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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시장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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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1960년대3. 1970년대4. 2005년5. 2014년6. 2016년
6.1. 박근혜 대통령 방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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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서문시장1922년에 개설된 이래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기록된 화재만 무려 17회. 이 정도면 경악이 아니라 경이의 영역. 1952년 2월 24일 점포 4,200개가 전소된 대화재를 시작으로 1960년, 1967년, 1975년에도 큰 화재가 발생했으며 2005년과 2016년에도 화재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대부분의 원인은 재래시장의 고질병 중 하나인 전기 합선이다. 서문시장 정중앙의 도로에 국수나 먹거리를 팔기 위해 가스나 전선을 사용하는 곳이 많은데 노후된 전선이 노출되어 합선을 일으키고 스파크나 화재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 서문시장 화재 일지

2. 1960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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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1월 4일 동아일보 기사)

1960년 6월 16일 오후 12시 23분경 모자 가게에서 유류로 발생한 화재로 인해 43개의 점포가 전소되고 2만여 명의 이재민과 43명의 부상자가 생기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피해액은 46억 8,700만 원으로 2019년 7월 화폐 가치로 약 1,865억 원에 이른다. 당시 기준으로도, 지금 기준으로도 엄청난 재산 피해다.
1967년 1월 1일, 전선 마찰로 발생한 화재로 서문시장 1지구 점포 372개가 전소됐으며 재산 피해 규모가 약 1억 8,600만 원[1]이나 됐다. 이로 인해 소방관 1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원인은 전기 합선으로 밝혀졌다.

3. 1970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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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1월 21일 동아일보 기사)

1975년 11월 20일 오후 9시 40분경 서문시장은 담뱃불로 추정되는 화재로 인해 4지구 1, 2층과 1지구 2층이 전소되었다. 피해 점포는 무려 1,900개에 이르렀으며 재산 피해 규모는 약 20억원 가량.[2]

또 1년 뒤인 1976년 12월 17일에도 성냥불 실화로 추정되는 불이 발생해 650개의 점포가 전소되었고 11억 4,000만 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생겼으며 6명이 부상을 입었다.[3]

4. 2005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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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9일에 일어난 화재는 서문시장 2지구 전체를 불태웠으며 재산 피해 규모가 약 600억 원이나 되었다.[4] 사고 원인은 고질적인 문제인 전기 합선으로 밝혀졌다. 2지구 상가 건물은 철거 후 새로 지어야 했으며 재건축 기간 동안 서문시장 맞은편의 (구) 베네시움 상가와 (구) 대영학원 건너편의 (구) 롯데마트 자리에 임시 이전하였다. 현재는 2지구 건물이 완공되어 정상 영업 중.

5. 2014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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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5일 아진상가 근처에서 불이 일어나 시민 수십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 화재 당시에는 인명피해와 별다른 재산 피해가 없었다.

6. 2016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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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30일 오전 2시 8분경 4지구와 1지구에서 불이 났다. 이 화재로 인해 4지구의 의류, 원단, 전통 의상 등을 취급하는 점포 839개가 모두 전소되어 상인회 추산 약 1,0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1960년 화재 이후 최대의 재산 피해다. 대구 서문시장 '11년만에 큰 불'

관할인 중부 소방서는 물론 대구소방안전본부 관할 모든 소방서에서 총출동하여 소방대원 750여 명, 소방차 90대 등이 투입되었지만 불이 쉽게 붙는 의류 상가로 불이 번지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 진화 도중 4지구와 다른 건물을 연결하는 통로가 무너지면서 소방관 2명이 추락하여 부상을 입기도 했고 소방장 1명도 화상을 입었다. 다행히 모두 큰 부상은 아니라고 한다. 그 밖의 사망자 등의 인명피해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편 화재 피해를 입은 4지구 건물은 11년 전의 2지구처럼 40% 가량이 붕괴되었고 나머지 부분도 붕괴 위험 가능성이 컸다. 관할인 대구 중구청 측에서는 2005년 당시보다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예상했으며 워낙 피해가 커서 건물을 아예 헐고 새로 지어야 할 것으로 봤다. 안전 진단 결과 E등급(사용불가) 판정을 받으며 결국 4지구 상가의 철거가 확정됐다.

