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 터널 질식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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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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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8월 18일 오전 6시에 서울역을 출발한 안동행 505열차(편성 객차 6량, 승객 380여 명)가 대강터널 내 500m 지점에서 연결핀 파손으로 인하여 연결기 분리, 공기호스 파열로 후부객차 3량이 분리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하여 석탄가스 중독으로 승객 총 51명이 사망하고 36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사망자 수가 다른데 이 문서에서는 당시 터널 간수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다.
흔히들 죽령터널 열차 사고'라고도 하는데, 실제는 중앙선의 죽령을 넘는 똬리굴을 죽령 터널로 오해하여 이렇게들 부르며 이 터널은 직선터널이다. 사고가 발생한 똬리굴은 이 터널에서 단양 쪽에 가까운 대강터널이다.
흔히들 죽령터널 열차 사고'라고도 하는데, 실제는 중앙선의 죽령을 넘는 똬리굴을 죽령 터널로 오해하여 이렇게들 부르며 이 터널은 직선터널이다. 사고가 발생한 똬리굴은 이 터널에서 단양 쪽에 가까운 대강터널이다.
당시 서울에서 출발한 505열차는 8량(당시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6량) 편성으로, 열차는 초만원이었다. 단양역[1]에서 3시간 정도 늦게 출발하여 오후 6시경 대강터널(길이/2㎞, 23/1000구배)에서 30분 정도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다 결국 터널 내 500m 지점에서 연결핀 파손으로 인하여 연결기가 분리되었고 공기호스 파열로 후부객차 3량이 분리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하여 승객들은 석탄가스에 중독됐고 그 결과 51명이 사망하고 360명이 부상하였다.
당시 이 곳을 지키던 간수의 증언에 의하면 두 량의 객차가 분리되어 있었으며 증기 기관차의 가스로 인해 다수가 질식으로 사망하고 부상당했는데 이를 수습하러 들어가보니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고 한다.
동원되어 온 경찰관들은 수도(터널)내 사고는 철도국원이 고의로 낸 것이라고 몰고 갔다. 그리고 철도국원은 모두가 빨갱이라고 떠들어 대더니 구원작업에 여념이 없는 당시 간수를 처소 뜰로 끌고 가서는 구타를 하는 병크까지 저지르기도 했다. 월간 한국철도 1967.9 기사
당시 이 곳을 지키던 간수의 증언에 의하면 두 량의 객차가 분리되어 있었으며 증기 기관차의 가스로 인해 다수가 질식으로 사망하고 부상당했는데 이를 수습하러 들어가보니 현장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고 한다.
동원되어 온 경찰관들은 수도(터널)내 사고는 철도국원이 고의로 낸 것이라고 몰고 갔다. 그리고 철도국원은 모두가 빨갱이라고 떠들어 대더니 구원작업에 여념이 없는 당시 간수를 처소 뜰로 끌고 가서는 구타를 하는 병크까지 저지르기도 했다. 월간 한국철도 1967.9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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