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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턴 항공 401편 추락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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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유형
CFIT, 조종사 과실
발생 위치
탑승인원
승객: 163명
승무원: 13명
사망자
승객: 96명[1]
승무원: 5명
생존자
승객: 67명
승무원: 8명
기종
항공사
기체 등록번호
N310EA
출발지
도착지
external/farm8.s...
사고 4개월 전,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고기의 모습
Eastern Air Lines Flight 401
1. 개요2. 사고 경위
2.1. 랜딩기어 내려간 거 맞아?2.2. 구조 작업2.3. 추락 원인2.4. 401편의 귀신이 보인다!
3. 교훈과 영향4. 매체5. 관련 사고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72년 12월 29일, 밤 11시 42분 이스턴 항공 소속의 록히드 L-1011-385-1(기체번호 N310EA)[2]미국 플로리다마이애미 국제공항에 어프로치 하던 도중 에버글레이즈에 추락한 사고. 광동체 기종으로는 첫 번째 사고였고, 당시 최신예 항공기가 추락했기 때문에 굉장히 면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탑승객은 승객 163명, 승무원 13명으로 총 176명이었으며 사고 현장에서 99명이, 2명은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 사망했고, 75명이 생존했다.

상당히 유명한 항공 사건 사고 에피소드 중 하나로서 각종 매체에서 이 사고를 다루기도 했다.

2. 사고 경위[편집]

2.1. 랜딩기어 내려간 거 맞아?[편집]


How a Broken $5 Light Bulb Caused this Massive Jet to Crash in Miami | The Ghosts of Flight 401
실제 조종사들의 재연 영상

사고 당일 이스턴 항공 401편은 뉴욕주 퀸스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플로리다마이애미마이애미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베테랑 기장이 인도된 지 4개월 된 신형 기체로 정상 운항하고 있었는데, 마이애미에 어프로치할 때 랜딩 기어[3]를 내린 후 부기장이 랜딩기어 램프를 체크하자 램프가 꺼져 있었던 것.

랜딩 기어가 내려가지 않으면 4개월 된 새 비행기를 그대로 날려먹게 되므로, 기장과 부기장은 계속해서 랜딩기어를 내리려고 했는데 이미 랜딩기어는 내려져 있었다. 추락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단지 램프의 등이 나가서 불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일 뿐. 이때부터 자동운항을 맞춰놓고 기장부터 항공기관사까지 모두 이 랜딩기어 램프에 매달려서 뺐다 끼워도 보고 항공기관사를 보내서 랜딩기어가 나와 있는지 창문 밖으로 확인하기까지 했다.[4]

그런데 이 난리를 치는 와중에 자동운항이 풀려서 점점 고도가 낮아지고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칵핏의 누군가가 알람(고도가 자동조종장치로 지정한 고도보다 떨어지면 울린다.)을 듣고 고도를 체크해 주었어야 했는데 하필이면 차임은 항공기관사 좌석에서 울렸고 항공기관사는 그때 조종실 밑에서 기어를 체크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동운항이 풀렸는지 어쨌는지를 확인할 정신이 없었던 것. 결국 기장이 다시 180도 선회를 하기 위해 요크를 잡았을 때, 뭔가 고도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블랙박스에 녹음된 내용을 보면...
Stockstill: We did something to the altitude. (고도가 좀 이상한데요?)
Loft: What? (뭐?)
Stockstill: We're still at 2,000 feet, right? (우리 고도 아직 2000피트 맞죠?)
Loft: Hey — what's happening here?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충돌음)
그리고 쓰로틀을 최대로 올리고 요크를 당겼으나 몇 초 후 추락.

2.2. 구조 작업[편집]

external/s1.hubi...
▲ 사고기 잔해

마침 근처 에버글레이즈에서 에어보트를 타고 개구리를 잡던 버드 마키스(본명 로버트 마키스, Robert "Bud" Marquis, 1929~2008)라는 사람이 있어 즉시 신고가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버드 마키스와 그의 친구는 12명이 넘는 사람들이 익사하는 것을 막았다. 지금까지도 401편의 승객들 및 그들의 가족들은 해마다 그에게 감사한다고 한다. 추락한 에버글레이즈가 습지였기 때문에 비행기 추락 시 엄청난 충격을 흡수했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승객들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늪지에는 악어와 가스 괴저(gas gangrene, myonecrosis)[5]를 유발하는 유기체들이 승객들을 위협하였으며 2만 리터의 항공유가 새어나와 라이터라도 켜면 그대로 폭발 할 위험이 있어서 마찰 스파크에 주의하면서 구조했다고 전해진다. 승객 163명중 69명이, 승무원 10명중 8명이 구조되었다. 2명은 나중에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기장[6]은 추락에서는 살아남았으나 현장에서 끝내 숨을 거뒀고, 부기장 엘버트 스토스트리는 즉사했으며, 항공기관사 도날드 릭 포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사망하였고 오직 정비사였던 안젤로 도나데오만이 조종실에서 살아남았다.

