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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최근 수정 시각: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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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역대 사망자별 항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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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9.11 테러는 주요 공격 대상이 항공기가 아니었으며 항공기의 탑승자보다 건물과 지상의 사망자 수가 더 많았으므로 틀에서 제외함.

순위
이름
사고 항공기 기종
사망자 수
사고 원인
발생일 및 위치
비고
1
583명
활주로상 충돌, 조종사 과실
항공기 사고 사망자 수 1위
2
520명
정비 불량으로 인한 유압계통 파손
단일 항공기 사고 사망자 수 1위
3
보잉 747-168B사우디아
일류신 Il-76TD카자흐스탄
349명
공중 충돌, 조종사 과실
4
346명
설계 결함
1974년 3월 3일
프랑스 국기
프랑스
에르메농빌 숲
5
329명
폭탄 테러
1985년 6월 23일
아일랜드 국기
아일랜드
코크 남쪽 190km 지점
6
301명
기내 화재, 조종사 과실
불시착 후 항공기 전소
7
298명
격추
8
290명
격추
1988년 7월 3일
이란 국기
이란
페르시아 만 호르무즈 해협 해상
9
275명
불명
2003년 2월 19일
이란 국기
이란
케르만 지역 산악지대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음
10
271명탑승객
2명지상
정비 불량
1979년 5월 25일
미국 국기
미국
일리노이주 디스 플레이네스
11
259명탑승객
11명지상
폭탄 테러
12
269명
격추, 조종사 과실
1983년 9월 1일
소련 국기
소련
사할린, 모네론 섬 부근 해상
대한민국 사상 사망자 수 1위
13
260명탑승객
5명지상
비행 규정 미비, 조종사 과실, 설계 결함
2001년 11월 12일
미국 국기
미국
뉴욕시 퀸스 벨 하버 인근 주택가
14
264명
조종사 과실
15
261명
정비 불량
16
257명
CFIT, 조종사 과실
화이트아웃으로 인해 추락
17
256명
날개 결빙, 과적, 조종사 과실
18
239명
불명
2014년 3월 8일
인도양 해상(추정)
항공기 실종으로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음
19
234명
CFIT, 조종사 과실
1997년 9월 26일
인도네시아 국기
인도네시아
메단 폴로니아 국제공항 북서48km 지점
20
230명
기체 결함
1996년 7월 17일
미국 국기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동모리츠 남쪽 13km 지점
21
229명
기내 화재
22(공동)
228명
CFIT, 악천후, 조종사 과실, 공항 시설 낙후
1997년 8월 6일
괌 기
니미츠 힐
22(공동)
228명
조종사 과실, 실속, 계기판 오류
23
225명
공중분해, 정비 불량
24
224명
폭탄 테러
25
223명
기체 결함
1991년 5월 26일
태국 국기
태국
수판부리 주 푸 토에이 국립공원
명령되지 않은 엔진 역분사 기능 작동으로 인한 기체 실속 및 양력 불균형
26
217명
자살 비행
1999년 10월 31일
미국 국기
미국
매사추세츠 낸터킷섬 남쪽 100km 지점
부기장의 고의 추락
27
213명
기체 결함, 조종사 과실
28
196명탑승객
7명지상
CFIT, 조종사 과실
29
200명
조종사 과실
30
187명탑승객
12명지상
조종사 과실, 활주로 배수 문제
2007년 7월 17일
브라질 국기
브라질
상파울루 상파울루 콘고냐스 공항
오버런으로 인해 물류센터와 충돌

American Airlines Flight 191
0833868
사고 2년 전인 1977년 6월,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유형
정비 불량
발생 위치
미국 국기
미국
특별행정구기
행정구
기
속령
일리노이주 디스 플레이네스
탑승 인원
승객: 258명
승무원: 13명
사망자
탑승자 271명 전원 사망
지상 인원 2명 사망
기종
항공사
기체 등록번호
N110AA
출발지
도착 예정지
1. 개요2. 사고 이전3. 사고 과정4. 사고 이후5. 사망자 국적6. 기타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79년 5월 25일 일어난 미국의 항공 사고. 2024년 현재까지 9.11 테러를 제외하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항공 사고다. 이는 당시 미국에서 역대 최악의 단일 항공기 사고로 기록되었으며,[1] 역대 DC-10 항공기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항공사고다.[2]

사상 최악의 참사항공 사고 수사대에서도 다루었다.

