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영 연쇄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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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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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 18일 오후 6시경 당시 23세였던 이대영은 광진구 중곡동 아차산 7부능선에 있던 긴고랑천 약수터로 등산을 나갔다가 약수로 세수를 하던 중 피해자 김 씨(58)가 "약수터에서 먹는 물로 세수를 하면 어쩌냐"고 나무라자 옆에 있던 돌로 피해자의 머리를 내리쳐 살해하고 20m 떨어진 골짜기로 시신을 옮긴 뒤 옷을 모두 벗기고 소지품을 훔쳐 강도강간 사건으로 위장한 뒤 달아났다.[1]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됨에 따라 당시 서울 동부경찰서는 수사본부를 꾸리는 등 사건해결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 용의자를 찾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분류되었고 수사팀은 해체되었다.
이대영은 2009년 9월 26일 광진구의 한 주택가에서 점퍼 차림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경찰의 검문에 걸렸다. 이름과 인적사항을 묻는데 횡설수설하자 경찰은 이를 수상하게 여겨 이대영을 절도범 정도로 보고 계속 추궁했는데 이대영이 자신의 차가 근처에 있다고 하자 자동차로 이동했다. 이대영의 자동차 트렁크에서 여성 속옷 20여 점과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발견되자 경찰은 이대영을 성도착증에 걸린 속옷 절도범으로 보고 경찰서로 입건했는데 경찰서에서 그의 하드디스크를 확인하던 중 발견한 23명의 신분증에서 2차 사건 피해자 정모 씨의 신분증이 확인되면서 그를 추궁한 끝에 범행을 자백받았고 이후 1차 사건도 자백하여 살인죄로 긴급체포되었다.
1973년 9월 29일 재혼 부부의 6남매 중 하나로 태어난 이대영은 가난한 단칸방에서 어려운 삶을 살았다고 하며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남자에게 아차산 약수터에서 성추행을 당했고 사춘기 때부터 포르노에 빠져들었으며 소아성애, 스너프 필름 등 성도착적인 포르노 CD를 모으는 데 탐닉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사망하며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다가 1995년 2월 군대를 제대한 뒤 평소에는 인쇄소에서 일하고 쉬는 날에는 여성들의 속옷을 훔치거나 바바리맨 행각을 벌였다.
1998년 강도, 2002년 여성 속옷 절도, 2006년 성기 노출죄로 체포되어 전과가 있기는 했으나 살인까지 저지른 범죄자라고는 상상을 못할 만큼 그는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해 왔는데 이웃 주민들은 그를 평범한 이웃 정도로 알았다고 하며 2004년부터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자친구 조 씨는 그가 검거되자 그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경찰은 그를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이코패스로 분석했다.
1998년 강도, 2002년 여성 속옷 절도, 2006년 성기 노출죄로 체포되어 전과가 있기는 했으나 살인까지 저지른 범죄자라고는 상상을 못할 만큼 그는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해 왔는데 이웃 주민들은 그를 평범한 이웃 정도로 알았다고 하며 2004년부터 사실혼 관계에 있던 여자친구 조 씨는 그가 검거되자 그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며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경찰은 그를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이코패스로 분석했다.
[1] 그의 주장에 의하면 피해자가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해서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살해했다는데 어디까지나 가해자의 주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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