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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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학문에 충실하면서 지칠 줄 몰랐고 출가해서 사마목의 후사를 이었지만 실상은 여색을 좋아하고 경박하게 행동해 사마목에게 책망을 당해 후사가 될 수 없어 쫓겨나고 사마민의 후사를 계승했으며, 사람 사귀는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학습에만 전념해 여러 서적을 널리 읽으면서 저술에 힘썼다.
처음에는 기도위가 되었다가 태시 연간[1]에 비서랑이 되어 승으로 전임되었으며, 『장자』에 주석을 달고 구주춘추를 저술했으며, 사마표는 여러 서적을 토론하고 들은 바를 엮어 광무제부터 헌제까지 2백 년을 엮고 12대를 기록해서 위 아래를 관통하면서 종합하고 여러 일을 횡으로 지나면서 기, 지, 전 등 80편을 지으니 이를 속한서라 했다.[2]
태시 초에 사마염이 친히 남쪽 교외에서 제사를 지내자 사마표가 상소해서 의논하고 정했으며, 후에 산기시랑에 임명되었다가 혜제 말년에 사망하니 향년 60여세였다.
처음에는 기도위가 되었다가 태시 연간[1]에 비서랑이 되어 승으로 전임되었으며, 『장자』에 주석을 달고 구주춘추를 저술했으며, 사마표는 여러 서적을 토론하고 들은 바를 엮어 광무제부터 헌제까지 2백 년을 엮고 12대를 기록해서 위 아래를 관통하면서 종합하고 여러 일을 횡으로 지나면서 기, 지, 전 등 80편을 지으니 이를 속한서라 했다.[2]
태시 초에 사마염이 친히 남쪽 교외에서 제사를 지내자 사마표가 상소해서 의논하고 정했으며, 후에 산기시랑에 임명되었다가 혜제 말년에 사망하니 향년 60여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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