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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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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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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제23회
(1987년)
이보희
(어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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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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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이보희
(접시꽃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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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기 (1999)
29기 (2000)
30기 (2001)
31기 (2003)
†: 사망한 탤런트
※ 특채 탤런트는 제외
※ 나무위키 등재 인물만 기입

이보희
Lee Bohee
배우 이보희
본명
조영숙 (趙英淑[훈음], Jo Youngsook)
출생
국적
소속사
아이티이엠
자녀
슬하 1남
학력
명지중학교 (졸업)
한강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종교
데뷔
1979년 MBC 11기 공채 탤런트
링크
홈페이지 아이콘

1. 개요2. 상세3. 사생활4. 출연 작품
4.1. 영화4.2. 드라마4.3. 광고
5. 그 외 활동
5.1. 홍보대사5.2. 가족오락관
6. 수상 경력

1. 개요[편집]

2. 상세[편집]

수상한 삼형제 이보희
▲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컨셉 이미지
수상한 삼형제 때부터 이런 푼수 아줌마 이미지가 친숙하지만...
이보희 리즈시절
리즈 시절
젊은 시절 한 미모 했던 배우다. 이목구비가 중국 미녀배우 공리와 묘하게 닮았다.
이보희 어린시절
이보희의 어린 시절

1990년대 이후 그중 특히 40세 이후 주로 공주병 아줌마나 푼수데기 조연, 비밀을 가진 조연, 사극 조연으로 많이 활약했다. 전성기인 1980년대엔 원미경, 이미숙과 더불어 1980년대 3대 트로이카로 유명했으나, 2010년을 전후로 '멱살잡이를 즐기는 억척아줌마 배우로 유명'하며, '재밌는 배역명도 꽤 갖고 있다.'[3] 한국의 대표적 섹시스타로 유명해서 유명 에로영화였던 '무릎과 무릎 사이'라든지, '어우동'하면 바로 떠오르는 배우였다. 특히 다리가 예쁜 걸로 유명해서, 서양권 여배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다리라는 찬사를 받았다.[4]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던 이장호 감독의 작품에 고정출연하다시피 했다. 애초에 조진원이라는 예명으로 무명 시절을 보낸 중, 감독 이장호의 눈에 띄어 '일송정 푸른 솔에'(1983)의 조연으로 영화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사회고발적인 성격으로 화제작이 된 이장호의 '바보선언(1984)'에서 가짜 여대생 역으로 유명해졌다. 이보희라는 예명도 이장호 감독이 자신의 성을 따서 지어 준 것이다.

아무래도 몸매가 좋다보니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 '달빛 사냥꾼' 등 여러 영화에서 정사신을 많이 연기했다. 그러다보니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이보희가 엄지 역을 맡은 것에 말이 많았다. 청순한 이미지의 엄지와 어우동 같은 성인영화의 주인공인 이보희의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5] 그래도 접시꽃 당신에서는 현모양처의 주인공 역을 소화하기도 했다.

의외로 사극에 많이 출연하는 배우이다. '용의 눈물'에서도 태종 이방원이 미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새로들인 이후 원경왕후(최명길 역)와 갈등을 일으키는 후궁 선빈 안씨역을 맡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선 중종의 모후 정현왕후(자순대비)역을 맡기도 했었다. '서궁'에선 주인공 격인 인목대비 역, KBS의 2002년작 '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의 어머니 윤씨 역도 맡은 바 있다. 시대극인 '서울 1945'에서도 아메 카오리 역을 맡았다.


KBO 리그와 얽힌 흑역사가 하나 있다. 김재박이 선수 시절인 1986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시상자인 이보희[6]김재박을 유격수 수상자 김재전이라고 부른 해프닝. '(넓을 박)'자를 '(전할 전)'자로 잘못 읽었다. 김재박() 항목 참조. 사실 21세기 현재는 전(傳)이든 박(博)이든 한자 자체를 못 읽는 사람이 태반인 데다 손으로 갈겨적은[7] 한자 고유명사를 잘못 읽는 것이야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한데, 그렇게 퉁치기에는 당시의 김재박은 너무나, 너무나 유명했다는 게 문제. 훗날의 인물로 비교해보면 손흥민을 '송홍민'으로, Yuna Kim을 국내 행사에서 '김유나' 내지 '김윤아'로 읽은 셈. 여성들이 비교적 스포츠에 관심이 적다지만 아무리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김재박은 그러기엔 너무 전국적으로 유명한 스타였기에 졸지에 상식이 부족한 사람 취급을 받은 것. 사실 1980년대 당대의 전국구 스타였던 김재박을 몰랐다는 것은 신문 한 자, 뉴스 한 번 안 봤다는 뜻이나 다름없어서...현대에도 스포츠를 안 보는 사람도 김연아, 박지성, 류현진의 이름 석 자를 모른다면 상식이 부족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결국 이날 이후 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수상자 명단은 철저히 한글로 표기되고 있다.#

