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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시인)

최근 수정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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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용중인 아이피가 ACL그룹 IDC #12915에 있기 때문에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 본기(本紀) ]
1권 「고조기(高祖紀)」
2·3권 「태종기(太宗紀)」
4·5권 「고종기(高宗紀)」
6권 「측천황후기(則天皇后紀)」
7권 「 중종·예종기(中宗睿宗紀)」
8·9권 「현종기(玄宗紀)」
10권 「숙종기(肅宗紀)」
11권 「대종기(代宗紀)」
12·13권 「덕종기(德宗紀)」
14·15권 「순종·헌종기(順宗憲宗紀)」
16권 「목종기(穆宗紀)」
17권 「경종·문종기(敬宗文宗紀)」
18권 「무종·선종기(武宗宣宗紀)」
19권 「의종·희종기(懿宗僖宗紀)」
20권 「소종·애제기(昭宗哀帝紀)」

※ 21권 ~ 50권은 志에 해당. 구당서 문서 참고
[ 열전(列傳) ]
51·52권 「후비전(后妃傳)」
53권 「이밀전(李密傳)」
54권 「왕세충등전(王世充等傳)」
55권 「설거등전(薛舉等傳)」
56권 「소선등전(蕭銑等傳)」
57권 「배적등전(裴寂等傳)」
58권 「당검등전(唐儉等傳)」
59권 「굴돌통등전(屈突通等傳)」
60권 「종실전(宗室傳)」
61권 「온대아등전(溫大雅等傳)」
62권 「이강등전(李綱等傳)」
63권 「봉륜등전(封倫等傳)」
64권 「고조22자전(高祖二十二子傳)」
65권 「고사렴등전(高士廉等傳)」
66권 「방현령등전(房玄齡等傳)」
67권 「이정등전(李靖等傳)」
68권 「울지경덕등전(尉遲敬德等傳)」
69권 「후군집등전(侯君集等傳)」
70권 「왕규등전(王珪等傳)」
71권 「위징전(魏徵傳)」
72권 「우세남등전(虞世南等傳)」
73권 「설수등전(薛收等傳)」
74권 「유계등전(劉洎等傳)」
75권 「소세장등전(蘇世長等傳)」
76권 「태종제자전(太宗諸子傳)」
77권 「위정등전(韋挺等傳)」
78권 「우지녕등전(于志寧等傳)」
79권 「조효손등전(祖孝孫等傳)」
80권 「저수량등전(褚遂良等傳)」
81권 「최돈례등전(崔敦禮等傳)」
82권 「허경종등전(許敬宗等傳)」
83권 「곽효각등전(郭孝恪等傳)」
84권 「유인궤등전(劉仁軌等傳)」
85권 「당림등전(唐臨等傳)」
86권 「고종·중종제자전(高宗中宗諸子傳)」
87권 「배염등전(裴炎等傳)」
88권 「위사겸등전(韋思謙等傳)」
89권 「적인걸등전(狄仁傑等傳)」
90권 「왕급선등전(王及善等傳)」
91권 「환언범등전(桓彥範等傳)」
92권 「위원충등전(魏元忠等傳)」
93권 「누사덕등전(婁師德等傳)」
94권 「소미도등전(蘇味道等傳)」
95권 「예종제자전(睿宗諸子傳)」
96권 「요숭등전(姚崇等傳)」
97권 「유유구등전(劉幽求等傳)」
98권 「위지고등전(魏知古等傳)」
99권 「최일용등전(崔日用等傳)」
100권 「윤사정등전(尹思貞等傳)」
101권 「이예등전(李乂等傳)」
102권 「마회소등전(馬懷素等傳)」
103권 「곽건관등전(郭虔瓘等傳)」
104권 「고선지등전(高仙芝等傳)」
105권 「우문융등전(宇文融等傳)」
106권 「이임보등전(李林甫等傳)」
107권 「현종제자전(玄宗諸子傳)」
108권 「위견소등전(韋見素等傳)」
109권 「풍앙등전(馮盎等傳)」
110권 「이광필등전(李光弼等傳)」
111권 「최광원등전(崔光遠等傳)」
112권 「이고등전(李暠等傳)」
113권 「묘진경등전(苗晉卿等傳)」
