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오대십국시대)
최근 수정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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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漢 | ||
951년 ~ 979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별칭 | 북한(北漢), 동한(東漢) | |
정치 체제 | ||
국가원수 | ||
주요 군주 | ||
국성 | 유(劉) | |
언어 | ||
문자 | ||
종교 | ||
종족 | ||
통화 | 한원통보(漢元通寶) | |
현재 국가 |
![중국 남당](http://i.namu.wiki/i/8wmtrYkDxCSPNyWJBdF84V57wqvlYCgY6ITYcMW7mwmndwtfugWrCAgUzXPXRV7hfTcSNYcU-qYn1SnaN2Y6oKSmPeiLfZ-8bUCuUPE7BvyPJK2YQQtx696Zmw5VNT1a7VD6bLRzaBM5O4kG7CSUTw.webp)
951년경 오대십국 후반기의 형세
오대십국시대에 있었던 국가.
951년 곽위가 후한(後漢)을 멸하고 후주(後周)를 창건하자, 이에 반발하여 후한 고조 유지원(劉知遠)의 동생 유숭(劉崇)이 산서성(山西省) 일대를 근거지로 하여 세운 왕조이다. 세우자마자 후주와 붙었지만 크게 무너진 뒤 더 이상 중원을 공격하지 않고, 산서 일대만 굳게 수비했다. 이 때문에 자칭 황제라고 일컬었으나, 실상은 '태원(太原)'을 중심으로 한 산서성의 지방 정권에 불과했으며, 주연에서 유숭이 스스로 매우 한탄했다고 한다.
위치의 특성상 10국의 왕조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송 태종이 979년에 멸망시켰다. 원래 있던 산서성 지역의 특성상 영토가 작고 지형이 험하며 인구가 적어서 국력이 약한 데다가, 거란과 인접해서 그 전시기를 거쳐 거란에 크게 기댔다.
멸망할 때도 거란의 구원군이 출발했으나, 북송의 토벌군에 맞설 만한 군세를 만들기엔 시간상 역부족이라 북송의 토벌군은 거란의 방해를 거의 안 받고 북한을 없앴다.
곽위가 사망하자 잠시 공세에 나서기도 했지만 당시 후주의 무장이었던 조광윤의 활약으로 패퇴했다.
참고로 이 북한이란 표현은 중국의 수많은 한(漢)나라들과 구별하기 위함이지, 왕조가 북한은 아니다.[1] 당연히 당시엔 한나라로 불렀다. 따라서 역사물에서 북한이란 표현이 나온다면 재현 오류다.
951년 곽위가 후한(後漢)을 멸하고 후주(後周)를 창건하자, 이에 반발하여 후한 고조 유지원(劉知遠)의 동생 유숭(劉崇)이 산서성(山西省) 일대를 근거지로 하여 세운 왕조이다. 세우자마자 후주와 붙었지만 크게 무너진 뒤 더 이상 중원을 공격하지 않고, 산서 일대만 굳게 수비했다. 이 때문에 자칭 황제라고 일컬었으나, 실상은 '태원(太原)'을 중심으로 한 산서성의 지방 정권에 불과했으며, 주연에서 유숭이 스스로 매우 한탄했다고 한다.
위치의 특성상 10국의 왕조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송 태종이 979년에 멸망시켰다. 원래 있던 산서성 지역의 특성상 영토가 작고 지형이 험하며 인구가 적어서 국력이 약한 데다가, 거란과 인접해서 그 전시기를 거쳐 거란에 크게 기댔다.
멸망할 때도 거란의 구원군이 출발했으나, 북송의 토벌군에 맞설 만한 군세를 만들기엔 시간상 역부족이라 북송의 토벌군은 거란의 방해를 거의 안 받고 북한을 없앴다.
곽위가 사망하자 잠시 공세에 나서기도 했지만 당시 후주의 무장이었던 조광윤의 활약으로 패퇴했다.
참고로 이 북한이란 표현은 중국의 수많은 한(漢)나라들과 구별하기 위함이지, 왕조가 북한은 아니다.[1] 당연히 당시엔 한나라로 불렀다. 따라서 역사물에서 북한이란 표현이 나온다면 재현 오류다.
재위 954년 ~ 968년
유숭의 아들로 그럭저럭 정치를 잘한 인물이었지만, 요나라에 알리지 않고 연호를 고쳤던 것과 이균의 반란을 지원한 것 때문에 한때 요나라와의 관계가 나빠지기도 하였다. 유승균은 아들이 없어서, 유숭의 외손자 2명을 양자로 들였다.
유숭의 아들로 그럭저럭 정치를 잘한 인물이었지만, 요나라에 알리지 않고 연호를 고쳤던 것과 이균의 반란을 지원한 것 때문에 한때 요나라와의 관계가 나빠지기도 하였다. 유승균은 아들이 없어서, 유숭의 외손자 2명을 양자로 들였다.
재위 968년
유승균 사후 제위에 오르긴 하였지만, 유약하여 풍전등화의 국가를 다스리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인물이었고, 결국 재위하고 2개월도 안되어 살해되었다. 본래 설(薛)씨였다.
유승균 사후 제위에 오르긴 하였지만, 유약하여 풍전등화의 국가를 다스리기에는 능력이 부족한 인물이었고, 결국 재위하고 2개월도 안되어 살해되었다. 본래 설(薛)씨였다.
재위 968년 ~ 979년
북한의 마지막 황제로 유계은의 아버지 다른 형제이며 본래 하(何)씨이다. 유계은 사후 옹립되어 요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주력하였지만 잔인한 면모가 있었고 유승균의 형제들을 주륙하였다. 한때 요나라의 지원을 받아서 송나라를 물리치기도 하였지만, 결국 979년에 송태종 조광의에 의해 멸망하고 오대십국시대가 막을 내렸다. 유계원은 송나라에서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북한의 마지막 황제로 유계은의 아버지 다른 형제이며 본래 하(何)씨이다. 유계은 사후 옹립되어 요나라와의 관계 개선에 주력하였지만 잔인한 면모가 있었고 유승균의 형제들을 주륙하였다. 한때 요나라의 지원을 받아서 송나라를 물리치기도 하였지만, 결국 979년에 송태종 조광의에 의해 멸망하고 오대십국시대가 막을 내렸다. 유계원은 송나라에서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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