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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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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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건의 배경은 1991년 10월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박진수가 이끄는 목포파의 조직원들이 영산파[2]의 조직원인 최창호를 살해한 '팔레스호텔 살인사건'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18명이 맞붙어 1명이 흉기에 찔려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에 영산파 측에서는 우호 조직인 그랜드파 두목의 차량을 빌리는 등 보복 준비를 치밀하게 진행했다.
12월 4일 영산파는 박진수 두목을 주 표적으로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그가 소속된 목포파는 조직원의 결혼식 때문에 뉴월드 호텔에 모인 상태여서 회칼과 몽둥이를 휴대하고 호텔 밖에 잠복했다.
이후 하객으로 참석했던 목포파 조직원 박신이 조직원 몇 명과 함께 호텔을 나오는 순간 박신을 박진수로 오인한 영산파 조직원들이 일행을 습격해 박신과 다른 목포파 조직원 유재수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김훈석과 신원미상의 조직원 1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신원미상의 조직원은 자신의 신변 노출을 꺼려 응급실에서 몰래 빠져나갔다고 한다.
이에 영산파 측에서는 우호 조직인 그랜드파 두목의 차량을 빌리는 등 보복 준비를 치밀하게 진행했다.
12월 4일 영산파는 박진수 두목을 주 표적으로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그가 소속된 목포파는 조직원의 결혼식 때문에 뉴월드 호텔에 모인 상태여서 회칼과 몽둥이를 휴대하고 호텔 밖에 잠복했다.
이후 하객으로 참석했던 목포파 조직원 박신이 조직원 몇 명과 함께 호텔을 나오는 순간 박신을 박진수로 오인한 영산파 조직원들이 일행을 습격해 박신과 다른 목포파 조직원 유재수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김훈석과 신원미상의 조직원 1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신원미상의 조직원은 자신의 신변 노출을 꺼려 응급실에서 몰래 빠져나갔다고 한다.
경찰은 이 사건을 지휘한 영산파 두목인 이하영과 범행에 이용된 포텐샤 차량을 제공한 그랜드파 두목 김 모씨를 지명수배했다. 10일 후 사건에 가담한 조직원 3명이 검거되었고 이후 다른 3명의 조직원이 자수했다. 조직원들을 숨겨준 윤정섭도 범인 은닉죄로 구속되었다. 다음날 이하영이 검거되고 다른 관련자들 일부가 검거되면서 일단락됐다.
이후 다른 영산파 조직원인 이성식과 조진표마저 구속되면서 관련자 전원이 검거되었다.
2023년에 28년 동안 도피행각을 벌인 공범 서씨를 체포했다. 서씨는 사건 발생 직후 중국으로 밀항했고 2022년 3월 중국 공안에 자수하여 한국으로 압송된 뒤 해경에서의 조사에서 공소시효가 완성된 후인 2016년에 밀항을 했다고 주장하여 결국 불법 밀항 혐의만 적용돼 불구속 상태로 입국해 검찰로 넘겨지고 나서 전남의 한 지역에서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 왔지만 해경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에서 서씨의 밀항 시기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는데 서씨와 관련자들의 계좌 정보는 물론 공범들의 14년 치 교도소 접견 녹취록 등을 분석해 2005~2007년 중국에서 서씨를 봤다는 다수의 목격자 진술과 공범들의 교도소 접견 발언 등을 증거로 확보해 서씨를 조사한 결과 2003년에 밀항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3] 7월 26일 밀항단속법위반죄도 추가 기소됐으며 정동섭은 공개수배되었다.
8월 14일 경찰에 따르면 수배범 정동섭이 8월 11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 관악구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현장에서 정동섭의 자필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사인은 자살로 추정되며 그의 사망으로 인해 관련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될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다른 영산파 조직원인 이성식과 조진표마저 구속되면서 관련자 전원이 검거되었다.
2023년에 28년 동안 도피행각을 벌인 공범 서씨를 체포했다. 서씨는 사건 발생 직후 중국으로 밀항했고 2022년 3월 중국 공안에 자수하여 한국으로 압송된 뒤 해경에서의 조사에서 공소시효가 완성된 후인 2016년에 밀항을 했다고 주장하여 결국 불법 밀항 혐의만 적용돼 불구속 상태로 입국해 검찰로 넘겨지고 나서 전남의 한 지역에서 일반인들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 왔지만 해경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검에서 서씨의 밀항 시기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는데 서씨와 관련자들의 계좌 정보는 물론 공범들의 14년 치 교도소 접견 녹취록 등을 분석해 2005~2007년 중국에서 서씨를 봤다는 다수의 목격자 진술과 공범들의 교도소 접견 발언 등을 증거로 확보해 서씨를 조사한 결과 2003년에 밀항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3] 7월 26일 밀항단속법위반죄도 추가 기소됐으며 정동섭은 공개수배되었다.
8월 14일 경찰에 따르면 수배범 정동섭이 8월 11일 오후 4시 30분경 서울 관악구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현장에서 정동섭의 자필 메모가 발견된 것으로 미뤄 사인은 자살로 추정되며 그의 사망으로 인해 관련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조직폭력배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그것도 대낮에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회칼과 몽둥이를 들고 떼로 몰려가서 살인쇼를 했으니 전국적으로 충공깽을 선사했으며 정부 및 사법당국에서도 조직범죄에 대해 강경한 태세를 취했다. 이 시기에 폭력배가 구의원을 해먹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여론이 더욱 악화되어 조직폭력배들은 설 곳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후 간헐적으로 폭력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일제단속 등으로 큰 타격을 입어 재기불능의 상태에 몰렸고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거대조직의 형태를 취한 조직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사업모델을 바꿔 근근히 세를 유지하는 조직이 있긴 해도 과거에 비해 세가 약해진 건 사실이다.
이후 간헐적으로 폭력조직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일제단속 등으로 큰 타격을 입어 재기불능의 상태에 몰렸고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거대조직의 형태를 취한 조직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다. 물론 이 와중에도 사업모델을 바꿔 근근히 세를 유지하는 조직이 있긴 해도 과거에 비해 세가 약해진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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