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환(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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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4월 5일 경상북도 영주군에서 태어났다. 안동고등학교(8회),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ROTC(1기)과정을 이수하여 대한민국 육군 장교로 복무하였다. 고려대학교 학군단 교관으로 소위 시절을 보내며 단기복무를 할 생각이였지만 군인의길을 택하여 1967년, 월남전에 참전하여 한국대사관을 경비하는 비둘기 건설지원단 경비소대장을 임했다.[3]
그 후 야전에서 중대장, 참모과정을 거치고 육군 중령 시절 제1보병사단 대대장을 수행했다.[4] 1계급 진급하여 제15보병사단에서 50연대장임무를 수행했다. 연대장을 마무리하고 학군단 1기생 최초로 준장으로 진급하여 그사이에 대통령이 된 전두환을 보좌하는 국방담당 비서관을 역임했다. 그는 소위 말하는 1-1 인맥에 해당하는 셈이다.
소장시절에는 제12보병사단 사단장, 중장시절에는 제8군단 군단장, 육군교육사령부 사령관, 그후 대장으로 진급하여[5] 제2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하고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제15대, 16대 국회의원(신한국당-한나라당. 전국구)을 역임하였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사무총장인 윤영탁 대신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9년에는 제33대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을 역임하였다. 관련기사
2021년 3월 17일에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그 후 야전에서 중대장, 참모과정을 거치고 육군 중령 시절 제1보병사단 대대장을 수행했다.[4] 1계급 진급하여 제15보병사단에서 50연대장임무를 수행했다. 연대장을 마무리하고 학군단 1기생 최초로 준장으로 진급하여 그사이에 대통령이 된 전두환을 보좌하는 국방담당 비서관을 역임했다. 그는 소위 말하는 1-1 인맥에 해당하는 셈이다.
소장시절에는 제12보병사단 사단장, 중장시절에는 제8군단 군단장, 육군교육사령부 사령관, 그후 대장으로 진급하여[5] 제2야전군사령관을 역임하고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이후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제15대, 16대 국회의원(신한국당-한나라당. 전국구)을 역임하였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사무총장인 윤영탁 대신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9년에는 제33대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을 역임하였다. 관련기사
2021년 3월 17일에 향년 81세로 별세했다.
- 박세직과는 이름과 경력이 비슷해 형제로 오인받기도 했다.
- 생전 키가 매우 컸다고 전해진다. 180이 훨씬 넘는 거구였다.
- 하나회는 아니지만 전두환과 밀접한 관계였던 인물이다. 이른바 1-1 인맥. 하지만 하나회가 아니었기에 문민정부에서 중용될 수 있었다.
- 구독자 제보를 받아 군대썰을 푸는 유튜버 효자손을 통해 박세환 장군의 일화가 하나 나온 것이 있다.
친척 어르신이 퇴역하신 ROTC 출신의 4성장군이었고, 제보자가 훈련 당시 일과성 흑암시로 수십초간 눈이 안 보이는 상황인데, 훈련소 상사와 조교들이 뺑끼친다고 쌍욕을 했고, 다른 훈련병들이 따졌지만 무시하고 자대로 보냈을때, 기어이 쓰러진 제보자가 연대장[6]의 배려로 휴가를 받아 대형병원에서 병명을 진단받고, 훈련소 신교대 시절부터 있는 증상을 무시했다고 하자 분노한 제보자의 아버지가 당숙[7]인 박 장군에게 말하자 박 장군은 그 당시 ROTC 출신의 후배 포스타인 조 장군[8]에게 말하고 바로 신교대를 뒤집어 엎어 버렸다고 하며, 그 결과 중대장은 징계 후 장기복무 취소 및 강제 전역, 교관은 상사 진급 취소, 조교는 만창을 갔다고 한다. 부를 땐 국가의 아들, 다치면 니네 아들을 시전한 군부대를 전직 포스타가 친히 조져버린 것...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96 | 6,783,730 (34.52%) | 당선 (9번) | 초선 | |||
2000 | 7,365,359 (39%) | 당선 (8번) | 재선 |
역대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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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사 학위 논문 : 리이더쉽과 精神戰力에 對한 硏究 : R. Blake와 J. Mouton의 管理模型의 檢證을 겸하여[2] 박사 학위 논문 : 高位 리더의 轉職 後 成功要因에 관한 硏究 : 轉後 軍將星[3] 경비소대장 시절 베트콩들이 대사관을 공격했지만 잘 방어하여 승리를 가져갔고 채명신 주월사령관에게 화랑무공훈장을 받게되었다.[4] 당시 직속상관이던 사단장은 바로 전두환 소장이었다. 덕분에 제5공화국이 출범하고 정권에서 비하나회 - ROTC 선두권으로 집중 관리받았으며 5공 당시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국방비서관으로 근무하였다. 1984년에 육사 19기 준장 1차 진급자들과 같이 진급했는데, 재미있게도 전두환의 후계자를 자임하다 숙청당한 12기 선두주자 박세직 전 수방사령관과 이름이 유사하여 군내에서 박세직의 동생으로 알려졌었다.[5] 사실 박세환 장군이 12사단장 시절에 직접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러 백담사에 다녀오는 등의 행동을 했음에도 진급할 수 있던 것은 하나회 숙청 때문이었다. 그는 학군 출신이었기 때문에 전두환과 끈끈한 관계를 맺었을지언정 하나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6] 육사 출신으로 추후 3성 장군까지 진급한 후 전역했다.[7] 제보자의 할아버지의 친사촌동생으로 추정된다.[8] 제보자는 조 장군이라고만 했지만, 2009년 일화라고 하니 조재토 前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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