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사도(당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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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대신 안덕의공(安德懿公) 楊師道 | 양사도 | |
작호 | 안덕군공(安德郡公) |
시호 | 의(懿) |
성 | 양(楊) |
이름 | 사도(師道) |
자 | 숙개(叔玠) |
부친 | 양웅(楊雄) |
형 | 양공인(楊恭仁) |
출생 | ? ~ 647년 |
본관 | 태원군(太原郡) 기현(祁縣) |
양사도는 수나라의 황족인 관덕왕 양웅(楊雄)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양공인의 아우였다. 수나라 말에 낙양에서 왕세충에게 붙잡혔다가 이연에게 달아나 그에게 귀순하였다. 양사도는 이연의 딸인 계양공주[1]에게 장가를 가서 부마도위가 되었고 안덕군공의 작위를 받았으며, 이부시랑, 태상경을 역임하였다.
633년에는 시중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정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후 639년에는 중서령으로 임명되었다. 태종의 태자인 이승건의 모반 혐의가 누설되자 양사도는 이를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조자경의 아들인 조절(趙節)도 이승건의 역모에 가담하였는데, 양사도는 조절을 살리려고 하였지만 태종에게 꾸지람을 듣고 중서령에서 파면되었다. 곧이어 양사도는 이부상서로 전임된다.
태종이 고구려 원정에서 돌아온 뒤, 어떤 이가 양사도를 모함하여, 양사도는 공부상서로 좌천되었고, 곧이어 태상경이 되었다. 양사도는 647년에 사망하여, 이부상서, 병주 도독으로 추증되었으며 의(懿)라는 시호를 받았다.
수말당초의 군웅 중 한 명인 양사도와는 비슷한 시대의 인물로 이름이 한국 한자음으로는 같지만 엄연히 다른 인물이다. 일단 성씨부터가 다르다.
633년에는 시중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으로 정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후 639년에는 중서령으로 임명되었다. 태종의 태자인 이승건의 모반 혐의가 누설되자 양사도는 이를 조사하는 임무를 맡았다. 당시 조자경의 아들인 조절(趙節)도 이승건의 역모에 가담하였는데, 양사도는 조절을 살리려고 하였지만 태종에게 꾸지람을 듣고 중서령에서 파면되었다. 곧이어 양사도는 이부상서로 전임된다.
태종이 고구려 원정에서 돌아온 뒤, 어떤 이가 양사도를 모함하여, 양사도는 공부상서로 좌천되었고, 곧이어 태상경이 되었다. 양사도는 647년에 사망하여, 이부상서, 병주 도독으로 추증되었으며 의(懿)라는 시호를 받았다.
수말당초의 군웅 중 한 명인 양사도와는 비슷한 시대의 인물로 이름이 한국 한자음으로는 같지만 엄연히 다른 인물이다. 일단 성씨부터가 다르다.
[1] 계양공주는 이전에 조자경(趙慈景)이라는 인물에게 시집을 갔다가 조자경이 죽은 뒤에 양사도에게 시집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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