20161130 081232

2016.11.30 오전 8시 즈음에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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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오전 8시 50분 즈음 계성중학교 내에서 촬영한 사진

화재의 규모가 너무 커서 주변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바로 인근에 있던 계성초등학교는 연기로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어 화재 당일인 11월 30일은 오전 수업만 하고 학생들을 귀가시켰고 계성중학교에선 8시 50분에 교무 회의를 하여 학생들을 바로 하교시켰다. 그 당시 본교 복도는 연기, 가스 냄새가 심하여 회의가 끝날 때까지 복도로 나가는 것을 금지시켰다.

서문시장 바로 건너편에는 1,000병상급의 상급종합병원인 동산병원이 있는데 새벽부터 소방차들의 사이렌 소리와 화재 연기로 안정을 취해야 할 입원 환자들이 밤잠을 설쳐야 했고 일부는 호흡 곤란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주변 뿐 아니라 대구 시내 곳곳에 연기가 뒤덮였고 11월 30일 하루 종일 온 대구 시내에 탄내가 진동했다. 중구는 물론 수성구, 심지어 북구 끝자락에 위치한 칠곡지구까지도 탄내가 많이 났고, 멀리 떨어진 동구달서구에도 탄내가 희미하게 났다.

20161201 093441

2016년 12월 1일 오전 9시 34분경 서문시장역에서 내려다본 서문시장 입구의 모습. 화재 발생 후 31시간이나 지났지만 주변에 소방차가 배치되어 진화했다.

기사에 따르면 화재 발생 30시간이 지난 2016년 12월 1일 오전 7시에도 불이 완전히 꺼지지 않아 소방당국이 진화 작업에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불이 난 건물에 섬유 원단, 침구류, 의류 등을 취급하는 상점이 밀집되어 있어서 끊임없이 작은 불씨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며 잔불이 완전히 진화 되기까지 약 10시간 가량이 더 소모될 전망이었다. 2005년 2지구 화재 당시에도 불이 완전히 진화되는 데 40시간이 넘게 걸렸다. 결국 화재 발생 59시간 만인 12월 2일 낮에 겨우 진화가 완료됐고 이미 무너진 곳에서는 굴삭기가 동원되어 잔해 정리 및 남은 불씨를 제거했다.

진화 작업 동안 5지구와 대로변의 몇몇 점포들만 영업을 했고 나머지 서문시장 대부분의 구역이 출입 통제가 되면서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12월 5일에 이르러서 4지구에 펜스를 쳐 놓고 나머지 구역의 영업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시장 한가운데에 위치한 4지구가 막힌 바람에 서문시장의 가운데가 단절되었다. 시장 외곽을 빙 둘러야만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 내 통행이 상당히 어려워졌다. 통로가 단절된 바람에 화재 피해를 입지 않은 다른 점포들도 영업에 적잖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편 피해를 입은 4지구의 대체상가 부지는 (구) 베네시움 쇼핑몰로 정해졌다. 관련 기사

4지구에서 발생한 화재로 야시장 역시 상당한 타격을 받았는데 화재 이후 2달 가량 영업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야시장 상인 중 일부는 동성로에 있는 에비뉴8번가 내 광장에서 영업할 예정이었으나 대구시와 중구청의 불허로 무산되고 말았다. 관련 기사 하지만 2017년 3월 3일부터 재개장하여 영업을 시작했다. 관련 기사

6.1. 박근혜 대통령 방문 논란[편집]

서문시장은 박근혜가 대통령 당선 이전부터 자신이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방문한 곳으로, 2016년 화재 때도 자신의 입지가 불안한 와중에도 대통령으로서 현장을 방문하였다. (YTN)

