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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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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죽저맛에서 넘어옴
분류
제15-16대
박종웅
제17-22대
조경태
현직
조경태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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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후반기
노영민
제19대 후반기
조경태
제20대 전반기
장병완
제19대 후반기
정희수
제20대 전반기
조경태
제20대 후반기
정성호
대한민국 제17-22대 국회의원
조경태
趙慶泰 | Cho Kyoung-tae
조경태 증명사진
출생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마동마을[2]
거주지
본관
현직
제22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사하구 을 당협위원장
국민의힘 뉴시티프로젝트특별위원회 위원장
-대만의원친선협회 회장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고문위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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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배우자 신미숙, 슬하 1녀
학력
병역
종교
소속 정당
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
지역구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17, 18, 19, 20, 21, 22
소속 위원회
경력
노무현 국회의원 비서관
부산전문대학 강사
민주당 부산 사하구 갑 지구당 위원장
부산시지부 중소기업육성특위 위원장
극일운동연합 집행위원
위천공단 대책위원회 집행위원
복민정책연구회 이사
새천년민주당 부산 사하구 을 지구당 위원장
새천년민주당 부대변인
노무현 대통령후보 정책보좌역
노무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참여정부)
정치개혁추진위원회 청년위원장
열린우리당 부산시지부 청년위원장
다대어민회 명예어민
명예택시기사
을숙도대교 통행료인하 추진위원장
신평-장림-다대지하철 추진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사하구청년연합회 고문
제17대 국회의원 (부산 사하구 을 /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제18대 국회의원 (부산 사하구 을 / 통합민주당)
민주당 부산광역시당 위원장
연세대학교 토목공학과 객원교수
UST 초빙교수
제19대 국회의원 (부산 사하구 을 / 민주통합당)
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민주당 최고위원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제19대 국회 후반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의원 (부산 사하구 을 / 새누리당)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장
제20대 국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수석최고위원
미래통합당 수석최고위원
제21대 국회의원 (부산 사하구 을 /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1차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jp희망캠프 선거대책위원장
한-대만의원친선협회 회장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직능본부장
국민의힘 부산광역시당 위원장[8]
국민의힘 3차 전당대회 당대표 예비후보
국민의힘 뉴시티프로젝트특별위원회 위원장
제22대 국회의원 (부산 사하구 을 / 국민의힘)

1. 개요2. 일생3. 비판 및 논란4. 기타5. 소속 정당6. 선거 이력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공학자, 교육인,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정치인.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 지역구는 사하구 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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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타[편집]

  • 지역구 사정에 매우 밝은 국회의원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사하구에 설치되어 있는 방범용 CCTV나 가로등 수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다 알고 있다. 덕분에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봐도 지역구 내에서의 평판이 상당히 좋은 국회의원으로, 이는 사하구 을에서만 내리 6선[9]을 한 것으로 증명 가능하다.[10]
  • 18대 국회에서 활동할 당시 쇠고기 문제로 청문회에서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장관에게 강경하게 나가 조포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로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조포스라고 ID를 쓰는 거 보면 좋아하는 듯. ## 아이러니하게도 8년 후인 2016년 조경태가 민주당을 탈당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20대 총선 때 둘 다 같은 당 후보로 당선되기까지 했는데 정운천은 새누리당 분당 사태 당시 탈당해 바른정당-바른미래당으로 간 반면 조경태는 탈당하지 않고 자유한국당에 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0년 미래통합당 출범 이후 정운천이 합류하면서 21대 국회에서도 같은 당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보수 지지세가 강한 부산광역시에서 민주당 깃발로 3선을 한 것으로 유명하여 지역주의 타파의 선봉장 중 하나로 불렸다. 그 3선 중에 17대 총선, 18대 총선은 운이 좋은 케이스[11]였고, 당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매우 놀라워했다고 하는데, 이런 탓에 당시 당선자들 중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유일하게 호출을 받아 대통령을 독대하여 극찬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2000년대 후반까지도 야권 내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분류되었다.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대연정 파동 때 당내외 여론이 악화되는 와중에 대연정 제안을 강력히, 꽤 문제되는 발언까지 섞어가며 옹호하기도 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6.4 지방선거 때 적지인 대구광역시에 출마하였으나 안타깝게 석패 후 20대 총선에서 되었고,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예산폭탄 공약을 내걸고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의 순천시·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상대측인 새정치민주연합서갑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바가 있지만 2000년대 이후 최초는 조경태였다.
