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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이글 4184편 추락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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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ternal/upload....
사고기와 같은 기종의 ATR 72 항공기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유형
결빙
발생 위치
기종
운영사
기체 등록번호
N401AM
출발지
도착지
탑승인원
승객: 64명
승무원: 4명
사망자
탑승객 68명 전원 사망

1. 개요2. 사고 과정3. 사고 조사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1994년 10월 31일 오후 아메리칸 이글 4184편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이륙해 시카고로 향하던 중 사고가 발생해 탑승 인원 68명이 전원 사망한 사고다.

2. 사고 과정[편집]

아메리칸 이글 항공 4184편이 기장 올란도 아귀아[1]와 부기장 제프 가글리아노를 포함한 4명의 승무원과 64명의 승객들을 태운 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이륙해 시카고로 향하던 중이었다.

비행기는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이륙해 시카고로 향하던 중 구름을 통과하다가 난기류를 만났다. 부기장 제프가 이 구간을 맡아 자동조종장치로 난기류가 적은 고도까지 상승했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으로 향하면서 10,000ft(3,050m)로 하강했고, 기상 악화로 오헤어 항공편이 정체되어 몇 대가 대기된 상태였다. 4184와 같이 잔여 연료에 여유가 있는 항공기들은 상공에서 대기중이었다.
공항 남동쪽 V7이라 불리는 홀딩패턴에서 트랙을 맴돌듯이 대기중이었고, 기장은 항공사 일정을 조절하도록 지연 상황을 알리고 교신에 지장이 없게 운항관리부에 문자를 전송했다. 이후 8,000ft(2,440m)로 하강했을때 플랩을 펼친채 과속해서 경고음이 울렸다. 플랩을 접었지만 동체에서는 이상한 소음이 들리는 상황이었고 갑자기 항공기가 우측으로 꺾이고 조종간이 굳은채 움직이지 않았다. 약 5초 후 항공기는 균형을 회복하는가 싶더니 또 다시 조종간이 틀어지며 추락하고, 그로부터 23초 뒤 들판에 고속으로 얕게 추락하면서 탑승 인원 68명 전원이 사망했다.

3. 사고 조사[편집]

추락 다음 날 아침, NTSB 조사팀이 도착했고 추락 지역에 조각난 유해가 넓게 퍼진 것으로 인해[2] 생물학적 위험지역으로 지정됐다. 꼬리 부분에서 블랙박스를 발견한뒤 복원했고, 조사팀은 잔해를 수색했다. 자세지시계(인공수평의)도 수거했는데 이게 오작동하면서 조종사가 판단착오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설이 나왔다. 그러나, 충돌 당시의 충격으로 인해 지시계 표면의 형광페인트가 지시계유리에 찍혀 남아있었던 데다가 이를 통해 계기는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충돌 당시 비교적 수평에 가까웠다는 것 또한 밝혀지면서 해당 설은 배제됐다.

한편 4184기와 함께 대기하던 비행기는 모두 착륙했으나, 대부분이 날개가 결빙된 상태였고, 그 중엔 두께 2cm까지 결빙된 비행기도 발견되어 날개가 결빙되면서 저항이 가중되어 양력이 감소해 조종에 악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설이 나왔다. 당시 시카고 상공에는 한랭전선이 있었고, 영하 8 ~ 12도의 한랭전선을 통과할때 생기는 결빙량은 미미했지만 4184기는 해당 전선을 연속적으로 통과하면서 결빙이 계속해서 쌓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근처서 비행 중이던 부기장은 기장에게 이러한 사실을 다른 조종사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으나 기장이 무시했단 사실도 나오면서 해당 설의 가능성이 점점 높아져 조종사들이 결빙상태를 모른채로 계속해서 비행했을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제빙장치에 이상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었기에 사고기의 제빙장치 잔해를 수거해 프랑스의 제작자로 가져가 내부 밸브의 타이머와 충격 당시 표시 마크를 분석했다. 제빙장치엔 문제가 없었다.

한편 추락 3주후 아메리칸 이글 조종사 스티브 프레드릭이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ATR 72의 결빙문제가 심각하며, 항공사와 당국에 시정을 요청했으나 무시당했단 사실도 밝혔다. 1달 후 조종사들은 악천후시 비행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항공사는 조종사가 없는 편의 운항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프레드릭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익명으로 아침방송 (Good morning America)에 나가 문제를 제기한 이후 항공사로부터 무급정직처분을 받았다.

