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 BACK << -|- >> HOME <<)

루스커이 예뇌

최근 수정 시각:
편집
현재 사용중인 아이피가 ACL그룹 IDC #12915에 있기 때문에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만료일 : 무기한
사유 : IDC(AS26496)
토론 역사
슈츠슈타펠 문장 친위대의 장성급 지휘관
[ 펼치기 · 접기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윗 첨자P : 질서경찰 계급 겸임
비테즈 루스커이 예뇌 오스카르
Vitéz Ruszkay Jenő Oszkár
루스커이 예뇌2
출생
사망
1946년 6월 22일 (향년 59세)
국적
학력
테레지아 사관학교
직업
군인
최종 계급
참전

1. 개요2. 초기 행적3. 제2차 세계 대전4. 전후 행적

1. 개요[편집]

헝가리의 군인이다.

2. 초기 행적[편집]

루스커이 예뇌는 1887년 1월 1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부다페스트에서 오이겐 란첸베르거[1][2]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에 입대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전후 루스커이는 호르티 미클로시의 군대에 합류하고 새로운 헝가리군의 부관으로 근무했다.
1940년에 군에서 물러났던 예뇌[3]1944년 판처파우스트 작전으로 살러시 페렌츠 정권이 세워지자 헝가리 육군 참모부에 현역으로 소집되었다. 1944년 12월 20일 루스커이는 SS장관 하인리히 힘러의 초청으로 베를린에서 헝가리 친위대 창설을 논의했다. 루스커이는 1945년 2월 1일 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무장친위대 대장 계급으로 친위대에 합류했다. 1945년 4월 10일 헝가리 무장친위대의 사령관을 맡았다.

4. 전후 행적[편집]

루스커이 예뇌1
종전 직후의 예뇌[4]
1945년 5월 6일 조지 패튼의 부대가 헝가리 무장친위대 사단을 포위했고 결국 루스커이가 대표로 항복했다. 루스커이는 1945년 10월 뉘른베르크로 이송되었고, 한달 후 전범으로 헝가리에 넘겨졌다. 1946년 3월 27일 재판에서 루스커이는 사형을 선고받았고, 6월 22일 부다페스트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

[1] Eugen Ranzenberger[2] 이후 비테즈 루스커이 예뇌 오스카르로 변경[3] 헝가리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성이 이름 앞에 온다. 즉, 루스커이는 성이고 이름은 예뇌다.[4] 친위대 제복에 토텐코프, 계급장 등 부착물이 제거된 상태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  
  •  
  •  
  •  
  •  
  •  
  •  
  •  
  •  
  •  
  •  
  •  
  •  
  •  
  •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