114권 「노경등전(魯炅等傳)」
115권 「최기등전(崔器等傳)」
116권 「숙종·대종제자전(肅宗代宗諸子傳)」
117권 「엄무등전(嚴武等傳)」
118권 「원재등전(元載等傳)」
119권 「양관등전(楊綰等傳)」
120권 「곽자의전(郭子儀傳)」
121권 「복고회은등전(僕固懷恩等傳)」
122권 「장헌성등전(張獻誠等傳)」
123권 「유안등전(劉晏等傳)」
124권 「설숭등전(薛嵩等傳)」
125권 「장일등전(張鎰等傳)」
126권 「이계등전(李揆等傳)」
127권 「요령언등전(姚令言等傳)」
12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29권 「한황등전(韓滉等傳)」
130권 「왕여등전(王璵等傳)」
131권 「이면등전(李勉等傳)」
132권 「이포옥등전(李抱玉等傳)」
133권 「이성등전(李晟等傳)」
134권 「마수등전(馬燧等傳)」
135권 「노기등전(盧杞等傳)」
136권 「두참등전(竇參等傳)」
137권 「서호등전(徐浩等傳)」
138권 「단수실등전(段秀實等傳)」
139권 「육지전(陸贄傳)」
140권 「위고등전(韋臯等傳)」
141권 「전승사등전(田承嗣等傳)」
142권 「이보신등전(李寶臣等傳)」
143권 「이회선등전(李懷仙等傳)」
144권 「상가고등전(尚可孤等傳)」
145권 「유현좌등전(劉玄佐等傳)」
146권 「설파등전(薛播等傳)」
147권 「두황상등전(杜黃裳等傳)」
148권 「배기등전(裴垍等傳)」
149권 「우휴열등전(于休烈等傳)」
150권 「덕종·순종제자전(德宗順宗諸子傳)」
151권 「고숭문등전(高崇文等傳)」
152권 「마린등전(馬璘等傳)」
153권 「요남중등전(姚南仲等傳)」
154권 「공소부등전(孔巢父等傳)」
155권 「목녕등전(穆寧等傳)」
156권 「우적등전(于頔等傳)」
157권 「왕굉등전(王翃等傳)」
158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159권 「위차공등전(衛次公等傳)」
160권 「한유등전(韓愈等傳)」
161권 「이광진등전(李光進等傳)」
162권 「반맹양등전(潘孟陽等傳)」
163권 「맹간등전(孟簡等傳)」
164권 「무원형등전(武元衡等傳)」
165권 「위하경등전(韋夏卿等傳)」
166권 「원진등전(元稹等傳)」
167권 「조종유등전(趙宗儒等傳)」
168권 「위온등전(韋溫等傳)」
169권 「이훈등전(李訓等傳)」
170권 「배도전(裴度傳)」
171권 「이발등전(杜黃裳等傳)」
172권 「영호초등전(令狐楚等傳)」
173권 「정담등전(鄭覃等傳)」
174권 「이덕유전(李德裕傳)」
175권 「헌종·목종·경종·문종·무종·선종·의종·희종·소종제자전(憲宗穆宗敬宗文宗武宗宣宗懿宗僖宗昭宗諸子傳)」
176권 「이종민등전(李宗閔等傳)」
177권 「최신유등전(崔慎由等傳)」
178권 「조은등전(趙隱等傳)」
179권 「소구등전(蕭遘等傳)」
180권 「주극융등전(朱克融等傳)」
181권 「사헌성등전(史憲誠等傳)」
182권 「왕중영등전(王重榮等傳)」
183권 「외척전(外戚傳)」
184권 「환관전(宦官傳)」
185권 「양리전(良吏傳)」
186권 「혹리전(酷吏傳)」
187권 「충의전(忠義傳)」
188권 「효우전(孝友傳)」
189권 「유학전(儒學傳)」
190권 「문원전(文苑傳)」
191권 「방기전(方伎傳)」
192권 「은일전(隱逸傳)」
193권 「열녀전(列女傳)」
194권 「돌궐전(突厥傳)」
195권 회흘전(回紇傳)」
196권 「토번전(吐蕃傳)」
197권 「남만·서남만전(南蠻·西南蠻傳)」
198권 「서융전(西戎傳)」
199권 「동이·북적전(東夷北狄傳)」
고려 · 백제 · 신라 · 왜국 · 일본 · 철륵 · 거란 · · 실위 · 말갈 · 발해 ·
200권 「안녹산등전(安祿山等傳)」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편집]

