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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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6세는 로마 태생으로 상귀니 가문 출신이었다. 요한 8세 시절 로마 교구 특무장관을 지냈으며 요한 10세 때에는 수산나의 사제급 추기경이었다. 요한 10세가 마로치아 일파에게 제거당한 후 차기 교황으로 지명되어 사실상 꼭두각시
짧은 기간 동안 그가 교회 내에서 이룬 업적은 스플리트 시노드의 교령을 재확인한 것과 달마티아[1]에서의 성직자들의 분쟁을 정리한 것 그리고 주교들의 시목 범위를 자신이 속한 교구로 한정한 것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전임자에 이어서 이슬람 세력에 여러 제후들이 맞설 것을 주창하였으며 이교도들과의 싸움에서 순교한 사람들에게 천국이 약속 될 것임을 설파했다. 어찌 보면 십자군 전쟁에 서막을 열었던 것이다. 한편 사회적으로도 특이한 법을 제정하였는데, 결혼하지 않은 남성의 거세를 금지한 것이었다.
제한된 권한과 외세의 침략에서도 꿋꿋하게 버틴 레오 6세의 최후는 그다지 좋지 않아서 교황이 된지 6개월 만에 감금[2]되었고, 이듬해 2월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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