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 BACK << -|- >> HOME <<)

람세스 1세

최근 수정 시각:
편집
현재 사용중인 아이피가 ACL그룹 IDC #12915에 있기 때문에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 펼치기 · 접기 ]
누비아 왕조
아비도스 왕조

고대 이집트 제19왕조 초대 파라오
람세스 1세
Ramesses I
af6053991d61349d...
람세스 1세의 무덤 KV16에 그려진 벽화
이름
람세스 1세(Ramesses I)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290년/1294년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1292년/1295년 ~ 기원전 1290년/1294년
(약 1년)
전임자
후임자
배우자
시트레
자녀
무덤

1. 개요2. 통치

1. 개요[편집]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의 초대 파라오. 신왕국 최고의 전성기를 이끈 제19왕조를 개창한 파라오이지만, 재위 기간이 2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왕조 교체기에 흔들리던 이집트를 안정화하려 애쓴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업적도 없다. '람세스'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한 파라오이며, 그의 뒤를 이어 명군인 세티 1세람세스 2세가 연달아 즉위하며 고대 이집트는 그야말로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2. 통치[편집]

람세스 1세가 등장하기 이전, 이집트 신왕국하트셉수트 여왕, 정복군주 투트모세 3세, 아멘호테프 3세 등 명군들이 연달아 재위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멘호테프 3세 이후 즉위한 아케나텐 시대에 이집트는 격랑에 직면한다. 아케나텐은 기존의 아문 신앙을 부정하고 태양신이자 유일신 아텐 종교를 새로운 국교로 삼았다. 당연히 신관층과 기득권층은 엄청나게 반발했고, 아케나텐 시대의 이집트는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결국 아케나텐이 죽자 아텐 신앙은 버려지고 그가 지은 수도 아케타텐은 버려졌다. 아케나텐 사후 즉위한 투탕카멘, 아이의 시대에 아케나텐은 마치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것처럼 기록말살형에 처해졌다. 이미 즉위할 때부터 고령이던 아이가 짧은 시간 후 죽자 군사령관 호렘헤브가 왕위에 올랐고, 호렘헤브는 강력한 리더십과 군권을 이용해 한창 뒤숭숭한 이집트를 다잡았다. 덕분에 이집트는 아케나텐 사후의 혼란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다.

군사령관 출신인 호렘헤브는 파라오가 된 이후 군대 시절의 측근들을 요직에 기용했다. 이때 많은 군 장교들이 궁정으로 건너왔는데, 훗날 람세스 1세가 되는 파람세스도 이때 높은 관직을 얻었다. 람세스 1세는 왕족은 아니지만 상당히 유력한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세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군대 장교였고, 삼촌 카엠와세트 역시 군 장교였고 쿠시 총독의 친척과 결혼했다. 람세스 1세도 가풍을 이어 군대에 입대했고, 이후 뛰어난 능력으로 호렘헤브의 총애를 얻었다. 호렘헤브는 파라오가 된 이후 람세스 1세를 특별히 재상 겸 세트 대신관으로 임명했다. 람세스 1세는 세트 대신관으로서 기존 종교를 숭상하고 아텐 신앙을 배척하는데 앞장서며 신관층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호렘헤브가 14여 년 정도의 통치를 마치고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재상이었던 람세스 1세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를 제19왕조의 시작이라 본다.

람세스 1세는 이미 즉위할 때부터 고령이었다. 그는 대관식을 치르고 대략 16~17개월 후에 그대로 사망했다. 재위 기간이 지나치게 짧았기에 특별한 원정을 떠났다거나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우지도 못했다. 람세스 1세는 기원전 1290/1294년 즈음에 사망했고, 그의 미라는 대충 급조된 무덤에 안장되었다.[1] 람세스 1세가 죽은 후 명군 세티 1세, 람세스 2세 등이 연달아 즉위했고, 이집트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참고로 그의 미라는 상당히 수난을 겪었다. 람세스 1세의 무덤은 진작에 도굴당했고, 무덤이 털린 것을 본 아문 신관들은 붕대를 감은 다음 미라를 다시 염하고 다른 파라오들의 미라와 함께 데이르 엘 바하리의 TT320 무덤에 재안장했다. 그러나 1860년 경 오스만 제국의 총독 대리가 그의 미라를 무덤에서 꺼내 미국인에게 팔아넘겼고, 람세스 1세의 미라는 캐나다 온타리오의 한 개인 박물관에 130여 년 가까이 잠들어 있었다. 이후 박물관 내 유물들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과정에서 이 미라가 람세스 1세라는 것이 밝혀졌고, 결국 2003년 10월 24일에 다시 이집트돌아왔다. 이집트 정부에서는 국가원수에 준하는 의전으로 람세스 1세를 맞았다.
[1] 세티 1세는 나중에 아비도스 등지에 아버지를 기리는 작은 사당을 세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  
  •  
  •  
  •  
  •  
  •  
  •  
  •  
  •  
  •  
  •  
  •  
  •  
  •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