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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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대한민국 제14·15·18대 국회의원 조진형 趙鎭衡 | Cho Jin-hyu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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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본관 | |
배우자 | 유명숙 |
자녀 | 1남 2녀 |
사위 | |
학력 | |
종교 | |
소속 정당 | |
의원 선수 | 3 |
의원 대수 | |
경력 | 덕원농산 대표 선미예식장 대표 씨름협회 회장 양돈협회 부회장 인천교육위원회 장학위원회 위원 민주정의당 인천북갑지구당 위원장 도시사회정책연구소 이사장 인천테니스협회 회장 민주자유당 원내부총무 14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간사 15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신한국당 재해대책위원장 한나라당 재해대책위원장 한나라당 인천시지부 위원장 한나라당 당무위원 한나라당 인천부평갑지구당 위원장 한나라당 인천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 송도고등학교 총동문회 회장 학교법인송도학원 이사 재단법인 부평장학재단 이사장 한나라당 인천시당 위원장 18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재정위원회 위원장 세계도시물포럼 조직위원장 한나라당 재외국민협력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
1943년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집에서 태어나 중3 때 인천광역시 부평구로 이사했다. 송도고등학교 적을 뒀던 그는 이듬해 부친을 여의고 쌀 배달원 등을 하며 어린 나이에 생계를 이어나갔다. 쌀 배달원으로 돈을 모은 그는 아버지의 고향인 덕산면과 조부의 함자에서 한 글자를 따 '덕원상회'란 쌀가게를 열었다.
1973년부터 양돈업으로 돈을 모아 부평에서 진선미 예식장[4] 등을 경영했고 양돈업협회 부회장과 대한씨름협회 회장도 지냈다. 3,300 쌍의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부평구에서 손꼽히는 자산가 유지로서 성공을 거둔 후 정계에까지 진출하여, 제14대 총선에서 북구 갑(현 부평구 갑 선거구)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부평 관내에서 40억 정도 장학사업을 하는 등 사회사업도 했다.
1973년부터 양돈업으로 돈을 모아 부평에서 진선미 예식장[4] 등을 경영했고 양돈업협회 부회장과 대한씨름협회 회장도 지냈다. 3,300 쌍의 결혼을 성사시켰다고. 부평구에서 손꼽히는 자산가 유지로서 성공을 거둔 후 정계에까지 진출하여, 제14대 총선에서 북구 갑(현 부평구 갑 선거구)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부평 관내에서 40억 정도 장학사업을 하는 등 사회사업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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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인천직할시 북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정정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경선에서 정정훈에게 밀리자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민주자유당에 복당하였다. 1995년 대한민국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간사를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인천광역시 부평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신한국당 재해대책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박상규 후보에 밀려 패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상규가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지구당위원장직을 두고 갈등이 있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박상규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문병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로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통합민주당 문병호 후보에게 설욕하였다. 같은 해부터 2010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하였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4위로 낙선하였다. 총선이 끝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2010년 4월 19일자 주간조선 기사에 따르면 그의 재산 상황은 이랬다. 2009년 한 해에만 52억 7,000만원이 늘어나 국회의원 재산증가 순위 2위였다. 당시 총재산이 886억원에 달했다고. 조 의원은 “공채 평가액 상승과 펀드 환매 등으로 늘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채권 투자를 집중적으로 했는데, 토지개발 공사채 1,368만좌(채권단위)와 706만좌를 비롯해 인천도시개발공사가 발행한 영종도 보상채권 1,531만좌를 보유하고 있었다. 평가 금액이 389억 7,100만원에서 21억 4,000만원가량 증가해 2010년 당시 411억여원에 달했다. 이 밖에 국민은행과 우리투자증권 금융채도 130억원에 달했다고. 채권만 540억원이었다.
상장주식은 현대중공업 1만 500주로 평가금액으로는 18억원이었다. 비상장 주식으로 인천일보 4,167주를 비롯해 셀트리온(19만 8,857주), 대한개발공사(1만 8,000주)도 보유하고 있었다.
1973년부터 양돈업, 예식장 등을 경영하며 부를 쌓았다. 영종도 땅을 500억대 투기를 하여 언론에 도보되었다. 대한씨름협회장과 양돈협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GM대우 공장이 지역구에 있다보니 2010년 당시 최고급 세단 GM대우 스테이츠맨(배기량 3,600㏄)을 타고 다녔다고.
17대 국회에선 재산신고를 356억원으로 했는데, 18대 국회 때는 819억원이라고 했다. 4년만에 재산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5]
1973년부터 양돈업, 예식장 등을 경영하며 부를 쌓았다. 영종도 땅을 500억대 투기를 하여 언론에 도보되었다. 대한씨름협회장과 양돈협회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GM대우 공장이 지역구에 있다보니 2010년 당시 최고급 세단 GM대우 스테이츠맨(배기량 3,600㏄)을 타고 다녔다고.
17대 국회에선 재산신고를 356억원으로 했는데, 18대 국회 때는 819억원이라고 했다. 4년만에 재산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5]
-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4일 후인 1997년 8월 10일에 이해구, 박세환을 비롯한 당시 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함께 사고기 잔해 앞에서 기념촬영을 해서 파문이 일기도 하였다. 당시 제1야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신기하 의원도 해외 연수 일정으로 부인 김정숙 및 24명의 당원들과 함께 괌으로 떠났다가 이 사고에 휘말려 사망했는데 이런 일을 벌인 것. 이후 신기하 의원의 어머니 이묘현[6] 씨도 충격을 받아 식음을 전폐하다가 사고 49일만에 뒤따라 세상을 떠났다.
- 영종도 땅투기 의혹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시가 500억대로 추정된다. 5만평의 땅을 매립하여 수익을 얻은 것이다.#
- 정순신의 장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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