2. 사고 이전[편집]

사고기는 1972년 2월 25일 입고되었으며, 항공기 등록번호는 N110AA. DC-10-10 여객기로, 7년 간 20,000시간을 비행했다.

원래 비행기 엔진을 정비할 때에는 전용 장비를 이용해서 급유 호스와 전기 계통 케이블을 파일런[3] 부근에서 분리한 후, 엔진을 파일런에서 떼어내서 정비해야 한다. 그러나 아메리칸 항공유나이티드 항공, 컨티넨탈 항공은 분해하다가 유압관이나 전기 배관이 파손되면 안 된다면서 파일런의 볼트만 빼낸 뒤 지게차로 통째로 빼내는 방식을 택했다. 여기에는 인건비와 정비에 드는 시간을 줄이려는 이유도 있었다. 날개와 파일런을 연결하는 볼트는 단 3개였고, 파일런과 엔진을 고정하는 볼트는 수십 개가 넘었으니까.[4] 문제는 이러면 프라모델 조립하듯이 파일런이 붙은 엔진을 좁은 구멍에 다시 맞춰 넣어야 했는데, 지게차로는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지게차로 엔진을 들어 올리다 너무 들어 올리는 바람에 파일런이 지게차와 날개 사이에 끼어 금이 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정비는 사고 8주 전에도 시행되었고, 이런 와중에 지게차로 엔진을 올리다 파일런에 균열이 생겼으나 정비사들은 모르고 있었다.

3. 사고 과정[편집]

ATC 기록
O' Hare ATC: Look at this, look at this! He blew up an engine! Equipment! We need equipment! He blew up an engine! (저걸 봐, 봐봐! 엔진이 떨어져 나갔어! 소방대! 소방구조대가 필요해! 엔진이 떨어져 나갔어!)
Nearby Cessna: Oh, shit! (빌어먹을!)
O' Hare ATC: Alright, American 1...91 Heavy, you wanna come back and to what runway? (저기 아메리칸 1...91편, 어느 활주로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O' Hare ATC: He's not talking to me. (응답이 없어.)
O' Hare ATC: Yeah, he's gonna lose a wing. Look at him! (그러게. 한쪽 날개를 잃을 것 같아(못 버틸 것 같아). 저길 봐!)
(191편이 실속하고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O' Hare ATC: There he goes, there he goes! (추락한다, 추락한다!)
(잠시 후 191편이 땅을 들이받았다.)

1979년 5월 25일,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 승무원 13명과 승객 258명, 총 탑승객 271명이 탑승한 아메리칸 항공 191편은 기장 월터 룩스[5]와 부기장 제임스 딜러드, 그리고 항공기관사 알프레드 우도비치가 조종을 맡았고, 오후 2시 59분에 이륙했다.

그런데, 이륙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륙하면서 생긴 진동으로 파일런 뒤쪽 균열이 벌어져 뒷쪽 파일런 구조물이 끊어졌다. 앞쪽 파일런만 남은 상태에서 엔진 자체의 추력 때문에 엔진이 위로 쳐 들리고, 그러면서 날개 앞 1m 부분을 강타해 날리면서 앞쪽 파일런의 구조물도 끊어져 활주로에서 1번 엔진이 떨어져 나갔다. 이상황을 그대로 목격한 관제탑에서는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못했고 아메리칸 항공 191편에 연락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지 묻지만, 191편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조종사는 이러한 상황을 모른 채로 이륙했고, 엔진이 떨어져 나가면서 유압계통을 끊어먹는 바람에 유압공급이 중단되어 좌측 플랩이 접히지 않고, 전기 계통도 끊어져 조종간과 속도계, 수평계의 전력이 끊겼다. 그와 동시에 블랙박스의 전력도 끊겨 엔진이 떨어져 나간지 3초 후 블랙박스는 기록이 중단되었다.[6]

