(蘇張傳)」
126권 「위로이두장한전(魏盧李杜張韓傳)」
127권 「장원배전(張源裴傳)」
128권 「소윤필이정왕허반예석제전(蘇尹畢李鄭王許潘倪席齊傳)」
129권 「배최노이왕엄전(裴崔盧李王嚴傳)」
130권 「배양송양최이해전(裴陽宋楊崔李解傳)」
131권 「종실재상전(宗室宰相傳)」
132권 「유오위장유침전(劉吳韋蔣柳沈傳)」
133권 「이곽양왕장우전(二郭兩王張牛傳)」
134권 「우문위양왕전(宇文韋楊王傳)」
135권 「가서고봉전(哥舒高封傳)」
136권 「이광필전(李光弼傳)」
137권 「곽자의전(郭子儀傳)」
138권 「이이마노전(二李馬路傳)」
139권 「방장이전(房張李傳)」
140권 「최묘이배여전(崔苗李裴呂傳)」
141권 「최등위위이한노고전(崔鄧魏衛李韓盧高傳)」
142권 「이양최류위로전(李楊崔柳韋路傳)」
143권 「고원이위설최대왕서치신전(高元李韋薛崔戴王徐郗辛傳)」
144권 「내전후최엄전(來田侯崔嚴傳)」
145권 「원반여양엄두전(元王黎楊嚴竇傳)」
146권 「이이전(二李傳)」
147권 「삼왕노신풍삼이곡이로전(三王魯辛馮三李曲二盧傳)」
148권 「영호장강이유전왕우사전(令狐張康李劉田王牛史傳)」
149권 「유제오반왕이전(劉第五班王李傳)」
150권 「이상조최제로전(李常趙崔齊盧傳)」
151권 「관동원조두전(關董袁趙竇傳)」
152권 「장강무이송전(張姜武李宋傳)」
153권 「단안전(段顏傳)」
154권 「이성전(李晟傳)」
155권 「마혼전(馬渾傳)」
156권 「양대양이이한두형전(楊戴陽二李韓杜邢傳)」
157권 「육지전(陸贄傳)」
158권 「위장엄한전(韋張嚴韓傳)」
159권 「포이소설왕오정육노유최전(鮑李蕭薛樊王吳鄭陸盧柳崔傳)」
160권 「서여맹유양반최위전(徐呂孟劉楊潘崔韋傳)」
161권 「장조이정서왕풍유전(張趙李鄭徐王馮庾傳)」
162권 「요독고고위단여허설이전(姚獨孤顧韋段呂許薛李傳)」
163권 「공목최유양마전(孟簡等傳)」
164권 「귀해삼최노이설위호정이왕은전(歸奚三崔盧二薛衛胡丁二王殷傳)」
165권 「삼정고권최전(三鄭高權崔傳)」
166권 「가두영호전(賈杜令狐傳)」
167권 「백배최위이이황보왕전(白裴崔韋二李皇甫王傳)」
168권 「위왕육유유정전(韋王陸劉柳程傳)」
169권 「두배이위전(杜裴李韋傳)」
170권 「이고이주이유범이왕맹조이임장전(二高伊朱二劉范二王孟趙李任張傳)」
171권 「이오왕양조고유석전(李烏王楊曹高劉石傳)」
172권 「우왕이두범전(于王二杜范傳)」
173권 「배도전(裵度傳)」
174권 「이이원우양전(二李元牛楊傳)」
175권 「두유이장양웅백전(竇劉二張楊熊柏傳)」
176권 「한유전(韓愈傳)」
177권 「전최이위이고풍삼이노봉정경전(錢崔二韋二高馮三李盧封鄭敬傳)」
178권 「유분전(劉賁傳)」
179권 「이정이왕가서전(李鄭二王賈舒傳)」
180권 「이덕유전(李德裕傳)」
181권 「진삼이조유전(陳三李曹劉傳)」
182권 「이이최소이정이노위주이배유조왕전(二李崔蕭二鄭二盧韋周二裴劉趙王傳)」
183권 「필최유육정주한전(畢崔劉陸鄭朱韓傳)」
184권 「마양노노전(馬楊路盧傳)」
185권 「정이왕위장전(鄭二王韋張傳)」
186권 「주왕등진유조이양고전(周王鄧陳劉趙二楊顧傳)」
187권 「이왕제갈이맹전(二王諸葛李孟傳)」
188권 「양시주손전(楊時朱孫傳)」
189권 「고조전주전(高趙田朱傳)」
190권 「삼유성두종장왕전(三劉成杜鐘莊王傳)」
191·192·193권 「충의전(忠義傳)」
194권 「탁행전(卓行傳)」
195권 「효우전(孝友傳)」
196권 「은일전(隱逸傳)」
197권 「순리전(循吏傳)」
198·199·200권 「유학전(儒學傳)」
201·202·203권 「문원전(文苑傳)」
204권 「방기전(方伎傳)」
205권 「열녀전(列女傳)」
206권 「외척전(外戚傳)」
207·208권 「환관전(宦官傳)」
209권 「혹리전(酷吏傳)」
210권 「번진위박전(藩鎭魏博傳)」
211권 「번진진기전(藩鎭鎭冀傳)」
212권 「번진노룡전(藩鎭盧龍傳)」
213권 「번진치청횡해전(藩鎭淄青橫海傳)」
214권 「번진선무창의택로전(藩鎭宣武彰義澤潞傳)」
215권 「돌궐전(突厥傳)」
216권 「토번전(吐蕃傳)」
