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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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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
이윤영
제2대
박순천
제3-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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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1963년) 로고(흰색... 민주당(1963년) 흰색 로고... 총재 및 대표


대한민국 제2·4-7대 국회의원
박순천
朴順天 | Park Soon-cheon
9925C94C5A679646...
본명
박명련 (朴命連)
출생
경상남도 기장군 기장면 대변리
(現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사망
1983년 1월 9일 (향년 84세)
학력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요시오카여자의학전문학교 (중퇴)
도쿄여자대학 (사회사업학 / 중퇴)
니혼여자전문학교 사회학부 (여공보전학 / 전문학사)
종교
개신교가톨릭 (세례명 : 요안나)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2, 4, 5, 6, 7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4. 여담5. 선거 이력6. 소속 정당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치인.

1950년부터 정계에 입문하면서 한국 초기 여성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치고, 민주당계에서 무려 5선까지 지내며[1] 여성 최초의 당대표[2][3] 지내는 등 초기 헌정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정치인이다. 또한 후술되어있듯 헌정 사상 최초로 여야 영수회담을 성사시킨 인물이기도 했다.

허나 일제강점기 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행적과 정치 말년 군사독재정권으로의 변절 논란으로 명암이 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말기가 문제다.

2. 생애[편집]

1898년 경상남도 기장군(현 부산광역시 기장군 대변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명련(命連)이었으나, 후에 박순천으로 개명하였다.

1917년 동래의 일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마산의 의신여학교 교사로 있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해 3.1 운동에 참가하였는데 그로 인하여 수배되어서 일본에 피신하였으나 일본에서 검거되었다.

이후 결혼을 하였고 1939년 상경하여 경성가정여숙을 설립하고 교육자가 되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황신덕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었다. 1943년 3월께 제자들에게 정신대에 지원할 것을 종용해 제자 1명을 정신대로 보냈다. 그리고 친일 단체인 황도 학회 결성식에 발기인으로 참여, 조선 임전 보국단 부인대에는 박마리아, 김활란, 모윤숙, 노천명 등 쟁쟁한 여성 친일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참여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가 되었다. 그러나 정신대 지원이 없으면 학교가 폐교된다는 일제의 협박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지원한 것이기 때문에, 황신덕이나 박순천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1945년 8.15 광복중앙여자중학교 부교장이 되었고 1947년부터 독립촉성애국부인회 회장을 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서울 종로구 갑(1대 ~ 3대), 부산 동구 갑(4대 ~ 5대), 서울 마포구(6대) 등에 출마해 2대, 4대, 5대, 6대, 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치 1번지인 종로구에서 당선되었으며,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1번으로 당선, 5선 고지에 올랐다. 무소속이었던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4.7%의 저조한 득표를 올렸지만, 4대 ~ 6대 총선에서는 50%를 훌쩍 넘는 압도적 득표를 했다. 특히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그마치 67%의 득표를 했다.

2024년 추미애가 6선 고지를 밟기 전까지 여성 최다선, 지금도 차다선으로, 여성의 지위가 지금보다 상당히 낮았던 당시를 고려하면 엄청난 기록을 남긴 것이다. 민주당계 정당(민주당, 민중당, 신민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였다.

1965년에는 박순천 민중당 대표최고위원과 박정희 대통령간 헌정사 첫 여야 영수 회담을 했다. 1966년에는 직접 베트남 전쟁 때 월남에 가서 파월 장병을 격려하기도 했다. 이 당시 함께 동행한 대변인이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

다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1972년 10월 유신 후 국토통일원 고문, 육영수여사추모기념사업회 이사장[4] 등을 맡으며 친정부 인사로 전향하여 청암 송건호로부터 곽상훈과 더불어 "박정희에게 붙었다"며 비난을 받았다.

1980년 전두환 집권 후에는 국정자문위원을 역임하며 1982년 8월 초대 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았다가 위에 서술한 친일행위 논란이 불거지면서 한달도 못 돼서 사퇴[5]하였고, 이듬해 1월 9일 밤 10시 30분, 서울특별시 강서구 화곡동 자택에서 고혈압신부전증뇌졸중으로 사망했다.

3. 대중매체에서[편집]

2003년 SBS 드라마 야인시대 1화와 최종화인 124화[6]에서 한복을 차려 입은 할머니로 등장한다. 김두한이 회의장 안에 들어오면서 자신의 옆에 앉는데, 뭔가를 들고 들어왔고, "김의원, 이게 뭡니꺼?"라고 묻는다. 김두한이 "사카린입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자리에 앉았고, 한참 뒤 지독한 냄새가 흘러나오자 "무슨 사카린 냄새가 이렇게 지독하노?"라고 의아해한다[7][8]. 김두한이 똥물을 뿌린 뒤에는 "냄새가 난다 캤다. 이를 우야믄 좋노!?" 하며 당황해한다. 배우는 김지영이며, 실제 모습과 상당히 흡사하다.[9]

1981년 MBC 드라마 제1공화국에서는 전양자가 맡았지만, 각본상 임영신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존재감이 약했다.

