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군
최근 수정 시각:
분류
군청 소재지 | |||
광역자치단체 | |||
하위 행정구역 | |||
면적 | 416.6㎢ | ||
인구 | 59,625명[1] | ||
인구 밀도 | 143.12명/㎢[2] | ||
조근제 (재선) | |||
군의회 | 6석[3] | ||
3석[4] | |||
1석[5] | |||
조영제(재선) | |||
조인제(초선) | |||
국회의원 | 박상웅 (초선) | ||
지역번호 | 055 | ||
홈페이지 | |||
링크 |
![]() |
함안군 상징 브랜드 |
함안군 상징 CI |
삼국시대 초기, 가야 중 아라가야(阿羅伽倻)의 영역이었다. 가야의 여러 소국 중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었지만 진흥왕 때인 561년, 신라에 멸망했고, 한때 신라판 광역시쯤 되는 아시촌 소경이기도 했다. 신라 경덕왕 때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름인 함안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려시대인 995년(성종 14)에 함주(咸州)가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함안군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함안현이 되었다. 1374년(공민왕 22)에 함안군이 되었다.
조선시대인 1505년(연산군 11)에 함안도호부가 되었다. 1506년(중종 1)에 함안군이 되었다.
1908년 칠원군이 함안군에 병합되고, 1914년 상봉면, 하봉면, 상사면이 진주군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영산군 길곡면의 사촌리, 금암리 일부 및 마산부 내서면 예곡리 일부를 병합했다. 1933년 죽남면이 군북면에 병합되었다. 1944년 여항면 산서출장소[6]가 설치되었다.
1954년 군청을 함안면에서 가야면으로 이전했다. 1973년 함안군 대산면 산서리를 가야면에 편입했다. 1979년에 가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9년 여항면 산서출장소가 의창군 진전면에 편입되었다. 2015년 1월 칠원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른다.
고려시대인 995년(성종 14)에 함주(咸州)가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함안군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함안현이 되었다. 1374년(공민왕 22)에 함안군이 되었다.
조선시대인 1505년(연산군 11)에 함안도호부가 되었다. 1506년(중종 1)에 함안군이 되었다.
1908년 칠원군이 함안군에 병합되고, 1914년 상봉면, 하봉면, 상사면이 진주군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영산군 길곡면의 사촌리, 금암리 일부 및 마산부 내서면 예곡리 일부를 병합했다. 1933년 죽남면이 군북면에 병합되었다. 1944년 여항면 산서출장소[6]가 설치되었다.
1954년 군청을 함안면에서 가야면으로 이전했다. 1973년 함안군 대산면 산서리를 가야면에 편입했다. 1979년에 가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9년 여항면 산서출장소가 의창군 진전면에 편입되었다. 2015년 1월 칠원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른다.
북쪽으로 낙동강·남강을 끼고 창녕군·의령군과 접하고, 동쪽과 남쪽으로 창원시, 서쪽으로 진주시·의령군에 접한다.
군 전역이 신라통의 지질로, 남부에 여항산·오봉산·방어산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솟아 있으나 군 전체는 대체로 구릉지대가 많다. 하천은 남쪽의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낙동강 및 남강에 합류하며[7], 낙동강·남강 및 여러 지류 연안에 평야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속에서 생산한 함안 수박은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 등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칠원군이 월경지로 바다에 접했었고 칠원읍 예곡리~마산만간 거리가 약:8km라서 진주시와 남해안의 내륙지역에서 바다와 두번째로 가깝다.
위 연혁에서 1944년 여항면 산서출장소가 있던 곳이 1989년 창원군에 편입되었다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 이 지역은 여항산, 서북산으로 함안군 본토와 산맥(낙남정맥)으로 분리된 곳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우마차도로를 사람들이 걸어다녔기 때문에 진전면보다는 북쪽의 군북면이나 동북쪽의 여항면 생활권이었던 것.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그로 인한 차량화로 창원군 쪽에서 접근이 더 용이하게 되어 결국 1989년 이 지역을 다시 창원군에 떼어주게 된 것이다. 당장 1970년대 이래로 이 곳을 들어가는 시외버스는 모두 남마산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노선이었고 지금은 진동환승센터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자연지리와 인문지리가 서로 간섭하며 교통의 발전에 의해 생활권이 변경되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경남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동부, 서부경남을 정하는 기준이 하나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함안을 기준으로 서쪽인 의령, 진주 등은 서부경남으로, 동쪽인 창원, 김해 등은 동부경남으로 분류한다. 함안의 경우 창원과의 연계가 강하기에 동부경남으로 분류한다. 경남동부보훈지청, 동부 중추도시생활권 등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군 전역이 신라통의 지질로, 남부에 여항산·오봉산·방어산 등 비교적 높은 산들이 솟아 있으나 군 전체는 대체로 구릉지대가 많다. 하천은 남쪽의 여러 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낙동강 및 남강에 합류하며[7], 낙동강·남강 및 여러 지류 연안에 평야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속에서 생산한 함안 수박은 지리적 표시제/대한민국에 등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칠원군이 월경지로 바다에 접했었고 칠원읍 예곡리~마산만간 거리가 약:8km라서 진주시와 남해안의 내륙지역에서 바다와 두번째로 가깝다.
