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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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복궁, 광화문 광장일대의 모습 |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하고 계획 도시로 건설되었던 처음에는 이 도로의 이름이 없었지만, 시전이 설치되고 사람들이 구름(雲)처럼 모여들면서 운종가(雲從街)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후에 보신각이 있는 큰 도로라고 하여 종로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종로 또는 운종가로 불린다.
'종로○가'와 같이 법정동 명칭으로도 쓰인다. 행정동으로는 종로1·2·3·4가동, 종로5·6가동끼리 묶인다. 도로명주소의 도로 번호로 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대략 종로 인근으로 50번(500m)마다 끊었다고 보면 된다.
- 종로5가: 종로 200~260번 (종로32길~종로40길) - 1~4가에 비해 남북으로 약간 더 넓은 편이다.
- 종로6가: 종로 260~290번 (종로40길 - 율곡로) - 도로 근처라는 느낌이 없이 완전히 남북으로 넓다.
원래는 흥인지문까지만 종로이고 이후부터는 왕산로였으나, 2010년 도로명을 정비하면서 왕산로 중 종로구에 해당되는 흥인지문~신설동역 구간을 종로로 편입하여 현재의 구간이 되었다. 단, 지명 및 법정동명으로서의 종로는 여전히 흥인지문까지며, 실생활에서 쓰이는 종로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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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의 종로의 모습 |
원래는 육조거리[6]만큼 되는(영조척으로 56자(尺)) 넓은 도로였으나, 육의전과 시전상인들이 계속 운종가에 머물게 되면서 자연히 도로가 좁아졌고, 1974년에 현재의 너비로 확장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종로는 경성부의 중요가로로써 역할을 했으며, 일본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여 번화한 중구의 혼마찌와 다르게, 전통과 역사의 도로이자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이 집결하여 번화한 지역이었다.
종각을 중심으로 광화문, 세종대로와 인접한 종로1·2가와 동대문종합시장, 평화시장, 광장시장 등의 시장들과 흥인지문이 중심인 종로5·6가는 최중요 도심으로 기능하고 있고, 중심부인 종로3·4가는 개발이 멈춰 침체된 쌍봉낙타식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종로는 경성부의 중요가로로써 역할을 했으며, 일본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여 번화한 중구의 혼마찌와 다르게, 전통과 역사의 도로이자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이 집결하여 번화한 지역이었다.
종각을 중심으로 광화문, 세종대로와 인접한 종로1·2가와 동대문종합시장, 평화시장, 광장시장 등의 시장들과 흥인지문이 중심인 종로5·6가는 최중요 도심으로 기능하고 있고, 중심부인 종로3·4가는 개발이 멈춰 침체된 쌍봉낙타식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서울특별시의 대표적인 번화가 중 하나이자, 중심상권 밀집지구. 세종대로와 가까운 서쪽은 종로타워 및 로댕 갤러리와 기타 높은 오피스 빌딩 등이 밀집해서 있는 등 상당한 번화가로 유명하며, 교보생명, SK그룹, 한화그룹 본사와 같이 여러 대기업들이 종로에 위치해 있다. 또한, 동쪽은 의류상권의 중심인 동대문시장이 있다.
여기에 각 금융기관의 본사와 서울지점도 역시 종로에 모여있기 때문에 세종로와 태평로(현 세종대로)가 정치적 중심지라면, 종로는 경제적 중심지로 부를만 하다. 실제로 종로의 하루 유동인구는 무려 15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번화한 곳이다. 하루 유동인구 150만명…종로를 '걷기 편한 거리'로
반면에 종로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종묘나 탑골공원 주변은 개발제한과 여러 요인으로 인해 굉장히 낙후되었다는 두 얼굴을 가진 지역이기도 하다. 이 부근은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관인 단성사, 악기상권의 중심지인 낙원상가, 외국인도 워낙 잘 아는 인사동길, 종묘 건너편에 있는 전자제품 상가인 세운상가 등이 위치한 나름대로 번화한 곳이었으나 최근 상권이 침체되면서 낙후된 채 방치되고 있다. 그나마 인사동이 관광지로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또한, 종교적 면에서도 뜻있는 곳인데, 서울의 도심 사찰이었던 원각사 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며, 조계종의 총 본산인 조계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8] 원각사 터 위에 세워진 공원이 탑골공원이다. 탑골공원은 3.1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며, 보신각에서 멀지 않은 종로타워 뒤쪽의 센터마크호텔 근처에는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모인 요릿집인 태화관 자리가 있다.(현 태화빌딩) 종로와 그 주변에 있는 명소만 꼽아도 열 손가락이 넘칠 정도다. 그냥 신호등 건너서 한 블럭만 가면 명소다.
