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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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태생인 요한 1세는 로마의 원로 부제였다가 523년 8월 13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동고트 왕 테오도리크가 교황으로 하여금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도록 압박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다스리는 동로마 제국의 동방 교회와 서방교회가 전임 교황 호르미스다 이래 서로 화해하여 테오도리크가 불신했기 때문이었다. 테오도리크는 요한 1세에게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직접 찾아가 아리우스주의자들의 건물을 압류하고 강제 개종을 시키는 등 박해를 멈추도록 부탁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테오도리크의 압력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갔건만, 요한 1세는 고트족 왕의 기대와 달리 동방 교회와의 화해를 계속하는 태도를 취해 오히려 로마 제국의 재통일을 꿈꾸는 황제와 관계가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테오도리크는 분노해서 요한 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돌아오자마자 강제 퇴위시켰다. 교황이 사망한 곳이 동고트 왕국의 도읍인 라벤나였기 때문에, 요한 1세가 죽은 데에는 테오도리크와 모종의 관련이 있는 듯하다.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동고트 왕 테오도리크가 교황으로 하여금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도록 압박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다스리는 동로마 제국의 동방 교회와 서방교회가 전임 교황 호르미스다 이래 서로 화해하여 테오도리크가 불신했기 때문이었다. 테오도리크는 요한 1세에게 유스티니아누스 1세를 직접 찾아가 아리우스주의자들의 건물을 압류하고 강제 개종을 시키는 등 박해를 멈추도록 부탁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테오도리크의 압력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갔건만, 요한 1세는 고트족 왕의 기대와 달리 동방 교회와의 화해를 계속하는 태도를 취해 오히려 로마 제국의 재통일을 꿈꾸는 황제와 관계가 한층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테오도리크는 분노해서 요한 1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돌아오자마자 강제 퇴위시켰다. 교황이 사망한 곳이 동고트 왕국의 도읍인 라벤나였기 때문에, 요한 1세가 죽은 데에는 테오도리크와 모종의 관련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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