위 연혁에서 1944년 여항면 산서출장소가 있던 곳이 1989년 창원군에 편입되었다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 이 지역은 여항산, 서북산으로 함안군 본토와 산맥(낙남정맥)으로 분리된 곳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우마차도로를 사람들이 걸어다녔기 때문에 진전면보다는 북쪽의 군북면이나 동북쪽의 여항면 생활권이었던 것. 그러던 것이 197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그로 인한 차량화로 창원군 쪽에서 접근이 더 용이하게 되어 결국 1989년 이 지역을 다시 창원군에 떼어주게 된 것이다. 당장 1970년대 이래로 이 곳을 들어가는 시외버스는 모두 남마산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노선이었고 지금은 진동환승센터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자연지리와 인문지리가 서로 간섭하며 교통의 발전에 의해 생활권이 변경되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경남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동부, 서부경남을 정하는 기준이 하나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함안을 기준으로 서쪽인 의령, 진주 등은 서부경남으로, 동쪽인 창원, 김해 등은 동부경남으로 분류한다. 함안의 경우 창원과의 연계가 강하기에 동부경남으로 분류한다. 경남동부보훈지청, 동부 중추도시생활권 등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1966년~현재) |
1966년 122,179명 |
1969년 119,066명 |
1972년 107,290명 |
1975년 98,984명 |
1978년 90,515명 |
1981년 80,790명 |
1984년 77,067명 |
1987년 69,264명 |
1990년 59,820명 |
1993년 70,217명 |
1996년 67,269명 |
1999년 66,335명 |
2002년 64,952명 |
2005년 62,356명 |
2008년 68,368명 |
2011년 70,100명 |
2014년 72,330명 |
2017년 71,822명 |
2020년 67,261명 |
2023년 60,203명 |
2024년 4월 59,62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1966-2020: 함안군 통계연보, 2023-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읍면별 인구 통계 |
함안군은 경남 최대도시인 창원과 인접해 있어 경상남도의 군들 중에서는 인구 수가 가장 많다.[8]
이촌향도가 활발하던 시기에는 여타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속적인 인구 감소 추세였다. 1960년대 인구가 122,179명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1989년 여항면 일부가 의창군으로 넘어가며 잠시 59,820명을 기록하여 잠시 5만명 선으로 내려왔다가 회복하였다. 그 뒤 살짝 회복세를 보이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다시 감소세를 보였는데 인접한 옛 마산시 내서읍 일대의 아파트단지가 확장을 거듭해 2006년 칠원읍 일대에 메트로자이 아파트, 블루밍 아파트 등의 소위 브랜드 있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 감소경향이 역전, 인구가 단숨에 수천명 늘어났고 입주시기 이후로도 조금씩 인구가 유입되어 2011년 70,100명을 기록하여 1986년 69,880명으로 7만명 선 아래로 내려온 이후 25년만에 다시 넘겼으나, 그 이후 경남 내 인구 감소율이 군지역 중 3위에 이를 정도로 인구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읍 승격 상한인 20,000명을 넘겨 읍으로 승격된 칠원읍은 다시 감소하여 현재 19,000명대에서 정체된 상황이다. 이후 2015년 72,899명(외국인 인구 포함)에서 계속 감소하다 2019년 69,198까지 떨어져 8년만에 7만명 선이 무너졌다. 이후로도 계속 인구가 감소하다가 결국 2024년 2월 인구 6만선이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총 증감수 -62,204명/총 증감율 -50.91%/연평균 증감율 -1.26%
1966년 19,575명 |
1970년 17,239명 |
1975년 18,509명 |
1980년 15,918명 |
1985년 15,250명 |
1990년 14,517명 |
1995년 16,733명 |
2000년 17,388명 |
2005년 16,637명 |
2010년 18,371명 |
2015년 19,409명 |
2020년 18,666명 |
2024년 2월 17,367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만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1966년 10,271명 |
1970년 9,161명 |
1975년 8,325명 |
1980년 7,298명 |
1985년 7,844명 |
1990년 7,875명 |
1995년 10,135명 |
2000년 10,435명 |
2005년 9,982명 |
2010년 18,801명 |
2015년 21,073명 |
2020년 19,486명 |
