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데르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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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명 | 알렉산데르 4세 (Alexander IV) |
본명 | 리날도 디 옌네이 (Rinaldo di Jennei) |
출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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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 |
언어별 명칭 |
가톨릭교회의 181대 교황이다. 본명은 리날도 디 옌네이이다.
1199년(1185년경이라고도 한다) 교황령의 엔네이에서 태어났다. 외삼촌인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1227년에 부제급 추기경으로 서임되면서 프란치스코회의 보호자로 임명되었고, 1227년부터 1231년까지 교황청 궁무처장을 역임했다. 1231년에는 오스티아의 주교급 추기경이 되었고, 1244년에는 추기경단 단장이 되었다.
1254년 12월 12일 인노첸시오 4세가 선종한 후 교황으로 즉위했다. 이전의 교황들과 같이 시칠리아의 호엔슈타우펜 세력과 대립하였고, 구엘프-기벨린 갈등이 격화되어 로마가 구엘프 측으로 기울면서 비테르보로 피신했다. 교황은 1261년 5월 25일 비테르보에서 선종했고, 사후 비테르보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재위 기간 동안 동서 교회의 일치에 주력하고 프랑스에 이단재판소를 설치하였으며, 몽골의 두번째 폴란드 침공 이후 십자군 조직을 시도하였다. 또한 아시시의 클라라를 시성하였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입은 성흔을 인정하였으며 이단심문관들이 점술이나 마술의 문제를 다루지 않도록 규정했다.
1254년 12월 12일 인노첸시오 4세가 선종한 후 교황으로 즉위했다. 이전의 교황들과 같이 시칠리아의 호엔슈타우펜 세력과 대립하였고, 구엘프-기벨린 갈등이 격화되어 로마가 구엘프 측으로 기울면서 비테르보로 피신했다. 교황은 1261년 5월 25일 비테르보에서 선종했고, 사후 비테르보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재위 기간 동안 동서 교회의 일치에 주력하고 프랑스에 이단재판소를 설치하였으며, 몽골의 두번째 폴란드 침공 이후 십자군 조직을 시도하였다. 또한 아시시의 클라라를 시성하였고,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입은 성흔을 인정하였으며 이단심문관들이 점술이나 마술의 문제를 다루지 않도록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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