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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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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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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1998 United States embassy (Kenya/Tanzania) bombings
스와힐리어 : Mashambulio ya kigaidi ya 7 Agosti 1998 katika Afrika ya Mashariki

1. 개요2. 사건 전개 과정3. 사건 조사4. 사건 이후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98년 8월 7일 아프리카 케냐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이 동시에 폭탄 테러를 당해 폭발에 휘말린 옆 건물이 붕괴되고 대사관의 일부가 무너져 내려 22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참사이다.

2. 사건 전개 과정[편집]

케냐 나이로비의 중심부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은 아프리카의 미국 대사관중 가장 거대한 대사관으로, 여느 대사관들과 마찬가지로 견고하게 지어져 지진도 버티도록 설계되었다. [1] 맞은 편에는 7층 높이의 사무실 빌딩 '우판디 빌딩' 이 있었고 사무실의 옆에는 21층 높이의 은행이 있었다.

1998년 8월 7일 오전 7시 15분, 나이로비 교외에서 두 남자가 주택가에 주차된 트럭에 탑승해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9시 30분, 대사관 근처에서 러시아워로 차가 밀리는 가운데 트럭은 대사관이 있는 로터리 근처에 도착한 후 좌회전을 하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9시 55분, 당시 케냐 주재 미국 대사 푸르던스 부쉬넬 대사[2]는 은행 꼭대기층에서 케냐 통성부 장관과 미국 사무청에서 온 관리들과 함께할 회의를 준비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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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10분, 트럭이 좌회전을 하고 대사관으로 진입했다. 후문에 도착한 뒤 조수석에서 한 남성이 내리고는 경비원에게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경비원들은 뭔가 수상쩍어서 열쇠가 있음에도 열쇠가 없으니 책임자를 부르겠다는 핑계를 대며 책임자를 부르는 척 하며 대사관 무전기로 도움을 요청했지만 경비원이 속이는 줄 알고 무전을 끄라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조수석에서 내린 남자는 차로 돌아가 운전자와 대화를 하고 경비원이 이를 엿들었는데 "열쇠가 없으니 설득하고 안 먹히면 총을 써라."는 말을 듣고는 도망쳤다.

운전자는 총을 꺼내 쏘기 시작했고, 계획이 틀어지자 당황한 남성은 마구잡이로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 폭음은 사무실과 대사관, 은행에서도 들려 무슨 일인지 볼려고 사람들이 창가로 모여들었다. 이후 10시 39분, 트럭 운전기사가 트럭을 몰고 담으로 돌진해 트럭이 폭발했다.

대사관은 일부만 무너지는 걸로 끝났으나 우판디 빌딩은 폭발의 충격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은행의 유리들이 깨지며 대사를 비롯한 회의 중이던 사람들이 부상을 입어 회의가 중단됐다. 폭발로 주변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들도 폭발했고, 불이 어느정도 사그라들자 생존자와 길거리의 사람들은 파편을 손으로 파헤치며 생존자를 찾기 시작했다. 잔해 때문에 중장비까지 동원해야 했고 어느 정도 많은 사람을 구하긴 했으나 224명의 시신도 수습해야 했다.

한편 탄자니아의 다르에르살람 대사관에서도 폭탄 테러가 일어나 3분의 2가 붕괴되면서 11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당해 미국을 대상으로 한 테러임이 밝혀지고 미국인들은 바깥으로 나가기를 꺼렸다. 또한 아프리카 지역의 모든 대사관 출입도 엄격히 금지됐다.

3. 사건 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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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는 케냐에 사건 조사를 위해 도착한 후[3] 현장을 조사하던 도중 고속폭탄의 흔적을 발견했다. 또한 증인들에게서 총소리와 폭발음을 들었고, 범인 중 한 명이 도주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문제는 차량 파편을 찾아내는 것. 차량이 잔뜩 모인 공간에서 트럭이 폭발해 차량 파편이 600개가 넘었다. 이들 중 트럭을 찾기 위해 우선 불도저로 근처 철도 옆의 공터로 옮긴 뒤 차량을 찾아나섰다.[4]

잔해속에서 트럭 파편을 찾던 도중 38구경 베레타 권총 슬라이드가 발견되었는데 등록번호가 없어서 고생해야 했다. 거기다 희생자가 너무 많아 누가 범인 시체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근처 사무실 직원이 폭발 당시 자신의 책상에 떨어졌다는 트럭 파편을 들고 찾아왔고, 파편에서 폭발물의 흔적이 발견되자 범인의 차량으로 단정짓고 조사했다.