2024년 2월 18,214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1966년 8,514명 |
1970년 7,302명 |
1975년 6,738명 |
1980년 5,605명 |
1985년 4,761명 |
1990년 4,461명 |
1995년 3,813명 |
2000년 3,264명 |
2005년 2,562명 |
2010년 2,873명 |
2015년 2,647명 |
2020년 2,401명 |
2024년 2월 2,37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9천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1966년 21,979명 |
1970년 19,498명 |
1975년 18,210명 |
1980년 14,456명 |
1985년 12,316명 |
1990년 9,693명 |
1995년 8,414명 |
2000년 8,001명 |
2005년 6,705명 |
2010년 6,888명 |
2015년 6,792명 |
2020년 6,228명 |
2024년 2월 5,789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1966년 12,050명 |
1970년 10,642명 |
1975년 9,702명 |
1980년 7,631명 |
1985년 6,638명 |
1990년 4,764명 |
1995년 4,324명 |
2000년 3,597명 |
2005년 3,084명 |
2010년 3,246명 |
2015년 3,196명 |
2020년 2,888명 |
2024년 2월 2,72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1966년 16,342명 |
1970년 14,597명 |
1975년 11,611명 |
1980년 9,192명 |
1985년 7,571명 |
1990년 5,924명 |
1995년 5,465명 |
2000년 5,337명 |
2005년 3,959명 |
2010년 4,351명 |
2015년 3,941명 |
2020년 3,478명 |
2024년 2월 3,168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75만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1966년 11,481명 |
1970년 9,341명 |
1975년 8,523명 |
1980년 6,931명 |
1985년 5,900명 |
1990년 4,911명 |
1995년 4,446명 |
2000년 4,189명 |
2005년 6,130명 |
2010년 6,483명 |
2015년 6,177명 |
2020년 5,404명 |
2024년 2월 4,98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25만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1966년 9,370명 |
1970년 8,041명 |
1975년 7,292명 |
1980년 5,430명 |
1985년 4,051명 |
1990년 3,147명 |
1995년 2,703명 |
2000년 2,410명 |
2005년 2,043명 |
2010년 2,337명 |
2015년 2,115명 |
2020년 1,948명 |
2024년 2월 1,842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만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1966년 6,759명 |
1970년 5,988명 |
1975년 5,199명 |
1980년 4,391명 |
1985년 4,005명 |
1990년 3,357명 |
1995년 3,354명 |
2000년 3,270명 |
2005년 2,598명 |
2010년 2,934명 |
2015년 2,888명 |
2020년 2,771명 |
2024년 2월 2,623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7천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1966년 6,826명 |
1970년 5,543명 |
1975년 4,847명 |
1980년 3,501명 |
1985년 3,010명 |
1990년 1,160명 |
1995년 956명 |
2000년 864명 |
2005년 826명 |
2010년 923명 |
2015년 918명 |
2020년 912명 |
2024년 2월 88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7천 명 1966-2005: 통계청 인구총조사, 2010-현재: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
말이산 고분군(사적 515호)과 함안박물관[13], 입곡군립공원, 여항산 등의 관광지가 있다.
남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법수면 악양둑방(338km) 바깥쪽 일부 구간(6.5㎞, 11㏊) 모래사장에 꽃을 심어 거대한 꽃단지를 만드는 사업을 벌여 2021년 5월 처음 선을 보였는데 양귀비, 수레국화, 데이지 등이 장관을 연출, 첫 달에만 10만명이 다녀가는 성과를 얻었다. 9월에도 코스모스, 백일홍, 천일홍 등을 심었는데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방문객 수는 1만명 정도로 주춤하였지만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는 것을 보고 고무된 함안군은 2022년 5월에는 면적을 13㏊까지 늘렸고 이번에는 20만명이 다녀간 것으로 나타나 함안군의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되어 2019년 후기에 사적으로 지정된 함안 가야리 유적도 유명하다.
