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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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은 영가의 난을 피해 태산(泰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그는 사람됨이 평온하고 욕심이 적어 마음이 깨끗하였으며, 영지버섯으로 단을 만들어 먹고, 복기(服氣)와 도양(導養)의 방식으로 체내의 기(氣)를 수련하였다. 장충은 산골짜기 깊은 곳까지 들어가 땅굴 속에서 살았는데, 그를 따르는 제자들 또한 스승과 마찬가지로 땅굴에서 살았다. 장충의 가르침에는 말이 필요없었기에, 제자들은 60보 밖에서 스승의 모습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받았다. 또, 동굴에 제단을 쌓아 매일 아침마다 제자들과 함께 순례하였으며, 식기와 가마솥 등은 돌을 쪼아 만들었다. 인근 거주민들은 장충의 무리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을 주려 했지만, 장충은 일절 받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였다.
전진의 선소제 부견이 장충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파견해 그를 초빙하였다. 이윽고 사신이 도착하자, 머리를 감고 있던 장충은 일어나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전진의 선소제 부견이 장충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파견해 그를 초빙하였다. 이윽고 사신이 도착하자, 머리를 감고 있던 장충은 일어나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지금의 주인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겠구나."
이후 목욕을 마저 마치고는 마차에 올라 전진의 수도인 장안으로 갔다. 부견이 사람을 보내 관복을 하사하자, 장충이 사양하며 말했다.
"나이가 많아 머리카락이 빠지는 바람에 관복을 입을 수 없으니, 청컨대 이 평민의 복장으로 알현하길 바랍니다."
이에 부견이 허락하였다.
마침내 장충을 만난 부견이 말했다.
마침내 장충을 만난 부견이 말했다.
"선생께서는 산림 속에서 고뇌하고, 도를 깊이 연마함으로써 홀로 자신만의 선함을 세우는 아름다움을 남겼으나, 관직에 올라 천하의 사람들을 평안히 하는 공을 이루지 못 하셨습니다. 고로 저는 선생을 제(齊)의 상보(尚父)로 삼고자 합니다."
장충이 답했다.
"일찍이 상란을 피해 태산으로 들어가 새와 짐승과 짝이 되었다가 오늘에서야 명령을 받들었습니다. 요순의 시대에 속해 성안(聖顏)을 받들 생각을 품었으나, 이제는 노쇠하여 상보를 감히 감당할 수 없을 듯 합니다. 산 속에 사는 것이 천성으로, 석굴에 정이 들었으니, 태산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러자 부견은 장충에게 안거(安車)를 내어주고 태산으로 돌려보냈다. 마차가 화산(華山)에 이르렀을 때, 장충이 한탄하였다.
"나는 동쪽 산의 도사이건만 서쪽 산에서 죽겠구나! 이 팔자를 어찌하랴!"
이후 50리 정도 더 갔을 때 사망하였다. 장충을 호송하던 사자는 근처의 역참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보고하였고, 부견은 황문랑 위화(韋華)를 파견해 장충의 제사는 태뢰(太牢)로 지내게 하였다. 또, 명복(命服)을 하사하였고, "안도선생(安道先生)"이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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