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천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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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여왕 시대에 류천궁은 송악의 왕륭, 평주의 박지윤, 황주의 황보제공, 유주의 류차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패서 지방의 호족이었다. 그가 거점으로 삼은 정주(貞州)는 지금의 평안북도 정주시가 아니라[2] 경기도 파주시 교하 혹은 개풍군으로 추정된다.
원래 북원(원주시)의 호족 양길의 객장이었던 궁예가 명주 등 강원도 영토를 기반으로 독립하자 송악의 왕륭이 궁예에 투항한다. 왕륭의 아들 왕건도 궁예의 장수가 되어 강화도 등 서해안을 점령하기 위해 출진했는데 류천궁은 왕건의 군대를 후하게 대접했고 딸에게 왕건과 잠자리를 가지게 한다.
왕건이 떠난 후 딸은 지조를 지키기 위해 비구니가 되었고 왕건이 이 사실을 듣고 그녀를 데려와 혼인하여 왕건의 제1비 신혜왕후가 된다.
류천궁은 해상 무역을 통해 얻은 선박 기술과 지식을 적극적으로 왕건에게 제공한다.
이후 정주항은 왕건이 수군 대장군이 되어 금성(나주시)을 정벌하기 위해 선박을 만들고 수군을 훈련하는 전초 기지가 된다. 고려 건국 이후 건국공신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르고 고려 초기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원래 북원(원주시)의 호족 양길의 객장이었던 궁예가 명주 등 강원도 영토를 기반으로 독립하자 송악의 왕륭이 궁예에 투항한다. 왕륭의 아들 왕건도 궁예의 장수가 되어 강화도 등 서해안을 점령하기 위해 출진했는데 류천궁은 왕건의 군대를 후하게 대접했고 딸에게 왕건과 잠자리를 가지게 한다.
왕건이 떠난 후 딸은 지조를 지키기 위해 비구니가 되었고 왕건이 이 사실을 듣고 그녀를 데려와 혼인하여 왕건의 제1비 신혜왕후가 된다.
류천궁은 해상 무역을 통해 얻은 선박 기술과 지식을 적극적으로 왕건에게 제공한다.
이후 정주항은 왕건이 수군 대장군이 되어 금성(나주시)을 정벌하기 위해 선박을 만들고 수군을 훈련하는 전초 기지가 된다. 고려 건국 이후 건국공신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오르고 고려 초기에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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