남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법수면 악양둑방(338km) 바깥쪽 일부 구간(6.5㎞, 11㏊) 모래사장에 꽃을 심어 거대한 꽃단지를 만드는 사업을 벌여 2021년 5월 처음 선을 보였는데 양귀비, 수레국화, 데이지 등이 장관을 연출, 첫 달에만 10만명이 다녀가는 성과를 얻었다. 9월에도 코스모스, 백일홍, 천일홍 등을 심었는데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방문객 수는 1만명 정도로 주춤하였지만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는 것을 보고 고무된 함안군은 2022년 5월에는 면적을 13㏊까지 늘렸고 이번에는 20만명이 다녀간 것으로 나타나 함안군의 새로운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되어 2019년 후기에 사적으로 지정된 함안 가야리 유적도 유명하다.
고려가 멸망하자 당시 성균관진사였던 재령 이씨 가문의 모은 이오(李午)가 가족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내려와 마을 주위에 담을 치고 고려동학(高麗洞壑, 고려 마을)이라는 비석을 세운 뒤, 담장 안에서 논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하면서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살았고, 아들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고 나 죽은 뒤에라도 내 위패를 이 마을 밖으로 옮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뒤 자손들이 이오의 유언을 지켜서 19대 600여 년 동안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았고 고려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다고. 이곳은 현재 고려동유적지라는 이름으로 경남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행정구역상 주소는 경남 함안군 산인면 모곡리 580번지(모곡 2길 53)이다.
- 삼칠줄다리기
보통 음력 2월 1일을 개최되는 것이 보통이다. 남부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줄다리기 행사중 하나이다. 새해 복과 운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칠원읍VS칠북면, 칠서면 으로 보통 팀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다. 몇백명이 개미떼처럼 달라붙어 줄을 당기는 광경을 볼수 있다. 2016년 3월 11일 ~ 12일에 걸쳐 행사를 할 예정. 줄다라기 행사가 메인행사이며, 불꽃놀이, 줄다리기, 연등달기, 초청가수 공연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시골축제 스타일의 행사가 이어진다. - 함안아라문화제
함안지역 최대축제이다. 보통 4월 중순에서 말쯤 군민의 날을 전후하여 3일간 함안공설운동장과 함주공원에서 진행된다. 원래이름은 아라제였으나 2017년 이후로 행사명이 변경되었다. 첫날에는 아라대왕행렬[14]과 처녀뱃사공가요제라는 이름의 개막식을 진행한다. 그리고 그후에 불꽃놀이를 한다. 둘째, 셋째날에는 부스형태로 각 단체에서 준비한 행사와 함께, 함안문화예술회관 옆의 공터에서 수박축제를 같이 진행한다. 그리고 말이산고분군 유네스코 등재추진을 기념해 다양한 아라가야시대의 모습을 경험해볼수 있는 다양한 행사도 진행한다. 다만, 2022년부터는 함안공설운동장이 아니라 함안박물관 및 말이산고분군 일원에서 개최되었으며, 처녀뱃사공가요제도 함안아라문화제가 끝난 후 분리 개최되었다. - 무진정 낙화놀이
1. 함안수박: 함안수박이 주로 재배되는 남강과 낙동강 유역은 경사도가 15% 이하인 완만한 충적 평야지로 되어 있어 일조의 효율성이 높고 수박재배가 용이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지형이 동서 방향이 길은 이점으로 일조량이 풍부하고, 이에 11월~2월 평균기온은 2.1℃로 높아 재배지의 토양 지온 확보에 도움을 주어 생육 초기 근권 온도의 낮음에 따른 초기생육 부진, 뿌리 신장 억제 등을 방지하여, 함안수박은 전국 으뜸상품으로서 과육의 질이 좋고 당도가 높으며 이뇨, 주독, 소변 불통 등에 좋다. 그리고 지리적표시제로 등록되어 있기도 하다.