청계천도 이 도로 남쪽을 따라 나 있다. 사실 종로 자체가 청계천에 맞춰 동서축으로 조성된 거리다. 따라서 엄밀히는 청계천이 종로를 따라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종로가 청계천을 따라난 것이다.
종로와 연결된 작은 골목들 중에는 피맛골이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서민 전용이었던 맛집 거리가 있었으나 재개발로 인해 철거된 구간이 상당히 많다. 그래도 남아있는 종로 일대가 전체적으로 맛있고 싼 밥집이 널려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교보문고의 정문이 이 도로를 향해 나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원래 정문은 광화문역 안에 있는 문이었지만도로명주소를 간지나게 바꾸려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정문 위치를 바꿨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정문은 개점 당시부터 종로 방향이었다.[9] 그래서 부여된 새주소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이다.
1974년에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처음 뚫릴 때 이 도로를 따라서 뚫렸다. 그래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종로선'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업지구라서 유동인구는 많지만, 정작 상주 인구는 매우 적어서 주민센터(동사무소)가 종로 1~4가 지역을 통합해 관할한다. 도심 공동화 현상의 전형적인 예시다.아니, 애초에 도심지에다 주택 대단지를 건설하는 게 가능합니까? 1950년대에는 종로 1,2,3,4가동이 전부 다 따로 있었다. 6.25 전쟁에 따른 판자촌이 형성되어 있어서 종로 일대의 인구가 15만 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2022년 현재 종로1,2,3,4가동 인구는 1만명이 채 안 되니 어마어마한 도심 공동화 현상을 볼 수 있다.
종로3가 뒷골목은 대한민국의 가장 오래된 슬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발상지인 셈. 1960년대에는 홍등가가 있었고[10] 1980년대 헤비메탈의 산실이었던 파고다극장이 있었으며, 그 일대에 자리잡기 시작한 게이바와 게이 호스트바[11]가 2010년대까지 이어져 많이 위치해 있다. 하지만 게이바라고 다 무슨 특색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게이들이 모여서 적당히 술을 마시는 장소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다만 2010년대 후반 들어 3가 지역 북쪽으로 연담된 익선동이 새로운 문화적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해 임대료와 물가가 급상승하는 등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고, 2020년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 위기까지 겹쳐 이 상업시설들의 존립에 빨간불이 켜졌고 실제로 몇몇 업소는 문을 닫기도 하였다. 몇몇은 업장을 이전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종로5가에는 약국이 여럿 몰려있다. 보령제약의 모태가 된 약국이자[12] 30년 넘게 비슷한 카피라이트 문구의 라디오 광고로 유명한 보령약국을 비롯해서 수많은 약국이 종로5가 일대에 있다. 이곳에 약국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무렵부터인데 종로 주변에 서울대학교병원, 고려대학교 혜화병원[13], 이대동대문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대형 병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서울대병원과 중앙의료원만 남았다. 특히 이 지역의 약국은 전문의약품을 매우 저렴하게 파는 것으로 유명해서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비만 환자와 탈모 환자들에게는 거의 성지 수준. 희귀병 치료를 위한 약품도 종로5가 약국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여담으로 이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알겠지만, 좌회전이 매우 심하게 제한되는 도로이다.[14] 의심되면 다음 로드뷰로 한번 보자.
이 도로에는 주유소가 하나도 없고, 직진을 한다면 서쪽으로는 마포구 양화대교 북단까지, 동쪽으로는 동대문구 이문동삼거리까지 가야 주유소가 있다. 원래 홍대입구역 옆에 주유소가 하나 있었는데 2015년 헐리고 그 자리에 롯데호텔 L7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신설동역 옆에 주유소가 하나 있었다.
여기에 각 금융기관의 본사와 서울지점도 역시 종로에 모여있기 때문에 세종로와 태평로(현 세종대로)가 정치적 중심지라면, 종로는 경제적 중심지로 부를만 하다. 실제로 종로의 하루 유동인구는 무려 15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번화한 곳이다. 하루 유동인구 150만명…종로를 '걷기 편한 거리'로
반면에 종로의 중앙이라고 할 수 있는 종묘나 탑골공원 주변은 개발제한과 여러 요인으로 인해 굉장히 낙후되었다는 두 얼굴을 가진 지역이기도 하다. 이 부근은 대한민국 최초의 영화관인 단성사, 악기상권의 중심지인 낙원상가, 외국인도 워낙 잘 아는 인사동길, 종묘 건너편에 있는 전자제품 상가인 세운상가 등이 위치한 나름대로 번화한 곳이었으나 최근 상권이 침체되면서 낙후된 채 방치되고 있다. 그나마 인사동이 관광지로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또한, 종교적 면에서도 뜻있는 곳인데, 서울의 도심 사찰이었던 원각사 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며, 조계종의 총 본산인 조계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8] 원각사 터 위에 세워진 공원이 탑골공원이다. 탑골공원은 3.1 운동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며, 보신각에서 멀지 않은 종로타워 뒤쪽의 센터마크호텔 근처에는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모인 요릿집인 태화관 자리가 있다.(현 태화빌딩) 종로와 그 주변에 있는 명소만 꼽아도 열 손가락이 넘칠 정도다. 그냥 신호등 건너서 한 블럭만 가면 명소다.