한편 좌측 플랩이 접히지 않고, 부조종사의 조종간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알아차린 기장은 회항을 하려 했고, 할 수 있었다. DC-10을 비롯한 대부분의 3, 4발기 항공기는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서 엔진 하나가 고장 나더라도 비행이 어느 정도는 가능하게 설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고 발생 직후 조종사들은 기수를 올리고 엔진 출력을 낮췄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의 아메리칸 항공사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일반 항공사 메뉴얼이기는 했으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유압액이 모두 빠져나가 조종면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7]

사실은 1번 엔진에 유압 펌프와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가 있었지만, 그게 떨어져 나가서 실속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조종사들은 실속의 위기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 앞에 있는 플랩이 다시 제자리로 올라오면서 기체는 실속하게 된다. 플랩이 다 올라오면 양력이 줄어든다.

실제로 사고 조사 과정에서 시뮬레이터로 당시 상황을 재현했을 때, 경고 장치가 작동할 경우는 스틱 셰이커 알람으로 조종사가 실속 상황을 인지하고 남은 2개의 엔진으로 기체를 수습해서 비상착륙에 성공하였으나, 경고 장치가 꺼지자 191편의 조종사들과 똑같은 대처를 하면서 상황을 반전시키지 못했다.

external/upload....

추락 직전 사고기의 모습. 1번 엔진이 떨어져 나간 것과 연료와 유압유가 새는 것이 보인다.

flight-191-b
추락 직후의 모습

결국, 아메리칸 항공 191편은 고도 600피트(182.9m)에서 급 좌선회한 뒤 오후 3시 4분 45초, 격납고에 추락해 탑승자 271명[8]과 지상에 있던 근무자 2명, 총 27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외에 사고기 파편에 맞아 외부 부상자도 5명 생겼지만, 그나마 정말로 다행인 것은 격납고 바로 옆에 주거용 캠핑카들이 모여 있는 트레일러 파크가 있었는데 추락하는 사고기는 겨우 이곳을 피해갔다는 것이다.

추락 1분 후, 시카고 소방서에 공장 화재가 접수되고 이후 DC-10기가 추락하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정정되었다. 소방대에서는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2단계 경보를 발령하고 불을 끄러 나서지만, 사실상 이륙 직후에 추락했기 때문에 연료가 가득했던 비행기여서 불이 너무 강해 근처에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했다.[9] 결국, 시신 10구만 온전히 건져냈고, 나머지는 대부분 화재로 인해 크게 손상되었다. 이런 이유로 미국 전역에서 몇 안 되는 끔찍한 사고로 기록되었다.

4. 사고 이후[편집]

미국 연방항공청은 DC-10의 면허를 사고 2주 후인 1979년 6월 6일부터 임시로 취소한 뒤, 미국 내에서 DC-10이 이륙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후 다른 국가에서도 DC-10의 이륙을 금지하면서 동해 7월 11일까지 약 1개월 동안 DC-10 자체의 이륙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다고 한다.

사고 이후 전체적으로 같은 이유로 파일런에 균열이 난 비행기가 있는지 없는지를 조사했으며,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때와 마찬가지로 해당 정비 방법을 고안한 정비 주임은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증언하기 전에 집에서 자살했다.

아메리칸 항공은 이 사고 때문에 벌금 5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지만, 항공기 손실을 대비해 들어놓은 보험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2500만 달러를 더 받은 셈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과 1982년까지 지속된 미국 내 경제 불황의 영향으로 DC-10의 수주는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다.