2. 함안가야백자메론: 흰색 바탕에 녹색 호피무늬가 그려진 외형이 가야시대 도자기인 백자와 유사해 가야백자멜론이라는 이름이 붙은 '함안가야백자멜론'은 국내 메론 생산량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함안에서 재배되어 입맛 까다로운 홍콩, 대만 등의 해외국가 수출을 통해 상품성을 인정받고있다. '함안가야백자멜론'은 다른 멜론과 달리 껍질이 얇아 먹기 쉬우며, 과육이 하얗고 부드러워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사르르 녹는 식감을 느낄 수 있으며 또 15~17 brix의 고당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한 맛을 유지한다.
3. 함안포도: 고당도로 산미는 완숙되며 적은 편이다. 육질은 질긴 편이나 과피와 쉽게 분리되며 과즙이 많아 인기가 많고 향미가 좋고 과즙이 풍부하며, 수분과 살이 많이 여기저기 활용도가 높다. 포도에도 종류가 다양한데 일반적인 포도는 캠벨얼리, 다른 포도에 비해 알이 크고 씨가 없는 포도는 거봉이 있으며 껍질이 푸르고 포도 중에서도 가장 단 포도로 알려진 청포도 등이 있다.
4. 함안 파프리카: 따뜻한 기후와 양지바른 토양에서 재배되어 선명하고 진한 빨간, 노랑, 초록빛의 색감을 가진 '함안파프리카'는 높은 당도와 아삭한 식감으로 보석채소라 불리며 달지만 100g 당 19kcal의 낮은 열량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일본까지 수출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5. 함안 단감: '함안단감'의 주 생산지역은 칠북면으로 일조량이 좋고 일교차가 커서 감을 재배하기에 좋은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당도가 뛰어나고 아삭한 맛을 자랑한다.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해외로 꾸준히 수출하고 있다.
2. 함안가야백자메론: 흰색 바탕에 녹색 호피무늬가 그려진 외형이 가야시대 도자기인 백자와 유사해 가야백자멜론이라는 이름이 붙은 '함안가야백자멜론'은 국내 메론 생산량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함안에서 재배되어 입맛 까다로운 홍콩, 대만 등의 해외국가 수출을 통해 상품성을 인정받고있다. '함안가야백자멜론'은 다른 멜론과 달리 껍질이 얇아 먹기 쉬우며, 과육이 하얗고 부드러워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사르르 녹는 식감을 느낄 수 있으며 또 15~17 brix의 고당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한 맛을 유지한다.
3. 함안포도: 고당도로 산미는 완숙되며 적은 편이다. 육질은 질긴 편이나 과피와 쉽게 분리되며 과즙이 많아 인기가 많고 향미가 좋고 과즙이 풍부하며, 수분과 살이 많이 여기저기 활용도가 높다. 포도에도 종류가 다양한데 일반적인 포도는 캠벨얼리, 다른 포도에 비해 알이 크고 씨가 없는 포도는 거봉이 있으며 껍질이 푸르고 포도 중에서도 가장 단 포도로 알려진 청포도 등이 있다.
4. 함안 파프리카: 따뜻한 기후와 양지바른 토양에서 재배되어 선명하고 진한 빨간, 노랑, 초록빛의 색감을 가진 '함안파프리카'는 높은 당도와 아삭한 식감으로 보석채소라 불리며 달지만 100g 당 19kcal의 낮은 열량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일본까지 수출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5. 함안 단감: '함안단감'의 주 생산지역은 칠북면으로 일조량이 좋고 일교차가 커서 감을 재배하기에 좋은 지역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당도가 뛰어나고 아삭한 맛을 자랑한다.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해외로 꾸준히 수출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4개의 사립고와 1개의 공립고, 5개의 사립중과 4개의 공립중이 존재한다. 대학은 없다.[15]
학교법인 명덕육영회라는 재단이 이 지역 교육을 담당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중에서는 공립인 함안고등학교를 제외한 모든 고등학교를, 중학교도 9개 중 5개로 반 이상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 이후 부족한 중등교육기관을 보충하기 위해 1954년 함안여자중학교를 시작으로 학교를 설립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중에서는 함안고등학교가 지역의 명문고로 알려져 있어 창원이나 부산 등에서 꾸준히 학생이 유입되는 편이며, 최근에는 명덕고등학교도 꾸준히 입시성적을 올리고 있다.
중학교는 특목고에 매년 몇 명을 보내긴 하지만, 대부분 함안고나 명덕고 또는 특성화고 등으로 보내는 편이다.