  • 민주당 시절에는 다선인 것과는 별개로 비주류에 인지도도 생각보다 높지 않았던 탓에 당내 지지층이 전무했다. 한 예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한명숙 지도부는 문재인 후보가 출마한 사상구는 자주 들렀지만 사상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그의 사하구 을 선거구에는 한 번도, 아니 아무도 방문을 안 했다.[12] 의외로 그의 지역구에서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이자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가 이곳에서 적극적인 유세 활동을 벌였는데 이는 새누리당 측에서 조경태 의원이 상당한 강적임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 2012년 이후로는 본인이 당내 지지층을 갉아먹는 행보를 보인 것도 있었다. 김한길 대표 시절에 최고위원을 했던 당시에도 지역 현안과 관련된 내용을 읊었던 정치인이라 지역민의 평판은 좋았지만 당 주류이자 부산시당의 다수를 이루는 친문 인사들과 다양한 현안에서 끝없이 대립각을 펼친 탓에 당 지지층뿐만 아니라 지역 당원으로부터도 지지를 잃은 정황들이 포착되었다. 재선 의원 당시 부산시당위원장 선거에서 낙마한 적도 있고, 막말 논란으로 징계위에 회부되었을 때 그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 을 당원들이 그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라고 청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또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 언론사가 지역 여론을 취재했는데 몇몇 노년층 유권자들이 ''조경태가 일은 정말 잘한데이. 그런데 요즘 들어 와 자꾸 문재인한테 개겨서 일을 만드노?"라는 말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13]
  • 이렇게 민주당 내에서 입지가 약했던 탓에 누구도 어려울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최고위원직에는 자력으로 당선된 적이 있다. # 하지만 2014년 7.30 재보궐선거 패배 책임으로, 지도부 총 사퇴와 동시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 때문에 정무감각이 없다는 소리도 듣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 정계 입문 후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당론과 다른 행보를 자주 보여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정체성을 의심받는 일이 더러 있었고, 특히 골수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에게 자주 공격받았다. 이 때문에 둘의 사이는 굉장히 견원지간이다. 정청래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라 진보 성향이 뚜렷해 보수 성향이 진한 조경태 의원과는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정청래는 조경태를 향해 "내무반에 총질 말라.",[14] "민주당에 쓴소리 하듯이 박근혜 정부를 비판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비난했고 이에 대해 조경태는 원전 비리, 밀양송전탑 문제, 대일 외교 저자세 등에 대해 비판해 왔다고 반박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 때도 조경태 의원의 "당에 물의를 일으킨 김현을 출당시키고 일벌백계해야 한다."라는 발언에 정청래 의원은 "조경태를 출당시켜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이 때문인지 민주당에 오랫동안 몸담았고 PK 3선 의원이라는 민주당 입장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기록을 세운데다 한때 원조 친노로 분류됐을 정도였음에도 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15] 위에 나온 정청래와의 설전이 대표적인 예. 과거 보수정당에 몸 담았다가 민주당계 정당으로 넘어온 손학규진영, 김부겸이 양대 정당의 험악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 소속, 심지어 범친박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과도 아직까지 막역한 사이인 것을 보면 꽤 씁쓸한 부분이다.[16]
  • 사실 애초에 조경태는 정계 데뷔부터가 진보 정치인들과는 연관이 없는 편이다. 민주당에 있을 때도 당 내에서 보수적인 편이었던 데다 신보수인사라고 분류되었으니, 진보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과 마찰을 빚는 건 당연지사일 터. 이는 조경태가 친문친노의 후예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17] 꼬마민주당에서 정계 데뷔를 했으나, 합당 때 조순, 이기택, 김부겸, 강창성, 제정구와 같이 넘어왔다가 16대 총선 공천 때 진영과 다르게 고배를 마시고 탈당 직후 민주당으로 넘어왔다. 국립대인 부산대학교를 다닐 때도 가난했던 집안 때문에 고학으로 졸업할 정도였으니 운동권과 연이 없기도 했다.[18] 다만, 군사정권 자체는 운동권보다도 적대적으로 본다. 2019년 정의당에서 한창 비례대표제 확대를 요구했을 당시, "비례대표유신정우회 때 나온 것이다. (독재)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한 것이 비례대표인데 무슨 확대요?"라고 비판하며, 정의당은 물론이고 군사정권까지 세트로 비판했을 정도.# 다만 해당 발언은 사실관계가 명확히 잘못된 발언이다.[19]