5. 사망자 국적[편집]

국적
승객
승무원
지상
247
13
2
4
0
0
1
0
0
1
0
0
4
0
0
1
0
0
총계
258
13
2

6. 기타[편집]

  • 이 사고의 트라우마로 아메리칸 항공은 사고 때까지 DC-10형기에 적용했던 "DC-10 LuxuryLiner" 도장을 "American Airlines LuxuryLiner"로 변경했다.[11] 하지만 다른기종들의 경우 "B767 LuxuryLiner"와 같은 문구를 여전히 기수부에 그려넣다가 US 에어웨이즈에 합병될 때 도장이 변경되며 사라졌다.
  • 1976년에 방영했던 미국의 SF 드라마 '소머즈'의 주인공 여배우 린지 와그너가 191편을 타려다가 타지 않아 사고를 모면한 것이 드러나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이 사고에서는 전술한 것처럼 한국인 사망자도 1명 있었는데, 그 희생자는 당시 IBM 직원이던 한종빈 씨이다. 한종빈 씨는 당해 3월 10일에 기술 연수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하고 사고 날짜로부터 3일 뒤인 5월 28일이 귀국 예정일이었기 때문에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KAL기를 타고 귀국하기 위해 이 비행기를 탔다가 참변을 당해 안타까움을 샀다.
Flight 191 Memor...
191편의 추모 공원
  • 사고 후 32년 간 추모 시설 하나 없었으나, 2011년 10월 15일 추락 지점으로부터 3km 떨어진 지점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쓰여진 벽돌로 만들어진 추모 공원이 만들어졌다.

7. 둘러보기[편집]

[ 2020년대 ]
발생일
사건명
2023년 8월 8일 ~ 8월 11일
101
2022년 6월 27일
53
2022년 5월 24일
22
2022년 1월 23일
39
2021년 6월 24일
98
[ 2010년대 ]
[ 2000년대 ]