학교법인 명덕육영회라는 재단이 이 지역 교육을 담당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중에서는 공립인 함안고등학교를 제외한 모든 고등학교를, 중학교도 9개 중 5개로 반 이상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6·25전쟁 이후 부족한 중등교육기관을 보충하기 위해 1954년 함안여자중학교를 시작으로 학교를 설립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중에서는 함안고등학교가 지역의 명문고로 알려져 있어 창원이나 부산 등에서 꾸준히 학생이 유입되는 편이며, 최근에는 명덕고등학교도 꾸준히 입시성적을 올리고 있다.
중학교는 특목고에 매년 몇 명을 보내긴 하지만, 대부분 함안고나 명덕고 또는 특성화고 등으로 보내는 편이다.
창원 방송 권역이나 창원과 진주 사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진주 지역 방송도 수신 가능하다.
특별한 군사시설은 없고 소대~중대규모 작은부대만 있던 시골이었으나, 2015년 6월 창원시내 한복판에 있던 제39보병사단 사령부와 사단 신병교육대가 군북면으로 이전해 왔다.
창원, 구체적으로는 마산의 영향이 매우 강하다. 통근, 통학, 쇼핑 등의 목적으로 창원에 가는 함안군민들이 많아 창원과 광역환승할인을 실시하고 있고 군내에서 제일 인구가 많은 칠원읍은 인근 창원 내서읍과 같은 생활권을 구성하고 있다. 2013년 12월 27일에 개설되기 전까지 서울특별시로 가는 버스가 전혀 없는 전국에 얼마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였고, 생긴 지금도 편수가 적어 대부분 내서고속버스터미널로 넘어가서 탄다.
마창진 통합 전후에는 마창진과 함께 통합대상으로 고려되기도 했다. 군내에서 2011년 10월 21일 토론회를 열고 군내 여론조사를 했는데 대체로 창원과의 통합에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다만 함안 내 찬성 여론이란 것도 대체로 함안 내에서 좀 번화한 축에 드는 동네에서 나오는 소리이며,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는 창원과 통합하게 되면 각종 혐오시설이 함안군 낙후지역으로 몰릴 수 있기 때문에 마냥 긍정적이지는 않다.
- 함안 조씨의 본관이다.
- 같은 도에 이름이 비슷한 함양군이 있어 헷갈릴 수 있다. 실제로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과 이를 극화한 허준(드라마)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초반 주무대는 안의/산청 지역인데, 초반 시점 작중에서 유의태가 "이웃대감 치료하러 간다"고 언급하며 함안에 간다. 실제로 그 지역에서 가까운 곳은 함안이 아니라 함양이 맞지만, 작가가 헷갈린 것인지 현대 교통수단 기준으로도 2시간 걸리는 함안으로 잘못 서술되어버렸다. 실제론 멀리 갈 것도 없이 안의 지역의 관할지 자체가 함양군(!)이다.
그래도 굳이 설명을 위해 당시 교통수단 기준으로 무대가 되는 안의/산청에서의 함안행 경로가 어떻냐면 "산청-생비량-칠곡-의령-(두 개의 1000m급 험산준령 넘기)-정암나루(배타고 남강 건너기+늪지대 끼며 가기)-군북(현재의 39보병사단 주둔지)-(고개를 하나 더 넘기)-현 함안면 봉성리"다. 절대 어디 한군데 생략한 것 없이 진짜 경로구성이 저렇다. 안의/산청에서 함양은 당대 교통수단 기준에서 가기가 쉽지만(안의 지역이 함양군 관할이기도 하고), 함안은 그 지역에서 가는 것 자체가 하루는 우습게 넘어간다.(위에 설명한 경로로). 그런데 말 타거나 걸어서 하루 안에 갈 수 있다고 언급한다?입지를 생각하지 못한 서술에, 함양군 의문의 1패.참고로 이 루트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명량으로 후퇴할 때 함안, 창녕, 초계, 진주 등지를 돌며 병사를 모으며 전라좌수영까지 가는 데 17일이 걸렸던 바가 있다.