차량은 토요타 다이나다. 차량의 등록번호도 발견한 상황에 트럭을 수입하는 뭄바사 항구로 가서 도요타 수입서류들을 뒤졌다. 이후 뭄바사 양계장의 아메드 수웨단이 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케냐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그러던 도중 엠피셔 병원의 청소부가 화장실 변기에서 38구경 총알 3개를 발견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던 슬라이드와 연관지어 사건 당일 용의자가 병원에 들렀을 거라고 보고 당시 이 병원에 들린 사람들을 용의자 선상에 올렸다.

며칠 뒤, 케냐 경찰은 정보를 입수한 후 호텔에서 '칼리드 사메' 라는 가명으로 병원 입원 카드를 만든 용의자를 체포했다. 목격자의 증언과 일치하는 생김새였고, 용의자는 심문 끝에 범행을 저지른 것을 인정했으며 파키스탄의 자살 테러 단체의 일원이라고 밝혔다. 이 남성의 진명은 밝혀지지 않고 가명만 잔뜩 나와 FBI는 가명 중 하나였던 알 오할리를 이 남자를 부를 때 썼다. 이후 알 오할리는 운전석에 탔던 남성의 이름인 아잠과 조직 이름인 알카에다를 토해냈다.

문제는 알카에다는 당시에는 단순히 테러조직에 돈을 대 주기만 하던 조직으로만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1998년 2월, 오사마 빈 라덴은 이슬람 종교재판을 열고 세계 전역의 미국인을 죽이는 게 이슬람 교도의 의무라는 정신나간 소리를 하고 첫 공격을 개시한 것이었다.

알카에다 조직원을 찾아 나선 FBI는 나이로비 외곽의 상류층 거주단지 '룬다'에서 세제 냄새가 유독 심하게 나는 집을 발견하고 뭔가 숨기기 위해 세제로 닦아냈다고 판단해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이들의 판단은 사실이었고, 문 위에서 폭탄 잔해물이 발견되었다. 잔해물에서는 TNT와 TTN, 알루미늄이 검출되었고, 이 집에서 알카에다가 폭발물을 만들었다는 것까지 알아냈으나 결국 잡지는 못했다.

4. 사건 이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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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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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대사관 정문. 현재는 추모공원으로 변경

새로 건축된 대사관은 더욱 견고하게 지어졌고, 이번엔 국무부의 규정을 지켜 게이트로부터 30m 떨어진 거리에 세워졌다. 또한 희생자 추모비도 세워졌고, 구 대사관 자리에는 추모공원이 설립되었다.

사건 이후 알카에다가 어떤 공격을 다시 해 올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가 계속해서 나왔으나 특별한 대책 없이 넘어갔다.[5] 이후에도 알카에다는 테러를 멈추지 않았고 끝내 인류 역사상 최악의 테러까지 일으켰다.

영화 킹덤 초반에 이 사건과 영상이 언급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선 주인공이 이 사건 뉴스를 듣고 입대를 결심하게 된다.

5. 둘러보기[편집]

[ 2020년대 ]
발생일
사건명
2023년 8월 8일 ~ 8월 11일
101
2022년 6월 27일
53
2022년 5월 24일
22
2022년 1월 23일
39
2021년 6월 24일
98
[ 2010년대 ]
[ 2000년대 ]