한편 401편의 승객들을 구한 버드 마키스는 오랫동안 언론과 대중들에게 영웅으로서 칭송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2008년 10월 21일 플로리다 월마트 주차장에서 사고를 당해 5주 후인 1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2.3. 추락 원인[편집]

베테랑 기장과 최신예 기종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추락은 조사관들에게도 많은 의문을 가져다 주었다. 처음에는 부검 당시 기장의 뇌에서 종양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종양이 그의 조종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으나 의사의 소견과 주변 지인들의 증언에 의해 사라졌다.[7] 조종실 음성 녹음 장치를 복원한 후에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조사관들이 가지게 된 의문은 "왜 아무도 항공기의 조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가?"였다.
  • 첫째, 비행기 기장, 부기장, 항공기관사 모두가 램프에 신경을 쓰던 사이, 기장이 랜딩 기어가 내려왔냐고 확인해 오라고 몸을 돌리면서 요크를 건드렸고 자동운항이 해제되어 항공기가 점차 하강한 것이 주 원인 이었다. 당시 최첨단 여객기였던 L-1011 트라이스타에는 자동 압력 스위치라는, 비행기를 수동으로 움직여야 할 때 조종사가 조종간을 쥐기만 해도 바로 자동조종장치가 해제되는 신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기장이 조종간을 살짝 친 힘이 자동조종장치를 해제시킬 만한 충분한 압력이 되어, 오히려 참사의 발단이 되고 말았다.
  • 둘째, 마이애미 공항 관제사는 401편의 고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레이더를 보고 알았지만 그저 레이더의 오류인줄 알고 401편에 경고하지 않은 것.[8]
  • 셋째, 조종사들의 자동운항에 대한 즉 최신예 기술에 대한 과신. 즉 "좋은 기계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가 큰 문제로 대두되게 되었다.
이 사고 직후 NTSB는 성명을 발표하여 이스턴 항공의 조종사들이 항공기의 정교한 시스템을 잘 다루지 못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항공관제사들에게는 고도가 낮아지는 항공편이 있을 경우 경고하라는 새 권고사항이 추가되었으며 항공사들에게 CRM의 도입을 권고하였다. 그리고 항공사들에게 교육 프로그램 개정을 명하였다.

2.4. 401편의 귀신이 보인다![편집]

이스턴 항공 401편은 기내식 카트나 갤리에 설치되는 커피메이커, 기내식 조리장비같은 상당수의 부품이 이용할만 했고 NTSB는 대부분의 멀쩡한 부품을 항공사로 되돌려 보냈다. 이렇게 발생하게 된 사고기의 멀쩡한 부품들을 가져다가 다른 L-1011에 교체부품으로 이용했다. 그런데 그 교체부품이 들어간 항공기의 승무원들이 기장과 부기장의 귀신을 보았다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 #1, #2

항공사측에서는 헛소문으로 취급했으나 당시 이스턴 항공 승무원들과 승객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목격담이 나오곤했다. 사실 애초에 '귀신'이라는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라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항공사에서는 직원들 사이에 흉흉한 소문이 계속해서 돌자 결국 401편에서 쓰던 부품들을 다 떼어낸 다음 폐기처분했다. 영상

401편의 유령 목격담을 다룬 책의 저자는 자신이 만나본 미국의 각종 항공사 승무원들 30여명 중 25명 정도가 유령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바다 건너 SAS 항공사의 승무원조차 유령 이야기를 하며 이스턴 항공이라는 항공사와 기종[9]을 콕 집어 말하는 등 이야기에 일관성이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고 말한다.

그 후 에버글레이즈 습지에는 401편의 추모비를 세우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3. 교훈과 영향[편집]

CRM, 즉 승무원 자원관리의 중요성이 크게 대두되어 조종사의 실수로 인한 사고 발생을 줄이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요즘은 이와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종실 및 기내에서 각 승무원이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하도록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CRM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긴 하지만...

