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엄
최근 수정 시각:
|
남한 초대 황제 유엄 | 劉龑 | |
출생 | |
즉위 | |
사망 | |
능묘 | 강릉(康陵) |
재위기간 | 후량의 남해왕(南海王) |
초대 황제 | |
초명은 유암(劉巖)이었다. 유엄은 889년 유지겸과 단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유지겸의 정처였던 위씨가 단씨를 죽이고 유암을 자신의 아들로 데려다 키웠다. 911년에 형인 유은이 죽자, 남해왕을 습봉하였다.
유암은 후량 정명 3년(917년)에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건형(乾亨)으로 정하고 국호를 대월(大越)로 했다가, 이듬해(918년)에 한(漢)으로 바꾸었다. 유암은 남한의 황제로 있는 동안 척(陟)이라는 휘를 사용하다가, 공(龔)이라는 이름으로 고쳤으며, 마지막에 엄(龑)이라는 이름으로 고쳤다.[1] 유엄은 이해가 빠르고 영리한 군주였으나, 재위기간 동안 가학한 것을 좋아하여 잔인한 형벌을 만들었고 사치를 좋아했다.
930년 베트남의 쿡씨 왕조를 습격해 그곳의 군주 쿡트아미를 생포했다.
942년에 사망한 뒤 고조 천황대제로 추존되었다.
유암은 후량 정명 3년(917년)에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건형(乾亨)으로 정하고 국호를 대월(大越)로 했다가, 이듬해(918년)에 한(漢)으로 바꾸었다. 유암은 남한의 황제로 있는 동안 척(陟)이라는 휘를 사용하다가, 공(龔)이라는 이름으로 고쳤으며, 마지막에 엄(龑)이라는 이름으로 고쳤다.[1] 유엄은 이해가 빠르고 영리한 군주였으나, 재위기간 동안 가학한 것을 좋아하여 잔인한 형벌을 만들었고 사치를 좋아했다.
930년 베트남의 쿡씨 왕조를 습격해 그곳의 군주 쿡트아미를 생포했다.
942년에 사망한 뒤 고조 천황대제로 추존되었다.
|
[1] 이름을 엄으로 바꿀 때의 일화가 있는데, 백룡이 남궁 삼청전에 나타나자 연호를 백룡으로 바꾸고 이름을 공(龔)으로 고쳤는데 한 호승이 참언에 유씨를 망하게 하는 것은 공(龔)이라고 말하자, 유공은 이에 주역의 비룡재천의 뜻을 채택하여 엄(龑)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