이후 역대 공화국 시리즈에서는 대체로 성우 출신 배우 김소원이 맡아왔다. 1998년 SBS 삼김시대에도 출연했다. 위의 사진과 비교하면 완전 복붙이다!

|PSC[10]

4. 여담[편집]

  • 페미니스트의 초대 대모 중 하나로서, 생리휴가를 주장한 최초의 운동가다.
  • 1990년대 후반에 나온 한국군 베트남 전쟁 파병에 대하여 비판한 책자에서 언급이 된 바 있다. 박순천은 베트남 전쟁을 지지하고 심지어 저 넓은 땅(베트남)을 우리가 이 기회에 차지할 수 없느냐는 이야기를 했다면서 친일논란과 같이 이런 말을 경솔하게 했다고 비판적으로 언급했었다.
  • 1966년 김두한 의원의 국회 오물 투척 사건 당시 김두한 의석 바로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박순천이었다. 이후 김두한이 단상에서 총리 등에게 똥물을 뿌리는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여성운동가와 정치인으로 활약한 이치카와 후사에와 비슷한 점이 있다. 같은 여성운동가이자 박순천과 같은 5선 국회의원에 1940년대 도조 히데키 정권에 협력하여 대일본 언론보국회 이사에 취임하여 패전 이후 미군정 당시 공직에서 추방을 당한 경험이 있어 명과 암이 갈리는 점 등이 그렇다. 그래도 여성의 참정권 획득과 일본 정부에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등 전후 여성 운동에 기여한 바가 인정되어 막사이사이상 민주주의부문을 수상했다.

5.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48
5,518 (15.10%)
낙선 (2위)
1950
대한부인회
11,251 (54.98%)
당선 (1위)
초선
1954
4,306 (14.68%)
낙선 (3위)
1958
민주당 1955년 글자
22,907 (59.95%)
당선 (1위)
재선
1960
22,668 (57.53%)
3선
1 (0.38%)
낙선 (7위)
1963
민주당(1963년) 흰색 로고...
50,250 (67.67%)
당선 (1위)
4선
1967
전국구
신민당 흰색 로고타입
3,554,224 (32.7%)
당선 (1번)
5선

6.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1940
정계 입문
국민총력조선연맹
1940 - 1945
당명 변경
1945
정당 해산
건국부녀동맹
1945
창당
1945 - 1946
당내 노선 차이로 탈당
1946 - 1948
창당
대한애국부인회 글자
1948 - 1949
당명 변경
대한부인회
1949 - 1952
합당[12]
1952 - 1955
탈당
민주당 1955년 글자
1955 - 1961
창당
1961 - 1963
정당 해산[13]
민주당(1963년) 흰색 로고...
1963 - 1965
창당
민중당(1965년) 흰색 로고...
1965 - 1967
합당[14]
신민당 흰색 로고타입
1967 - 1969
합당[15]
1969
자진 정당 해산
신민당 흰색 로고타입
1969 - 1980
정당 재등록
1980 - 1981
정당 해산
민주정의당 글자
1981 - 1982
창당
1982 - 1983
탈당
정계 은퇴

7. 관련 문서[편집]

8. 둘러보기[편집]

[1] 1967년 세운 이 기록은 무려 45년이 흐른 2012년에 이르러서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미경 전 의원이 타이 기록을 세우게 된다. 추미애 전 의원은 2016년에 5선에 올랐고, 2022년 6월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영선 의원이 여성 5선 고지에 올랐다. 그 후 22대 총선에 추미애 전 의원이 하남시 갑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됨으로서 57년 만에 여성 국회의원 최다선 기록을 경신했다. 차이점은 박순천, 이미경, 김영선과 달리 추미애는 지역구로만 6선을 했다는 것이다.[2] 박순천 여사 이후 두 번째로 당대표를 맡은 여성 정치인은 2004년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이다.[3] 여담으로 최초의 여성 장관은 이승만 정권의 임영신 초대 상공부장관이다.[4] 육영수 여사가 생전에 그녀를 찾아와 유신에 대한 견해를 물어왔었다고 한다.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살갑게 굴었던 일화가 있어서 그런 친분이 영향을 줬던 걸로 추정된다.[5] 1982년 초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이 터지자, 정통성 논란에 시달리던 전두환 정권은 독립기념관을 짓겠다면서 박순천을 추진위원장으로 선임했는데, 한달도 안 돼서 친일논란이 터진 것이다. 곤혹스럽던 군부정권은 곧바로 박순천을 경질하고 후임으로 안중근의 조카인 안춘생을 선임했다. 다만 친일논란이 아니더라도 건강 때문에 어차피 오래가지 못했을꺼라는 이야기가 있다.[6] 당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사카린 밀수 사건,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을 다뤘다.[7] 당연지사인 게, 사카린이 아니라 똥물을 넣은 것이어서 그렇다.[8]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단단히 밀봉을 한 까닭에 이만섭 당시 의원이 가까이서 보고도 전혀 냄새가 나지 않아 정말로 사카린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극중의 재미를 위해 각색된 장면으로, 정말로 냄새가 났었다면 무조건 반입금지였을 것이다.[9]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잘 드러났는데, 참고로 김지영은 박순천처럼 천주교 신자였지만, 이북 출신이다. 그리고 8도 사투리를 전부 구사하는 능력자였다.[10] MBC 드라마 제2공화국에서 심양홍이 맡은 유진산과 투샷. 둘 다 복붙으로 유명했으며, 삼김시대에도 동일 조합으로 출연했다.[11] 의원 내각제 의회에서의 간접 선거.[12] 대한부인회에 흡수 합당[13] 5.16 군사정변[14] 민정당과 신설 합당[15] 신한당과 신설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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