[ 199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99년 10월 31일
217
1999년 5월 9일
23
1998년 8월 7일
224
1997년 8월 6일
228
1997년 3월 26일
39
1997년 1월 9일
29
1996년 11월 21일
33
1996년 7월 17일
230
1996년 5월 11일
110
1996년 4월 3일
35
1995년 12월 20일
159
1995년 9월 22일
24
1995년 4월 19일
168
1994년 10월 31일
68
1994년 9월 8일
132
1994년 7월 2일
37
1994년 3월 23일
24
1993년 9월 22일
47
1993년 2월 28일 ~ 4월 19일
86
1992년 3월 22일
27
1991년 10월 19일 ~ 10월 23일
25
1991년 10월 16일
24
1991년 9월 3일
25
1991년 4월 5일
23
1991년 3월 3일
25
1991년 2월 1일
35
1990년 3월 25일
87
1990년 1월 25일
73
[ 198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89년 10월 23일
23
1989년 9월 21일
21
1989년 7월 19일
111
1989년 4월 17일
47
1989년 2월 8일
144
1988년 12월 21일
270
1988년 5월 14일
27
1987년 12월 7일
43
1987년 11월 15일
28
1987년 8월 16일
156
1987년 5월 17일
37
1987년 4월 23일
28
1986년 12월 31일
97
1986년 8월 31일
82
1986년 6월 18일
25
1986년 5월 30일
21
1985년 12월 12일
256
1985년 9월 6일
31
1985년 8월 2일
137
1985년 6월 25일
21
1985년 1월 21일
70
1985년 1월 1일
29
1984년 12월 19일
27
1984년 7월 18일
21
1983년 10월 23일
307
1983년 6월 2일
23
1983년 4월 18일
63
1983년 2월 10일
31
1982년 9월 4일
25
1982년 7월 9일
153
1982년 1월 13일
78
1981년 7월 17일
114
1981년 1월 9일
20
1980년 12월 4일
26
1980년 11월 21일
85
1980년 9월 12일
34
1980년 6월 5일
20
1980년 5월 9일
35
1980년 1월 28일
23
[ 197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79년 5월 25일
273
1978년 11월 18일
918
1978년 9월 25일
144
1978년 4월 27일
51
1978년 1월 28일
20
1977년 12월 13일
29
1977년 11월 6일
39
1977년 7월 19일
40
1977년 6월 26일
42
1977년 5월 28일
165
1977년 3월 27일
583
1976년 10월 20일
78
1976년 6월 4일
46
1976년 5월 21일
29
1976년 4월 27일
37
1976년 3월 9일, 3월 11일
26
1976년 1월 30일
23
1976년 1월 10일
20
1975년 11월 10일
29
1975년 6월 24일
113
1974년 12월 1일
92
1974년 9월 11일
72
1974년 9월 8일
88
1974년 6월 30일
24
1974년 4월 22일
107
1974년 4월 4일
72
1973년 7월 31일
88
1973년 7월 23일
38
1973년 7월 22일
78
1973년 6월 24일
32
1973년 3월 22일
32
1973년 2월 10일
40
1972년 12월 29일
101
1972년 12월 8일
45
1972년 10월 30일
45
1972년 9월 24일
22
1972년 6월 9일
238
1972년 5월 2일
91
1972년 2월 26일
125
1971년 9월 14일
111
1971년 9월 9일 ~ 9월 13일
43
1971년 6월 7일
28
1971년 6월 6일
50
1971년 2월 3일
29
1970년 12월 30일
39
1970년 12월 20일
29
1970년 11월 27일
79
1970년 10월 2일
31
1970년 11월 14일
75
1970년 5월 2일
23
1970년 3월 20일
20
[ 196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69년 9월 9일
83
1969년 6월 3일
74
1969년 2월 18일
35
1969년 1월 18일
38
1969년 1월 14일
28
1968년 12월 27일
28
1968년 12월 24일
20
1968년 12월 12일
51
1968년 12월 2일
39
1968년 11월 20일
78
1968년 10월 25일
32
1968년 8월 14일
21
1968년 5월 27일
99
1968년 5월 22일
23
1968년 5월 3일
85
1968년 4월 6일
41
1967년 12월 15일
46
1967년 11월 20일
70
1967년 7월 29일
134
1967년 7월 19일
82
1967년 6월 23일
34
1967년 6월 8일
34
1967년 3월 9일
26
1967년 3월 5일
38
1967년 2월 7일
25
1966년 10월 26일
44
1966년 8월 6일
42
1966년 6월 16일, 6월 28일
37
1966년 4월 22일
83
1965년 11월 11일
43
1965년 11월 8일
58
1965년 8월 24일
59
1965년 8월 16일
30
1965년 8월 9일
53
1965년 2월 8일
84
1965년 1월 16일
30
1964년 11월 23일
50
1964년 11월 15일
29
1964년 7월 9일
39
1964년 5월 11일
79
1964년 5월 7일
44
1964년 3월 1일
85
1964년 2월 25일
58
1963년 12월 29일
22
1963년 12월 8일
81
1963년 11월 23일
63
1963년 11월 18일
25
1963년 10월 31일