1980년대 활동한 여성 연기자들 중에서 보면 최전성기 기준으로 당대 최고로 평가받았으나, 탑 여배우로서 전성기가 짧은 편이다. 1984년 무릎과 무릎 사이에서 주연을 맡아 영화 흥행을 이끌어 낸 후 1985년에 어우동에서 원탑 주연을 맡아 그해 깊고 푸른 밤 다음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을 이루면서 전성기를 맞았고, 그 뒤 1988년 초반까지 영화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면서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 상도 휩쓸면서 흥행과 연기력 양쪽으로 인정을 받았으나, 1988년에 결혼 후 잠정 은퇴하면서 전성기가 순식간에 꺾였다. 전성기라고 해도 영화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당시 한국 영화보다 인기가 더 높고, 대중성이 좋은 드라마까지 흥행시킨 원미경이나 이미숙, 드라마만 흥행시킨 정애리보다는 인기의 대중성이 떨어지고, 인기 편향도가 남성들에게 집중됐다. 함께 198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소리를 들은 원미경이나 이미숙[8]이 1980년대 후반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하고 3~40대 들어서도 주연 작품을 흥행시킨데 비해, 이보희는 잠정 은퇴하고 복귀 이후에는 주연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중장년 조연급으로 밀려났다. 다만 중장년 조연급으로 활동하면서 연기의 폭은 더 넓어졌고, 따라서 나이가 들어서도 드라마 등에서 활발히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미모는 당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실 연기력은 동시대 배우 중에서 뛰어난 편이 아니었고, 가끔 발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는 이보희가 전성기 때 영화만 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일 수 있다. 연극, 영화, 드라마의 연기는 각각 개성이 뚜렷하고 차이가 있다. 물론 영화도 드라마 같은 스타일의 영화가 있어서 차태현 같은 배우가 그런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일반적으로 드라마의 경우 마치 마라톤을 전력으로 질주하면 지치듯 긴 호흡으로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움을 특징으로 하고, 반면에 연극은 과장되어 보이는 특징이 있고, 영화는 드라마와 연극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전성기 때는 미모와 더불어 말로 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와 섹시한 분위기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다.

같은 완도 출신 여성 중견 탤런트로는 배우 김창숙이 있으며, 완도누나로 통한다.

문영남 사단에서 주로 인간쓰레기 악역을 맡아 출연했지만, 그중 세 작품은 올바른 개념인으로 출연했다.[9]

관리하고 살아서인지 주로 결혼 안 한 극중 부모의 여동생으로 자주 출연한 바 있다.

3. 사생활[편집]

1984년 '무릎과 무릎사이'의 흥행으로 영화제작사로부터 현대 스텔라를 선물받았다. 1986년에도 차를 몰았다는 기사가 있다.

1987년 8월에 LA 앙드레김 패션쇼에서 만난 재미교포 함윤식[10]과 1988년에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그리고 1993년에는 아들을 데리고 영화활동에 복귀하였으나 아들은 다시 미국에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함윤식과는 이혼하고 한의사와 건설업체를 겸직하는 사람과 결혼하였다. 전 남편의 사업이 망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현재 남편은 동료 영화배우 나영희[11]가 소개해준 것이라고 한다. 이보희는 이혜숙, 이상숙, 전인화, 나영희 등 동료 여배우들과 골프 동호회 활동을 했는데, 골프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달려라 울엄마' 촬영 시절에 촬영에 여유가 생기자 당시 신혼여행으로 남편과 파타야에 갔다고 한다.

4. 출연 작품[12][편집]

개봉 연도
제목
배역
관객 수
비고
1983년
일송정 푸른 솔은
참모장
조연
1984년
과부춤
홍말숙
주연
혜영
106,423명
자영
263,334명
1985년
추억의 빛
소연
아가다
아가다
어우동
479,225명
1986년
엄지
287,712명
1987년
인옥
73,943명
Y의 체험
X
1988년
접시꽃 당신
수경
237,744명
깜동
깜동
아메리카 아메리카
수잔
127,449명
미세스 최
7,435명
1994년
지현
49일의 남자
하영
2010년
수향
462,714명
조연
2011년
과거 사진 특별출연
7,453,586명
특별출연
2017년
친정 어머니
6,822명
조연