또한 아무리 무사고 비행기 부품이라는 확인증이 있더라도 제조회사에서 다시 한 번 안전하다고 인증한 부품만이 재활용될 수 있게 되었다.

자동조종장치가 강제로 해제될 때 조종사가 알 수 있도록 더 강하게 경고해줘야 된다는 지침이 추가되었다. 이후 러시아 항공기는 이 지침을 따랐지만 에어버스는 그러지 않았는데 결국 아에로플로트 593편 추락사고가 나고 만다.

한편 이 사고는 L-1011의 이미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렇지 않아도 L-1011은 제조사인 록히드 마틴의 민항기 사업에 대한 항공사들의 불신과, 롤스로이스 사에서 제작하는 엔진 납품의 문제 때문에 인기가 없었다. 그 와중에 이 사고까지 터진 것. 물론 이 사고는 L-1011의 성능 자체와는 무관했지만, 이미지 악화에는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 사고는 광동체 항공기가 추락해 완파된 사상 최초의 사고이기도 하다.

4. 매체[편집]

5. 관련 사고[편집]

  •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조종사들이 추락 직전까지 특정 기기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비행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 이 사고와 비슷하다는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한 의원의 의견이 나왔다.
  • 에어버스 A320 시연회 추락사고: 이 사고 이후로 에어버스도 L-1011처럼 긴급히 요크를 잡아당기면 자동조종장치가 해제되도록 만들었다.
  • 아에로플로트 593편 추락사고: 에어버스사가 자동조종장치가 해제되도록 만든 후 일어난 사고로 이스턴 항공 401편 추락사고와 추락원인이 동일하다.
  • 밸류젯 592편 추락사고: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으나 같은 플로리다 주 에버글레이즈 일대에서 발생한 사고이다. 사고 장소는 본 사고 발생 장소에서 겨우 12km 정도만 떨어져 있다.

6. 둘러보기[편집]

[ 2020년대 ]
발생일
사건명
2023년 8월 8일 ~ 8월 11일
101
2022년 6월 27일
53
2022년 5월 24일
22
2022년 1월 23일
39
2021년 6월 24일
98
[ 2010년대 ]
[ 2000년대 ]