청계천도 이 도로 남쪽을 따라 나 있다. 사실 종로 자체가 청계천에 맞춰 동서축으로 조성된 거리다. 따라서 엄밀히는 청계천이 종로를 따라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종로가 청계천을 따라난 것이다.
종로와 연결된 작은 골목들 중에는 피맛골이라는 조선시대 때부터 서민 전용이었던 맛집 거리가 있었으나 재개발로 인해 철거된 구간이 상당히 많다. 그래도 남아있는 종로 일대가 전체적으로 맛있고 싼 밥집이 널려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교보문고의 정문이 이 도로를 향해 나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원래 정문은 광화문역 안에 있는 문이었지만
1974년에 서울 지하철 1호선이 처음 뚫릴 때 이 도로를 따라서 뚫렸다. 그래서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종로선'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상업지구라서 유동인구는 많지만, 정작 상주 인구는 매우 적어서 주민센터(동사무소)가 종로 1~4가 지역을 통합해 관할한다. 도심 공동화 현상의 전형적인 예시다.
종로3가 뒷골목은 대한민국의 가장 오래된 슬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국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발상지인 셈. 1960년대에는 홍등가가 있었고[10] 1980년대 헤비메탈의 산실이었던 파고다극장이 있었으며, 그 일대에 자리잡기 시작한 게이바와 게이 호스트바[11]가 2010년대까지 이어져 많이 위치해 있다. 하지만 게이바라고 다 무슨 특색이 있는 게 아니고, 그냥 게이들이 모여서 적당히 술을 마시는 장소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다만 2010년대 후반 들어 3가 지역 북쪽으로 연담된 익선동이 새로운 문화적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해 임대료와 물가가 급상승하는 등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했고, 2020년 들어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 위기까지 겹쳐 이 상업시설들의 존립에 빨간불이 켜졌고 실제로 몇몇 업소는 문을 닫기도 하였다. 몇몇은 업장을 이전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종로5가에는 약국이 여럿 몰려있다. 보령제약의 모태가 된 약국이자[12] 30년 넘게 비슷한 카피라이트 문구의 라디오 광고로 유명한 보령약국을 비롯해서 수많은 약국이 종로5가 일대에 있다. 이곳에 약국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무렵부터인데 종로 주변에 서울대학교병원, 고려대학교 혜화병원[13], 이대동대문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대형 병원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서울대병원과 중앙의료원만 남았다. 특히 이 지역의 약국은 전문의약품을 매우 저렴하게 파는 것으로 유명해서 전국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비만 환자와 탈모 환자들에게는 거의 성지 수준. 희귀병 치료를 위한 약품도 종로5가 약국거리에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여담으로 이 도로를 달리다 보면 알겠지만, 좌회전이 매우 심하게 제한되는 도로이다.[14] 의심되면 다음 로드뷰로 한번 보자.
이 도로에는 주유소가 하나도 없고, 직진을 한다면 서쪽으로는 마포구 양화대교 북단까지, 동쪽으로는 동대문구 이문동삼거리까지 가야 주유소가 있다. 원래 홍대입구역 옆에 주유소가 하나 있었는데 2015년 헐리고 그 자리에 롯데호텔 L7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신설동역 옆에 주유소가 하나 있었다.
종로동의 정보 |
종로는 법정동의 명칭이기도 하며, 현재 종로1가에서 6가까지 있다. 이는 원래 경성부 종로1·2·3·4·5·6정목으로 불리던 것이 해방 이후에 전부 일괄적으로 '가(街)'로 교체된 것이다. 이름의 유래는 당연히 이곳을 따라 있는 도로인 종로이며, 과거에는 도로 종로와 마찬가지로 '운종가'라고 불렸다.
행정동으로서의 종로는 현재 크게 '종로1·2·3·4가동'과 '종로5·6가동'으로 나뉘어 있는데, 법정동 종로를 포함하여 34개의 법정동이 소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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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1호선은 서울역에서 청량리역을 종로 연선을 쭉 따라 이어서 과거 종로선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서울시의 1기 지하철 계획은 과거 서울의 단핵도심이었던 종로를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현재도 길이에 비해 많은 수의 지하철이 종로를 지나가고 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길에서 꿈을 꾸며 달려가리라
...
