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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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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 본기(本紀) ]
1·2·3권 「태조기(太祖紀)」
4·5권 「태종기(太宗紀)」
6·7·8권 「진종기(眞宗紀)」
9·10·11·12권 「인종기(仁宗紀)」
13권 「영종기(英宗紀)」
14·15·16권 「신종기(神宗紀)」
17·18권 「철종기(哲宗紀)」
19·20·21·22권 「휘종기(徽宗紀)」
23권 「흠종기(欽宗紀)」
24·25·26·27·28·29·30·31·32권 「고종기(高宗紀)」
33·34·35권 「효종기(孝宗紀)」
36권 「광종기(光宗紀)」
37·38·39·40권 「영종기(寧宗紀)」
41·42·43·44·45권 「이종기(理宗紀)」
46권 「도종기(度宗紀)」
47권 「영국공기(瀛國公紀)」

※ 48권 ~ 209권은 志에 해당. 210권 ~ 241권은 表에 해당. 송사 문서 참고
[ 열전(列傳) ]
242·243권 「후비전(后妃傳)」
244·245·246·247권 「종실전(宗室傳)」
248권 「공주전(公主傳)」
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255권 「곽숭등전(郭崇等傳)」
256권 「조보전(趙普傳)」
257권 「오정조등전(吳廷祚等傳)」
258권 「조빈등전(曹彬等傳)」
259권 「장미등전(張美等傳)」
260권 「조한등전(曹翰等傳)」
261권 「이경등전(李瓊等傳)」
262권 「이곡등전(李穀等傳)」
263권 「장소등전(張昭等傳)」
264권 「설거정등전(薛居正等傳)」
265권 「이방등전(李昉等傳)」
266권 「전약수등전(錢若水等傳)」
267권 「장굉등전(張宏等傳)」
268권 「시우석등전(柴禹錫等傳)」
269권 「도곡등전(陶穀等傳)」
270권 「안간등전(顏衎等傳)」
271권 「마영종등전(馬令琮等傳)」
272권 「양업등전(楊業等傳)」
273권 「이진경등전(李進卿等傳)」
274권 「왕찬등전(王贊等傳)」
275권 「유복등전(劉福等傳)」
276권 「유보훈등전(劉保勳等傳)」
277권 「장감등전(張鑒等傳)」
278권 「마전의등전(馬全義等傳)」
279권 「왕계충등전(王繼忠等傳)」
280권 「전소빈등전(田紹斌等傳)」
281권 「여단등전(呂端等傳)」
282권 「이항등전(李沆等傳)」
283권 「왕흠약등전(王欽若等傳)」
284권 「진요좌등전(陳堯佐等傳)」
285권 「진집중등전(陳執中等傳)」
286권 「노종도등전(魯宗道等傳)」
287권 「양려등전(楊礪等傳)」
288권 「임중정등전(任中正等傳)」
289권 「고경등전(髙瓊等傳)」
290권 「조이용등전(曹利用等傳)」
291권 「오육등전(吳育等傳)」
292권 「이자등전(李諮等傳)」
293권 「전석등전(田錫等傳)」
294권 「장우석등전(掌禹錫等傳)」
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296권 「한비등전(韓丕等傳)」
297권 「공도보등전(孔道輔等傳)」
298권 「팽승등전(彭乘等傳)」
299권 「적비등전(狄棐等傳)」
300권 「양해등전(楊偕等傳)」
301권 「변숙등전(邊肅等傳)」
302권 「왕진등전(王臻等傳)」
303권 「장온지등전(張昷之等傳)」
304권 「주위등전(周渭等傳)」
305권 「양억등전(楊億等傳)」
306권 「사필등전(謝泌等傳)」
307권 「교유악등전(喬維岳等傳)」
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426권 「순리전(循吏傳)」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446·447·448·449·450·451·452·453·454·455권 「충의전(忠義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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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6권 「효우전(孝友傳)」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460권 「열녀전(列女傳)」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470권 「영행전(佞幸傳)」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韓侂胄
한탁주
南宋 平原郡王 韓侂胄
작위
평원군왕(平原郡王)
이름
한탁주(韓侂胄)
절부(節夫)[1]
최종직위
평장군국중사(平章軍國重事)
증조부
한기(韓琦)
조부
한가언(韓嘉彦)
부친
한성(韓誠)
양아들
한공(韓㣉)
생몰
1152년 ~ 1207년(향년 55세)
남송(南宋)

1. 소개2. 생애
2.1. 광종의 강제퇴위와 경원의 당금2.2. 개희북벌2.3. 몰락과 최후
3. 가족관계

1. 소개[편집]

韓侂胄
(1152~1207)