하지만 15분 동안 상인 회장의 설명만 들으면서 살펴보았을 뿐 상인들과의 대면, 대화가 없었으며 대구 시민과 상인들은 환영은 커녕 침묵 시위가 이어졌다. 박근혜는 이날 어떠한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나타난 박사모, 박대모(근혜 통령을 사랑하는 임) 회원들이 태극기를 들고 박수까지 치며 환영하였지만 이를 본 시민과 상인들이 "불난 데 부채질하냐"며 서로 실랑이가 벌어졌다. 실제 불난 지구쪽 대표 상인 및 화재 피해 상인 중에서는 대통령을 만난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서문시장을 방문한 이유가 특검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 이날 박 전 대통령의 대구 방문 사실을 알리며 긴급 연락이라는 이름의 박근혜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한 "서문시장으로 2시까지 태극기를 들고 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돌았다. 청와대 대변인은 이후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이 대구에서 돌아오는 길에 울었다"고 하며[5] 시장에 머물렀던 시간이 10분이 아니라 무려 15분이라고 하였다. (뉴스토마토) (JTBC) (매일신문1) (매일신문2) 당시 영상 상인 인터뷰1

이번 방문을 두고 지역 일간지인 영남일보에서는 연극이라며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대통령 방문 전에 이동 경로 상의 소방 호스를 치우라는 주문이 내려왔으며 대구소방안전본부 소속이 아닌 소방관들이 배치되어 있고 방문 시간 동안 화재 진압 작업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대구문화방송에서는 이런 보도까지 나왔다. (대구mbc, R)논란과 상처로 얼룩진 대통령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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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
발생일
사건명
2019년 5월 29일
27
2018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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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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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명
2008년 1월 7일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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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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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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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00년 10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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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
[ 198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89년 9월 17일
24
1989년 7월 27일
79
1988년 3월 25일
22
1987년 11월 29일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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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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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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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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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월 14일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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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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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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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7일
26
1979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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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1977년 11월 11일
59
1976년 10월 28일
34
1976년 5월 18일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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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1974년 11월 3일
88
1974년 6월 28일
28
1974년 2월 22일
159
1973년 8월 12일
32
1973년 5월 16일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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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972년 12월 2일
53
1972년 8월 1일
26
1971년 12월 25일
166
1971년 10월 13일
20
1971년 5월 10일
80
1971년 5월 10일
31
1970년 12월 15일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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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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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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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69년 9월 17일
37
1969년 1월 31일
41
1968년 10월 30일
48
1968년 1월 8일
41
1967년 10월 16일
42
1967년 9월 15일
29
1967년 4월 8일
80
1967년 1월 19일
39
1967년 1월 14일
93
1967년 1월 1일
41
1966년 1월 18일
22
1964년 7월 29일
95+
1963년 10월 23일
49
1963년 6월 25일
70
1963년 1월 18일
140
1962년 9월 7일
36
1960년 3월 2일
62
1960년 1월 26일
31
[ 195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59년 7월 17일
67
1956년 1월 12일
66
1955년 3월 2일
42
1953년 11월 27일
29
1953년 1월 31일
56
1953년 1월 25일
66
1953년 1월 9일
330
1951년 7월 11일
94
1951년 7월 11일
30+
[ 1940년대 ]
발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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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5일
71
1949년 8월 18일
51
1947년 8월 19일
23
1946년 11월 13일
42
1946년 10월 22일
59
1945년 9월 29일
73
1945년 8월 24일
549​~​5,000+


[1] 2019년 7월 화폐 가치로 약 60억 8,700만원에 이른다. 당시 사고 일이 1월 1일 신정이었기에 설날 차례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대부분 못 쓰게 되어 피해가 더 컸다.[2] 2019년 7월 화폐 가치로 약 194억 2,200만원에 이른다.[3] 2019년 7월 화폐 가치로 약 100억 5,300만원에 이른다.[4] 2019년 7월 화폐 가치로 약 795억 6,000만원이다.[5] 이에 대해 썰전에서 유시민이 말하길 이래봐야 국민들은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차가운 반응만 보일 뿐이라는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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