李賀
791년 ~ 817년
당나라의 종친이자 시인으로 본관은 농서고 출생지는 복창현 창곡 출생이며 는 장길(長吉)이다. 벼슬이름에서 따서 이 봉례(奉禮)라고도, 출생지로부터 이 창곡(昌谷)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였다.

2. 생애[편집]

중당 시대[1]의 시인으로 성당기의 이백, 만당기의 이상은(李商隱)과 함께 삼이(三李)라고 불리며,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 시불(詩佛) 왕유와 함께 당나라 4대 시인(당시4걸)로 꼽히기도 한다.

당고조숙부인 정효왕(鄭孝王) 량(亮)의 운손()이고, 회안정왕(淮安靖王) 수(壽)의 잉손()이고, 금주대도독(金州大都督) 오국공(吳國公) 효일(孝逸)의 곤손이고, 좌효위대장군 이조(李璪)의 내손이고, 조청대부(朝請大夫) 태자복(太子僕) 이흥(李興)의 현손이고, 심주별가(深州別駕) 이도(李陶)의 증손이고, 섬현령()을 지내며 소백사(邵伯祠)를 다시 세우고 비석을 세운 이진숙(李晉肅)과 부인 정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하는 비록 황족이지만 두보의 친척이라는 것 빼고는 거의 방계 중의 방계였던지라 실질적으로는 별볼일 없었고 아버지 이진숙도 출세를 못 하고 일찍 죽었고 재산도 넉넉하지 못 했다.

이하는 어릴 때부터 싹수가 남달라 식은 죽 먹듯 시구를 지어냈다. 그는 불과 17세의 나이로 당대 문단의 거두이자 중국 시사에서도 이름 높은 한유를 찾아갔다. 물론 듣도 보도 못한 어린 것을 한유가 만나줄 리 없었으나 이하는 하인에게 자신의 시를 전했고 한유는 첫 구절을 보자마자 황급히 이하를 맞아들였다. 재능도 뛰어났고 거두이자 높은 관직에 있었던 한유의 후원을 받게 되었으니 이하의 출세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과거의 첫걸음인 진사시를 치르기 위해 장안을 찾아간 이하는 청천벽력 같은 개소리를 듣게 되는데, 진사의 진()과 이하의 부친 이진숙의 진()이 같은 소리니, 이 기휘 때문에 너는 진사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는 이하와 같이 진사시에 응시한 다른 경쟁자들의 망언이었으나 받아들여졌고, 이에 한유 역시 휘의 변이라는 글을 통해 극력 반론했으나[2] 끝내 주변인들은 그런 개소리가 진짜라며 듣지 않아 이하는 진사시를 치르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창곡으로 돌아갔다. 한유는 그런 이하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어떻게든 간에 이하를 관직생활에 올리고자 여러가지로 물심양면 후원했지만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한유는 포기하지 않고 황실에까지 건의를 올렸고 황실에서는 고민 끝에 이하가 방계 황족인 것을 감안해서 나름의 배려로 낮은 벼슬을 내린다.