남송의 외척이자 남송 영종대의 권신이자 재상이었다. 북송의 명신인 한기의 증손자이며 송고종의 황후인 헌성자열황후 오씨의 조카, 영종의 황후인 공숙황후(恭淑皇后) 한씨의 종조부이자 동지추밀원사에 있었던 아버지 한성의 아들이다. 자는 절부(節夫). 작위는 평원군왕(平原郡王). 한탁주는 남송의 대유학자 주자를 핍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 생애[편집]

2.1. 광종의 강제퇴위와 경원의 당금[편집]

한탁주는 본래 하남 안양[2] 사람으로 1152년 태어났으며 증조부는 북송의 명신 한기이며 어머니는 남송 고종의 황후였던 헌성자열황후 오씨의 여동생이었고 아버지 한성은 조정에서 동지추밀원사를 맡은 대신이였다. 따라서 일찍부터 황실의 외척이었고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한탁주는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

효종이 1189년 퇴위하여 상황이 되고, 황태자 조돈이 40살을 넘겨서 즉위하여 광종이 되었다. 광종은 아버지와는 다르게 의심이 많고 우둔하였기에 황후 이씨(이봉랑)의 말밖에는 듣지 않았다. 광종은 즉위한 지 2년이 지날 무렵 정신병을 앓게 되었으며 이후 이봉랑의 이간질에 아버지 효종과 사이가 멀어졌는데 태자 건저 문제를 놓고 효종을 의심하면서 아버지의 문안 인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그 사이가 더욱 벌어졌다. 그러다가 아들을 그리워하던 효종이 병을 얻어 눕게 되고, 아버지가 사망했을때에도 광종은 황후에게 휘둘려서 패륜에 가까운 행동들을 했다. 이렇게 광종이 더이상 정상적인 업무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정상적인 행동들을 하자 조정 안팎의 신망을 잃고 말았다. 이에 재상 조여우(趙汝愚)와 한탁주 등이 주도하여 광종은 강제퇴위당했다.

한탁주는 태황태후인 이모 헌성자열황후가 광종의 강제퇴위에 명분을 실어 줬고, 자신이 이모를 설득하고 이를 주도했기에 자신의 공적이 크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한탁주는 영종이 즉위한 뒤에 자신이 권력의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한탁주의 인격을 좋아하지 않은 조여우 등은 한탁주을 멀리했다.

이것에 원한을 품은 한탁주는 조여우와 그를 따르던 주희 등 대신들을 몰아내기 위한 운동을 시작해 1195년 대간들을 이용하여 조여우를 재상직에서 물러나게 만들고, 경원 3년에는 조여우편에 섰던 주필대, 유정, 왕난, 주희(朱熹), 팽귀년 등 59명이 금고에 처해졌다. 그 다음 해에는 주희의 주자학도 거짓 학문이라고 탄압받았는데 한탁주와 그 당파들이 주도한 일련의 사건을 경원의 당금이라 불렀다. 경원의 당금에 대해 조정 내외에서는 한탁주에 대해 엄청난 반발이 일어나자 이들을 달래주기 위해 경원의 당금에 연루되었던 이들을 일부 복원시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내외의 반발은 여전했다. 결국 경원의 당금은 한탁주의 인생에 있어서 첫번째 패착이었다.
한탁주는 그 후 권신으로서의 권력을 계속 유지했다. 그는 자신의 집안에 원림이라고 부르는 정원을 만들고 첩 10명에게 구슬이 달린 모자를 선물을 내리는 등 화려한 생활을 하였다.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온갖 아부를 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토산물과 금은보화 등이 뇌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뒤를 보호해 주던 황후와 태황태후가 차례로 붕어하자, 권력이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다. 이때 금나라가 북쪽의 타타르 등의 침입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금나라는 약체화되었다고 본 한탁주는 남송의 비원인 금나라 타도를 성공시킨다면 권력을 확고부동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는 영종과 조정대신들에게 금나라를 칠 것을 주장했지만 원래부터 금나라에게 복수를 하자고 주장해온 신기질과 같은 강경파 조정 대신들조차 반대[3]했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계획이었다.