[ 199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99년 10월 31일
217
1999년 5월 9일
23
1998년 8월 7일
224
1997년 8월 6일
228
1997년 3월 26일
39
1997년 1월 9일
29
1996년 11월 21일
33
1996년 7월 17일
230
1996년 5월 11일
110
1996년 4월 3일
35
1995년 12월 20일
159
1995년 9월 22일
24
1995년 4월 19일
168
1994년 10월 31일
68
1994년 9월 8일
132
1994년 7월 2일
37
1994년 3월 23일
24
1993년 9월 22일
47
1993년 2월 28일 ~ 4월 19일
86
1992년 3월 22일
27
1991년 10월 19일 ~ 10월 23일
25
1991년 10월 16일
24
1991년 9월 3일
25
1991년 4월 5일
23
1991년 3월 3일
25
1991년 2월 1일
35
1990년 3월 25일
87
1990년 1월 25일
73
[ 198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89년 10월 23일
23
1989년 9월 21일
21
1989년 7월 19일
111
1989년 4월 17일
47
1989년 2월 8일
144
1988년 12월 21일
270
1988년 5월 14일
27
1987년 12월 7일
43
1987년 11월 15일
28
1987년 8월 16일
156
1987년 5월 17일
37
1987년 4월 23일
28
1986년 12월 31일
97
1986년 8월 31일
82
1986년 6월 18일
25
1986년 5월 30일
21
1985년 12월 12일
256
1985년 9월 6일
31
1985년 8월 2일
137
1985년 6월 25일
21
1985년 1월 21일
70
1985년 1월 1일
29
1984년 12월 19일
27
1984년 7월 18일
21
1983년 10월 23일
307
1983년 6월 2일
23
1983년 4월 18일
63
1983년 2월 10일
31
1982년 9월 4일
25
1982년 7월 9일
153
1982년 1월 13일
78
1981년 7월 17일
114
1981년 1월 9일
20
1980년 12월 4일
26
1980년 11월 21일
85
1980년 9월 12일
34
1980년 6월 5일
20
1980년 5월 9일
35
1980년 1월 28일
23
[ 197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79년 5월 25일
273
1978년 11월 18일
918
1978년 9월 25일
144
1978년 4월 27일
51
1978년 1월 28일
20
1977년 12월 13일
29
1977년 11월 6일
39
1977년 7월 19일
40
1977년 6월 26일
42
1977년 5월 28일
165
1977년 3월 27일
583
1976년 10월 20일
78
1976년 6월 4일
46
1976년 5월 21일
29
1976년 4월 27일
37
1976년 3월 9일, 3월 11일
26
1976년 1월 30일
23
1976년 1월 10일
20
1975년 11월 10일
29
1975년 6월 24일
113
1974년 12월 1일
92
1974년 9월 11일
72
1974년 9월 8일
88
1974년 6월 30일
24
1974년 4월 22일
107
1974년 4월 4일
72
1973년 7월 31일
88
1973년 7월 23일
38
1973년 7월 22일
78
1973년 6월 24일
32
1973년 3월 22일
32
1973년 2월 10일
40
1972년 12월 29일
101
1972년 12월 8일
45
1972년 10월 30일
45
1972년 9월 24일
22
1972년 6월 9일
238
1972년 5월 2일
91
1972년 2월 26일
125
1971년 9월 14일
111
1971년 9월 9일 ~ 9월 13일
43
1971년 6월 7일
28
1971년 6월 6일
50
1971년 2월 3일
29
1970년 12월 30일
39
1970년 12월 20일
29
1970년 11월 27일
79
1970년 10월 2일
31
1970년 11월 14일
75
1970년 5월 2일
23
1970년 3월 20일
20
[ 196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69년 9월 9일
83
1969년 6월 3일
74
1969년 2월 18일
35
1969년 1월 18일
38
1969년 1월 14일
28
1968년 12월 27일
28
1968년 12월 24일
20
1968년 12월 12일
51
1968년 12월 2일
39
1968년 11월 20일
78
1968년 10월 25일
32
1968년 8월 14일
21
1968년 5월 27일
99
1968년 5월 22일
23
1968년 5월 3일
85
1968년 4월 6일
41
1967년 12월 15일
46
1967년 11월 20일
70
1967년 7월 29일
134
1967년 7월 19일
82
1967년 6월 23일
34
1967년 6월 8일
34
1967년 3월 9일
26
1967년 3월 5일
38
1967년 2월 7일
25
1966년 10월 26일
44
1966년 8월 6일
42
1966년 6월 16일, 6월 28일
37
1966년 4월 22일
83
1965년 11월 11일
43
1965년 11월 8일
58
1965년 8월 24일
59
1965년 8월 16일
30
1965년 8월 9일
53
1965년 2월 8일
84
1965년 1월 16일
30
1964년 11월 23일
50
1964년 11월 15일
29
1964년 7월 9일
39
1964년 5월 11일
79
1964년 5월 7일
44
1964년 3월 1일
85
1964년 2월 25일
58
1963년 12월 29일
22
1963년 12월 8일
81
1963년 11월 23일
63
1963년 11월 18일
25
1963년 10월 31일
81
1963년 9월 17일
32
1963년 6월 3일
101
1963년 4월 10일
129
1963년 2월 12일
43
1962년 11월 30일
25
1962년 10월 3일
23
1962년 7월 22일
27
1962년 5월 22일
45
1962년 3월 16일
107
1962년 3월 1일
95
1961년 11월 8일
77
1961년 9월 17일
37
1961년 9월 1일
78
1961년 1월 15일
28
1960년 12월 17일
52
1960년 12월 16일
134
1960년 10월 29일
22
1960년 10월 4일
62
1960년 9월 19일
80
1960년 3월 17일
63
1960년 2월 25일
61
1960년 1월 18일
50
[ 195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59년 12월 1일
25
1959년 11월 16일
42
1959년 10월 30일
26
1959년 9월 29일
34
1959년 6월 28일
23
1959년 5월 12일
31
1959년 3월 5일
21
1959년 2월 3일
65
1958년 12월 1일
97
1958년 11월 18일
33
1958년 9월 15일
48
1958년 8월 15일
25
1958년 4월 21일
49
1958년 4월 6일
47
1958년 3월 19일
24
1958년 2월 28일
27
1957년 11월 8일
44
1957년 2월 17일
72
1957년 3월 22일
67
1957년 2월 1일
20
1956년 10월 10일
59
1956년 6월 30일
127
1956년 4월 1일
22
1956년 1월 22일
30
1955년 11월 1일
44
1955년 10월 6일
66
1955년 8월 11일
66
1955년 8월 4일
30
1955년 2월 12일
29
1955년 3월 22일
66
1954년 5월 26일
103
1953년 9월 16일
28
1953년 7월 17일
43
1953년 6월 18일
129
1953년 3월 27일
21
1953년 2월 14일
46
1952년 12월 20일
87
1952년 11월 22일
52
1952년 8월 4일
50
1952년 4월 29일
28
1952년 4월 26일
176
1952년 4월 11일
52
1952년 2월 11일
33
1952년 1월 22일
23
1951년 12월 29일
26
1951년 12월 21일
119
1951년 12월 16일
58
1951년 9월 1일
45
1951년 8월 24일
50
1951년 6월 30일
50
1951년 4월 25일
43
1951년 3월 23일
53
1951년 2월 6일
85
1950년 11월 22일
78
1950년 8월 31일
55
1950년 8월 25일
23
1950년 6월 23일
58
1950년 5월 25일
34
1950년 2월 17일
32
1950년 1월 26일
32
[ 194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49년 11월 29일
28
1949년 11월 1일
55
1949년 7월 12일
35
1949년 6월 7일
53
1949년 4월 4일
74
1948년 12월 28일
32
1948년 10월 27일 ~ 10월 31일
26
1948년 8월 29일
37
1948년 6월 17일
43
1948년 3월 12일
30
1948년 1월 28일
32
1947년 10월 23일
52
1947년 7월 24일
27
1947년 6월 13일
50
1947년 5월 30일
53
1947년 5월 29일
43
1947년 4월 16일
581
1947년 3월 25일
111
1946년 12월 7일
119
1946년 7월 19일
25
1946년 6월 5일
61
1946년 4월 25일
45
1945년 8월 9일
34
1945년 8월 9일
372
1944년 12월 31일
50
1944년 10월 20일
131
1944년 8월 23일
61
1944년 8월 4일
47
1944년 7월 17일
320
1944년 7월 6일
167
1944년 5월 21일
163
1944년 2월 10일
24
1944년 1월 6일
115
1944년 1월 3일
138
1943년 12월 18일
34
1943년 12월 16일
74
1943년 9월 7일
55
1943년 9월 6일
79
1943년 8월 30일
29
1943년 7월 28일
20
1943년 6월 12일
42
1943년 2월 27일
75
1942년 11월 28일
492
1942년 6월 5일
46
1942년 1월 24일
48
1941년 6월 19일
33
1940년 9월 12일
52
1940년 8월 31일
25
1940년 7월 31일
43
1940년 7월 15일
63
1940년 4월 23일
209
1940년 4월 19일
31



