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 BACK << -|- >> HOME <<)

니콜라오 1세

최근 수정 시각:
3
편집
현재 사용중인 아이피가 ACL그룹 IDC #12915에 있기 때문에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초대-제60대]  
  [제61-120대]  
  [제121-180대]  
제121대
제122대
제123대
제124대
제125대
제126대
제127대
제128대
제129대
제130대
제131대
제132대
제133대
제134대
제135대
제136대
제137대
제138대
제139대
제140대
제141대
제142대
제143대
제144대
제145대
제146대
제147대
제148대
제149대
제150대
제151대
제152대
제153대
제154대
제155대
제156대
제157대
제158대
제159대
제160대
제161대
제162대
제163대
제164대
제165대
제166대
제167대
제168대
제169대
제170대
제171대
제172대
제173대
제174대
제175대
제176대
제177대
제178대
제179대
제180대
  [제181-240대]  
제181대
제182대
제183대
제184대
제185대
제186대
제187대
제188대
제189대
제190대
제191대
제192대
제193대
제194대
제195대
제196대
제197대
제198대
제199대
제200대
제201대
제202대
제203대
제204대
제205대
제206대
제207대
제208대
제209대
제210대
제211대
제212대
제213대
제214대
제215대
제216대
제217대
제218대
제219대
제220대
제221대
제222대
제223대
제224대
제225대
제226대
제227대
제228대
제229대
제230대
제231대
제232대
제233대
제234대
제235대
제236대
제237대
제238대
제239대
제240대
105 s niccolo I
제105대
성 니콜라오 1세
제105대 교황
니콜라오 1세
Ioannes VII
414px-Pope Nicho...
출생
사망
867년 11월 13일 (향년 67세)
국적
재위기간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니콜라오 1세는 제105대 가톨릭의 교황이다.

2. 생애[편집]

베네딕토 3세의 선종 이후 니콜라오 1세는 858년 4월 24일 로타링기아 국왕 로타르 2세의 임석 하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의 10년 간 치세는 교황의 수위권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투쟁은 라벤나 대주교 요한의 방종과 로마로부터의 독립 시도를 막기 위한 싸움이었다. 교황은 몸소 라벤나까지 출두하여 요한을 압박했으며 두 번이나 파문을 선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라벤나 대주교를 굴복시켰다.

두 번째 투쟁은 프랑스 랭스 대주교 힝마르크와의 대립이었는데, 주교의 파문 및 성직자 승품에 관한 문제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교황은 교회의 중요한 문제는 대주교가 아닌 교황이 직접 관여해서 결정해야 함을 관철시켰다.

세 번째 투쟁은 혼인 문제에 관한 것으로 로타르 2세가 본처를 버리고 새로운 여인과 결혼을 하기 위해 이혼을 하고자 하여 마찰이 이어졌다. 혼인의 불가침성을 강조하였던 교황은 황제 편을 들었던 로탕링기아 주교들을 내쫓기에 이른다. 결국 로타르 2세는 군대를 동원해서 로마를 포위하고 교황을 압박했지만, 교황이 끝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중재에 의해 황제가 로마의 포위를 풀고 교황은 파면한 주교들을 복직하게 하였으며 황제가 본처에 대한 관계를 개선하도록 권하였으나 후자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동방 교회와의 마찰 및 수위권 강화를 위한 싸움이 이어졌는데,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선임 문제와 불가리아 제1제국으로의 선교 갈등으로 동서방 교회의 대립이 심해졌다. 니콜라오 1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포티오스를 인정하는 것을 거부했고, 이에 포티오스는 교회회의를 열어 서방 교회의 교리를 비판하고 교황을 파문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이 도착하기 전인 867년 11월 13일에 교황은 사망하고 만다.

사망 이후 후임 하드리아노 2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축일은 11월 13일로 정해졌다. 니콜라오 1세는 레오 1세, 그레고리오 1세와 함께 3번째 "대교황"이며, 그 이후로 대교황의 칭호를 받은 교황은 아직까지 없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  
  •  
  •  
  •  
  •  
  •  
  •  
  •  
  •  
  •  
  •  
  •  
  •  
  •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