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노리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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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명 | 호노리오 3세 (Honorius III) |
본명 | 첸치오 사벨리(Cencio Savelli) |
출생 | |
사망 | |
재위기간 | |
언어별 명칭 |
제177대 교황.
1197년 당시 독일 국왕이자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는 프리드리히 2세의 개인 지도 교사로 일했다.
1216년 교황에 오른 호노리오 3세는 헝가리 국왕 언드라시 2세와 독일 국왕 프리드리히 2세를 계속해서 참가를 재촉해 1217년 제 5차 십자군 원정을 추진했다.[1]
호노리오 3세는 여러 수도회들을 공식 승인했는데, 1216년에는 도미니코회를, 1223년에는 프란치스코회를, 1226년에는 카르멜회를 가톨릭교회의 정식 수도회로 인정했다.
호노리오 3세는 교육을 매우 중요시 여겼는데 그는 성직자가 될 것이라면 무릇 철저한 신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이에 그는 당시 신학 지식이 없거나 심지어 문맹인 주교들을 가차없이 파면했다. 그리고 파리 대학교와 볼로냐 대학교에 특권을 부여해 예비 성직자들의 교육을 강화했다.
1216년 교황에 오른 호노리오 3세는 헝가리 국왕 언드라시 2세와 독일 국왕 프리드리히 2세를 계속해서 참가를 재촉해 1217년 제 5차 십자군 원정을 추진했다.[1]
호노리오 3세는 여러 수도회들을 공식 승인했는데, 1216년에는 도미니코회를, 1223년에는 프란치스코회를, 1226년에는 카르멜회를 가톨릭교회의 정식 수도회로 인정했다.
호노리오 3세는 교육을 매우 중요시 여겼는데 그는 성직자가 될 것이라면 무릇 철저한 신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이에 그는 당시 신학 지식이 없거나 심지어 문맹인 주교들을 가차없이 파면했다. 그리고 파리 대학교와 볼로냐 대학교에 특권을 부여해 예비 성직자들의 교육을 강화했다.
[1] 언드라시 2세는 원정에 참가했으나 프리드리히 2세는 장기간의 해외 원정을 꺼려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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