  •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한다. 정계 입문도 노무현에 의해 영입되었고,[20] 한때 원조 친노라고 불렸을 정도로 줄곧 노무현의 최측근으로 있었다. 대표적으로 반노였던 후단협이 맹비난할 당시, 끝까지 노무현을 비호한 적도 있었고, 보수 정당으로 당적을 바꾼 지금까지도 노무현 추도식에 매년 참석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10주기 추도식 때도 보여지는데,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황교안이 불참했을 때도 조경태는 자유한국당 의원 신분으로 참석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통합 뜻을 받들어야 한다."며 여야 모두를 비판한 적도 있었다. 다만 친노의 후예로 여겨지는 문재인 및 친문 세력과는 사이가 나쁘다. 조경태가 처음부터 문재인을 비판한 건 아니었고, 노무현 사후 문재인이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노선이 달라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었다. 첫 당선 당시, 노무현이 "조경태 학습법을 배워야 한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
  • 강용석 전 의원과는 견원지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매우 안 좋았던 적이 있었다. 단순히 서로 반말까는 정도가 아니라 육두문자 빼고 다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21] 현재는 같은 진영이 됐지만, 강용석이 각종 사건 사고들로 더 이상은 정계에 복귀할 수 없게 되면서 다행히(?) 마주칠 일도 없게 되는줄 알았는데, 2021년 10월달에 강용석이 소장으로 있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에 출연하면서 오랜만에 마주앉아서 좋은 얘기를 나눴다.
  • 당선 인사를 하러 경남고 대선배인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갔더니 큰일을 해냈다고 칭찬받았다고 한다. #
  • 은근히 김범수와 외모가 닮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젊었을 때 사진을 보면 정말 닮았다.
  • 가장 유명한 어록으로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는가?"가 있다. 해당 발언은 조경태가 보수 정당으로 이적하기 전인 2015년에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한 말이다.# 나중에 조경태가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마 등을 거치며 인지도가 오른 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에 대해 언급될 때 종종 등장하고 있다. 아예 줄여서 "죽저맛"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윤석열을 당선시키면서 꼴갤새보갤 중심으로 재소환 중이다.
  • 보수 정당 소속 PK 다선 의원들 중 인지도, 지역구 장악력, 인기가 높은 편이라 차기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매년 주목받고 있다. 그간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었던 김세연 의원이나 박민식 전 의원에 비해 의원 선수도 높고 본래 민주당 출신이라 중도 확장성도 저 둘에 비해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 이 때문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김세연 의원과는 은근히 기싸움이 오갔다. 대표적으로 강남 병 공천 사태 당시 김세연 의원이 "이 정도는 쿨하게 넘어가주자"라고 했던 데에 조경태 수석 최고위원이 절대 안 된다며 공관위를 압박해서 공천을 철회시키는 일이 있었다. 한편 해운대구 갑에서 조경태와 비슷한 스코어[22]로 민주당 후보를 털어버린 하태경 의원도 부산시장 후보군에 꼽혔으나, 22대 총선을 앞두고 서울 출마를 선언했던 만큼 다시 부산에 내려올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 열린우리당으로 당선된 이후 새누리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지역사무소 간판에 당 로고만 제거한 채 열린우리당의 색상인 노란색 간판을 유지했다. 거꾸로,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의 노란 점퍼가 아닌 구 민주당의 색깔인 연두 점퍼를 입고 다녔다.
  • 대표적인 반중, 친대만 성향의 정치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이는 보수 정당에 입당하기 전인 민주당계 정당 의원 시절에도 노골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대만 재수교 주장도 통합민주당 의원이었던 18대 국회 시절에 발언한 것이었다. 현재 한-대만의원친선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2024년 라이칭더 총통 취임식에 참석한 것을 두고 중국 정부가 항의했다.##
  • 민주당계 정당에 소속되었던 시절에는 소속 의원들이 종편 채널 출연을 거부하던 것과는 달리 박지원 의원과 더불어 종편 채널에 자주 출연하였다.
