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우(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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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대한민국 제11·14-16대 국회의원 김찬우 金燦于 | Kim Chan-wu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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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망 | |
본관 | |
호 | 우범(又凡) |
학력 | |
병역 | |
종교 | |
의원 선수 | 4 |
의원 대수 | |
경력 | 영덕제일병원 원장 제11대 국회의원 영덕제일병원 이사장 제14-16대 국회의원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
1933년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고등학교,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의사로 활동하였으며 고향 영덕군에 영덕제일병원을 설립하고 원장을 역임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영덕군-청송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김중권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 민주한국당 인권옹호상담실장에 임명되었다. 1984년 말 홍사덕, 김현규, 서석재, 허경만, 박관용, 손정혁, 최수환 등과 민주한국당 탈당 선언을 하고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정의당 김중권 후보와 민주한국당 황병우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덕군-청송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정의당 황병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이에 따라갔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황병우에게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밀리자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통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 해 말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다. 이후로도 민주자유당 내 민주계로 활동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덕군-청송군-영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공천 대가로 박종갑 전 청송군수, 황호일 전 청송부군수, 조동호 전 영양부군수로 각각 3억, 1억, 2억씩 받아 2005년 징역 1년에 추징금 3억이라는 실형이 선고되었으며, 부인도 같이 뇌물을 받아 5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2006년 8월 18일 밤 11시50분께 자신이 설립한 영덕제일병원에서 지병인 위암으로 인하여 향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지는 영덕군 달산면 매일리 선산이고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2명이 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울진군-영덕군-청송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김중권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3년 민주한국당 인권옹호상담실장에 임명되었다. 1984년 말 홍사덕, 김현규, 서석재, 허경만, 박관용, 손정혁, 최수환 등과 민주한국당 탈당 선언을 하고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다. 그러나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민주정의당 김중권 후보와 민주한국당 황병우 후보에 밀려 3위로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덕군-청송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민주정의당 황병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이에 따라갔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황병우에게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밀리자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통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 해 말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다. 이후로도 민주자유당 내 민주계로 활동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덕군-청송군-영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공천 대가로 박종갑 전 청송군수, 황호일 전 청송부군수, 조동호 전 영양부군수로 각각 3억, 1억, 2억씩 받아 2005년 징역 1년에 추징금 3억이라는 실형이 선고되었으며, 부인도 같이 뇌물을 받아 5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되었다.
2006년 8월 18일 밤 11시50분께 자신이 설립한 영덕제일병원에서 지병인 위암으로 인하여 향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지는 영덕군 달산면 매일리 선산이고 유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2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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