이듬해, 이하의 일생에서 잠깐의 빛이 들어오니, 이하는 한유의 적극 추천으로 봉례랑이라는 관직을 받았긴 하였으나 이는 원래부터가 황족에게 돌아가는 종구품의 벼슬자리로 제사 때 제기의 위치 및 백관들의 앉는 자리를 정해주는 일이었다. 2년간 봉례랑으로 봉직하나 스스로 물러난다. 그저 종실이라 봉례랑을 하고 있을 뿐이라 여겨 별다른 희망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높은 자부심에 진사도 거치지 못한 자신의 처지와 과거를 거친 다른 이들을 비교하며 차마 견딜 수 없었을 수도, 병약한 몸에 종구품 실무직의 업무가 과중했을 수도.[3]

낙향한 다음해 다시 청운의 뜻을 품고 친구를 따라 산서성으로 향하나 별 신통한 일은 없었다. 결국 고향에 돌아온 이하는 병을 얻게 되고 시름시름 앓다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스물다섯부터 이미 백발이었다고 한다. 아내와도 일찍 사별해 자식은 없었다.

짧은 생을 살다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이 강렬했기에 여러 일화와 고사가 대시인을 둘러싸고 있다. 일찍이 심장을 토해야만 시 쓰기를 그만두겠다는 모친의 탄식처럼 시에 미쳤던 이하는 조랑말과 서동을 대동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다 이하가 아름다운 시귀를 뱉으면 서동이 이를 받아적고는 비단주머니에 담았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글귀를 일컫는 금낭가구(錦囊佳句)란 어휘는 이하의 고사로부터 유래하였다.

비단주머니 속에 고이 간직했던 이하의 시는 그 주인에게 시귀(詩鬼), 혹은 '다시 없는 귀신과 같은 재주'란 뜻의 귀재절(鬼才絶)라는 명칭을 안겨 주었는데, 이는 이하의 시 세계가 중국시사에 있어 그 전에도 없었고 그 앞으로 지금까지도 없을 만큼의 독특함을 보유하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인 정씨 부인은 아들의 짧은 생을 이해한 듯 "내 아들은 매일 마지막을 사는 것처럼 시를 쓰는구나..."라고 탄식하였다. 늦은 저녁식사를 한 뒤, 시동이 가져온 붓과 먹, 벼루를 받고 자신이 담은 글귀를 토대로 시를 지으니 그의 일생에서 짧지만 많은 시가 내려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천상수문, 우귀사신이란 단어 역시 이하 시세계의 기묘함을 엿볼 수 있는 단면으로 기능할 수 있다. 천상수문(天上修文)은 이하가 젊어 세상을 떠날 때 어머니더러 지금 옥황상제의 사자가 내 앞에 백옥루의 상량문을 지어달라고 와 있으니 그리로 가겠다고 유언을 남긴 것에서 비롯한다. 이 이야기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는 효성의 발로, 정말 죽음을 눈 앞에 두고 환각 둘 중 어느 것이어도 형언키 어려운 향기를 품긴다. 우귀사신(牛鬼蛇神)은 이하 시인 두목이 머리 대신 소대가리가 솟아있는 귀신이나 뱀의 몸뚱이를 한 귀신으로도 이하 시의 허황되고 환상적인 면을 형용키엔 부족함이 있다고 일컬은 데에서 비롯한다.

그의 대표작인 소소소묘는 남북조시대 기생 소소묘, 즉 처녀귀신접신하는(...) 내용이다. # ## 다른 대표작인 <장진주(將進酒, 술을 올리는 노래)>, <신현곡(神絃曲,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노래)>는 아예 대놓고다(...). #

절망을 다룬 시도 많다. <추래(秋來)>, <상심행(傷心行)>이나 <증진상(贈陣商, 진상에게 드림)>은 그야말로 음울한 시. #

3. 기타[편집]

현대중국의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에서 이하의 작품 1개, 고등학교에서 1개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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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히 당헌종의 원화중흥기(805~820).[2] “아버지와 이름이(진) 같아서 아들이 진사가 될 수 없다면 아버지 이름이 인(仁)이면 아들은 사람(人)이 될 수 없다는 말이냐”라고. 휘변은 고문진보에 실려 있다.[3] 다만 과거를 합격하고도 몇 년간 대기 상태였던 사람들도 많았던 현실을 참작하면 종구품이라도 벼슬은 벼슬이다. 이하는 벼슬자리를 밀어준 한유를 일생의 은인으로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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