  • 국제 문제에 관심이 많고 다문화 정책 제정에도 힘쓰고 있는 국회의원 중에 한 명이다. 2017년 자유한국당 의원 시절 다문화가족 지원센터협회로부터 표창을 받았고 2018년에는 한국당 난민대책특위 위원장으로 일했다.
  • 민주당계 출신이지만 최근에는 친박친황 다음가는 강경 보수인 친홍으로 구분된다. 홍준표 캠프 소속이기도 했다. 만약 홍준표가 국힘 대선후보에 선출되어 당선됐다면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토교통부장관으로 입각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는데, 홍준표가 경선에서 탈락하면서 잠잠해졌다.
  • 웃통을 까면서까지 선거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설명하겠다는 의미에서 메가스터디 정치와 법 강사 최적이 1996년 국회의원 포스터를 '선거게임' 강좌에서 활용했다.

5.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통일민주당 흰색 로고타입
1988 - 1990
입당[25]
1990
탈당[26]
민주당 1990년 글자
1990 - 1991
창당
민주당(1991년) 로고타입
1991 - 1995
합당[27]
민주당(1991년) 로고타입
1996 - 1997
합당[28]
정계 입문
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
1997 - 2000
합당[29]
2000
탈당[30]
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
2000 - 2003
입당
2003
탈당[31]
열린우리당 로고타입
2003 - 2007
창당
2007
탈당[32]
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
2007 - 2008
창당
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
2008
합당[33]
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
2008 - 2011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
2011 - 2013
합당[34]
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
2014 - 2015
창당[35]
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
2015 - 2016
당명 변경
2016
탈당[36]
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
2016 - 2017
복당[37]
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
2017 - 2020
당명 변경
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
2020
창당[38]
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
2020 - 현재
당명 변경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부산 사하 갑
민주당(1991년) 로고타입
10,835 (15.51%)
낙선 (3위)
2000
부산 사하 을
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
13,351 (17.50%)
낙선 (2위)
2004
열린우리당 로고타입
36,614 (39.13%)
당선 (1위)
초선
2008
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
31,330 (44.89%)
재선
2012
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
49,849 (58.17%)
3선[39]
2016
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
50,337 (59.65%)
4선[40]
2020
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
59,042 (58.79%)
5선[41]
2024
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
46,855 (55.62%)
6선
  • 19대 총선부터 21대 총선까지 같은 사진을 선거 벽보에 사용했다.
  • 민주당을 떠나 보수정당[42]으로 당적을 옮긴 이후로 선거 벽보에 '일 잘하는 우리 경태'라는 문구를 꾸준히 사용하고 있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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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당 지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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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위원회 의장
전국위원회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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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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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최고위원
청년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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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 인요한 · 김민전 ·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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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기획부총장
조직부총장
홍보본부장
당대표 비서실장
수석대변인
대변인
