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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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장수 劉全諒 | 유전량 | |
성 | 유(劉) |
이름 | 일준(逸準) → 전량(全諒) |
부친 | 유정신(劉正臣) |
출신 | 회주(懷州) 무척현(武陟縣) |
생몰 | 751년 ~ 799년 |
중국 당나라의 장수. 유정신(劉正臣)의 아들이다.
회주(懷州) 무척현(武陟縣) 출신으로 751년에 유정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정신은 756년 안록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전사하였다.
유전량은 본래 이름이 유일준(劉逸準)으로, 부친의 음서를 통해 별가와 장사를 거쳤다. 덕종 건중 연간[1]에 유현좌(劉玄佐)가 송박(宋亳) 절도사가 되면서 유일준을 휘하의 아장으로 임명하였고 용맹과감한 성격, 기마와 활쏘기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현좌는 유일준이 자신의 족질[2]이었기에 유일준을 예우하였고, 도지병마사, 시태복경(試太僕卿) 겸 어사중승을 지냈다.
787년 유현좌 사후, 유현좌의 아들인 유사녕(劉士寧)이 절도사를 세습하였다. 유사녕은 송주(宋州) 자사인 적양좌(翟良佐)가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을 의심하여 순시를 핑계삼아 적양좌를 대신하여 유전량을 송주 자사에 앉혔다.
799년, 동진(董晉)이 죽은 뒤 선무군에서 반란이 일어나 육장원(陸長源)이 살해되고 감군 구문진(俱文珍)과 선무군의 대장이 비밀리에 유일준을 변주(汴州)로 불러 유일준에게 유후를 맡도록 하였다. 유일준은 변주로 당도하여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의 마음을 달랬고, 조정에서는 유일준에게 검교공부상서, 변주 자사로 삼고 선무군(宣武軍) 절도관찰등사(節度觀察等使)를 겸임하게 했으며, 전량(全諒)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유전량은 변주 자사로 임명된 바로 그 해에 사망하여 우복야로 추증되었다.
유전량은 본래 이름이 유일준(劉逸準)으로, 부친의 음서를 통해 별가와 장사를 거쳤다. 덕종 건중 연간[1]에 유현좌(劉玄佐)가 송박(宋亳) 절도사가 되면서 유일준을 휘하의 아장으로 임명하였고 용맹과감한 성격, 기마와 활쏘기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현좌는 유일준이 자신의 족질[2]이었기에 유일준을 예우하였고, 도지병마사, 시태복경(試太僕卿) 겸 어사중승을 지냈다.
787년 유현좌 사후, 유현좌의 아들인 유사녕(劉士寧)이 절도사를 세습하였다. 유사녕은 송주(宋州) 자사인 적양좌(翟良佐)가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을 의심하여 순시를 핑계삼아 적양좌를 대신하여 유전량을 송주 자사에 앉혔다.
799년, 동진(董晉)이 죽은 뒤 선무군에서 반란이 일어나 육장원(陸長源)이 살해되고 감군 구문진(俱文珍)과 선무군의 대장이 비밀리에 유일준을 변주(汴州)로 불러 유일준에게 유후를 맡도록 하였다. 유일준은 변주로 당도하여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의 마음을 달랬고, 조정에서는 유일준에게 검교공부상서, 변주 자사로 삼고 선무군(宣武軍) 절도관찰등사(節度觀察等使)를 겸임하게 했으며, 전량(全諒)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유전량은 변주 자사로 임명된 바로 그 해에 사망하여 우복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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