아아아아 우리의 서울 우리의 서울
거리마다 푸른 꿈이 넘쳐흐르는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가수 이용의 노래, '서울' 中
종로로 갈까요~
명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가수 설운도의 노래, '나침반' 中
[1] 도로명으로서의 종로는 Jong-ro, 지명으로서의 종로는 Jongno로 표기한다. 도로명으로 표기할 땐 도로임을 강조하기 위해 길의 뜻을 가진 ro(路)로 쓰고, 지명으로 표기할 때는 발음법을 따라 no로 표기하는 것. 참고로 야인시대의 종로회관과 입시학원인 종로학원의 영문 표기는 전자의 표기를 따른다.[2] 한화그룹 본사 빌딩과 SK그룹, 미래에셋증권의 빌딩이 보이며, 멀리 롯데호텔 서울도 보인다.[3] 경성부 시절에는 '종로n가(街)'가 아니라 일본식으로 '종로n정목(丁目)'으로 불렸지만 해방 이후 현재와 같이 바뀌었다.[4] 본래의 종로는 종로1가부터 종로6가까지이지만 2010년 왕산로 구간 일부를 편입하면서 창신동과 숭인동도 종로 연선에 있게 되었다. 하지만 종로라는 이름이 붙은 법정동은 저 6개 법정동뿐이다.[5] 가운데에 전차 분기점 왼쪽이 보신각이다. 사실 이 풍경은 별도 확장공사 없이도 구한말에 비해 굉장히 넓어진 것인데, 조선시대 당시에는 시전 상인들의 좌판이 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을 구한말에 당국이 싹 다 두드려잡아버렸고 그 빈 공간에 한반도 최초의 전차가 가설되었다.[6] 현재의 세종대로[7] 서울시 전역과 전국적으로 보아도 이렇게 거대하게 상업지역이 형성되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8] 정확히는 종로타워-덕성여자중고교 앞 사거리(율곡로와 접속)에 이르는 우정국로에 면한다.[9] 다만, 교보빌딩 전체의 정문은 세종로쪽이다. 교보문고는 지하에서 올라오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정문이 종로쪽이고, 세종로쪽은 지하보도에서 연결과는 문만 있다.[10] 당시를 다룬 소설에서 '종삼'이라는 약칭으로 언급되는 곳이 이곳.[11] 일명 중빠라고 부른다[12] 현재도 보령제약의 본사는 종로에서 멀지 않은 원남동에 있다.[13]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의 전신. 현재는 철거되고 없다.[14] 종로6가, 종로4가~2가, 종로구청사거리, 종로1가, 흥인지문교차로(동대문 방향 한정)이 좌회전 금지이다. 양방향 모두가 좌회전 가능한 교차로는 종로5가 교차로 1개다. 세종대로네거리도 좌회전이 안 되다 보니, 한강대로 방면으로 내려갈 때 세종문화회관에서 U턴한다.[A] 15.1 15.2 2023년 2월 주민등록인구[17] 6번 국도 인천광역시 중구, 경기도 부천시,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면[18] 도로원표가 위치하는 기준지[19] 인천광역시 강화군, 경기도 김포시,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면[20] 종각역사거리[21] 종로3가역사거리[22] 종로5가역사거리[23] 6번 국도 강원도 강릉시, 경기도 양평군, 서울특별시 중랑구 방면[24] 세종대로에 있으나, 종로의 기점인 세종대로네거리에 걸쳐있다.[25] 지번주소로도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 1번지'인만큼 종로에서 매우 상징적인 건물이다.[26]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민간은행이다.[27] GS건설이 만든 빌딩이다. 여러 시설들이 집중되어 있다. 맞은 편 종로타워와 비슷하다.[28] 서울유엔인권사무소[29] 영풍문고가 입주해있는 빌딩이다.[30] 주소는 청계천로로 되어 있으나, 종로 쪽에도 출입구가 있다. 무엇보다 지점명이 '종로'본점이다.[31] 이외에도 총 8개층을 사용한다.[32] 종묘 바로 앞에 있다.[33] 종로 연선에 있는 전통시장이다.[34] 동묘라고도 불리며, 관우를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35] 종로의 종점이다.[36] 정류장을 지게차로 번쩍 들어서 인도 쪽으로 밀어낼 수 있다. 다만 정류장 이동이 가능한 것은 서울시로부터 정당하게 허가를 받은 행진에만 해당된다. 따라서 각종 시위에 뒤따른 행진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37] 세종대로는 본래 조선시대에는 육조거리였지만 일제강점기에 이곳을 경성부 '광화문통'으로 바꾸면서 세종대로는 광화문길, 세종대로사거리는 광화문사거리라고도 많이 불렸다.[38] 1호선 자체가 종로를 따라서 만든 노선이다.[39] 경복궁이나 창덕궁과 연계된 쪽의 출입구는 북인사마당이고, 이 가사에서 언급하는 인사동길 앞은 종로2가교차로에 있는 남인사마당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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