영종이 북벌 조서를 내리고 북벌을 위한 남송 군대는 서로군, 중로군, 동로군으로 나눈 뒤 세 갈래로 진격하였다.(개희의 용병, 1206년.) 하지만 각 군의 최고사령관인 통수에는 개인적인 역량이 의심되는 인사들이 배치되었다. 서로군은 정송[5], 동로군은 곽예[6]로 삼았기 때문에 출발때부터 삐걱거렸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동로군을 지휘하던 장수 중 용장 필재우가 스스로 자신의 성인 '필(畢)'자가 적힌 깃발을 높이 들고 싸워 사주(泗州)일대의 두 성을 함락시켰다.[7] 아울러 동로군의 전준이 필재우와 함께 자신들이 이끌던 민병들과 함께 용맹스럽게 전진하여 7일만에 숙주성 아래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재우, 전준의 활약 이외에는 큰 진전도 없었고 서로군, 중로군은 연패를 거듭하고 있던 상황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필재우와 전준이 이끌던 민병들이 공을 세울 것을 시기한 송군 후속 부대가 숙주성을 공격하려고 사다리를 타고 공격하는 민병들에게 마구 화살을 쏴서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4개월 후, 갑작스러운 남송의 공격에 방어를 하던 금나라가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태화정벌) 금군은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공격을 펼쳐 양회 일대를 빠르게 점령하고 장강 북안까지 진격했다. 이런 상황에서 늘 스스로를 제갈량이라고 하며 과시한 동로군 총사령관 곽예는 장남 이남으로 도망갔으며, 서로군 총사령관 정송 역시 삼협까지 도망쳤다. 더해서 서로군 대장 오희는 북벌군을 배신하고 금나라와 내통하여 촉왕을 참칭였다. 말 그대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처럼 한탁주의 주도로 이뤄진 북벌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실제 금나라는 외부적으로 곤란한 상황이었으나, 그 이상으로 남송군의 약체화가 현저했고 제대로 준비조차 되지 않은 무리한 전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도저히 답이 없게 된 남송 조정은 1207년 금나라와 조기 화평을 희망하고, 협상을 하였는데 이때 금나라는 점령한 양회지역 할양, 거액의 전쟁배상금 지불, 세폐, 포로교환과 함께 전쟁의 주동자인 한탁주의 수급을 요구하였다.

2.3. 몰락과 최후[편집]

14년간 권신으로 조정을 뒤흔들던 한탁주가 자신의 위세를 공고히 하고자 무리하게 추진한 개희북벌은 완전하게 실패로 끝이 났다, 그리고 이 실패는 한탁주 제거를 생각하던 이들에겐 기회가 됐다. 과거부터 한탁주의 전횡을 끝내야 된다고 생각하던 영종의 황후 양씨는 황자들의 스승인 예부시랑 사미원에게 한탁주와 그를 따르며 조정을 농락하던 세력을 제거할 명분을 주고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여론의 비난에도 한탁주와 그 세력의 힘이 여전히 강해 머뭇거리던 사미원에게 장자가 “죽이면 그만입니다”라고 단호하게 정변의 빠른 추진을 주장하여 사미원은 한탁주 제거를 결행하였다.

1207년 11월 한탁주는 애첩 중 한명인 만두화의 생일 주연을 열고 늦게까지 자신의 무리들과 술을 마시고 즐겼다. 이때 그의 측근 중 한명인 주균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을 파악하고 그에게 지금 도성 안에서 군사들이 움직인다는 풍문이 도니, 내일 아침 조회에는 나가지 마시라 하고 급히 편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한탁주는 이 편지를 읽고도 무시했다. 이 무렵, 영종 역시 한탁주 제거를 묵인하면서 사실상 승인하였기에 사미원의 주도로 한탁주 제거 계획은 착실히 진행되었다. 하진이 금군 300명을 이끌고 육부교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수레 하나가 지나가자 하진은 그 수레가 한탁주의 것임을 알아차리고 이를 멈추게 했다. 곧이어 군사들을 시켜 한탁주를 수레 밖으로 끌어낸 직후 곧바로 사미원이 검을 들고 뒤에서 무장들이 그를 바쳐주고 사미원은 그 자리에서 검으로 참살 하였다. 죽은 한탁주의 머리는 베어진 뒤, 소금에 절여졌고 그 머리를 금나라로 보내지는 것으로 금나라와 화의을 맺었다. 한편 한탁주를 살해한 사미원은 권력을 장악하고 그 후 26년 동안 재상의 지위를 차지했다.

3. 가족관계[편집]

한탁주는 헌성자열황후의 조카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없었다. 한탁주는 노의(魯𡬐)의 아들을 데려다가 자신의 양자로 삼고 한공(韓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한공은 1207년에 양아버지인 한탁주가 주벌된 뒤에 제명되어 사문도(沙門島)로 유배되었다.

[1] 마디 절, 사대 부라는 한자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2] 지금의 허난성 안양시[3] 북벌을 하자던 한탁주의 주장에 원래부터 북벌론자였고 금나라를 피해[4] 산동반도에서 남송으로 도망쳐왔던 신기질마저도 지금 국력으로는 무리라면서 반대하고, 북벌을 하려면 20년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탁주는 이런 현실적인 조언조차 깡그리 무시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북벌을 밀어붙였다.[4] 1161년 해릉양왕이 남하할 때 산동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이후 남송 조정의 부름을 받아 출사했다.[5] 한탁주의 애첩과 이름에 같은 한자가 있다고 하여 한탁주에 의해 서로군을 지휘하게 되었다.[6] 곽예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자기 스스로를 늘 촉한명재상 제갈량에 비유했던 인물이었다.[7] 이때 한탁주는 이 소식을 듣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자랑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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