상근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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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무감사위원장
중앙연수원장
홍영림
국민의힘 흰색 아이콘 상설위원회
국책자문위원장
중앙위원회 의장
국가안보위원장
인권위원장
북한인권 및 탈·납북자위원장
재정위원장
강중구
법률자문위원장
인재영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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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청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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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장애인위원장
홍보위원장
지방자치위원장
대외협력위원장
재외동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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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원장
통일위원장
재해대책위원장
중소기업위원장
소상공인위원장
중산층·서민경제위원장
국회보좌진위원장
김민정
국민통합위원장
약자와의동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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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특별위원장
경제혁신위원장
저출생대책특별위원장
미래산업일자리특별위원장
코로나19대책특별위원장
디지털자산특별위원장
뉴시티프로젝트특별위원장
미디어특별위원장
국회휘장 원내기구 (의원총회 · 정책위원회)
원내수석부대표
원내부대표
원내대표 비서실장
원내대변인
정책위원회 의장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정책위원회 부의장
제1정책조정위원장
박수영 (정무·기재·예결)
제2정책조정위원장
권영진 (농해수·산중·국토)
제3정책조정위원장
유상범 (운영·법사·행안)
제4정책조정위원장
강대식 (외통·국방·법사)
제5정책조정위원장
김미애 (복지·환노·여가)
제6정책조정위원장
최형두 (교육·과방·문체)
정책조정부위원장
[1] 음력 1967년 12월 11일[2] #[3] 24세손 ○태(泰)자 항렬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30세손 ○래(來)자 항렬이다. 그리고 족보명은 태래(泰來)이며, 아버지는 조재제(趙在濟)다.#[4] 석사 학위 논문 : 軟弱地盤(연약지반)의 盛土(성토)에 따른 近接構造物(근접구조물)의 影響抑制(영향억제) 對策(대책)에 관한 硏究(연구)(1994).[5] 박사 학위 논문 : 一次元(일차원) 壓密試驗(압밀시험)에 의한 洛東江(낙동강) 河口(하구) 粘土(점토)의 크리프 特性(특성)에 관한 實驗的(실험적) 硏究(연구)(1999. 2).[6] 소집해제[7] 예장합동 소속 신평로교회의 집사이다.[8] 국민의힘 3차 전당대회에 당대표로 출마하며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규정' 제26조 6항'에 따라 당직에서 사퇴했다.[9] 국민의힘에서 한 지역구에 내리 6선 이상 눌러앉은 사람은 조경태가 유일하다. 주호영도 내리 6선이지만 수성구 을 4선+수성구 갑 재선으로 수성구 내에서 지역구를 한 번 옮겼다. 더불어민주당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대전 서구 갑시흥시 을에서만 6선을 한 박병석 前 국회의장(16~21대)과 조정식 의원(17~22대) 정도밖에 없다. 이들의 나이가 현재 각각 60~70대이고 당직 생활에서 두각을 드러낸 후 40대에 정치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36세부터 60세까지 24년을 국회의원으로 보내게 된다는 것은 인생의 본업이 국회의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20대부터 정치인으로 살아왔고, 만 28세부터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을 감안하면 인생 자체가 정치인이었다.[10] 22대 총선에서 부산 유일의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전재수도 개인 기량이 뛰어나고 지역구 내에서 평판이 좋은데, 실제로 21대 국회에서 조경태 다음으로 부산광역시 국회의원 공약이행률이 높은 사람이 전재수다.[11] 초선 당시에는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높았던 시절이었고, 한 번은 친박, 비박 이렇게 보수 후보가 2명이 나와 보수표가 분산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당선된 것도 있었다.[12] 여기엔 세 가지 설이 있는데, 조경태가 "나야말로 원조 친노"라는 발상 + 친문 선거전이 선거에 유리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지도부와 처음부터 거리감을 드러냈다는 것, 혹은 친문에서 조경태를 동지가 아니라고 생각해 경원시했다는 설이 있다. 이후에 벌어진 역사를 고려하면 이 세 가지가 모두 작용한 것 같다(...)[13] 이 당시 문재인은 노무현의 남자였고, 사상구에서 과반으로 당선된 것을 보아도, 노년층의 지지율도 어느 정도 가져와서 이긴 것도 있었다.[14] 근데 정작 정청래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적이 있어서 군면제를 받았다.[15] 다만 정청래도 자신의 지역구 관리는 조경태 뺨칠 정도로 잘 한다. 17대부터 21대까지 그의 지역구를 아예 손혜원이 물려받아서 했을 정도로 정청래의 지역구 파워는 대단했다. 그도 그럴게 마포구의 숙원 사업이 정청래한테 가니까 다 해결됐더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 거기에 정청래나 조경태나 절대 상대방에게 지고는 못 사는 쌈닭들이라, 애초 섞일 수가 없는 존재였다.[16] 손학규는 민주당계 정당에 10년 이상 몸담으며 대표까지 지낸 인물이지만 한때 보수정당 소속으로 활동한 기간도 꽤 길었기 때문에 이명박, 홍준표, 이재오, 김문수 등과는 막역한 관계라고 한다. 