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노첸시오 1세
최근 수정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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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대 성 아나스타시오 1세 | → | 제40대 성 인노첸시오 1세 | → | 제41대 성 조시모 |
출생 | |
사망 | |
재위기간 | 제40대 교황 |
전임 교황들에 이어 교황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 교회 내 분쟁이나 의논에 있어서 교황이 최종적인 해결자의 역할을 해야 함을 주장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펠라기우스[1]에 관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카르타고에서 열린 교회회의가 진행되던 중 인노첸시오 1세로부터 펠라기우스를 파문하는 걸 지지하는 서한이 오자 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노가 “로마에서 발언했으니 사건은 이제 끝났다(Roma Locuta Est. Causa Finita Est).”고 말한 일화가 있다.
교회 뿐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중재자가 되기도 했는데 서고트족이 로마에 쳐들어와 왔을 때 황제 호노리우스와 서고트족의 지도자 알라리크의 사이를 중재하기도 했다. 사후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7월 28일이다.
교회 뿐 아니라 정치적인 면에서도 중재자가 되기도 했는데 서고트족이 로마에 쳐들어와 왔을 때 황제 호노리우스와 서고트족의 지도자 알라리크의 사이를 중재하기도 했다. 사후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7월 2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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