4.2. 드라마[편집]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1979년
MBC 로고(1974-1981...
1981년
1982년
MBC 로고(1981-1985...
여인열전 - 서궁마마
1994년
SBS 로고(1991-1994...
오지영
1995년
KBS 2TV 로고(1984-...
1996년
KBS 1TV 로고(1984-...
선빈 안씨
1997년
MBC 로고(1986-2005...
배 간호사
1998년
KBS 2TV 로고(1984-...
한수림
SBS 로고(1994-2000...
이수진
KBS 2TV 로고(1984-...
1999년
MBC 로고(1986-2005...
은희
KBS 2TV 로고(1984-...
김영화
2001년
오영희
SBS 로고
이은심
KBS 2TV 로고(1984-...
이보희
2002년
언제나 두근두근
장 교수
윤씨
MBC 로고(1986-2005...
부엌데기
강옥
2003년
KBS 2TV 로고(1984-...
이보희
2004년
나진득
SBS 로고
박영란
박화영
2005년
조윤숙
KBS 1TV 로고(1984-...
조옥자
SBS 로고
김미향
2006년
KBS 1TV 로고(1984-...
아메 카오리
MBC 로고(2005-2011...
안진희
2007년
KBS 2TV 로고(1984-...
김부선
KBS 1TV 로고(1984-...
영민 모
KBS 2TV 로고(1984-...
여순옥
MBC 로고(2005-2011...
사비나
KBS 2TV 로고(1984-...
천덕희
2008년
MBC 로고(2005-2011...
하신애
2009년
KBS 1TV 로고(1984-...
오선영
MBC 로고(2005-2011...
구효선
KBS 2TV 로고(1984-...
2010년
MBC 로고(2005-2011...
한수라
KBS 2TV 로고(1984-...
드라마 스페셜 - 이유
김지수
MBC 로고(2005-2011...
KBS 1TV 로고(1984-...
계선옥
2011년
고야
KBS 2TV 로고(1984-...
드라마 스페셜 - 올레길 그 여자
오 여사
KBS 1TV 로고(1984-...
이선영
JTBC 로고
김보희
2012년
KBS 2TV 로고(1984-...
양선희
드라마 스페셜 - 아트
고정아
SBS 로고
배신자
2013년
KBS 2TV 로고(1984-...
2014년
MBC 로고
지선영
tvN 로고(2012-2021...
훈동 모
MBC 로고
2015년
홍금숙
2016년
SBS 로고
남기자
2017년
윤이란
MBC 로고
우양숙
2019년
KBS 2TV 로고
MBC 로고
조순자
2021년
KBS 2TV 로고
2022년
TV CHOSUN 로고
방영 연도
기업
브랜드
비고
1983년
해태 뷰티 알로에껌
1986년
성도어패럴
톰보이
VOS 샴푸
1986년 ~ 1988년
가양 나드리 코티 화장품
에쿠아 리브레
SB-3
나드리 버태니컬즈 - 이보희편
그레이스 - 숙녀
나드리 에스비쓰리 메이크업 - 색
나드리 에스비쓰리 메이크업 - 신선한 칼라
나드리 에스비쓰리 레몬 - 여자의 봄
나드리 에스비쓰리 - 창가
나드리 코티버태니컬즈 - 물보라
오버나잇 썩세스 - 밤

5. 그 외 활동[편집]

5.1. 홍보대사[편집]

역임 연도
기업/기관
직함
2009년
홍보대사
  • 1985년 12월 24일
  • 2003년 12월 27일

6. 수상 경력[편집]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3년
제22회 대종상
특별상
일송정 푸른 솔은
영화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1984년
신인여우상
1986년
제2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1988년
제23회 백상예술대상
접시꽃 당신
여우주연상
2010년
여자 조연상
2015년
연속극부문 베스트 조연상

[훈음] 꽃부리 맑을 [2] 출처[3] 이는 배역명 막 짓는 걸로 유명한 문영남 작가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4] 참고로 '무릎과 무릎사이'는 단순 에로영화가 아닌 여성이 性을 극복하는 과정을 잘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 수작이다.[5]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주인공인 오혜성역의 최재성과의 나이 차이였다. 최재성은 1964년생으로, 해당 항목의 영상을 보면, 반항기 있는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이보희와는 아무리 봐도 작품상의 동갑내기로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보희가 5살이나 연상이기도 하다.[6] 여담으로 이때 이보희 씨 패션과 외모가 요즘 aespa윈터를 닮았다(...)[7] 그래서 당시 골든글러브 사회를 맡았던 이덕화도 이름을 정정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분이 글씨를 상당히 흘려 쓰신 것 같네요...[8] 단 이미숙은 결혼으로 1987년부터 1990년대까지 잠시 은퇴했다.[9] 애정의 조건, 수상한 삼형제, 오케이 광자매[10] 당시 뉴욕을 중심으로 자동차 판매업에 전념했다고 한다.[11] 1982년에 '낮은 데로 임하소서', 1988년에 '매춘'으로 흥행하였다. 그리고 남편이 치과의사라고 한다.[12] 당시에는 하나의 서울 영화관 관객수만 기록하였으므로 표의 기록수의 10배 정도로 보면 현재의 관객수랑 얼추 비슷해진다고 한다.[13] with 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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