진영의 경우에는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됐음에도 불구하고 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서 "지금 당하고는 잘 맞는거 같냐?", "다시 우리 당에 오면 안 되냐?"라는 식의 말을 주고받는게 청문회장이나 국정감사장에서 나올 정도. 여담이지만, 진영은 "다시 우리 당에 오면 안 되냐"는 말에 "안 갑니다."라고 답변해서 웃음을 줬다. 20대 총선 당시, TK에서 당선된 적이 있는 김부겸은 대구경북의 보수정당 국회의원들이 김부겸을 통해서 행정이나 예산문제를 처리했다고 했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인데다 홍준표, 주호영 등과도 상당히 친한 사이다.[17]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해찬도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나와서 "노무현문재인은 노동운동 시절부터 다른 행보를 보였던 사람."이라며, 그 둘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꺼낸 적도 있다. 문재인은 줄줄이 경위서를 다 썼지만, 노무현은 단 한줄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18] 이후 민주당계 정당에서 조경태처럼 고학으로 졸업해, 운동권과 거리가 멀었으나 시민단체를 거치며 정계에 입문한 케이스는 이재명이 계승한다. 이재명 또한 애초 장학금을 받고 들어온 케이스에다 형인 이재선의 취업까지 도와줘야했던 시절이라 운동권에 관심을 둘 여유 따윈 없었다. 둘 다 노무현 때문에 정계에 들어온 것도 비슷하다. 언더독이였다가 주류로 올라온 것까지. 다만, 현시점에서는 조경태한테든 이재명한테든 이 둘을 언더독이라곤 하지 않는다.[19] 일단 '한국에서' 비례대표제의 전신인 전국구 제도는 박정희 정권 당시 시작된 것이기는 하나 유신 이전인 6대 국회에 처음 도입된 것이고, 게다가 이 시기의 전국구 국회의원 제도는 양당제 구도 촉진을 위한 인위적 가공이 가해져 있는 등 보편적인 비례대표제의 제도적 지향점에 비주어보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최소한 유권자가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는 직접 선택할 수 있던 제도로 아예 대통령이 직접 거수기를 임명하는 제도였던 유신정우회와 비교할 수는 없다.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하고 주장한 것이거나 비례대표제에 대해 나쁜 인상을 주기 위해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이 아닌가 비판을 받아야 할 부분. 결정적으로 비례대표는 내각제를 시행하는 일본이 이미 몇십년 전부터 하고 있던 것이기도 하다. 석패율제로 해서 지역구에서 떨어져버리면, 비례로 구제하는 방법까지 한국 여야 정치권에서 논의됐을 정도.[20] 이 때 같이 영입됐던 인사가 철완으로 유명한 야구선수 최동원이였다.[21] 지식경제위원회에 함께 소속되었을 당시 예산안 삭감 문제를 가지고 날선 공방이 나왔고, 이 외에도 여러번 언쟁이 있었다.[22] 조경태 58%, 하태경 59%.[23] 17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함께해온 5선 의원 가운데 김진표 후반기 국회의장은 2014년 제6회 지방선거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중도에 사퇴했다가 남경필 후보에게 지고 낙선한 이력이 있기에 19대 국회 이력이 2년 비는데다, 기존 지역구인 수원시 정(구.수원시 영통구) 선거구는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박광온 의원이 당선되었기에 20대 총선부터는 신설된 수원시 무 선거구로 옮겨 당선되었으며, 국회의장 역임 후 정계에서 은퇴하는 관례 때문에 22대 총선에는 불출마하였으며, 더불어민주당 안민석(경기 오산시), 변재일(충북 청원군→충북 청주시 청원구) 의원은 컷오프,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에서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구→대전 유성구 을)은 낙선하였다.[24] 주호영의 경우에는 17~20대에는 대구 수성구 을에서 활동하다가 21대 총선부터는 인접 지역구인 수성구 갑으로 옮겼다.[25] 당시 노무현 부산 동구 국회의원 후보 선거봉사단 활동으로 입당[26] 3당 합당 반발로 인한 탈당[27]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28]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29] 신한국당과 신설 합당[30]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31]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32] 대통합민주신당 입당을 위한 탈당[33]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합당[34] 시민통합당과 합당[35]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36]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37] 16년 만의 복당이다. 한나라당에서 짧은 기간 동안 있었고 한나라당 당적으로는 선거에 출마한 적이 없는데다, 탈당한 지가 오래돼 기억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의 언론들이 '입당'이라고 표현했지만 엄밀히는 '복당'이 맞다.[38]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39]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탈당, 새누리당 복당.[40] 2017.02.13 새누리당자유한국당 당명 변경.[41] 2020.09.02 미래통합당국민의힘 당명 변경.[42] 역사 순으로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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