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오 6세

베네딕토 9세는 실베스테르 3세를 몰아내고 교황 자리를 되찾았지만 이미 막장행각으로 인해 로마 시민들의 지지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네딕토 9세는 자신의 대부(代父)였던 요한 그라시아누스와 상담을 하게 되는데 가문의 강요로 교황이 된 것을 후회하고, 또한 결혼도 하고 싶어서 교황직을 넘기고 싶어했다. 이에 베네딕토 9세는 그라시아누스에게 연금으로 사용할 일정한 금액을 주면 교황직을 넘기겠다고 제안한다. 그라시아누스는 거액을 주어서라도 교황을 바꾸는게 낫다고 생각하여 이 제안을 수락하고, 교황직에 올라 그레고리오 6세로서 착좌한다.

비록 교황직을 매매하긴 했지만, 그레고리오 6세는 경건하다는 평을 받는 인물이었고,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교회회의를 주최하며 당시 만연했던 성직자들의 방종을 바로잡고자 했다. 하지만 이미 교황직은 로마의 귀족들과 일부 가문들에 의해 좌지우지된지 오래되었기에 그레고리오 6세의 개혁은 순탄치 못했고, 방해받기 일쑤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힐데브란트[1] 신부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교회를 개혁해 나간다.

하지만 그의 교황 자리를 위협하는 일들이 이어지게 되는데, 이미 한 번 교황좌에 착좌했다 쫓겨난 실베스테르 3세가 자신을 교황이라 주장한데다가 베네딕토 9세 역시 다시 교황 자리를 찾기 원했기에 3명의 교황이 난립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레고리오 6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3세에게 중재를 요청하게 된다. 그레고리오 6세는 자신이 정당한 교황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이를 하인리히 3세가 확고히 해줄 것이라 믿었다.

황제는 알프스를 넘어 자신에게 중재를 요청하러온 교황을 융숭히 맞아들였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트리 공의회를 개최한다. 이 회의에서 베네딕토 9세, 실베스테르 3세의 주장은 기각되었고, 그레고리오 6세에게는 사임 권고가 내려진다. 교회회의에서 비록 그레고리오 6세가 사적인 욕심으로 교황이 되고자 한 것은 아닐지라도 엄연히 성직매매로 볼 수 있는 사항임을 주지시켰으며 그레고리오 6세는 이를 수긍하여 교황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후임으로는 밤베르크의 주교 수이드거가 선출, 클레멘스 2세로서 교황좌에 착좌한다.

교황 자리에서 물러난 그레고리오 6세는 이듬해 황제를 따라 독일로 거처를 옮겼으며 1048년 1월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