[ 199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99년 10월 31일
217
1999년 5월 9일
23
1998년 8월 7일
224
1997년 8월 6일
228
1997년 3월 26일
39
1997년 1월 9일
29
1996년 11월 21일
33
1996년 7월 17일
230
1996년 5월 11일
110
1996년 4월 3일
35
1995년 12월 20일
159
1995년 9월 22일
24
1995년 4월 19일
168
1994년 10월 31일
68
1994년 9월 8일
132
1994년 7월 2일
37
1994년 3월 23일
24
1993년 9월 22일
47
1993년 2월 28일 ~ 4월 19일
86
1992년 3월 22일
27
1991년 10월 19일 ~ 10월 23일
25
1991년 10월 16일
24
1991년 9월 3일
25
1991년 4월 5일
23
1991년 3월 3일
25
1991년 2월 1일
35
1990년 3월 25일
87
1990년 1월 25일
73
[ 198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89년 10월 23일
23
1989년 9월 21일
21
1989년 7월 19일
111
1989년 4월 17일
47
1989년 2월 8일
144
1988년 12월 21일
270
1988년 5월 14일
27
1987년 12월 7일
43
1987년 11월 15일
28
1987년 8월 16일
156
1987년 5월 17일
37
1987년 4월 23일
28
1986년 12월 31일
97
1986년 8월 31일
82
1986년 6월 18일
25
1986년 5월 30일
21
1985년 12월 12일
256
1985년 9월 6일
31
1985년 8월 2일
137
1985년 6월 25일
21
1985년 1월 21일
70
1985년 1월 1일
29
1984년 12월 19일
27
1984년 7월 18일
21
1983년 10월 23일
307
1983년 6월 2일
23
1983년 4월 18일
63
1983년 2월 10일
31
1982년 9월 4일
25
1982년 7월 9일
153
1982년 1월 13일
78
1981년 7월 17일
114
1981년 1월 9일
20
1980년 12월 4일
26
1980년 11월 21일
85
1980년 9월 12일
34
1980년 6월 5일
20
1980년 5월 9일
35
1980년 1월 28일
23
[ 197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79년 5월 25일
273
1978년 11월 18일
918
1978년 9월 25일
144
1978년 4월 27일
51
1978년 1월 28일
20
1977년 12월 13일
29
1977년 11월 6일
39
1977년 7월 19일
40
1977년 6월 26일
42
1977년 5월 28일
165
1977년 3월 27일
583
1976년 10월 20일
78
1976년 6월 4일
46
1976년 5월 21일
29
1976년 4월 27일
37
1976년 3월 9일, 3월 11일
26
1976년 1월 30일
23
1976년 1월 10일
20
1975년 11월 10일
29
1975년 6월 24일
113
1974년 12월 1일
92
1974년 9월 11일
72
1974년 9월 8일
88
1974년 6월 30일
24
1974년 4월 22일
107
1974년 4월 4일
72
1973년 7월 31일
88
1973년 7월 23일
38
1973년 7월 22일
78
1973년 6월 24일
32
1973년 3월 22일
32
1973년 2월 10일
40
1972년 12월 29일
101
1972년 12월 8일
45
1972년 10월 30일
45
1972년 9월 24일
22
1972년 6월 9일
238
1972년 5월 2일
91
1972년 2월 26일
125
1971년 9월 14일
111
1971년 9월 9일 ~ 9월 13일
43
1971년 6월 7일
28
1971년 6월 6일
50
1971년 2월 3일
29
1970년 12월 30일
39
1970년 12월 20일
29
1970년 11월 27일
79
1970년 10월 2일
31
1970년 11월 14일
75
1970년 5월 2일
23
1970년 3월 20일
20
[ 196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69년 9월 9일
83
1969년 6월 3일
74
1969년 2월 18일
35
1969년 1월 18일
38
1969년 1월 14일
28
1968년 12월 27일
28
1968년 12월 24일
20
1968년 12월 12일
51
1968년 12월 2일
39
1968년 11월 20일
78
1968년 10월 25일
32
1968년 8월 14일
21
1968년 5월 27일
99
1968년 5월 22일
23
1968년 5월 3일
85
1968년 4월 6일
41
1967년 12월 15일
46
1967년 11월 20일
70
1967년 7월 29일
134
1967년 7월 19일
82
1967년 6월 23일
34
1967년 6월 8일
34
1967년 3월 9일
26
1967년 3월 5일
38
1967년 2월 7일
25
1966년 10월 26일
44
1966년 8월 6일
42
1966년 6월 16일, 6월 28일
37
1966년 4월 22일
83
1965년 11월 11일
43
1965년 11월 8일
58
1965년 8월 24일
59
1965년 8월 16일
30
1965년 8월 9일
53
1965년 2월 8일
84
1965년 1월 16일
30
1964년 11월 23일
50
1964년 11월 15일
29
1964년 7월 9일
39
1964년 5월 11일
79
1964년 5월 7일
44
1964년 3월 1일
85
1964년 2월 25일
58
1963년 12월 29일
22
1963년 12월 8일
81
1963년 11월 23일
63
1963년 11월 18일
25
1963년 10월 31일
81
1963년 9월 17일
32
1963년 6월 3일
101
1963년 4월 10일
129
1963년 2월 12일
43
1962년 11월 30일
25
1962년 10월 3일
23
1962년 7월 22일
27
1962년 5월 22일
45
1962년 3월 16일
107
1962년 3월 1일
95
1961년 11월 8일
77
1961년 9월 17일
37
1961년 9월 1일
78
1961년 1월 15일
28
1960년 12월 17일
52
1960년 12월 16일
134
1960년 10월 29일
22
1960년 10월 4일
62
1960년 9월 19일
80
1960년 3월 17일
63
1960년 2월 25일
61
1960년 1월 18일
50
[ 195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59년 12월 1일
25
1959년 11월 16일
42
1959년 10월 30일
26
1959년 9월 29일
34
1959년 6월 28일
23
1959년 5월 12일
31
1959년 3월 5일
21
1959년 2월 3일
65
1958년 12월 1일
97
1958년 11월 18일
33
1958년 9월 15일
48
1958년 8월 15일
25
1958년 4월 21일
49
1958년 4월 6일
47
1958년 3월 19일
24
1958년 2월 28일
27
1957년 11월 8일
44
1957년 2월 17일
72
1957년 3월 22일
67
1957년 2월 1일
20
1956년 10월 10일
59
1956년 6월 30일
127
1956년 4월 1일
22
1956년 1월 22일
30
1955년 11월 1일
44
1955년 10월 6일
66
1955년 8월 11일
66
1955년 8월 4일
30
1955년 2월 12일
29
1955년 3월 22일
66
1954년 5월 26일
103
1953년 9월 16일
28
1953년 7월 17일
43
1953년 6월 18일
129
1953년 3월 27일
21
1953년 2월 14일
46
1952년 12월 20일
87
1952년 11월 22일
52
1952년 8월 4일
50
1952년 4월 29일
28
1952년 4월 26일
176
1952년 4월 11일
52
1952년 2월 11일
33
1952년 1월 22일
23
1951년 12월 29일
26
1951년 12월 21일
119
1951년 12월 16일
58
1951년 9월 1일
45
1951년 8월 24일
50
1951년 6월 30일
50
1951년 4월 25일
43
1951년 3월 23일
53
1951년 2월 6일
85
1950년 11월 22일
78
1950년 8월 31일
55
1950년 8월 25일
23
1950년 6월 23일
58
1950년 5월 25일
34
1950년 2월 17일
32
1950년 1월 26일
32
[ 194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49년 11월 29일
28
1949년 11월 1일
55
1949년 7월 12일
35
1949년 6월 7일
53
1949년 4월 4일
74
1948년 12월 28일
32
1948년 10월 27일 ~ 10월 31일
26
1948년 8월 29일
37
1948년 6월 17일
43
1948년 3월 12일
30
1948년 1월 28일
32
1947년 10월 23일
52
1947년 7월 24일
27
1947년 6월 13일
50
1947년 5월 30일
53
1947년 5월 29일
43
1947년 4월 16일
581
1947년 3월 25일
111
1946년 12월 7일
119
1946년 7월 19일
25
1946년 6월 5일
61
1946년 4월 25일
45
1945년 8월 9일
34
1945년 8월 9일
372
1944년 12월 31일
50
1944년 10월 20일
131
1944년 8월 23일
61
1944년 8월 4일
47
1944년 7월 17일
320
1944년 7월 6일
167
1944년 5월 21일
163
1944년 2월 10일
24
1944년 1월 6일
115
1944년 1월 3일
138
1943년 12월 18일
34
1943년 12월 16일
74
1943년 9월 7일
55
1943년 9월 6일
79
1943년 8월 30일
29
1943년 7월 28일
20
1943년 6월 12일
42
1943년 2월 27일
75
1942년 11월 28일
492
1942년 6월 5일
46
1942년 1월 24일
48
1941년 6월 19일
33
1940년 9월 12일
52
1940년 8월 31일
25
1940년 7월 31일
43
1940년 7월 15일
63
1940년 4월 23일
209
1940년 4월 19일
31



