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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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호족 진천 임씨의 시조 고려 혜종의 장인 임희 | 林曦 | |
항직 품계 | 대광(大匡) |
후고구려 직위 | 파진찬(波珍餐) |
본관 | |
이름 | 희(曦) |
딸 | |
생몰연도 | ? ~ ? |
후삼국시대 꽤 세력을 떨친 인물로 보인다. 궁예의 태봉 시기에 파진찬(波珍餐) 관등을 지냈으며 태조 신성대왕이 고려를 건국하고 철원성에서 즉위 한 후, 대대적으로 관료를 임명할 때 제1대 병부령(兵部令), 즉 고려의 초대 국방부장관에 봉해지는 등 요직을 지냈다. 태조 본인이 군부 쿠데타로 고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등극했다는 걸 고려해 볼 때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최측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오르고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다.
태조는 세력이 미약한 정윤 혜종을 위해 군부의 수장인 임희의 딸과 혼인 관계를 맺도록 하였다. 그렇게 임희의 딸은 의화왕후가 되었다. 허나 임희의 세력은 정종, 광종의 황보 가문의 세력을 이기지 못해 혜종과 의화왕후의 결말이 영 좋지 못했다.
외손주로 흥화궁군(興化宮君), 경화궁부인, 정헌공주(貞憲公主)가 있다.
족보에는 벼슬이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오르고 고려 태조로부터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고, 충청도 일대를 통치하던 성주(城主) 출신으로 대모산성(大母山城)을 지었다고 하지만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엔 관련 기록이 일절 없다.
태조는 세력이 미약한 정윤 혜종을 위해 군부의 수장인 임희의 딸과 혼인 관계를 맺도록 하였다. 그렇게 임희의 딸은 의화왕후가 되었다. 허나 임희의 세력은 정종, 광종의 황보 가문의 세력을 이기지 못해 혜종과 의화왕후의 결말이 영 좋지 못했다.
외손주로 흥화궁군(興化宮君), 경화궁부인, 정헌공주(貞憲公主)가 있다.
족보에는 벼슬이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오르고 고려 태조로부터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상산백(象山伯)에 봉해졌고, 충청도 일대를 통치하던 성주(城主) 출신으로 대모산성(大母山城)을 지었다고 하지만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엔 관련 기록이 일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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