이러한 일이 생기자 사고기 이력을 조사하고, 운항 사고의 전력을 조사하면서 비슷한 사례를 5건 발견했다. 1988년 11월 위스콘신 모즈니에서 아메리칸 이글 ATR 42가 실속후 양력이 떨어져 추락했지만 출력을 최대한 높이고, 프로펠러 RPM을 86%에서 100%로 올린 끝에 겨우 실속에서 탈출했다. 당시 실속 경보장치는 울리지 않았었다. 또한 이탈리아 항공사의 ATR 42가 1987년 10월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독일로 가다가 추락해 탑승객 37명 전원 사망한 사고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결빙이 원인이었으나 조종사의 실수로 최종 보고된 상태였다. 또한 설계자 역시 결빙문제를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제빙장치의 뒷부분이 얼어버리면 얼음을 제거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3]

날개에 과냉각 상태의 물방울이 부딪히면서 얼어붙으면 얼음층이 날개에 생기고, 그러면서 저항이 가중되어 양력이 감소해 비행기가 추락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얼음은 날개의 앞부분에 얼어서 제빙장치로 제거가 가능하지만, 물방울이 크면 날개 앞부분을 타고 흐르다가 좀 더 뒷편에 얼어붙어 제빙장치로 제거가 불가능했다. 또한 해당 항공기는 고익기 특성상 조종사가 날개 상단의 결빙 여부를 조종실에서 확인할 수 없었기에 결빙의 존재, 심화나 제빙장치의 무력화 상태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제조사는 결빙이 아닌 조종사 실수라 주장했으나, 비슷한 사고에서 보조익이 모두 비슷한 형태로 움직인 것을 확인했다. 결빙으로 기류저항이 커진 것과 동시에 보조익 바로 위에서 난류가 발생하여 보조익을 끌어올린 탓이었다. 조종간이 우측으로 꺾인 것도 조종간이 보조익과 케이블로 연결된 상태여서 우측으로 꺾였고, ATR 조종간에 동력 조타장치가 없어 조종사에게 이 저항이 그대로 전달되어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밝혀지면서 제조사의 주장은 무시되었다. 결국 제조사는 구형 ATR42와 ATR72의 방빙설계에 심각한 설계상 허점이 있다는것을 인정했다.

이후 미국 항공당국에선 결빙 사태에 취약한 항공기의 운항을 정지시켰고#, 지역 항공사는 큰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 제조사는 이후생산되는 기재들의 제빙장치의 앞-뒤 폭을 넓혔고, 구형 ATR기는 항공사 차원에서 비교적 따뜻한 남쪽 항로에 배치해서 결빙 기후 조건을 최대한 피하게 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4. 둘러보기[편집]

[ 2020년대 ]
발생일
사건명
2023년 8월 8일 ~ 8월 11일
101
2022년 6월 27일
53
2022년 5월 24일
22
2022년 1월 23일
39
2021년 6월 24일
98
[ 2010년대 ]
[ 2000년대 ]