[1] 2명은 병원 이송 후 사망[2] 동년 8월 18일에 인도된, 기령 4개월의 새 비행기였다.[3] 정확하게는 노즈 기어[4] 그러나 기장이 기어를 비추는 등을 꺼놓은 바람에 보이지 않았다. 다시 보냈지만 그땐 이미...[5] 고 산소실에서만 소멸되는 균에 의해 그냥 놔두면 신경과 지방조직이 보라빛으로 변하면서 커다란 물집이 잡혀 썩어들어가는 무서운 증상이다. 가스실이 없다면 그 부위를 자르거나 도려내야 된다![6] 이름은 밥 로프트, 30년이 넘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7] 발견된 종양은 뇌 부위 중 시력을 담당하는 부분을 누르고 있었다.[8] 사실 지금도 공항의 레이더에서 비행기가 몇 분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거나, 고도가 아예 엉뚱하게 표시되는 오류가 종종 발생하는데, 1972년에는 훨씬 심했다고 한다. 그래도 관제사가 비행기 고도가 2000피트가 아닌 900피트로 표시된 걸 잡아낸 것까진 좋았는데, 문제는 착륙하는 비행기의 고도가 관제사의 관할 구역이 아니었다는 것. 때문에 관제사는 조종사들에게 상황이 어찌 되어가냐고 물어보고 문제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레이더의 오류로 보고 넘어간 것이다.[9] 이 중에는 N318EA(318편)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기체는 다른 항공사에서 쓰다가 퇴역해 해체된 후 대한민국에서 다시 재조립되어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유원지(수성못)의 비행기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다행히 재활용된 부품은 이스턴 항공 시절에 다 뜯은지 오래이고, 퇴역해 해체된 뒤 재조립한 것은 쓸만한 부품은 없고 거의 동체, 날개, 테일, 기어만 있다. 링크. 또한 N318EA 번호는 살아나 다른 비행기의 등록번호가 되었다.[10] 정확히는 사고 자체보다는 프로가 프로인지라 유령 비행기 소문에 대해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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