217권 회흘전(回紇傳)」
218권 사타전(沙陀傳)」
219권 북적전(北狄傳)」
220권 동이전(東夷傳)」
221권 「서융전(西戎傳)」
222권 「남만전(南蠻傳)」
223권 「간신전(奸臣傳)」
224권 「반신전(叛臣傳)」
225권 「역신전(逆臣傳)」

전임 이임보
안녹산
754년~755년
후임 가서한

[1] 타지키스탄의 주류민족인 타지크인이 이들의 후예이고 특히 타지키스탄의 소수민족인 야그노비인은 그들의 언어인 야그노비어가 아예 소그드어까지 계승한 직계 후예라 한다.[2] 정작 중화권 사극에서는 황백혼혈 배우가 아니라 한족 등 순수 황인 배우가 맡는다. 안녹산이 페르시아계 백인(소그드인)과 튀르크계 황인(돌궐족)의 혼혈이었으므로, 중국의 민족들 중 비슷하게 페르시아계 백인과 튀르크계 황인의 혼혈인 위구르족이나 우즈베크족이 안녹산 역을 맡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캐스팅이다.[3] 양귀비가 안녹산을 자신의 욕탕으로 데려가 아이 씻겨주는 것처럼 목욕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글만 봐도 찐야설 같은 내용인데 당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러쿵저러쿵 카더라식 소문들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4] 양귀비가 안녹산을 양아들로서 귀여워한 것은 맞으나, 남자로서 연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게다가 현종이 버젓이 있는데 굳이 안녹산 따위(..)에게 관심을 가졌을 리도 없다. 그리고 안녹산 역시 성욕에 미친 바보도 아니고 양귀비에게 먼저 손을 댔을 가능성도 없다.[5] 설혹 정말로 양귀비와 안녹산이 심상치 않은 사이였다면 현종이 안녹산을 계속 조정에서 활개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6] 아버지의 난폭함을 말리는 안경서와 갈등이 커지자 안녹산이 2번째 아내의 아들을 후계자로 선포하여 충격을 받은 안경서가 아버지의 측근들과 합심해서 그를 살해한 것이다. 특히 안경서는 난폭해진 아버지가 자신을 살해할 것이라고 두려워한 터라 그 전에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결정했고 안녹산의 측근들도 갈수록 난폭해지는 안녹산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모두 안경서 측에 가담하여 안녹산을 살해하는 것에 동의한 상황이었다. 이때 안녹산은 항상 곁에 검을 두고 다녔는데 안경서와 측근들, 내관 이저아가 사전에 검을 치운 터라 반격을 하려 해도 할 수 없었고 결국 안경서의 지시를 받은 이저아의 검에 찔려 죽는다.[7] 당나라 때는 1근이 16냥이며 1근이 661g이었다.[8] 이저아는 안녹산이 폭력적으로 변하자 자주 얻어맞았는데 그러다보니 견딜 수가 없어 안녹산의 측근 엄장, 장남 안경서와 함께 작당해서 안녹산을 살해한다.[9] 고구려수나라에도 이 춤이 있었다.[10] 현대의 스모 선수들도 겉모습과 달리 대체로 엄청 날렵하고 유연하다.[11] 거란, 해[12] 허영만의 만화 에도 이 일화가 등장한다.[13] 역신인 안녹산과는 달리 안사순은 당의 국경 수비에 주력하는 등 당의 충신이었다.[14]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삭방절도사로 재직 중 조정으로 소환되나,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서한의 무고로 인해 안원정과 함께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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