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멘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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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고대 이집트 제21왕조 초대 파라오 스멘데스 1세 Smendes | ||
이름 | 스멘데스 1세(Smendes I) | |
출생 | 미상 | |
사망 | 기원전 1052년 | |
재위 기간 | 이집트 파라오 | |
기원전 1077/76년 ~ 기원전 1052년 (약 24~25년) | ||
전임자 | ||
후임자 | ||
부모 | ||
배우자 | 텐타문 B(Tentamun B) | |
자녀 | 아메넴니수(추정) | |
무덤 | 불명 |
그의 어머니는 흐레레였다고 하는데, 아문-레 신의 하렘장 직을 맡고 있었기에 아문 대신관의 아내로 추정되며 여동생으로는 노지메트(Nodjmet)가 있었고, 그녀가 당대 테베의 아문 대신관 직을 맡았던 헤리호르(Herihor)와 피앙키(Piankh)와 결혼했기에 처남 사이가 된다. 배우자인 텐타문 B는 람세스 9세의 친딸로 추정한다.
전대 파라오인 람세스 11세 생전부터 하이집트는 이미 스멘데스가 차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람세스 11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그의 장례를 집전하고, 후계자 없는 파라오의 장례를 집전한 자가 다음 파라오가 된다는 고대 이집트의 전통에 따라 파라오로 즉위했다.
하지만 스멘데스의 지배력은 파라오에 즉위하기 전부터 차지했던 하이집트 지역에만 한정되었으며, 중부와 상이집트는 테베의 아문 대신관인 피네젬 1세, 마사하르타, 멘케페레가 자치권을 행사했다. 스멘데스를 언급하는 기록은 2개인데 하나는 에드-디바비야 채석장에서 나온 석비로, 카르나크 신전이 물에 잠길 위험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 수리 명령을 내려 성공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아문 대신관 멘케페레가 테베에서 반란을 일으킨 지도자들을 서부 오아시스로 추방했다는 추방 석비인데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석비에서는 연도를 왕의 재위 25년으로 기록했다. 당대 테베의 아문 대신관이 파라오와 맞먹는 권력을 지녀 왕명을 쓸 정도였지만 연도를 기록할 때는 당대 파라오의 치세 몇 년이라고 기록했기에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이 '왕'은 스멘데스로 확인되었다.
기원전 1052년에 사망하자 친아들로 추정되는 아메넴니수가 뒤를 이었는데, 이 파라오는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아 실존했다는 증거가 후대 파라오인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을 발굴할 때 출토된 화살촉에 나란히 적힌 카르투슈 뿐이다.
무덤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고 1947년에 타니스에서 발굴된 카노푸스 단지가 유일하게 무덤이 있었다는 증거품이다.(현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예술 박물관에서 전시중)
하지만 스멘데스의 지배력은 파라오에 즉위하기 전부터 차지했던 하이집트 지역에만 한정되었으며, 중부와 상이집트는 테베의 아문 대신관인 피네젬 1세, 마사하르타, 멘케페레가 자치권을 행사했다. 스멘데스를 언급하는 기록은 2개인데 하나는 에드-디바비야 채석장에서 나온 석비로, 카르나크 신전이 물에 잠길 위험이 있다는 소식을 듣자 수리 명령을 내려 성공했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아문 대신관 멘케페레가 테베에서 반란을 일으킨 지도자들을 서부 오아시스로 추방했다는 추방 석비인데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석비에서는 연도를 왕의 재위 25년으로 기록했다. 당대 테베의 아문 대신관이 파라오와 맞먹는 권력을 지녀 왕명을 쓸 정도였지만 연도를 기록할 때는 당대 파라오의 치세 몇 년이라고 기록했기에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이 '왕'은 스멘데스로 확인되었다.
기원전 1052년에 사망하자 친아들로 추정되는 아메넴니수가 뒤를 이었는데, 이 파라오는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아 실존했다는 증거가 후대 파라오인 프수센네스 1세의 무덤을 발굴할 때 출토된 화살촉에 나란히 적힌 카르투슈 뿐이다.
무덤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고 1947년에 타니스에서 발굴된 카노푸스 단지가 유일하게 무덤이 있었다는 증거품이다.(현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예술 박물관에서 전시중)
딱히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 못했으나 후대 파라오들에게 유산을 남겼는데, 스멘데스의 즉위명인 헤지케페레 세테펜아문/세테펜레(눈부신 레의 현현, 아문/레에게 선택받은 자라는 뜻)은 제22왕조와 제23왕조 파라오들이 자신의 즉위명으로 쓸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셰숑크 1세, 셰숑크 4세, 타켈로트 1세와 2세, 하르시에레 A(제23왕조의 개창자) 5명이 이 즉위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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