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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포르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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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슈츠슈타펠 문장 친위대의 장성급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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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윗 첨자P : 질서경찰 계급 겸임
포르스터1
이름
Albert Maria Forster
알베르트 마리아 포르스터
출생
사망
복무
슈츠슈타펠 (1926년 ~ 1945년)
최종 계급
슈츠슈타펠 대장 (상급집단지도자)
주요 참전

1. 개요2. 초기 행적3. 나치당에서의 행적4. 제2차 세계 대전5. 전후 재판과 최후

1. 개요[편집]

포르스터2
알베르트 마리아 포르스터 (Albert Maria Forster)
나치 독일의 정치인, 친위대 대장이다.

2. 초기 행적[편집]

형무소 소장이던 부친아래 바이에른 왕국퓌르트에서 태어난 포르스터는 학교졸업 후 은행에서 일하다가 1923년 11월 7일나치당에 입당해 뮌헨 폭동에 참가했지만 폭동 실패 후 나치당이 해체되자 율리우스 슈트라이허헤르만 에서가 주동한 대독일민족 조합에 가입했다. 1925년 2월나치당을 재건중이던 히틀러와 처음 만난 포르스터는 나치당의 반유대주의 신문인 <슈트르머>의 편집기자가 되었다.

3. 나치당에서의 행적[편집]

1925년 4월 5일나치당에 복당한 포르스터는 나치당의 연설가로 활동했는데 1926년 5월 12일에 친위대에 입대해 1928년 2월부터 1930년 10월까지 뉘른베르크의 독일국가상업인 연합에 출납장으로서 근무했다. 1929년 12월함부르크의 친위대 지도자가 된 후 1930년 9월 14일나치당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나치당 국회의원단의 노동자부문 고문이 되었다.
1930년 10월 15일에 단치히 지구 지도자로 임명된 포르스터는 폴란드 침공후인 1939년 9월 20일히틀러, 하인리히 힘러,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와 함께 폴란드 점령지구의 통치를 담당하는 중요인물이었다.

5. 전후 재판과 최후[편집]

전후 1945년 5월 27일영국군의 포로가 된 포르스터는 1946년 8월폴란드로 인계되어 1948년폴란드에서 개최된 법정에서 학살전쟁범죄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고 1952년 2월 28일바르샤바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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