- 군청에서 최초로 목걸이형 카메라 녹화제를 도입하여 악성 민원이 효과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직접적으로 체감되어 타 지자체에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강삼재: 前 정치인, 신한국당 사무총장
- 김용원: 인민혁명당 사건 사형수
- 김정수: 前 국회의원
- 김주호: 前 농림수산부 장관
- 류춘열: 해양경찰청 차장(치안정감)
- 박능후: 前 보건복지부 장관
- 설정환: 배우
- 송상근: 해양수산부 차관
- 안대희: 前 검사
- 안홍준: 의사, 정치인
- 양우정: 정치인
- 윤한도: 정치인
- 이만열: 역사학자,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 이우환: 화가
- 이장수: 축구감독
- 이태준: 독립운동가
- 이성형한국전통호칭전례연구소
- 정남규: 前 정치인
- 정정길: 前 대통령실장
- 조석래: 효성그룹 현 회장
- 조용주 : 전 국토부 관료.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 역임.
- 조진래: 정치인
조현룡: 정치인- 조홍래: 정치인
- 홍남표: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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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년 4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현황[2] 2024년 4월 기준.[3] 함안군 가선거구 (가야읍, 함안면, 여항면): 이만호, 조용국
함안군 나선거구 (군북면, 법수면): 조만제
함안군 다선거구 (칠원읍, 대산면, 칠서면, 칠북면, 산인면): 황철용, 곽세훈
비례대표: 안말남[4] 함안군 가선거구 (가야읍, 함안면, 여항면): 정금효
함안군 다선거구 (칠원읍, 대산면, 칠서면, 칠북면, 산인면): 김영동, 배재성 [5] 함안군 나선거구 (군북면, 법수면): 문석주[6]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고사리, 평암리, 금암리를 관할했다.[7] 함안의 남고북저한 지형때문이다.[8] 진주와도 접하고는 있지만 접경지역이 인구가 적은 면지역뿐이고 진주시내와는 거리가 멀어서 창원에 비해 영향력이 미미하다.[9] 군사무소 소재지의 면은 읍으로 한다에 따라 승격[괄호] 10.1 10.2 10.3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3] 박물관은 말이산 고분군의 바로 옆에 있다.[14] 아라가야시대의 대왕행렬을 재현하여 아라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함안공설운동장 주경기장까지 행진한다.[15] 함안 동부와 인접한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전문대인 마산대학교가 있으며 조금 더 동남쪽으로 가면 역시 마산에 4년제인 경남대학교가 있다. 서쪽에 위치한 진주에는 대학이 많은 편이다.[16] '후생의원'이란 곳이 장터에 하나 더 있었지만 여기는 내과 전문. 구자운의원은 정형외과에 강점이 있었고 특히 수술실을 갖추고 있었다.[17] 지역구: 경기도 남양주시 을[18] 그러나 활동은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했으며 관련 유적지와 묘소도 여수에 있다. 2015년 10월 함안에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개관되었다.[본적지] 19.1 19.2 출생지가 아닌 본적지가 함안군이다.
함안군 나선거구 (군북면, 법수면): 조만제
함안군 다선거구 (칠원읍, 대산면, 칠서면, 칠북면, 산인면): 황철용, 곽세훈
비례대표: 안말남[4] 함안군 가선거구 (가야읍, 함안면, 여항면): 정금효
함안군 다선거구 (칠원읍, 대산면, 칠서면, 칠북면, 산인면): 김영동, 배재성 [5] 함안군 나선거구 (군북면, 법수면): 문석주[6]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고사리, 평암리, 금암리를 관할했다.[7] 함안의 남고북저한 지형때문이다.[8] 진주와도 접하고는 있지만 접경지역이 인구가 적은 면지역뿐이고 진주시내와는 거리가 멀어서 창원에 비해 영향력이 미미하다.[9] 군사무소 소재지의 면은 읍으로 한다에 따라 승격[괄호] 10.1 10.2 10.3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13] 박물관은 말이산 고분군의 바로 옆에 있다.[14] 아라가야시대의 대왕행렬을 재현하여 아라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함안공설운동장 주경기장까지 행진한다.[15] 함안 동부와 인접한 마산회원구 내서읍에 전문대인 마산대학교가 있으며 조금 더 동남쪽으로 가면 역시 마산에 4년제인 경남대학교가 있다. 서쪽에 위치한 진주에는 대학이 많은 편이다.[16] '후생의원'이란 곳이 장터에 하나 더 있었지만 여기는 내과 전문. 구자운의원은 정형외과에 강점이 있었고 특히 수술실을 갖추고 있었다.[17] 지역구: 경기도 남양주시 을[18] 그러나 활동은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했으며 관련 유적지와 묘소도 여수에 있다. 2015년 10월 함안에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개관되었다.[본적지] 19.1 19.2 출생지가 아닌 본적지가 함안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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