[ 199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99년 10월 31일
217
1999년 5월 9일
23
1998년 8월 7일
224
1997년 8월 6일
228
1997년 3월 26일
39
1997년 1월 9일
29
1996년 11월 21일
33
1996년 7월 17일
230
1996년 5월 11일
110
1996년 4월 3일
35
1995년 12월 20일
159
1995년 9월 22일
24
1995년 4월 19일
168
1994년 10월 31일
68
1994년 9월 8일
132
1994년 7월 2일
37
1994년 3월 23일
24
1993년 9월 22일
47
1993년 2월 28일 ~ 4월 19일
86
1992년 3월 22일
27
1991년 10월 19일 ~ 10월 23일
25
1991년 10월 16일
24
1991년 9월 3일
25
1991년 4월 5일
23
1991년 3월 3일
25
1991년 2월 1일
35
1990년 3월 25일
87
1990년 1월 25일
73
[ 198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89년 10월 23일
23
1989년 9월 21일
21
1989년 7월 19일
111
1989년 4월 17일
47
1989년 2월 8일
144
1988년 12월 21일
270
1988년 5월 14일
27
1987년 12월 7일
43
1987년 11월 15일
28
1987년 8월 16일
156
1987년 5월 17일
37
1987년 4월 23일
28
1986년 12월 31일
97
1986년 8월 31일
82
1986년 6월 18일
25
1986년 5월 30일
21
1985년 12월 12일
256
1985년 9월 6일
31
1985년 8월 2일
137
1985년 6월 25일
21
1985년 1월 21일
70
1985년 1월 1일
29
1984년 12월 19일
27
1984년 7월 18일
21
1983년 10월 23일
307
1983년 6월 2일
23
1983년 4월 18일
63
1983년 2월 10일
31
1982년 9월 4일
25
1982년 7월 9일
153
1982년 1월 13일
78
1981년 7월 17일
114
1981년 1월 9일
20
1980년 12월 4일
26
1980년 11월 21일
85
1980년 9월 12일
34
1980년 6월 5일
20
1980년 5월 9일
35
1980년 1월 28일
23
[ 197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79년 5월 25일
273
1978년 11월 18일
918
1978년 9월 25일
144
1978년 4월 27일
51
1978년 1월 28일
20
1977년 12월 13일
29
1977년 11월 6일
39
1977년 7월 19일
40
1977년 6월 26일
42
1977년 5월 28일
165
1977년 3월 27일
583
1976년 10월 20일
78
1976년 6월 4일
46
1976년 5월 21일
29
1976년 4월 27일
37
1976년 3월 9일, 3월 11일
26
1976년 1월 30일
23
1976년 1월 10일
20
1975년 11월 10일
29
1975년 6월 24일
113
1974년 12월 1일
92
1974년 9월 11일
72
1974년 9월 8일
88
1974년 6월 30일
24
1974년 4월 22일
107
1974년 4월 4일
72
1973년 7월 31일
88
1973년 7월 23일
38
1973년 7월 22일
78
1973년 6월 24일
32
1973년 3월 22일
32
1973년 2월 10일
40
1972년 12월 29일
101
1972년 12월 8일
45
1972년 10월 30일
45
1972년 9월 24일
22
1972년 6월 9일
238
1972년 5월 2일
91
1972년 2월 26일
125
1971년 9월 14일
111
1971년 9월 9일 ~ 9월 13일
43
1971년 6월 7일
28
1971년 6월 6일
50
1971년 2월 3일
29
1970년 12월 30일
39
1970년 12월 20일
29
1970년 11월 27일
79
1970년 10월 2일
31
1970년 11월 14일
75
1970년 5월 2일
23
1970년 3월 20일
20
[ 196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69년 9월 9일
83
1969년 6월 3일
74
1969년 2월 18일
35
1969년 1월 18일
38
1969년 1월 14일
28
1968년 12월 27일
28
1968년 12월 24일
20
1968년 12월 12일
51
1968년 12월 2일
39
1968년 11월 20일
78
1968년 10월 25일
32
1968년 8월 14일
21
1968년 5월 27일
99
1968년 5월 22일
23
1968년 5월 3일
85
1968년 4월 6일
41
1967년 12월 15일
46
1967년 11월 20일
70
1967년 7월 29일
134
1967년 7월 19일
82
1967년 6월 23일
34
1967년 6월 8일
34
1967년 3월 9일
26
1967년 3월 5일
38
1967년 2월 7일
25
1966년 10월 26일
44
1966년 8월 6일
42
1966년 6월 16일, 6월 28일
37
1966년 4월 22일
83
1965년 11월 11일
43
1965년 11월 8일
58
1965년 8월 24일
59
1965년 8월 16일
30
1965년 8월 9일
53
1965년 2월 8일
84
1965년 1월 16일
30
1964년 11월 23일
