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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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정변 5대 공신 평양숙민왕(平陽肅湣王) 敬暉 | 경휘 | |
작호 | 평양군공(平陽郡公) → 제국공(齊國公) → 평양군왕(平陽郡王) |
시호 | 숙민(肅湣) |
성 | 경(敬) |
이름 | 휘(暉) |
자 | 중엽(仲曄) |
부친 | 경산송(敬山松) |
조부 | 경인강(敬仁綱) |
출생 | ? ~ 706년 |
출신 | 강주(絳州) 태평현(太平縣)[1] |
당나라의 재상으로 자는 중엽(仲曄).
강주 태평현 출신으로, 경산송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휘는 젊은 나이에 명경과에 급제하여, 성력 연간[2]에 관직이 위주(衛州) 자사까지 이르렀다. 돌궐이 침입할 때, 경휘는 가을까지 백성들이 성을 수축하는 모습을 보고, 수축에 동원된 백성들을 모두 추수를 위해 돌려보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경휘는 이후 하관시랑[3], 태주 자사, 낙주 장사를 역임하였고, 703년에는 중대우승, 은청광록대부가 되었다.
705년 측천무후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측천무후의 측근인 장역지와 장창종 형제가 측천무후의 병을 간호하면서 조정의 대권을 잡았다. 경휘는 장간지, 환언범, 원서기, 최현위와 함께 장역지 형제를 주벌하기로 모의한다. 경휘는 우우림장군이 되고 쿠데타를 일으켜 장역지 형제를 처형하였고, 현무문을 점령한 뒤 제4대 황제였던 당중종을 복위시켰다.(신룡정변) 경휘는 중종을 복위시키고 당나라를 부흥한 공적에 따라, 시중으로 발탁되었고 평양군공(平陽郡公)으로 책봉되었다. 뒤에는 작위가 제국공(齊國公)으로 올라갔다.
쿠데타 이후, 환언범 일파는 무씨 황족들의 작위를 모두 군공으로 강등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측천무후의 조카인 무삼사는 환언범 일파의 조치에 분노하였고, 환언범 일파를 모함해 제거하기 시작한다. 경휘는 작위가 평양군왕으로 올라갔고 특진이 되었으며, 지정사에서 파직되었다. 이것은 겉으로는 환언범 일파를 존중한 것이지만, 당시 지정사는 재상에 준하는 지위였고, 특진은 수당시대에는 명예직에 가까웠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들의 실권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706년, 무삼사는 위황후와 합작하여 경휘를 애주 사마까지 좌천시켰고, 더불어 그의 봉작을 삭탈하였다. 무삼사는 절민태자를 종용하여 환언범 일파의 삼족을 멸해야 한다고 상주하였지만, 중종이 이를 윤허하지 않았고, 결국 주이정(周利貞)을 시켜 환언범 일파를 독단적으로 살해하였다.
환언범 일파가 제거되고 4년 뒤인 710년, 5대 황제인 당예종이 복위하면서 무삼사와 위황후 일파는 숙청되었다. 경휘는 당예종에 의해 사후 관작이 복권되어, 진주(秦州) 도독으로 추증되었고, 숙민(肅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718년에는 장간지, 환언범, 원서기, 최현위와 함께 중종의 사당에 배향되었고, 당덕종 시기에는 태위로 추증되었다.
705년 측천무후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측천무후의 측근인 장역지와 장창종 형제가 측천무후의 병을 간호하면서 조정의 대권을 잡았다. 경휘는 장간지, 환언범, 원서기, 최현위와 함께 장역지 형제를 주벌하기로 모의한다. 경휘는 우우림장군이 되고 쿠데타를 일으켜 장역지 형제를 처형하였고, 현무문을 점령한 뒤 제4대 황제였던 당중종을 복위시켰다.(신룡정변) 경휘는 중종을 복위시키고 당나라를 부흥한 공적에 따라, 시중으로 발탁되었고 평양군공(平陽郡公)으로 책봉되었다. 뒤에는 작위가 제국공(齊國公)으로 올라갔다.
쿠데타 이후, 환언범 일파는 무씨 황족들의 작위를 모두 군공으로 강등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측천무후의 조카인 무삼사는 환언범 일파의 조치에 분노하였고, 환언범 일파를 모함해 제거하기 시작한다. 경휘는 작위가 평양군왕으로 올라갔고 특진이 되었으며, 지정사에서 파직되었다. 이것은 겉으로는 환언범 일파를 존중한 것이지만, 당시 지정사는 재상에 준하는 지위였고, 특진은 수당시대에는 명예직에 가까웠기 때문에, 실제로는 이들의 실권을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706년, 무삼사는 위황후와 합작하여 경휘를 애주 사마까지 좌천시켰고, 더불어 그의 봉작을 삭탈하였다. 무삼사는 절민태자를 종용하여 환언범 일파의 삼족을 멸해야 한다고 상주하였지만, 중종이 이를 윤허하지 않았고, 결국 주이정(周利貞)을 시켜 환언범 일파를 독단적으로 살해하였다.
환언범 일파가 제거되고 4년 뒤인 710년, 5대 황제인 당예종이 복위하면서 무삼사와 위황후 일파는 숙청되었다. 경휘는 당예종에 의해 사후 관작이 복권되어, 진주(秦州) 도독으로 추증되었고, 숙민(肅湣)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718년에는 장간지, 환언범, 원서기, 최현위와 함께 중종의 사당에 배향되었고, 당덕종 시기에는 태위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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