81
1963년 9월 17일
32
1963년 6월 3일
101
1963년 4월 10일
129
1963년 2월 12일
43
1962년 11월 30일
25
1962년 10월 3일
23
1962년 7월 22일
27
1962년 5월 22일
45
1962년 3월 16일
107
1962년 3월 1일
95
1961년 11월 8일
77
1961년 9월 17일
37
1961년 9월 1일
78
1961년 1월 15일
28
1960년 12월 17일
52
1960년 12월 16일
134
1960년 10월 29일
22
1960년 10월 4일
62
1960년 9월 19일
80
1960년 3월 17일
63
1960년 2월 25일
61
1960년 1월 18일
50
[ 195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59년 12월 1일
25
1959년 11월 16일
42
1959년 10월 30일
26
1959년 9월 29일
34
1959년 6월 28일
23
1959년 5월 12일
31
1959년 3월 5일
21
1959년 2월 3일
65
1958년 12월 1일
97
1958년 11월 18일
33
1958년 9월 15일
48
1958년 8월 15일
25
1958년 4월 21일
49
1958년 4월 6일
47
1958년 3월 19일
24
1958년 2월 28일
27
1957년 11월 8일
44
1957년 2월 17일
72
1957년 3월 22일
67
1957년 2월 1일
20
1956년 10월 10일
59
1956년 6월 30일
127
1956년 4월 1일
22
1956년 1월 22일
30
1955년 11월 1일
44
1955년 10월 6일
66
1955년 8월 11일
66
1955년 8월 4일
30
1955년 2월 12일
29
1955년 3월 22일
66
1954년 5월 26일
103
1953년 9월 16일
28
1953년 7월 17일
43
1953년 6월 18일
129
1953년 3월 27일
21
1953년 2월 14일
46
1952년 12월 20일
87
1952년 11월 22일
52
1952년 8월 4일
50
1952년 4월 29일
28
1952년 4월 26일
176
1952년 4월 11일
52
1952년 2월 11일
33
1952년 1월 22일
23
1951년 12월 29일
26
1951년 12월 21일
119
1951년 12월 16일
58
1951년 9월 1일
45
1951년 8월 24일
50
1951년 6월 30일
50
1951년 4월 25일
43
1951년 3월 23일
53
1951년 2월 6일
85
1950년 11월 22일
78
1950년 8월 31일
55
1950년 8월 25일
23
1950년 6월 23일
58
1950년 5월 25일
34
1950년 2월 17일
32
1950년 1월 26일
32
[ 194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49년 11월 29일
28
1949년 11월 1일
55
1949년 7월 12일
35
1949년 6월 7일
53
1949년 4월 4일
74
1948년 12월 28일
32
1948년 10월 27일 ~ 10월 31일
26
1948년 8월 29일
37
1948년 6월 17일
43
1948년 3월 12일
30
1948년 1월 28일
32
1947년 10월 23일
52
1947년 7월 24일
27
1947년 6월 13일
50
1947년 5월 30일
53
1947년 5월 29일
43
1947년 4월 16일
581
1947년 3월 25일
111
1946년 12월 7일
119
1946년 7월 19일
25
1946년 6월 5일
61
1946년 4월 25일
45
1945년 8월 9일
34
1945년 8월 9일
372
1944년 12월 31일
50
1944년 10월 20일
131
1944년 8월 23일
61
1944년 8월 4일
47
1944년 7월 17일
320
1944년 7월 6일
167
1944년 5월 21일
163
1944년 2월 10일
24
1944년 1월 6일
115
1944년 1월 3일
138
1943년 12월 18일
34
1943년 12월 16일
74
1943년 9월 7일
55
1943년 9월 6일
79
1943년 8월 30일
29
1943년 7월 28일
20
1943년 6월 12일
42
1943년 2월 27일
75
1942년 11월 28일
492
1942년 6월 5일
46
1942년 1월 24일
48
1941년 6월 19일
33
1940년 9월 12일
52
1940년 8월 31일
25
1940년 7월 31일
43
1940년 7월 15일
63
1940년 4월 23일
209
1940년 4월 19일
31


[1] 다만 '모든 대사관의 게이트 입구로부터 주변 건물들은 반드시 30m 이상 떨어지도록 건설한다.' 는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세워져 게이트와는 무척 가까운 상태였고 이것이 화를 불렀다.[2] 몇 달 전부터 케냐 대사관의 취약성을 언급하며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무시당했다.[3] 비행기 결함으로 이틀 정도 늦었다.[4] 증인들은 하나같이 캔터 트럭이라고 말해서 캔터 위주로 조사를 진행했으나 케냐에서는 하얀 트럭은 죄다 캔터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조사가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했다.[5] 사실 이후 알카에다의 조직에 대한 추적과 일부 시설에 대한 공습이 있긴 했다. 알카에다의 테러를 예방할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진 못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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