50
1964년 11월 15일
29
1964년 7월 9일
39
1964년 5월 11일
79
1964년 5월 7일
44
1964년 3월 1일
85
1964년 2월 25일
58
1963년 12월 29일
22
1963년 12월 8일
81
1963년 11월 23일
63
1963년 11월 18일
25
1963년 10월 31일
81
1963년 9월 17일
32
1963년 6월 3일
101
1963년 4월 10일
129
1963년 2월 12일
43
1962년 11월 30일
25
1962년 10월 3일
23
1962년 7월 22일
27
1962년 5월 22일
45
1962년 3월 16일
107
1962년 3월 1일
95
1961년 11월 8일
77
1961년 9월 17일
37
1961년 9월 1일
78
1961년 1월 15일
28
1960년 12월 17일
52
1960년 12월 16일
134
1960년 10월 29일
22
1960년 10월 4일
62
1960년 9월 19일
80
1960년 3월 17일
63
1960년 2월 25일
61
1960년 1월 18일
50
[ 195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59년 12월 1일
25
1959년 11월 16일
42
1959년 10월 30일
26
1959년 9월 29일
34
1959년 6월 28일
23
1959년 5월 12일
31
1959년 3월 5일
21
1959년 2월 3일
65
1958년 12월 1일
97
1958년 11월 18일
33
1958년 9월 15일
48
1958년 8월 15일
25
1958년 4월 21일
49
1958년 4월 6일
47
1958년 3월 19일
24
1958년 2월 28일
27
1957년 11월 8일
44
1957년 2월 17일
72
1957년 3월 22일
67
1957년 2월 1일
20
1956년 10월 10일
59
1956년 6월 30일
127
1956년 4월 1일
22
1956년 1월 22일
30
1955년 11월 1일
44
1955년 10월 6일
66
1955년 8월 11일
66
1955년 8월 4일
30
1955년 2월 12일
29
1955년 3월 22일
66
1954년 5월 26일
103
1953년 9월 16일
28
1953년 7월 17일
43
1953년 6월 18일
129
1953년 3월 27일
21
1953년 2월 14일
46
1952년 12월 20일
87
1952년 11월 22일
52
1952년 8월 4일
50
1952년 4월 29일
28
1952년 4월 26일
176
1952년 4월 11일
52
1952년 2월 11일
33
1952년 1월 22일
23
1951년 12월 29일
26
1951년 12월 21일
119
1951년 12월 16일
58
1951년 9월 1일
45
1951년 8월 24일
50
1951년 6월 30일
50
1951년 4월 25일
43
1951년 3월 23일
53
1951년 2월 6일
85
1950년 11월 22일
78
1950년 8월 31일
55
1950년 8월 25일
23
1950년 6월 23일
58
1950년 5월 25일
34
1950년 2월 17일
32
1950년 1월 26일
32
[ 1940년대 ]
발생일
사건명
1949년 11월 29일
28
1949년 11월 1일
55
1949년 7월 12일
35
1949년 6월 7일
53
1949년 4월 4일
74
1948년 12월 28일
32
1948년 10월 27일 ~ 10월 31일
26
1948년 8월 29일
37
1948년 6월 17일
43
1948년 3월 12일
30
1948년 1월 28일
32
1947년 10월 23일
52
1947년 7월 24일
27
1947년 6월 13일
50
1947년 5월 30일
53
1947년 5월 29일
43
1947년 4월 16일
581
1947년 3월 25일
111
1946년 12월 7일
119
1946년 7월 19일
25
1946년 6월 5일
61
1946년 4월 25일
45
1945년 8월 9일
34
1945년 8월 9일
372
1944년 12월 31일
50
1944년 10월 20일
131
1944년 8월 23일
61
1944년 8월 4일
47
1944년 7월 17일
320
1944년 7월 6일
167
1944년 5월 21일
163
1944년 2월 10일
24
1944년 1월 6일
115
1944년 1월 3일
138
1943년 12월 18일
34
1943년 12월 16일
74
1943년 9월 7일
55
1943년 9월 6일
79
1943년 8월 30일
29
1943년 7월 28일
20
1943년 6월 12일
42
1943년 2월 27일
75
1942년 11월 28일
492
1942년 6월 5일
46
1942년 1월 24일
48
1941년 6월 19일
33
1940년 9월 12일
52
1940년 8월 31일
25
1940년 7월 31일
43
1940년 7월 15일
63
1940년 4월 23일
209
1940년 4월 19일
31



[1] 그날은 원래 비번이었으나 임신한 아내의 둘째 출산일이 다가오자 수당을 챙기려고 자원했다.[2]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탑승자들의 사망사유가 "항공사고로 인한 다발적 해부학적 분리로 인한 치명상" 이었으니 말 다했다.[3] 좀 더 고사양 내지는 결빙 기후 조건에 자주 노출될만한 항공기엔 열선, 추출공기, 제빙액 등의 방법도 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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