[1] 사고 당시에는 테네리페 참사,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다음으로 사망자가 많은 항공사고였다.[2] 1위는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3] 비행기 날개에 엔진 등을 매다는 부품을 말한다.[4] 현재까지도 시간과 정비비를 아끼려고 이런 식으로 정비를 하는 항공사들이 많다.[5] 경력이 29년이나 되었고, 총 비행 시간도 22,500시간인 엄청난 베테랑이었다. 원래 이 날 비번이어서 가족들과 휴가를 보내기로 했으나 동료 조종사의 부탁으로 대신 비행을 맡았다.[6] 이런 상황이 발생한 원인은 해당 기종 DC-10이 조종계통과 블랙박스, 경고장치의 전력 공급을 전적으로 좌측 엔진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중폭격기 B-17이 유압계통을 3번 엔진에게서 끌어쓰는 탓에 독일기들이 3번 엔진을 집요하게 노려 추락시킨 것과 비슷하다.[7]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사고, DHL기 미사일 피습 사건이 이와 똑같은 원인으로 사고를 당했다.[8] 아메리칸 항공은 당시 DC-10 계열의 여객기의 PTV에 라이브로 콕핏뷰의 이륙 과정을 보여주는 서비스를 했는데, 이는 다시 말해 사고기의 탑승자들이 본인들의 운명을 목격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9] 해당 항공편은 시카고에서 로스엔젤레스로 가는 장거리 국내선이라 연료가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10] 자세한 것은 아래에 서술되어 있다.[11] 비슷하게 대한항공에어 프랑스도 각각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에어 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로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은 후 회사 로고를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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