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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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
버스 탑승 인원 | 18명 |
생존 | 1명(홍금숙) |
피살 | 17명 |
관련 영상
1980년 5월 23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여단[1] 부대원들은 광주 곳곳에서 무차별 진압과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주남마을은 광주에서 화순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광주로 들어오거나 나가려는 차량을 차단하는 주둔지가 되었다.
5월 23일 오전 화순으로 향하던 미니버스에 공수부대원들이 총격을 가해서 18명 중 15명을 사살하고 남은 사람 3명 중 중상자 2명을 공수부대원들이 데리고 가자 상급자로부터 '왜 데려왔냐,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인근 야산으로 끌고가 총살하여 암매장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 유일한 생존자 홍금숙 씨와 7공수여단 출신 최영신 씨가 주남마을 총격사건의 진실을 증언하면서 밝혀진 부분이다.
유일한 생존자인 홍금숙은[2] 1988년 청문회에 증인 신분으로 참석했다.
1980년 5월 23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여단[1] 부대원들은 광주 곳곳에서 무차별 진압과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주남마을은 광주에서 화순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에 광주로 들어오거나 나가려는 차량을 차단하는 주둔지가 되었다.
5월 23일 오전 화순으로 향하던 미니버스에 공수부대원들이 총격을 가해서 18명 중 15명을 사살하고 남은 사람 3명 중 중상자 2명을 공수부대원들이 데리고 가자 상급자로부터 '왜 데려왔냐,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고 인근 야산으로 끌고가 총살하여 암매장하였다. 이 사실은 당시 유일한 생존자 홍금숙 씨와 7공수여단 출신 최영신 씨가 주남마을 총격사건의 진실을 증언하면서 밝혀진 부분이다.
유일한 생존자인 홍금숙은[2] 1988년 청문회에 증인 신분으로 참석했다.
"저희들이 차에서 살려달라고, 여학생들이 몇 명 있었거든요
살려달라고 손을 흔들고 그러는데도 계속 총알이 날아오고
(중략)
대검을 탁 들이대면서 하는 말이
'너도 유방 하나 잘리고 싶냐' 그러더라고요 "1988년 광주 청문회에서 나온 증언 中
당시 숨진 사람들의 몸에는 모두 .223 레밍턴 총알이 박혀 있었고 [3]몇몇 시신에서는 총검에 찔린 상처도 발견된 걸로 보아 확인사살이 이뤄진 걸로 보인다.
사망자가 17명이라는 전투교육사령부 상황일지와는 다르게 광주시 조사에선 11명으로 나왔다. 끌려간 2명을 제외한 4명의 시신은 어디로 간 걸까?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다.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은 오전 9시, 17명인 사건은 정오쯤에 일어난 것으로 파악되며 두 사건 장소는 약 500미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실제 홍금숙의 증언에도 군인이 11명 사건을 언급한 대목이 등장한다.
한편 현장 지휘관은 폭도들이 총격을 가하며 돌진해 왔기 때문에 발포로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사망자가 17명이라는 전투교육사령부 상황일지와는 다르게 광주시 조사에선 11명으로 나왔다. 끌려간 2명을 제외한 4명의 시신은 어디로 간 걸까?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다.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은 오전 9시, 17명인 사건은 정오쯤에 일어난 것으로 파악되며 두 사건 장소는 약 500미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실제 홍금숙의 증언에도 군인이 11명 사건을 언급한 대목이 등장한다.
한편 현장 지휘관은 폭도들이 총격을 가하며 돌진해 왔기 때문에 발포로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상략) (바) 5.23. 09:00경 11공수여단 62대대가 매복하고 있는 광주 동구 주남마을 부근 광주-화순간 국도를 광주방면에서 화순방향으로 진행하던 미니버스가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자, 위 부대원들이 집중 사격하여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6항 기재와 같이 버스에 타고 있던 박현숙 등을 각 사망하게 하였다. (사) 5.24. 01:30 11공수여단에 현 주둔지인 주남마을에서 광주 송정리 비행장으로 이동하라는 전교사의 지시가 하달되자, 11공수여단이 같은 날 13:30경 주남마을을 출발하여 육로로 이동 중, 그 선두가 광주-목포간 도로에 접한 광주 서구 진월동 소재 광주효덕초등학교 삼거리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 트럭을 타고 그 곳에 와 있던 무장시위대 수명을 발견하고 총격을 가하고, 뒤따르던 병력들도 주변을 향해 일제히 총격을 가하여 별지 (2) 피해자 및 피해상황일람표 순번 제7항 기재와 같이 광주효덕초등학교 뒤 놀이터에서 놀던 전재수, 부근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놀던 방광범을 각 사망하게 하였다. (하략) |
1996년 12월 16일에 서울고등법원에서 최종판결되었다. 사건번호는 96노1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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